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winJin ::Story::

《一場春夢》

커미션 신청본

ⓒ환

   1

   인생이란 건 자고로 一場春夢 같은 것이니, 덧없는 필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하늘의 손짓 한번에도 쉽사리 으스러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인간에게 불멸의 삶이라는 건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죽음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머나먼 유토피아와 같은 것. 하늘의 시선으론 그들이 나비인지 무엇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테지.


   2

   진은 옅게 스며드는 햇빛에 지그시 감았던 눈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동안의 제 삶은 빛과는 거리가 꽤나 멀었다. 千字의 使者라고는 하나 자신은 환하게 모든 생명체를 감싸 따스히 감싸주는 빛 같은 게 아니었다. 차라리 어둠이라면 어둠에 더 가까웠지. 그래서 진은 자신이 빛이 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처사고, 빛을 마주하게 되는 것조차 영원토록 제 삶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순간적인 잡념을 떨쳐내고 눈을 떴을 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깼나?"

   "으음... 그냥 너 때문에 눈이 부셔서."


   실없는 농을 하며 진이 웃어 보이자, 앨빈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같이 웃었다. 가드라인 밖에 나타난 이상 현상 탓에 엘빈이 밖을 자주 나가느라 한동안 만날 일이 거의 없던 둘의 오랜만에 만남이었다. 엘빈은 제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는 침대 위에서 낮잠을 자다 막 깬 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옆에 걸터앉아 편하게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여름의 초입인데도 얇은 이불에 조금만 살갗이 닿아도 쉽게 더위가 달아올랐다. 아니, 어쩌면 그건 얇은 이불 탓이 아닐지도 모르지. 적어도 엘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뒤로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뒤척임에 얇은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릴 뿐. 진은 이내 나지막이 들려오는 엘빈의 숨소리에 자신도 눈을 감았다. 이러한 평범한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제 팔에 감긴 족쇄와도 같은 그것을 바라볼 때면 이따금 계속 과거의 기억이 불려 오기 마련이었다. 그때의 자신은 그저 재앙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과거에 행했던 일에 대해 엘빈이 알게 되면 과연 무어라 답해줄까.


   3

   진에겐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던 시절이 존재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ㅡ물론 신의 명령을 받은 것이라 하여도ㅡ 제 손으로 직접 인간들을 모두 파멸로 이끌게 하였으니까. 진은, 아니 그러니까 베리타엘은 자신의 감정을 죽이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다. 영원토록 제 과오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속죄하리라. 진은 자신과 같은 존재가 영원이라는 걸 입에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기에 진은 그 영원이라는 것을 입에 담았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인지라 아무리 그러한 약속을 하더라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지만, 千祀는 불멸의 존재이니 그것을 실현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그의 의지는 소망했다. 제 삶에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내려달라고. 저 깊은 무저갱의 구렁텅이 속에 처박혀 있어도 빛 들 날이 올 수 있기를. 진의 무의식은 빛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 너머의 무언가를.


   4

   "그때를 후회하지는 않나?"


   엘빈은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방이 암흑으로 물들어 있는 낭떠러지 끝, 엘빈은 그 즉시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제 앞에 있는 존재가 진이 아니라 베리타엘이라는 것까지도. 엘빈은 조금 오랜만에 마주하는 진의 두 번째 모습이 반갑기도 하였으나 그 표정이 그리 살갑지는 않았기에 저 또한 표정을 숨겼다. 이처럼 베리타엘이 자신의 꿈속에 나타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나와 계약했던 그때를 후회하지는 않는가.”

   "후회할 이유는 없다."

   “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 않나.”


   한 치의 주저 없이 내뱉는 엘빈의 단언에 베리타엘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굴었다. 엘빈은 그러한 베리타엘의 모습이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베리타엘이 이리 감정을 드러낸 적은 없었기 때문. 어쩌면 이건 베리타엘의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잔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굳이 캐내어 묻지는 않았지만, 앨빈은 진이 얼마나 과거에 힘들어했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엘빈은 그러한 베리타엘을 바라보며 다시 굳건히 답했다.


   "전혀. 나는 너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 평생에 영원이라는 단어를 붙일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었다.

   엘빈은 인간의 무능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작전을 지시하기 위해선 모든 이들의 능력치에 대해 알아야만 했고 그런 거인들 앞에서 얼마나 인간이 한없이 나약한 인간은 거인의 손짓 한 번에 쉽게 으스러지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엘빈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단순히 높은 위치 때문에 이러한 일을 벌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건 이유 불명의 사명감 때문이었고 끝없는 전쟁에 맞서 싸우기 위한 마음가짐이었을 뿐이다. 자신이 무너지면 이 전체가 무너지는 것과도 같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영원히 함께하자는 동료의 우스갯소리도 모두 거짓이라 여겨왔다. 당장 내일이면 누가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永遠 하자고 말하는 것이, 정말이지 참으로 덧없다고 생각하였다. 그저 一場春夢과도 같은 셈일 테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나는 영원한 삶을 산다.


   그리 말하며  제게 계약을 하자고 하는 진의 모습이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리도 쫓던 이상향이 정말로 실제 하던 것이었나? 그렇게 말하며 보이는 진의 모습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마치 神적인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으니 믿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엘빈은 그때를 몇 번이고 회상하며 제 영원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엘빈의 감정을 엿본 베리타엘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진의 형상으로 다시 되돌아온 베리타엘은 그 말을 하고 난 뒤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엘빈은 자신의 진심이 닿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숙였던 고개를 드니 그 자리에 진은 없다. 남아있는 건 그저 새하얀 깃털뿐. 


   5

   엘빈은 밀려오는 더위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이 제 옆에 떡하니 붙어있어 열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래, 정말 얇은 이불 탓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진의 갈색갈의 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엘빈은 다시금 방금의 꿈을 회상했다. 진은 그러한 엘빈의 손길에 잠이 다 달아났는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다 일어나는 것이다. 아까보다는 시간이 흘러 저물고 있는 해가 환상적으로 아름답기까지 보였다. 이건 모두 진을 만났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겠지. 진은 제게 영원을 주었다.


   "덥지는 않나."

   "조금? 네 체온이 시원해서 좋아."

   "그랬다면 다행이군."


   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는 엘빈의 손에는 둘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진은 제 이마에 닿는 두툼하고도 이질적인 감각이 그것일 거라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지어졌다. 그 감각은 너무나 섬세했고 다정했기에. 진이 다시 눈을 들어 올렸을 때는 뒤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또다시 저를 덮쳐왔다. 눈이 따가워 잠시 찡그리자, 앨빈은 제 손을 들어 가려줄 뿐이다. 잠시나마 진은 그러한 엘빈이 정말이지 저 뒤의 햇빛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영원토록 속죄하여야만 마주할 수 있는 그러한 빛. 엘빈이 빛을 준 게 아니라면 자신은 어떻게 계속해서 현존할 수 있겠는가. 진은 제 손을 뻗어 엘빈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래, 결국 내 빛은


   "엘빈."

   "왜 그러지?"


   너였구나. 네가 내 빛이었어.


   엘빈은 그 의중을 모르기에 또다시 시작된 농이라 생각하며 그저 잠자코 웃을 뿐이다. 여름의 잔잔한 햇빛이 둘을 쬐고, 여름의 서늘한 바람이 둘을 감쌀 때 둘은 영원을 느꼈다. 진이 지금의 행복에 할 수 있는 것은 웃음뿐이었다. 그래, 적어도 우리들의 삶은 일장춘몽 같은 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영원을 노래하며 평생토록 빛을 갈구하며 함께하게 될 테지. 서로가 서로의 유일이 되어주며.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의 초입, 진은 그토록 쫓던 빛을 찾아내고 엘빈은 그토록 찾던 영원을 손에 쥐었을 뿐이다. 푸른 녹음에 부닥치는 둘의 빛은 영원토록 타오를 것이며 그러한 빛은 따스하게도 감싸줄 것이니. 마치 그 둘의 영원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빛들이여, 평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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