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05
: 축제 속 인연(1)
서로의 소개 후, 한 번의 야영과 작은 마을에서 숙박을 지내는 내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여행의 계획을 짜고, 시타라의 질문을 받는 필요한 대화 외에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고 이동했다.
이그니의 노력으로 가끔 사담이 오가려 했으나 아직 서로가 익숙하지 않았는지, 금세 대화가 끊어졌다.
‘이대로는 안돼….’
몇 번의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시타라는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인지하며 질문의 방향을 정해 먼저 자신에게 도움 될만한 지식인 ‘잊혀진 신의 백성의 회복력’과 ‘신들의 생활’에 대해 이그니에게 물어봤다.
이그니는 시타라의 노력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이 알고있는, 이제는 빛바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까마득한 일부터 꺼내기 시작했고, 오래됐음에도 선명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이나 다름없는 ‘잊혀진 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꺼냈다.
“우리가 지금의 천계와 마계를 넘기고 자리를 잡을 때, ‘-가’ 선물이라며 각자 자리 잡은 곳에 놓을 식물들을 손수 가꾸기 시작했었어. 그의 동생인 루에이리 다음은 나였는데-.”
누군가를 지칭하는 이름, 하지만 들을 수 없는 이름에 시타라는 대화의 흐름에 따라 저 신이 ‘잊혀진 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신의 이름을 알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장식으로 식물은 뭘 받았…ㅇ…어?”
잠깐의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처음보다 나아진, 반말이 섞인 물음에 이그니는 어색한 부분을 모른 척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힐리앤서스라고, 세간에서는 태양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꽃이야. 제일 처음에는 그냥 이름도 없었는데, 선물하면서 이름을 붙여달라고 하더라고.”
“그랬구나…. 그럼 다른 식물 중에도 선물로 받은 식물들은 신들이 이름 붙인 건…가?”
“선물 받은 식물들은 아무래도 그랬던 거 같아. 나머지는 인간들이 이름을 붙인 대로 그냥 우리도 부르고 있어.”
대화를 이어가고, 잠시 끊어지며 그렇게 또다시 아침을 보내고, 묵은 마을 근처에서 필요한 걸 채집 후 길을 떠나자 낮이 되었을 때쯤엔 시타라와 이그니는 걷고 걸어 에드윈의 이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샤, 들어가 볼까?”
“시타라, 여기 줄 서서 들어가야 하나 본데?”
“짐 검사를 하나…?”
이렌에 오기까지 해온 대화들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둘의 사이가 어색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대화가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이렌, 도시의 내부로 들어가기 전 간단한 짐 검사를 하고 입구를 지나자 재잘거리는, 경쾌한 높은음이 배경음으로 들릴 정도로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 개성적인 각양각색의 차림의 사람들이 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도시 안을 가득 채우는 듯, 사람들은 정말 즐겁다는 듯이 형형색색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다 같이 어울려 웃고 있는 풍경이 두 사람에게 보였다.
“검사로 긴장이 감도는 입구와는 영 딴판인데?”
“무슨 일이 있나? 장식들로 꾸며져 있고, 되게 화려한데….”
고향을 떠나 처음 오는 이렌, 아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아 하염없이 걸어 도시의 중심지로 향하며 주변을 둘러다 봤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고 즐거운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다 보니 저 즐거움이 꼭 자기에서 비롯된 일인 양 직접 다가왔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과 즐거움이 전해졌는지 막 도착했음에도, 두 사람의 얼굴은 야영의 고단함을 찾기 어렵고 조금 들떠 보이는 표정이 되었다.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화려한데?”
“이런 건 처음 보는 거 같아.”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오가며 꽃 관련 잡화를 파는 소녀가 직접 만든 꽃 팔찌도 축제를 즐기기 위해 방문객에게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제공하고 있었다.
"테르사의 축복이 있기를!"
“테르사의 축복이 있기를…아, 지금 저희가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이렌에서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이렌에는 처음이시구나! 지금 저희는 축제가 한창이에요.”
“축제요…?”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는 이그니 외의 타인의 짧은 인사를 전달받은 후, 꽃 팔찌를 받고 소녀가 다시 자리를 떠나기 전, 시타라가 이 분위기에 대해서 단편의 정보를 얻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왔어요.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기까지 했다고 이렌에서는 현재 축제를 열고 있답니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테르사의 축복이 있기를.”
주변 분위기로 인해 기분이 조금 나아졌던 시타라가 소녀의 답에 받은 꽃 팔찌를 쥐어 망가트릴 뻔하다가, 아까 받았던 인사와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웃는 이그니의 행동에 꽃 팔찌를 고쳐 쥐며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꽃 팔찌를 나누어준 소녀가 자리를 뜨고 표정을 갈무리하고 받은 팔찌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손목에 찬 시타라가 꽃 팔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이그니가 일부러 시타라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행인 일이지.”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그래도 잠깐이나마 기분이 괜찮아졌어.”
이그니가 상대방의 호의에 웃었던 얼굴의 표정을 고치고 짧게 감상을 내뱉었다. 이그니도 시타라처럼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일단 이동하자,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분위기를 흐릴 순 없잖아…?”
“좋은 생각이야. 저쪽으로 가볼까?”
아직 이렌의 초입이라 그런지, 뒤에서 끝없이 많은 사람이 오고 가고 있었고, 한자리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어 인파를 지나 넓은 앞쪽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산과 평야가 자리 잡은 바이트에서만 지내느라 도시의 축제는 처음인 시타라였지만, 처음에 이렌에 들어섰을때와 달리 주변 풍경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부모님의 장례 후 몇 일이나 되었다고 축제라는 말에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이그니는 시타라의 뒤를 아무 말 없이 따랐고, 두 사람은 이렌의 중심지에 마련된 벤치에 잠시 앉게 되었다.
“……후.”
울렁거리는, 새로운 환경속에서 널뛰게 된 자신의 기분을 다스리기 위함인지 시타라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잠깐 집중할거리를 찾아 깔끔하게 재단된 돌로 만들어진 바닥의 무늬를 확인하자 옆에서 계획을 세우자는 말과 함께 이그니가 언제 샀는지 모를 보라색 꽃 절임이 담긴 봉지를 내밀었다.
“자, 이거 맛 괜찮더라.”
“이런 건 또 언제 샀어…?”
“아까 여기 앉기 전에 길옆 쪽에 작게 상점이 있더라고. 그래서 하나 사 왔지. 달달한 걸 먹으면 기분이 좀 괜찮지 않아?”
“맞아, 고마워.”
이그니가 내민 꽃 절임을 손에 조금 덜어서 먹으려고 하자 이그니가 아예 시타라의 손을 펴서 봉지째로 넘겨줬다. 이그니의 배려로, 자연스레 한 손으로 받치고, 입안에 하날 넣은 뒤에 꽃의 향과 맛에 집중하며 시타라가 오물거리고 있자 이그니가 시타라 옆에 앉으려다가 가방을 시타라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라리 볼 만큼 보고 다시 움직일까? 눈에 익숙해지면 이 울렁거림도 나아지겠지."
배치된 벤치에 가방이 놓이며 오는 약한 진동에, 이그니를 쳐다본 시타라가 다시 고갤 돌려 꽃 절임이 아닌 바닥에 시선을 뒀다.
“미안해. 내가 그렇게 먼저 말해야 했는데…그리고 너는 내 기분에 맞춰줄 필요는 없어.”
“맞춰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 제안은 어때?”
이그니의 제안에 대해 고민하는 듯 손에 쥐어진 봉지를 바스락거리던 시타라가 결정을 위해서 가만히 벤치에 앉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잘 돌아왔다! 이제 푹 쉬자!’
‘이것도 먹어봐, 이따 저기 노점에 가보는 건 어때?’
‘나라에서 축제를 열어주니 네가 할 일은 축제를 잘 즐기는 거지!’
얼핏 들려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복귀한 전사들을 위한 축제라는 말을 얻어듣게 되었고, 시타라는 불현듯 자신이 떠나온 고향, 바이트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떠나왔으니까 마을에서는 제대로 기뻐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제안에 대한 고민을 해줬으면 하고 물었지만, 자기 생각과 다른,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는 시타라의 행동에 이그니가 속으로 후회했다. 시타라의 상태를 고려하면 주변을 정리하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으며 이그니는 은근슬쩍 자신에게 주의를 돌리려는 듯, 자신이 시타라 옆에 내려놓은 가방의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아, 미안해. 좋은 생각 같아.”
“아냐, 지금 조금 혼란스러워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잠깐…좀 길게 말해도 될까?”
“어? 어…어.”
시타라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그니가 시타라 손안의 꽃 절임 봉지를 정리해주고 시타라에게 건네주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타라와 눈을 맞춰왔다.
"내가 인간은 아니지만, 자신이 떠나고 상대방이 기뻐하길 바라는 건 안 좋은 거 같아. …피곤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면 내 제안은 내일 해도 되는 일이니까, 제대로 된 숙박을 하는 게 좋은 선택지일 거 같네."
미간을 좁히며 한시라도 빨리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진지하게 전하고 일어서며, 여관을 찾으러 가려는 건지 말을 끝내고 짐을 바로 챙기려 들자 이그니의 말을 듣던 시타라는 말없이 가만히앉아 이그니의 행동을 따라 시선을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손안의 꽃 절임 봉지를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입안에 남은 꽃 절임을 오물거리고, 이그니가 가방을 다시 메고 가만히 기다려 주자, 이그니의 말에 대해 생각이 끝났는지 고갤 저었다.
"아냐. 우선 필요한 걸 사고 쉬는 게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뭘 하든 일단 오늘은 쉬자. 그럼 네 기분도 조금 나아지겠지."
시타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지, 일으켜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가 이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자 이그니의 반응에 자신이 내민 손을 한번 쳐다보곤 바로 손을 거두고 스스로 벤치를 짚고 일어났다.
"미안. 너무 스스럼없이 대했지."
“아냐, 아냐. 내가 친구처럼 대해달라고 했는걸? 오히려 고마워.”
자신도 모르게 내밀었던 시타라의 사과에 이그니는 급하게 고갤 저으며 손을 거절한 것처럼 보였을까 걱정하며 말했다. 서로 머쓱해졌는지, 각자의 시선이 마주 닿지 않는 방향으로 고갤 돌려 아무 곳에다 시선을 두었고 어색해진 시타라는 자신의 짐을 챙기며 이그니의 눈치를 보고 구입 할 물건에 대해 생각해둔 게 있느냐 물었다.
“…어…어 나?”
이 와중 에도 자신의 의견도 물어보는 시타라에게 당황했는지, 자신만 어색한가 같은 생각을 하며 답지 않게 말을 더듬은 이그니의 행동에 어수룩한 모습이 웃긴지 시타라가 하고자 하는 대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웃음을 억지로라도 참고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큽, 같이 여행하고 길을 떠날 건데, 네 의견도 필요해서.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같이 돌아다니다가 같이 사는 게 나으니까."
“아, 그렇지. 그렇지. 음….”
이그니가 손까지 펴가며 필요한 물품을 고민하다가 시타라가 참고를 위해서인지 이그니에게 추가로 물어왔다.
"아, 모험한 적은 있어?”
"나는…지금 이런 형식은 아니고 정말 잠깐, 기분전환으로 소풍삼아서 아주 오래전에- 왔던 거밖에 없어."
시타라의 말에 고민하던 이그니는 이렌에 도착하기전, 답해왔던 것처럼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옛날 인간계에 잠시 들렀었던 때의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소풍을 나왔던 당시는 모든 것이 갓 준비된 여유로웠던 시대였고, 친한 관계들끼리만 잠시 나왔던거라…아 참고로 내가 친한애들은 모두가 흐름에 필요한 신들이라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거든. 그래도 오랜만에 휴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인간계에 직접 가보자고 해서 한 번만 내려와봤었어. 물론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신체를 -가 만들어줬었고…정말 좋았지."
오래된 일이라 천천히 떠올려 보느라고 짐가방을 그대로 매고 벤치 앞에 선 채로 이야기를 하는 이그니는 짐가방이 무겁지 않은지 벤치 주변에 꾸며진 조경물들을 그때의 풍경을 투영하며 말했다. 이그니의 이야기에 그 풍경을 알지 못하는 시타라는 이그니가 말해주는 풍경을 눈을 감고 상상해봤다.
축제로 인해 건물 사이사이 걸어둔 가랜드가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지금은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거지만…이 여행에 사심이 있다면 아샤로 모험할때 그 풍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긴 해."
"그 풍경이 뭐였는진 잘 모르겠지만, 그게 오랜 시간 추억에 자리 잡을 만큼 인상 깊었다면 나도 한번 보고 싶긴 할 것 같아."
시타라의 말에 이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러가자. 내가 볼 수 있게 도와줄게."
이그니의 답을 듣고 시타라는 신의 기억속에 남을 정도의 풍경이라면 자신의 소중한 이들도 그 풍경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뒤로 한채 짧게 대답했고, 그 풍경을 떠올렸던 것 만으로도 이그니는 기뻤는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약속이 되게 헤픈 거 같아. 조심해야겠어."
고향에서 마을 도서관의 서적들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다르게 위엄없이 약속을 해버리는 헤픈 신이 우스웠는지 살풋 웃다가 아샤의 일로 뭔가 깨달은듯이 짧게 아. 하며 물어왔다.
“…아 맞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질문, 시타라는 떠오른 김에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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