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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us gradus Gaea

사희연 과거로그



세상을 구성하는 몇 요소들 가운데엔 그 존재가 너무나도 당연하여 새삼스럽게 인식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으레 사람들이 호흡하는 공기가 그러하고, 밤낮을 가르는 빛과 어둠이 그러했으며, 모든 것의 기틀이 되는 땅이 그러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삶이 땅을 딛고 살아간다. 땅은 곧 흙이고, 흙은 뭇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종내에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긴밀한 공간이다. 성경 구절에도 그러한 말이 있지 않던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¹ 많은 매체에서는 아직도 죽음을 ‘흙으로 돌아간다.’고 완곡히 돌려 말하곤 한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 딛고 서있는 바닥 그 자체를 감각하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 있을까. 희연에게도 땅은 그런 것이었다. 굳이 곱씹어 볼 이유도 없고 뚜렷이 느껴야 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도 사세고연한 것. 

22살의 겨울, 희연은 갑작스레 발병한 어지럼증에 제대로 생활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숱한 병원을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마지막으로 들른 병원에서 이능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들었다. 당시에도 희연은 어지럼증에 시달리느라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의사의 제안 후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자신의 어머니가 어떠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대답하는 목소리로 말미암아 그녀의 깊은 수심이 느껴졌을 뿐. 다음 날 희연의 어머니는 병원 대신 이능력 관리 센터에 검사를 예약했다. 검사는 정말이지 별다를 게 없었다. 희연은 꼬박 한 달 간 자신을 괴롭힌 어지럼증에서 벗어났고, 센티넬로 발현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희연은 제 앞에 새로이 주어진 명칭을 조용히 곱씹었다. 원소계 센티넬. 몇 가지 테스트 끝에 센터의 요원이 적당히 친절하고 또 적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사희연 씨는 흙을 다루는 원소계 센티넬이시네요. 웃지도, 차갑지도 않던 얼굴의 요원은 어떤 기분으로 그 말을 했을까. 생판 남의 사정이고, 본인은 업무를 할 뿐이니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창밖으로 멀리 두었던 시선을 가까이 당기면 조수석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이 보인다. 어룽져 흐릿한 눈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고등학교 때의 어느 날이 머릿속을 스쳐지난다. 점심식사 후 친구들과 운동장의 가장자리를 돌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옆반의 어떤 애가 센티넬로 발현해 아카데미로 전학을 가게 되었더라는. 그러자 희연의 옆에서 걷던 친구 하나가 싫다는 듯 어깨를 떨었었다. 

난 좀 무섭더라. 같은 사람으로 안 느껴져. 

그래도 그 사람들 다 국가에 등록되서 공무원 취급 받는다잖아. 난 부러운데. 

공무원이면 뭐해, 어떻게 보면 결국 돌연변이 아냐? 넌 그렇게 살고 싶니?


그래. 딱 그정도 취급이었다. 그때로부터 고작 삼사 년 정도가 지났으니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요즘의 경우 드러내어 배척하는 경우는 그나마 줄었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썩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괴담 아닌 괴담처럼 센티넬로 발현한 아이를 둔 집이 밤사이에 흔적도 없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다는 말이 돌기도 했으니까. 희연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센터에서 나온 이후로 단 한 마디도 없이 입술만 꾹 다문 얼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묻고 싶었다. 당신도 이제 당신의 딸이 같은 사람으로는 느껴지지 않게 되었냐고. 

“엄마.”

“희연아. 너 지난 주에 놀러가서 뭐 이상한 거 먹거나 그랬니?” 

“……”

“뭔가 만지면 안 되는 걸 만졌다거나,”

“엄마.” 

“그러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잖아. 네가 갑자기 무슨 센티넬이야. 말이 되니?”

“엄마!” 

희연이 비명처럼 제 어머니를 부르고, 도로를 달리던 차가 급작스레 갓길로 빠져들어 급정거를 했다. 그 누구도 쉽사리 먼저 입 떼지 않는 정적 속에서 희연은 입술을 짓씹었다. 속이 진창이 된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배신감과 실망이, 혀끝에서 쓰디쓰게 맺힌다. 

“…사희연. 엄마 봐.” 

“……”

“엄마도 속이 타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게 말이 되냐고! 가족 중에도 이능력자가 없는데!”

“그래서 엄마도 내가 갑자기 사람으로 안 느껴져?” 

“뭐? 너 지금 무슨 말을 그렇,”

“지금 엄마 행동이 그렇잖아. 내가 이상한 짓이라도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됐겠어, 내가?!” 

뜨겁게 달아오른 눈을 깜빡이자 맺혀있던 것이 후두둑 떨어져내린다.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희연은 손 안에 얼굴을 묻었다. 감정이 북받쳐 토해내는 숨이 뜨거웠다. 

“적어도 엄마는 안 그래야지. 다른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해도 상관 없는데! 엄마는…… 엄마만은 내 편 해줘야 하잖아…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어떡하라고….”

치미는 흐느낌을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고 짓씹어 울음을 삼킨다. 무언가를 삼키고 감내하는 것은 희연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참는다. 삼킨다. 쌓는다. 덮어 가린다. 그러면 언젠가는 속에서 거뭇한 흔적만 남긴 채 썩어 사라지게 마련이다. 어렸을 적부터 힘든 것을 마주하면 으레 해왔으니까. 이번에도 잘 삼켜낼 수 있으리라고. 여전히 열감이 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됐어요. 엄마도 당황스럽겠지. 내일 아침에 자퇴서 내러 갈 거예요. 그리고 오후에 곧장 기관 가서 기숙사 입소 문의 할게요.” 

“희연아. 그건 너무 갑작스럽잖니.” 

길고 깊은 숨을 내뱉은 희연이 손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물기 남은 눈가를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고는 조수석 창문 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시. 그러자 창을 통해 제게로 손을 뻗는 어머니가 보였다. 

“저 만지지 마세요.” 

희연은 내뱉을 말이 어머니에게 상처로 남을 것을 안다.

“혹시 알아요,”

저 스스로에게 오랜 후회로 남을 것 또한 알았다. 

“엄마한테도 옮을지.”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삼켜내기엔 너무나도 크고 깊은 상처여서. 딱딱하게 내뱉은 희연은 고집스레 돌아보지 않았다. 상처받은 얼굴의 어머니가 입만 벙긋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모습을 유리창으로 보았다. 느릿하게 차가 다시 출발하며 가벼이 몸이 뒤로 기운다. 벌써부터 희연은 저가 내뱉은 말이 후회스러웠다. 저 하나만 상처받고 말아도 됐을 것을. 늘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삼켜내기만 하면 됐을 텐데. 그것 하나를 못 참아서. 

그날 밤 희연은 침대에 누워, 늦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고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주홍색 불빛을 한참 쳐다보았다. 가족 그 누구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와는 그 이후로 대화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겐 직접 말했다. 당신의 딸이 센티넬로 발현했노라고.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흔들리는 눈을 직시하며 계획을 전했다. 희연의 아버지 역시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 조심스레 물어왔으나, 희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능력을 가졌는데 그걸 통제할 수 없는 상태면 그건 시한폭탄이잖아요. 아버지는 시한폭탄을 옆에 두고 싶으세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희연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를 냈다. 제가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아빠. 

자퇴서는 빠르고 싱겁게 처리되었다. 사유란에 적어넣은 센티넬 발현 그 다섯 글자가 마치 모든 것을 무시하는 대단한 프리패스 티켓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학생들이 휴학만 하려 해도 두 시간씩 독대를 한다던 학과장마저 병행을 할 순 없겠느냐, 딱 한마디만을 묻지 않았던가. 그러나 희연은 저 스스로 그럴 수 없으리란 것을 잘 알았기에 그동안 감사했다 의례적인 인사를 되돌리고 돌아선 게 다였다. 모든 행정 처리를 마친 후, 다시 찾게 될 일 없을 학교를 한 바퀴 느릿하게 거닌다. 희연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으므로, 성인이 되어 맞이할 대학생활에 대한 많은 로망이 있었다면 있었다. 그것을 예상치도 못한 이러한 사유로 포기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약 이년 간 숱하게 드나들었던 교문을 마지막으로 나서며 희연은 생각한다. 이능력이란 것이 비록 급작스레 제 인생의 방향을 비틀어버렸지만, 받아들이자고.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거니와 발현한 이상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는 것을 두고두고 미워하며 사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손수 무저갱으로 처박는 짓이 아니겠는가. 딱히 행복을 좇은 적은 없었어도, 굳이 불행을 사서 끌어안고 싶지 않았다. 발 아래 디딘 땅을 내려다본다. 특별히 인식한 적 없던 것을 새로이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당연히 어려울 테고, 힘들거나 괴롭기도 할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희연은 자신이 있었다. 제 것이라면 결국 제가 다스리게 될 테니까. 응당 그렇게 될 것이므로. 새로운 삶을 향해 내딛는 걸음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담기지 않는다. 




¹ [창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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