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타입

커미션 5

1차 자캐

1.

인어가 울 수 있던가?

문득 떠오른 의문에 그리타는 자신의 기억을 헤집었다. 두꺼운 층으로 형성된 행복한 기억을 손으로 파헤치다 보면, 물때가 덕지덕지 묻어 안이 잘 보이지 않는 통유리로 된 어항이 드러난다. 어느 순간부터, 그때의 자신을 떠올릴 때 어항 안의 인어가 아닌, 어항 밖의 관찰자가 되었다. 기억이 흐려졌다고 표현하긴 어려웠다. 아예 심비관에서 인간들의 구경거리가 됐을 때의 경험이 타인의 일처럼 느끼는 것에 가까웠다. 이끼 낀 유리 탓에 너머의 인어의 실루엣만 보이고 있었다. 아른아른 움직이고 있는 인어는 사실 자의대로 움직이고 있다기보단, 물결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반항하고 반항하다 지친 거겠지, 그리타는 그리 생각하며 인어의 표정을 보려 했지만 역시나 잘 보이지 않았다. 이래선 인어가 울 수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잖아.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그리타는, 상냥한 ‘어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상념을 떨쳐냈다.

 

“종훈 씨가 도착한 모양이야, 다은아.”

 

어머니는 창가 소파에 걸터앉아 바깥을 살핀 덕에 종훈이 탄 차가 도착한 것을 제일 빠르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리타는 환하게 웃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실 종훈에게 그렇게 마음이 없는 그리타였지만, 오늘은 그를 만나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현관으로 버선발로 뛰쳐나가려는 그리타를, ‘언니’의 질문이 막아 세웠다.

 

“정말 그걸로 부탁할 생각이야?”

“응! 왜? 인어가 싫어? 난 좋은데.”

 

딱딱한 말투로 말하면서도, 유솔은 사랑하는 동생의 옷매무새를 세심한 손길로 고쳐주었다. 맘이 너무 급했는지 그리타가 입고 있는 옷의 리본이 흐트러져 있었는데, 유솔은 이를 ‘사랑하는 애인을 빨리 보고 싶은 귀여운 동생‘ 즘으로 해석했다.

 

“인어가 문제가 아니라…, 꺼림칙하지 않아? 얼굴이….”

“아니? 오히려 난 그 점이 재밌어! 그리고…, 오빠도 좋아하고.”

 

천진하게 말하고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웃음을 짓는 동생의 리본을 다시 한번 힘주어 묶고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고등학생 때까지의 동생은 이렇게 웃기는커녕 자신에게 주눅이 들어 말도 걸지 못하던 소심한 아이였는데, 새삼 지금의 자매 사이가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음이 약해진 유솔은 결국 동생이 이토록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려놓길 포기했다. 종훈이 기다리겠다며 빨리 가, 하고 등을 살짝 밀어주자, 소풍 나온 아이처럼 들떠 방을 나서는 동생이 퍽 귀엽게 보였다. 흐뭇하게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솔은 뒤늦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애 놀랠라! 뛰지 말고 조심해!”

 

그리타는 그 말을 뒤로 하고 현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며 유솔이 한 번도 보지 못했을 표정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나와 얼굴이 같은 존재가 어째서 꺼림직한 걸까? 오히려 내게 주어진 선물과도 같다는 걸 유솔은 평생 모를 것이다.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가자, 현관에 서 있는 종훈이 보였다. 그리타는 종훈의 품에 안겨 그의 목을 두 팔로 껴안았다. 최근 졸업 준비로 바쁜 탓인지 종훈의 붉은 두 눈이 피곤으로 젖어 있었다. 그리타는 웃음기를 뺀 표정으로 종훈의 눈동자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곧 종훈의 눈에 스며들 듯이 애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오빠, 나 결혼 전 선물 어떤 걸로 할지 정했어.”

“응, 말해 봐.”

 

그리타는 웃었다. 그는 이 순간에 카타르시스마저 느낄 정도로 이 순간을 예전부터 꿈에 그려왔다. 결혼식에 입을, 자기 취향으로 맞춤 제작한 화려한 보석으로 뒤덮인 웨딩드레스보다도 더.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너무 경쾌해서 그리타의 말이 스스로에게도 아름다운 노랫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 인어가 갖고 싶어!”

2.

얼굴은 꽤 아름다워.

그렇지만 상태가 죽은 시체나 다름이 없어 보이는걸.

하긴, 비늘의 빛깔이나 지느러미 상태가 상등품으로 쳐 주긴 힘들지.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생사를 확인하려는 건지 남자의 억센 손이 물로 들어와 미동도 없는 ’물건‘을 향했다. 멍하니 밖만 바라보던 다은은 그제야 손을 피해 어항의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남자는 그걸로 족했는지 물에서 손을 뺐다. 생사를 확인하자 안심이 됐는지 다시금 다은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소리가 수면 위로 얹어지기 시작했다. 다은은 손으로 귀를 막았다. 수군거리는 소리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만, 그렇게 말하려 다은은 입을 벌렸지만, 입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목소리가 아닌 보잘것없이 흩어지는 물거품뿐이었다.

집 안에서도 영상으로 선명한 인외들을 구경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소수의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심비관은 더 이상 메리트가 없었다. 다은이 갇혀 있던 심비관도 재정상의 이유로 망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다은에게 자유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른 인외들에 비해 마니아층이 탄탄한 인어는 전용 전시장에 팔려나간다고 했다. 경매에서 개인의 소유품으로 낙찰된다면 가족과 재회할 확률이 더더욱 낮아진다는 생각에 다은은 절망했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품어 왔던 희망을 이제야 포기할 순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매번 오지 않는 가족에게 품은 헛된 희망이 다은을 더 미쳐가게 만들고 있는 것 일수도.

다은이 들어 있는 어항을 붉은 천이 뒤덮었다. 곧 전시장으로 이동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끝까지, 가족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적은 없는 걸까? 잠시 몸부림을 치던 다은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더 이상의 저항도, 희망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모양이었다.

 

3.

 

“볼 때마다 신기한걸.”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에 다은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곧 붉은 천이 거두어졌다. 그리고 눈앞엔, 그림 같이 아름다운 머릿결의 금발 소녀가 자신의 속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색이 다른 두 눈으로 다은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은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히메유키, 자신의 친구인 히메유키가 분명했다. 나를 구하러 온 걸까? 다은은 자신과 히메유키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의 저항과 팔에 묶인 무거운 족쇄 때문에 힘들었지만, 어찌저찌 쾅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잠깐이나마 히메유키의 입가에서 여유만만한 미소가 거두어지더니, 그는 뒤로 물러섰다.

 

“조심해, 성격은 꽤 사나운 모양이야.”

 

곧이어 나타난 것은…, 다은은 더 격렬히 몸부림을 쳤다. 다은의 인생을 송두리째 훔쳐버린 증오스러운 그 얼굴. 그건 모순되게도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려줘, 그렇게 말하기 위해 아무리 입을 열어도 나오는 것은 물거품뿐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 없는 행위에서 비롯된 물거품들은 안타깝게도 다은이 ’사나운 성격의 인어‘라는 증거만 될 뿐이었다.

 

“은아, 진짜 얘로 괜찮겠어?”

“응. 성격이야, 뭐. ’잘‘ 대해주면 차차 나아지지 않겠어?”

“그것도 그건데…, 나라면 더 좋은 걸 종훈 오빠한테 뜯어낼 것 같아서.”

“예를 들어?”

“굳이 인어라면 이런 상태 안 좋은 인어보다, 더 좋은 인어도 넘쳐나잖아. 아니면 반지나, 목걸이, 보석 이런 것도 있구…. 너 화려한 거 좋아하잖아.”

“하하, 다른 인어보다 나랑 얼굴이 같아서 그런지 얘한테 자꾸 눈길이 가더라고. 보석 이런 건 종훈 오빠가 평소에 잘 사주기도 하고.”

 

그리 말하며 ’도둑‘은 검지를 어항에 대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쾅, 쾅, 쾅.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히메유키에게 알리고 싶었던 다은은 계속해서 통유리를 두드렸다. 다은의 격렬한 분노와 절박함은, 물이 한 겹을 뒤덮어 먹먹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리타는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오히려 그에게 다은의 분노가 즐겁게 들리는 듯했다.

 

“히메유키, 나 얘 잠깐 혼자 감상하고 싶어서 그런데, 나가줄 수 있을까?”

“알겠어. 근데, 너 홀린 거 아냐? 누가 그러던데. 인어는 사람을 홀린다고.”

“너도 참, 그런 건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히메유키는 뒤로 물러나더니, 곧 거대한 문을 닫고 나갔다. 이제 다은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저 증오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리타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전해지는 살기를 느끼고 그리타는 더더욱 전율했다.

 

“다은아, 안녕.”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그리타에게, 다은은 인사할 기분이 아니었다. 상대의 기분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거긴 어때? 내가 있을 땐 거긴 되게…, 끔찍했거든. 물비린내에, 역겹고 끈적끈적한 물이끼까지. 근데 내 생각엔 넌 거기랑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 그래, 마치 나에겐 지금 내 위치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야. 혹시 아까 들었어? 나보고 ’은이‘라고 하던 거. 히메유키는 내가 어느 날부터 변한 것 같대. 근데 변한 후의 내 모습이 더 좋대. 가족들, 친구, 애인, 모두 다 그래. 지금의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증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그리타는 자신의 핸드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었다. 생일파티 때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리타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우리 막내딸은 애교가 없는 편이라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던 부모님, 자신을 어색해하던 언니 유솔, 숫기 없는 애와 어울리기 답답해하던 친구들. 사진 속 모두가 예전에 다은을 대할 때는 은근히 지니고 있던 벽을 거두고 웃고 있었다. 사실 그리타는 자신이 주변인과 행복하다는 증거로 배경 화면을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그리타는 정말 걸어 다니기만 해도 행복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넘쳐나 보여서, 그 자체로도 다은을 비참하게 만드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은은 인정할 수 없었다. 다은은 입 모양으로 분명하게 두 단어를 그리타에게 전달했다. ’도둑‘이라고.

“도둑이라니, 섭섭한걸. 부잣집 딸, 좋은 주변인들, 그리고 인간이라는 점까지. 넌 정말 좋은 환경을 타고났어. 그런데 그 환경을 타고 나서도 그렇게밖에 살지 못한 거야? 오히려 내가 어이없어서 묻고 싶더라. 그 생각은 해 봤어? 내가 네 몸을 돌려준다 해도, 정말 사람들은 행복할까? 걔네가 원하고 좋아하는 건 네가 아니야. 다은이가 아니라 ’은이‘를 원하고 있다고.”

 

그리타는 손등이 다은에게 잘 보이도록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반짝이는 빛이 눈에 반사되어 눈을 찡그리던 다은은 다시 눈을 떴다. 그리타의 손등에 당당히 빛나고 있는 건 알이 큰 다이아가 정교하게 세공되어 장식된 반지였다. 혹여나 다은이 그 커다란 보석을 못 알아보기라도 할까 봐 과시하듯이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자랑을 마친 그리타는 다시 손을 거두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더 다은의 눈앞에 소중한 반지를 내놓으면 훔칠까 불안한 사람처럼.

 

“억울하다 생각하지 마. 넌 지금 벌을 받은 거야. 너의 삶에게 소홀했던 벌. 그래서 내가 지금 네 삶을 다시 제대로 되돌려 놓은 거고. 고맙다고 생각해도 좋아. 근데…, 보아하니 넌 내 몸도 제대로 못 쓰는 모양이네. 네 가치가 얼마나 낮게 책정됐는지 알아?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라더라. 그래서 관리자가 차마 비싼 값을 못 받겠대.”

 

문득 다은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빛을 잃은 비늘들은 죽은 생선의 배처럼 창백하게 흰빛을 띠고 있었다. 지느러미들은 중간중간 구멍이 나 볼품없이 흔들렸다. 반면 그리타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저렇게 예뻤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부는 예쁜 빛을 머금고 있었고, 화려한 화장과 자신과 어울리는 옷과 장신구가 얹어진 모습이 스스로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다은의 얼굴에 패배감이 물드는 것을 지켜보던 그리타는 그제서야 조롱을 멈추고, 처음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인어도 울 수 있어? 기억이 안 나서.”

 

질문이 끝나자마자, 다은에게도 익숙한 얼굴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어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그 사람은, 다은이 그렇게도 아프게 사랑했던 종훈이었다.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었고, 종훈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기엔, 가족에 대한 헛된 희망이 머릿속을 잠식하느라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다은이 지금도 그를 사랑한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종훈이 사랑을 머금은 눈빛으로 ’다은‘을 껴안는 모습은 다은을 끝없는 절망에 빠트리는 결정타가 되기에 충분했다. 가볍게 ’다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다은‘과 똑같은 반지를 약지에 끼고, 사랑이 손가락 끝마다 뚝뚝 떨어지는 손길로 ’다은‘의 배를 쓰다듬는 그 모습은 칼이 되어 다은의 심장을 아리도록 후벼 팠다.

다은은 문득 깨달았다. 인어는 울 수 없다.

지금까지 다은은 자기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은의 눈물은 나오자마자 물에 섞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러니까, 인어는 울 수가 없다. 해피엔딩인 로맨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행복하게 서로를 껴안고 있는 아름다운 두 남녀를 바라보는 것도 다은에겐 허락이 되지 않았는지, 다시금 붉은 천이 어항 위로 덮였다.

곧 ’집‘으로의 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