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06
: 축제 속 인연(2)
"맞다. 뭔가 계속 빼먹은 거 같았는데, 나한테 할 말 없어?"
"어? 갑자기? 무슨 할 말?"
"야영할 때 말했던 말 중에…아샤 이야기를 하느라 넘어갔던 거. 만났던 장소라느니 그거에 대해서 할 말 없어?"
기억 난 김에 물어보는 거라 다급해 보이는 시타라의 질문에 이그니가 잠깐 무서웠는지 한걸음 물러서며 답해왔다.
"으음…나중에 생각해보니깐 딱히 좋은 만남은 아니었던 거 같아서 넘어가려 했는데…."
"그건 내가 판단하는 거지, 당장 아샤 일로 복잡해서 생각 정리하고, 울고, 고민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나한테 필요한 거였다면 넘어가서는 안 되지."
"고민하느라 그런 표정이었어? 난 네가 어색하고, 앙금이 남아있을 테니까 말 걸지 말라고 하는 줄 알고…."
"어색했던 건 맞지만! 생각할 게 오죽 많았어야지. 그리고 앙금이라니, 상황을 이해했으니까 그건…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것도 그렇네…음, 여기서 들을 거야?”
“신경을 안 쓰면 또 까먹을 것 같아서 생각난 김에 듣는데 맞는 거 같아.”
이그니는 이상한 오해를 했던 자신의 행동에 탄식하고, 시타라는 표정으로 인해 생긴 오해가 억울했는지 집요하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냥 직접 물어볼걸, 앞으로는 괜한 생각 하지 말아야지.’
‘내 표정이 그렇게 이상했나. 고민하는 게 어떤 표정인진 모르지만 어쩐지 대화가 안 이어지더라니.’
각자의 생각을 끝냈는지, 시타라가 이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요구하듯, 이그니가 답하기 쉽도록 자신이 아는 만큼을 전달했다.
"…우리 마을에 전해지기를 마법은 신의 축복을 받은 이만 사용할 수 있다고, 그밖에 사용 할수있는 건 태어나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던 천계와 마계의 주민인 천인과 마인 그리고 디디에르를 섬기는 티파니의 성녀와 그 주위뿐이라 들었는데…."
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어느새 다시 착석해서 말을 재촉하는 시타라가 내용의 정확성을 확인받기 위해 이게 맞냐는 뜻으로 잠시 쳐다보자 이그니는 고갤 끄덕이곤 짐가방을 이번엔 자신의 아래에 두며 시타라의 옆자리에 앉았다.
"일단 우리가 첫 만남은 아니라는 것도 그렇지만…아샤, 네가 마법을 쓰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나랑 만났을 때 주술도 그렇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이것도 감춰야 되는 거 아니야?"
주변에 사람이 있어서도 있지만, 일부러 ‘행동’에 대해 강조하며 말하려는 건지 아샤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시타라가 물었다.
"우리한테는 숨 쉬듯이 당연한 거니까 생각 안 했던 부분이긴 했는데…하긴, 문제 되겠네. 아샤는 자신의 실력으로 모험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축복받은 것처럼 기록이 남아버리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있지."
"아샤를 생각하면 앞으로 함부로 쓰지 않기로 …잠깐, 아샤가 기록이 남을 거라니?“
이그니의 말에 동의하며 시타라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에서 신경이 쓰이는 부분에 대해 콕집으며 물었다.
"시타라 네가 말한 것처럼 마법을 쓰는 사람들은 한정되어있어, 한정되어있다 보니 마법을 쓰는 사람이다 하면 보고 지나간 사람들이 남기는 말이든, 기록에는 이름을 남기게 되겠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걷게 될 행보가 사람들 입방아에 안 오르진 않을 것 같거든. 필연적으로 기록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질 것 같단 말이지.”
“전혀…반갑지 않은 소식이야…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과 여행하기는 조금 그렇고.”
주목을 받을 거라는 소리에 시타라가 ‘찢어질까….’ 하며 나지막이 내뱉자 이그니가 그 정도냐며 놀라며 물었다.
"나…나도 별로 달갑지 않다고! ‘약속’을 못 지키고, 여행을 못 하게 되는 것도 끔찍하고.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은 해결 쪽에 가까워서 인간의 대소사에 접근해야 되거든."
“아샤가…이런 내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야 아샤는 내가 해결을 위해 인간계에 오려는 걸 몰랐을 테니까.’
차마 말하지 못한 계약의 이면에 대해서 이그니는 뒷말을 삼켰다. 아샤가 보고 있다면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었겠지만 틈을 잡아 사기계약을 했다며 부탁이 아닌 정당한 계약을 내걸어야 했다는 불경한 말을 더 할 정도로. 물론 시타라가 나중에 지적하면 말해주겠지만 이그니는 시타라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샤보다 더 먼저 했던 이전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시타라가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이해를 시킨 한숨에 이그니가 한 번의 헛기침으로 주의를 돌린 후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나는 힘을 안 쓰는 쪽으로 하고, 야영할 때 ‘힘’에 익숙해지도록 불은 시타라 네가 피우면 되겠다.”
“응?”
알 수 없는 결론을 내린 이해하지 못한 이그니의 말에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어보자 이그니는 조금은 태연하게, 자세하게는 설명해주진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여차 싶으면 그때 단순 신체 강화 마법만 쓰면 네가 불을 만지고? 지금은 잘 몰라서 그렇지 가능할 거야."
대화의 흐름에 조금 당황스러운 시타라가 이해해보려고 턱에 손을 얹은 채 이리저리 고갤 까딱이며 생각을 정리하자 이그니가 그런 시타라를 보는 게 즐거운지 낮게 웃는다.
"대화가 어딘가 어긋난 거 같아서 정리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데…네가 말하는 잘 몰라서 그렇지 가능하다는 건 방법을 알면 가능할 거라는 뜻인 거 같거든…명확한 설명은 안 해주면서…많이 수상한데?“
시타라가 이그니를 의심하고 불신의 눈빛을 보내자(물론 목에 칼을 들이대던 것보다는 약해서 이그니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그니가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은…아샤가 말했던 네가 나를 만났다는 때. 그때 나는 너에게 ‘축복’을 전해줬었거든.”
“뭐-?!”
시타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랐으나 축제가 벌어지는 이렌이라 시타라의 고성은 축제 소음 틈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시타라는 주변을 의식했는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축복을 받았다니?”
“일단은 천천히 생각해봐. 다시 떠올리려 해도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거라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까 이 정도만 말해줄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힘을 사용하는 건 네 선택이야.”
시타라의 뒷말을 들은 이그니가 더 인자하게 웃자 시타라가 께름칙했는지 이그니와 앉은 사이의 거리를 벌리고 뒤로 물러서서 앉는다.
"근데 습관이란 건 어쩔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마법을 써버릴 수도 있긴 해."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거 아냐?"
"정령이랑 계약했다고 속일까? 강화의 축복은 정령술이 아니라 마법이지만."
"저기…신들은 다 너처럼 대충대충 하고 얼버무리고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래?"
이그니의 성격과 내뱉는 말에 걱정되는지 불안한 얼굴로 쳐다보자 이그니는 오해 말라며 손을 한번 내젓고 자신있게 자신만 그런다며 말했다.
걱정이 앞섰는지 시타라의 얼굴이 더 핼쑥해지며 모험 파트너가 이런 사람(?)인게 불안해졌지만 이그니는 뭐가 좋은지 웃었고 시타라의 안에서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던 신의 이미지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건가 봐- 구전으로 만들어진 책은 믿으면 안 되겠네….”
“뭐가?”
"…우선 살 것부터 정리하고 얻은 다음에 숙박 잡고 뭘 하든가 하자."
신이라고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일부로인진 몰라도 자신의 친구 아샤 같은 면이 있는 이그니의 행동에 마음이 놓였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준 이야기로 만들어진 지식을 혼잣말을 내세우며 저 멀리 밀어넣고, 절레절레 고갤 저은 시타라가 외투 안에서 종이와 천으로 감싸진 목탄을 꺼내 끝을 걷어 필요한 것을 적으려 하자 이그니도 가까이 다가와서 고갤 숙이고 곁에서 종이를 쳐다보고는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말해나갔다.
"아샤는 모험을 위한 짐, 하면서 미리 모아뒀던 게 있긴 하던데 없는 것도 많아서 이미 모여있던 거 말고는 가지고 온 게 없어. 당장은 지도하고 헝겊…시장을 한번 훑어보고 필요한걸 적어나가는 게 나을 거 같아. 일단 아샤가 못 모아뒀던 목록을 확인해볼까?"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아샤가 다른 마을이 어떻고, 여긴 어떻고 저긴 뭐라 말할 때 관심 있게 들을걸 그랬나 봐. 나는 필요한 게…의료물품? 개인 물품을 챙겨오긴 했는데 소모품 같은 경우는 거기서 써야될 테니까 많이 가져올 순 없어서…."
이그니가 자신이 아샤의 수첩을 챙겨왔다며 가방 주머니를 뒤져 꺼내려던 찰나.
"그래서 지금 저희가 잘못했다는 겁니까?!"
거리가 조금 있지만, 그 거리가 무색하게 앞쪽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그대로 행동을 멈추고 두 사람이 순간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쳐다봤다.
시타라와 이그니, 두 인물만 들은게 아니라는 듯 축제에 즐거워하며 떠들던 시끄러움이 멈추고, 다른 사람들도 놀랐는지 축제를 멈추는, 소란의 이유를 물어보는 웅성거리는 소리로 축제 장소는 소란스러워졌다.
소리가 나는 방향 쪽으로 한번 쳐다봤다가 아까보다 작은 소리들이 들려오자, 누구보다 빠르게 소란의 위치를 알아챘지만 ‘관심 밖의 일’에 눈길을 돌린 이그니는 시타라에게 아샤의 수첩을 꺼내주며 말을 이어가려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주변의 웅성거림에 고개를 돌려 시타라의 안색을 살폈다.
"저 다친 사람들 좀 봐."
"어떡하지? 의사를 불러야 하나?"
의사, 의원, 누구든 치료가 가능한 사람을 찾는듯한 소리에 시타라가 소리 난 방향으로 달려가자 이그니는 다시 짐에 아샤의 수첩을 챙겨 넣고 시타라의 짐과 자신의 짐을 둘 다 들고는 시타라를 뒤따라갔다.
시타라가 아직도 귀에 남는 고함에 이끌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길을 터서 소란의 중심지로 가자 눈앞에 갑옷의 부품을 걸친 사람이 밀린 듯 넘어진다.
철그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주한 풍경은 끓으며 울고 있는 목소리가 제국, 게브하르트의 깃발이 걸린 건물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광경이었다.
소란스러운 일로 자연스레 이목이 쏠렸고 사람이 모였고, 그 중 이그니와 시타라도 소리치는 대상이 말하는 건물 입구 방향으로 자연스레 고갤 돌리게 되었다.
시선 끝에 닿은 사람들은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심하면 부목까지 감고 있느라 갑옷의 부품들을 부분씩만 걸친 채 두 명 정도가 넘어져 있었고 다른 네 명의 사람이 방금 넘어졌던 사람들을 각자 그나마 괜찮은 부분으로 기대듯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나라 기관의 대변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말하는 내용은 억울한 목소리로 함께 북받쳐나오는 항의였다.
"게브하르트와 울리세의 전쟁에 에드윈은 우호국이라는 이유로 참전했는데, 어떻게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하실 수 있습니까?"
"하…제국, 게브하르트의 군인들과 그쪽 에드윈의 군인들이 몸싸움을 벌였다던데, 일방적인 폭행이였다고."
항의를 하는 부상자의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나가는 기관 대변인의 시선에서는 ‘귀찮음’이 역력했다.
"일방적인 폭행이라는 말은 억측입니다! 저희 에드윈 소속의 몇 지원병과 말다툼으로 시작해 몸싸움이 벌어진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들어주세요. 그들은 저희를 동료로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이유를 듣고 각자의 나라에 넘겨진 형태가 맘에 안 든다는 것 아닌가. 제국군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제국 황실 측으로 처분이 넘겨졌다네."
"넘겨지면 뭐합니까, 먼저 무시했던 건 그쪽이지만 게브하르트의 군인은 처벌을 피해서 갔고 분란이 있었던 저희 중 첫 목격자인 제 동료는 거짓말을 한다며 감옥에 잡아 가두시지 않으셨습니까!"
세모나게 모양 잡힌 자신의 수염을 만지며, 되풀이되는 항의가 지친다는 듯이 기관의 대변인은 항의하는 무리의 항의를 무시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 상황은 각국의 법에 따라 처벌한 것뿐이네. 제국의 법에 의하면 그들의 정교를 무시당했을 때 폭행은 정당한 쪽이지. 덤으로 거짓말을 한 그 죄인은 명예훼손이 심해서 가둔 것도 있네."
"우호국으로 참여했는데 이런 대우라뇨. 그리고 저희 측이 먼저 무시당했으면 무시당했지, 절대로 먼저 무시한 적은 없습니다!"
"헛소리! 그럼 '제국'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지금 잡아 가둔 병사 외에 그쪽에도 죄를 묻게 될 것이네!"
불쾌하다는 듯이 발을 탁탁 친 기관의 대변인은 협박을 내놓았고, 부상병들은 대변인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지만 무작정 대답하진 않으며 억울함과 함께 분을 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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