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 및 기타 샘플

샘플 - 그대 발 위로 마지막 입맞춤을

2차 - 조슈아x여로드, 장천자우 수록

* 커미션으로 주문받은 조슈여로드 ...였는데
* 그런데 이제 달콤브런치를 주문하니까 얼큰한 매운탕이 나온
* "야 내가 만들었는데 이거 내 입맛에 딱인데 근데 니가 주문한게 아닌데 어쩌냐" 따위의 결과물이 나오는 커미션 이대로 괜찮나... 해당 커미션주께서는 좋아하시긴 하셨지만 이건 사기행각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 다시쓰기로 했습니다
* 결론: 암슈아 실장 기념 연성이 됨





[조슈로드] 그대 발 위로 마지막 입맞춤을


  복종을 허락받지 못한 몸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낙하할 때의 짜릿한 쾌감이 일상의 몫이 아니라고 한다면, 조슈아 레비턴스, 혹은 조슈아 레비턴스였던 원본에게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다. 차라리 자아가 비참하게 망가지고 해체되는 것이라면 더없이 기쁘게 받아들였을 터이나 그의 새로운 주인은 도무지 그런 간편한 방법을 허락해주지 않는 것이다.

  작고 예쁜 발에 얼굴을 대고 조아리는 것은 조슈아의 장기라고 할 만하였다. 크고 두꺼운 발 위에도, 작고 예쁜 발 위에도, 혹은 말을 전하는 허름한 신발 위에도 기꺼이 키스할 자신이 있었으나 조슈아는 역시, 작고 예쁜 발이 가장 조아리기 쉬웠다. 그의 경험상 그 어떤 발보다 작고 예쁜 발이 가장 아프고 매서웠다. 무릇 짐승에게는 힘으로 굴복하는 것이 가장 쉬운 법이다. 조슈아는 정말이지 개처럼 목줄이 묶여 끌려 다니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리키는 대로 뛰어가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누군가의 손짓대로 물어뜯는 것은 또 얼마나 편안한가. 행위에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고 길을 잃어 곤란할 일도 없으며 누가 침을 뱉어도 슬프지 않고 모두가 빌며 기어 다녀도 기쁘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이 대제폐하와 참모님의 은혜라. 세뇌가 풀려도 삶의 행적은 사라지지 않았고 관성의 힘이 처지 좀 가엾다고 약해지는 것도 아니어서 조슈아는 저도 모르게 새 주인의 작고 예쁜 발에 고개 숙여 입을 맞추었더랬다. 허나 새 주인이 소리를 치며 기겁하는 모양새에 조슈아는 저가 더 놀라 멍청한 민낯을 내보이고 말았다.

  새 주인의 질문에 무어라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전의 과거가 세뇌 부작용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그 때의 기억은 오로지 당황해서 머리가 하얗게 비는 바람에 날아간 것이었다. 허나 매일 먹던 밥을 가리키며 오물덩어리라고 기겁하면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겠는가? 조슈아의 당황도 그와 유사한 맥락이었다. 다만 제 대답에 머리를 짚으며 인상을 쓰던 얼굴과, 무어라 결심한 투로 말하던 것만은 기억이 났다. 하얗게 빈 머리는 그 이상의 사고를 거부했는데….

  이 꼴이 날 줄 알았더라면 뇌를 아주 쥐어짜내 걸레처럼 누덕하게 만드는 한이 있어도 말리는 거였는데. 과거를 어찌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조슈아는 과거를 탄식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저 명을 따르면 분수를 모르는 죄로 징 달린 채찍을 맞을 것 같았다. 모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 그럴 리 없다고 이성이 외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이성이니 논리니 하는 건 다 개소리인 법, 중요한 순간에는 감정과 본능이 이성의 자리를 밀쳐버리는 인간은 과히 짐승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조슈아가 도망치거나 납죽 엎드리지 않은 것은 오직 그가 이미 길들여진 까닭이다.

  물론 새 주인은 어느 순간에도 이성을 잡고 있을 것 같고, 제 조막만한 주박이 없어진 이상 제 주인을 신으로 추켜세울 생각은 없으나…. 새 주인과 자신은 종이 다른 것이 틀림없었다. 하여 조슈아는 생각건대, 새 주인이 이데아적인 인간에, 조슈아 레비턴스라는 것은 조금 더 가축에 가깝지 않느냐는 가정을 세운다면, 그래, 썩 그럴듯한 결론이 아닌가.

  따라서 조슈아는 우울했다. 새 주인은 제게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힘에 부친 요구였고, 관성을 역류하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조슈아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길들인 짐승의 순종으로 인간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아아, 차라리 새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하자. 새 주인은 종의 변화를 실험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인지, 사고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대체 뭐 그리 대단한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으나 그저 무엇도 없는 황량한 벌판을 발에 피가 나고 또 나도록 맨발로 걷는 것이 새로운 주인이 원하는 바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러나 새 주인인 ‘로드’는, 그런 생각마저 허용하지 않는 것이 퍽 잔인하였다.

  “…그런 복잡한 문제가 있었단 말이지. 자, 그럼 이 경우엔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고민할 바 무엇이 있겠습니까. 주인에게 더 눈엣가시인 놈이 죄인일 테지요. 부디 원하시는 대로 하시되, 필요한 곳에 저를 쓰소서. 목까지 차오르는 익숙한 말을 삼킨다. 한 번 망가진 머리로도 그 대답을 원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 정도는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좋을까. 단순히 ‘티타임’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괴이하였다. 햇볕이 내려쬐는 야외에서 ‘로드’만이 간간이 양산 그늘에 몸을 누이며 저가 우린 차를 겁도 없이 홀짝이는 한낮. 차를 내릴 자유는 얻었으되 우유를 뺄 자유는 없는 이상한 속박. 초코를 바른 토스트 위의 바나나가 저와 같이 녹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볕에 노곤노곤 녹아버릴 것 같은 기이하고 어쩌면 환상적인 오후의 티타임.

  아, 긴장이 풀려도 되는 건가? 그조차 잘 알 수 없어서 조슈아는 저도 모르게 편히 기대려던 몸에 다시 힘을 주었다. 주인이 인상을 찌푸린다. 아, 이게 답이 아닌가. 매번 오답을 제출하는 모양새라 머리가 조금 혼란스러우나 오답에 대한 답이 그저 미간을 조금 구기는 것뿐인지라 조슈아는 슬쩍 모른 척 눈을 돌렸다. 헌데 시선 끝에 걸리는 표정이 이번에는 조금 펴지는 것이 아닌가. 새 주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힘이 풀릴 것 같았다. 이틀에 한 번 있는 이 티타임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새로운 거처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저를 주저앉을 만큼 노곤노곤하게 만들었다.

  조슈아 레비턴스를 무찌른 자들의 상냥해서 부담스러운 기상시간을 지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요한경, 혹은 미하일 경을 따라 억지로 운동을 하고 나면 도무지 황송해서 적응하기 힘든 아침시간이 온다. 하다못해 의자 장식의 차이도 없는 의자에 앉는 그의 주인과 기사가 둘러앉는다. 그의 앞에는 잘 구운 계란과 정체모를 소스를 발라 익힌 소고기구이, 샐러드와 견과류가 놓였지만 먹고 싶지 않으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단다. 말이 많은 자들인 까닭에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되냐는 질문을 못 하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노동시간의 대부분은, 아발론 외에서 온 기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며 온갖 일을 떠맡는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에서조차 그들은 저에게 폭력으로 화풀이하지 않았다. 제발 한 대 치기라도 해 달라 애원하고 싶었지만…. 그래, 그런 오전 노동시간이 지나면 다시 노곤한 점심시간과, 오후 대련과, 주인 혹은 루미에경과 함께하는 티타임이 온다. 지금처럼.

  이대로 티타임을 견디면 이제 오후 노동과, 저녁시간이 지나면 루인경의 아쉬운 눈을 뒤로 하고 저의 해로움이 닿지 않은 자들과 세상의 온갖 이상한 것들을 하는 시간을 또 견뎌야 망가지지 않아 제법 황송한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다.

  하루가 길다. 심신이 녹아버릴 것 같은 일과엔 도무지 적응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주인의 목소리를 놓쳤다.

  “이런, 조슈아경. 듣고 있나?”

  노곤하던 정신이 바짝 날이 선다. 우당탕, 하고 의자가 뒤로 넘어간다. 그 소리에 오히려 놀란 눈을 한 제 주인이 저를 본다. 이런 불충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감히 주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정신을 돌리다니. 제 능력이 한계만큼 증폭되었음을 다시 증명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당장 엎드려 주제넘은 저를 고하고 용서를 빌지 않으면 필시, 또, 다시, ‘학습’시간이,

  황급히 허리를 숙여 사죄하려는 차에 조슈아의 시선이 주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허리를 굽히지도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서 그의 주인을 보았다. 차마 망가진 머리로도 착각할 수 없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저를 녹이던 햇살보다도 환한 웃음이, 주인, ‘로드’의 얼굴에, 그러니, 이것은, 분명한, 기쁨이라는 감정의…….

  “이제 경도 내 말을 흘려들을 수 있군.”

  들었으되 이해되지 않았다. 저 말이 우아하게 비꼰 질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는 어떠한 전이. 어째서 당신은, 나의 그 어떤 성취에도 볼 수 없던 얼굴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질문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지? 봐, 조슈아경. 오늘 티타임에선 자네가 싫어하는 걸 하나 더 찾아냈어.”

  대관절 그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란 말인가. 더미정보와 다를 바 없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로드’는 어째서 계속해서 제 위에 쌓으려 한단 말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중요하지 않단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뭐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인 것은 미안하지만, 그래도 답은 들어야겠어. 나는 네 생각을 알아야겠거든.”
  “그것은, …로드.”
  “생각해봐.”

  순간 울컥, 하고. 존재할 리 없을 반발심이 솟아올랐다.

  “저는. 제가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이 달라진단 말입니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볕에 녹아버린 것처럼 사라지고는, 노곤해져 풀어진 긴장 위로 쉴 새 없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해서는 안 될 허락받지 않은 할 주제가 못되었던, 말들.

  “생각을 한들 과거는 바뀌지 않습니다. 잃은 것이 돌아오지도 않고 얻은 것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이대로 원하시는 곳에 쓰면 그만 아닙니까. 제 생각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요.”

  주인… 로드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표정? 읽어서 무엇 하겠나, 그는 알 수 없는 자다. 가득 찬 말이 기어코 넘쳐 바닥을 적실 때까지도 로드는 제 말을 막지 않았다.

  “어째서 쓸모 따위 하등 없을 걸 명령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짐승새끼가 사람이 될 수가 있어요? 생각이라뇨, 그런 것 따위.”

  그런 것 따위.

  생각을 하게 되면, 그러면. 그럼 이전의 나의 인생은 무엇이 된단 말이냐. 자각도 염치도 없이 그저 도구로서 타인을 마구 짓밟고 다닌 나라는 것이 인간이 되면. 그러면.

  “차라리 죽이십시오! 모자라다면 고문을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모두가 그걸 원할 겁니다. 모두가 제 분을 풀고 손가락질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게 편하고 좋잖아. 그런데 왜.

  오래 묵은 말을 모두 토해낼 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던 로드가, 사이를 두고 입을 열었다.

  “그대를 그리 대해서 세계가 얻는 건 뭐지?”
  “…….”
  “한차례 분을 풀고 축하하면, 그 다음에는.”

  목에 돌덩이 같은 것이 걸리는 느낌이 났다.

  “경을 매달아서 사람들이 얻는 건 뭐지? 과거 폭군을 처형한 것은 살려서 죄값을 치루는 것이 당장 위험하기 때문이고, 또한 역사에 남겨 다음 대의 폭군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나?”

  “…저는. 잘….”

  “그대를 처형하지 않으면 자네를 추종하는 잔당이 일어서기라도 하나? 자네에게 남은 권력이나 정당성이라도 있다는 건가? 역사에 남는 건 어떻지? 자네를 처형하면 어릴 적부터 세뇌를 당했든 실험을 당했든 상관없이 모든 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교훈? 좋아. 죄 지은 자는 다 죽일까?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여도 사형, 실수로 밀었는데 죽었어도 사형, 큰 상해를 입히면 죽을 만큼 괴로울 테니 사형, 작은 상해는 큰 상해가 될 뻔 했으니 사형.”

  그것은 너무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이미 말을 다 뱉어낸 조슈아 레비턴스의 바닥은 아무리 긁어대어도 적당한 말이 모이질 않았다.

  “내가 다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되나? 그런 것 같아?”

  그런 것은 생각할 주제가 되지 않았었는데.

  “생각은 과거를 바꾸지 않는다 했지. 하지만 그건 사실 고통의 한계가 아닌가?”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사망이 세계에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를 억제할 만큼 대단한가? 그 물음 앞에 조슈아 레비턴스는 한없이 작고 연약해졌다.

  “한 인간의 고통은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어, 조슈아 레비턴스.”

  차례를 맞바꾸듯 한차례 말을 토해낸 로드는 숨을 들이키고, 말했다.

  “너 자신마저도, 구원할 수 없단 말이다.”

  순간 온 얼굴이 수치로 붉게 달아올랐다. 속절없이 그는 고개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바닥을 다 내보인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바닥이 다 읽힌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노곤하게 저를 녹인 볕이 사실은 바닥까지 비추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죽어버리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괴로울 이유도 없다는 것을. 괴로울 이유가 없으면 무서울 것도 없다는 것을. 사실은 피로 물든 제 두 손이 끔찍하다는 것을. …자신의 과거가 죄악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과거를 보지 않고 미래를 논할 수는 없음을, 조슈아 레비턴스는 사실 미래를 원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죽음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포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구원 같은 건,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멀리 있으며, 너무 흐릿하기에 어디로 발을 뻗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어서. 그래서….

  한참 뒤에야, 조슈아 레비턴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기어이 원하는 것을 잡아챈 ‘로드’를 본다. 이 죄인에게 구원을 향한 가시밭길을 함께 걷자 손 내민 자. 기어이 제게 포기를 포기시킨 사람. 신이 아니기에 도저히 위대할 수 없는 위대한 당신.

  로드는 한결같이 곧은 눈길로,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얼룩진 ‘조슈아 레비턴스’를 본다. 그가 본 수많은 인생 중에서도 손꼽히게 거친 결이 거기에 있다. 자신이 모든 자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에게 이만큼 신경을 기울일 의무가 없는 것도 안다. 그러나, 거멓게 죽어버린 눈동자 안 깊숙한 곳에서 희미하게, 그러나 절실하게 스치는 빛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렇게 게워낸 말을 대화로 잇는 것이다.

  “모든 일정이 경을 자포자기라는 악순환에서 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 복수라던가, 청산이라던가, 후회라던가, 속죄 같은 건 일단 인간이 제 발로 서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경은 많이 방황해야겠지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도 없을 거야.”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일에 예고는 없다. 어느 평범한 날, 매일 반복되던 일상 속에서, 벼락처럼 세상이 뒤집힌다. 조슈아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쌓이는 힘이 임계점을 넘은 순간, 그는 익숙히 기던 밑바닥에서 일어난 저를 본다.

  그럴 자격이 있는가? 아니, 그것은 자격이 아니라 의무였음을 뼈에 새긴다. 진정으로 조아려야 할 곳에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고하기 위해 먼저 치러야 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지난한 여정은 상상만으로도 질린다. 로드께 고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 힘을 쓰면 죽음으로 도피할 수 있지만.

  “허나,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경이 방황할 동안 이 내가 옆에 있을 거란 걸.”

  저를 수렁에서 건진 로드는 도무지 도피할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조슈아는 허언 한 점 없기에 더욱 허언처럼 보이도록 목소리를 높여 대답한다. 마치 진심이 아닌 것처럼.

  “그건… 오히려 평생 방황하게끔 만들려 하시는 말씀일까요.”
  “…이런. 그 정도로 사람이 그리웠던가.”
  “…….”

  그는 이런 쪽으로는 묘하게 눈치가 없음을 알고 있으니까.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들켰을 때 그가 지을 얼굴을 상상하기만 해도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드니까. 지금은 그의 헤픈 인정에 제 몸 뉘일 곳을 찾아 옹송그릴 뿐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도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을 잇겠지.

  “좋아. 그렇다면, 네 방황이 끝나는 날 포상을 할까.”
  “제가 원하는 포상일까요?”
  “뭐, 휴가 일주일?”
  “…뭐, 맞네요.”
  “그건 농담이고.”
  “…농담이라는 말씀이 농담이신, 거죠?”
  “미안해, 조슈아경. 휴가는 온전히 루인의 소관이야.”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 환기하듯 농을 던진 로드는 적당히 받아치는 조슈아를 향해 다시 표정을 고쳤다. 로드의 진중한 표정은 가끔 무섭다. 그 어떤 혀도 멈추게 만드는 그의 힘은 절로 겁이 나게 하지만.

  “장담하지. 경이 원하는 방향의 포상은 절대 아닐 거야.”

  그러다가도, 로드가 말을 멈추고 스르르 웃어 보이면,

  “하지만 아주 마음에 들 걸.”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없이 너그러운 로드는 이제 스스로 서기 시작한 조슈아에게 다시 한 번 자비를 베푼다. 바닥을 싹 긁어내어 말을 토해낸 조슈아가 끝내 하지 못하고 바닥 아래에 가두어둔 마지막 상자를 로드는 기어이 찾아내어 두드려준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목이 꽉 막히고 눈이 시리다는 것을 조슈아는 오늘 처음 배운다.

  “자, 이제 경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조슈아가, 아니, 조슈아 레비턴스였던 원본이, 저도 모를 눈물로 치장한 눈을 곱게 휘었다. 목소리를 다스리려 아무리 애를 써도 흔들리는 목소리는 갈앉지를 않는다. 아아, 이토록 잔인하고 사랑스러운 구원이라니.

  “제발.”

  그러니 속절없이 길 없는 황야로, 황홀하고 고통스러운 방황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과오와 마주할 기회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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