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07

: 축제 속 인연(3)

 "저놈의 정교…."

"부끄러워하는 거야 아니면 짜증 내는 거야?"

"둘 다…."

 

‘제국’ 게브하르트가 받드는, 대화 속의 정교의 대상인 신이 여기 있는 것은 알까. 제국의 소속임을 알리는 건물에 박혀있는 깃발하며 대변인의 주장 또한 착잡한지 얼굴을 최대한 손으로 가리고, 손안에서 잘 들리지 않는 ‘으아아아’ 같은 소리를 내며 이그니가 불편해하자 시타라는 이그니의 사정을 뒤로하고 부상자들의 상처를 거리를 두고 살펴봤다.

 

"쯧, 형식을 위해 ‘잠깐’ 가두는 거뿐이고, 그쪽 동료는 이른 시일 이내에 풀려날 것인데 왜 이리 소란인 거야."

 

혀를 찬 대리인이 건물로 들어가려 하자,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듯 부상병은 자신을 부축하는 주변인에게 벗어나 대리인의 근무 복 끝의 펄럭이는 망토 끝을 잡았고, 순간적으로 잡힌 망토 끝의 팔을 쳐낸 대리인이 뭐냐는 듯 쳐다보았다.

 

"제 동료…제 동료는 저보다 심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차라리 동료를 내보내 주시고, 저를 집어넣으십시오!"

 

대변인에게 내쳐져 다시 넘어질 뻔한 부상병의 상처를 시타라가 계속 보고 있다가 제 볼을 톡톡 치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저 상처들 결코 가벼운 상처들은 아니거든…약을 복용한 다음 꼼짝없이 쉬어야 하는 상처들이야."

"그럼 다친 동료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다쳤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지만…저 사람들이 저렇게 자신의 몸도 안 보살피고 말할 정도면 나서야 할 거 같은데."

"나선다고?"

 

이그니의 물음과 동시에 시타라는 사람들 앞으로 나가 계속된 항의를 하느라 지쳐 주저앉아있던 부상병의 상처를 살피고, 대변인 앞에 있던 병사의 상처까지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의 행동에 대변인도, 다시 동료를 부축하려고 고통을 참고 천천히 다가가던 부상자도, 시타라의 확인에 팔을 들고, 가만히 멈춰서고 협조했다.

 

"이런 뜻이었나…주목받는 건 싫다더니 못 말리겠네."

 

짐가방을 다시 정리해 고쳐 들고 사람들 틈으로 양해를 구하며 시타라의 곁으로 다가온 이그니가 자신이 할 일을 물었다. 시타라와 이그니의 주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는 행동에 대변인과 부상병은 뭐냐는 듯 쳐다봤고 시선을 느낀 시타라는 무심하게 답했다.

 

"의사입니다. 이분들의 상처도 얕진 않은데, 이분들이 말씀하신 감옥에 가두신 사람의 상처를 제가 한번 살펴도 될까요?"

 

의사라는 말에 대변인은 시타라를 훑어보더니 '이 어린아이가?' 하는 눈빛이 담긴 감상이었지만 헛기침을 하고 나서는 ‘대변인’이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책임은 알긴 아는지 세상 좋은 사람의 얼굴을 하며 답해왔다.

 

"죄인을 돌보겠다고? 어린아이가 뭘 모르나 본데, 그럼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아나?"

"어린아이 아닙니다. 저는 정식으로 남을 치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의사가 환자가 있다는데 자기 앞가림을 우선시할 순 없습니다."

 

명백히 어린아이라 무시하며 대하는 대변인의 태도에 시타라가 웃음으로 답하며 잘못된 인식을 콕 찍어서 대답하자 이그니에게 부축을 받고 일어나려던 부상병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그분들도 그러셨는데…."

 

흘러가듯 말하는 목소리에 이그니가 부상병을 쳐다보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설레설레 고갤 저은 부상병이 스스로 서곤 지인 쪽으로 부축을 청하고는 도와주던 이그니에게 고맙다고 말해왔다.

 

"축제로 인해 여기…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설마, 심하게 다친 사람을 두고 의사한테 되돌아가라고 하진 않으시겠죠?"

 

시타라의 말에 기관의 대변인이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곤 자신의 병사들에게 뭐라 말하자 병사들이 건물 앞을 정리하려고 움직이려다가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의 표정을 보고 대변인에게 다시 말을 전했다.

 

"일단 여긴 에드윈 이렌이라 저희가…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사람들 표정을 보십시오, 여기서 문제 일으켰다간 큰일 날 표정들입니다."

"…제국의 높은 뜻도 모르고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

 

셋이서 수군수군 전달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구경꾼들 또한 말을 한마디씩 하며 사람들이 모인 장소는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제국의 개가 인제 와서 에드윈의 눈치를 보나?"

 

구경꾼들 사이에서 누군가 들으라는 듯한 높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자, 대변인과 게브하르트의 병사가 소리가 난 그쪽을 쳐다봤으나 목소리의 주인인듯한 사람은 이미 없어졌는지, 군중들도 용기 있는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사방을 돌아볼 뿐이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감옥에 갇힌 환자분을 제가 볼 수 없겠습니까? 환자가 감옥에 갇혀서 죽게 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죄인의 개인 사정을 일일이 봐주면서 가둬둘 순 없거니와 저 혼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거 같군요. 잠시 윗선에 여쭙고 오겠습니다.”

 

더 이상의 무안한 상황을 정리하고자 그제야 예의를 차리고 높임말을 써주며 기관의 대변인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고는 건물로 들어가버리고, 닫힌 문을 보고 시타라가 한숨을 내뱉고 미간을 찌푸리자 이그니가 다가와 물어왔다.

 

“시타라, 괜찮아?”

“아니, 지금 당장 문을 두드려서라도 바로 답변을 듣고 싶어.”

 

안 괜찮아 보이는 시타라는 현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못마땅함을 여지없이 들어내며 우선은 환자가 걱정되니깐 참는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그니가 어깨를 으쓱이곤 간단한 처치를 위해 부상병들을 아예 앉게 하고 자세를 고치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기관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에드윈 이렌의 축제를 즐기러 온 이들도 상황을 알게 되니 자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하며 자신들도 답변을 들어야겠다는 식으로 모두가 기관을 둘러싼 형태로 기다리며 서로 한마디씩 던졌다.

 

“저 상처 좀 봐.”

“우호국이지만 일단은 도우러 가서 승리하고 온 나라의 영웅들인데 대우가 이런 식이라니.”

“저들…은 친구를 이런 식으로 대하나 봐?”

 

사람들이 한마디씩 내뱉은 그 와중에 제국의 건물이 보이는 반대편 건물에서는 시타라와 이그니를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현재 의사임을 밝힌 시타라와 그의 일행처럼 보이는 이그니는 타인의 주목을 받기엔 적절했고, 그런 시선들에 섞여 주시하는 누군가는 조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찻잔에 담긴 차를 마시고 값을 치르는 행동을 하고 일어나 1층으로 향했다.

 

인파로 인해 높은 곳에서 볼 때보다 보려던 상대가 더 안 보이는 위치였지만, 내려온 이는 그건 상관없는지 시타라와 이그니가 있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주시하며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굳게 닫혔던 기관의 문이 열리고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시타라가 있는걸 확인한 기관의 대변인이 자세를 잡으며 시타라와 이그니에게 말했다.

 

"…쯧,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내일 낮 2시쯤 이 앞에 찾아오시면 감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돌아가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는 듯 대놓고 혀를 찬 소리를 무시하며 시타라가 웃으며 답했다.

 

"옳은 결정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간단한 처치가 마침 끝났는지 마지막 환자를 제 쪽으로 조금 당기며 이그니의 도움을 받아 일으켜 세운 시타라가 안심하라는 듯 상대에게 미소짓고 부상병 무리에게 인사하고 기관 앞에서 물러서려 하자, 기관을 둘러싸고 있던 이렌 사람들은 다친 이들에게 상처가 더 덧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들을 건네며 편하게 가라는 듯 길을 내어주었다.

 

항의하던 사람들이 물러나자 소란으로 인해 모였다가 부당한 대우를 살피던 사람들은 게브하르트의 깃발을 한 번씩 째려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부상병들을 험하게 대하던 기관 대변인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한 번씩 젓고 지나가며 자리를 파했다.

 

소란이 지나고 다시 축제 분위기가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부분적으로 착용한 갑옷들이 짤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근처 의자에 부상병들을 앉힌 시타라가 자신의 가방을 넘겨받아 무릎을 꿇고 부상병들에게 앞으로 필요할 약 몇 개와 붕대를 꺼내려 하자 부상병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돌아와서도 이 몸으로 용기 있게 싸우셨네요."

 

아까 처치하지 못했던 부분들(넘어지면서 추가로 생긴 상처)도 마저 치료하려는지 날붙이를 꺼내며 담담하게 시타라가 답했다. 이미 적정하게 감겨있는 시간이 지나 눌어붙으려 하는 붕대를 떼어내고 보이지 않던 상처를 확인한 시타라가 손을 바삐 움직이며 소독하자 아픈 것인지 아니면 갇힌 친구가 걱정되는지 울적한 얼굴을 한 병사에게 이그니가 분위기를 풀려는 듯 말을 건넸다.

 

“저희는 그 자리에 뒤늦게 와서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어서 그런데, 구금된 사유 같은 거 말해주실 수 있나요?”

 

곁에 서서 새로 감긴 붕대 위로 멀쩡한 팔을 감싸던 병사가 입을 열었다.

 

"…우호국이라는 사정으로 강제 징집 있었지만 그래도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기뻤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 도움이 됐을 법한 행동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국의 몇 병사들이 전쟁 기간 내내, 시시때때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아까 거짓말로 치부되던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주로 자신들과 다른 신을 따르는 자들을 향한 모욕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저희 동료가 하는 식전 기도를 보고 그건 어느 나라 교리냐면서 ‘이단자’냐고 말을 얹기도 했고요."

"이단자?"

 

이그니의 질문에 병사들은 고갤 끄덕이고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지금 구금된…감옥에 갇힌 동료의 떠난 가족들이 계속해오던 기도였습니다. …‘옛날 어디 신을 기리는 기도’였나. 동료는 가족들에게 배워오던 걸 전쟁에서도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고 지적과 험담을 하더군요."

 

옛날, 명백하게 이름조차도 제대로 남겨지지 않은 신인 걸 알아챈 이그니는 한참을 얼굴을 짚고 자신의 표정을 가리려는 듯 입가를 손으로 누르며 고개를 숙인 채 처음보는 사람이 보기엔 알아챌 수 없는 분을 삭이려 했고, 시타라도 이제는 아는 내용의 이야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넝쿨 모양 장식을 가진 분이셨나요?"

"기도에 대해 아시는군요? 동료는 없었지만 아마 동료의 양친이 그런 넝쿨 문양이 손목에 있으셨을 겁니다. 동료가 제 소꿉친구라 부모님끼리도 아는 사이셨거든요."

"그러던 중…싸움으로 발단이 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동안 쌓여온 악감정들이 터져 한창 싸우다가 의사 선생님으로 계시던 분들이 말려줘서 타박상 정도로만 남는 싸움으로 번지긴 했는데…그 후에 있던 울리세의 공격에서 좀 심하게 다쳤거든요."

"저희를 말렸던 의사 선생님들은…그걸 이유로 시비붙었던 제국군의 눈 밖에 나셨는지…다른 얼토당토않은 일로 목이 그어져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셨는데…."

 

가족이, 연인이 돌아와 축제가 한창일 때에 행복하지 않고 억울한 사람들이 있는 이질적인 광경은 사람들을 이목을 끌 만했고, 군인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사람들은 슬슬 발걸음을 옮겨 편히 말하라는 듯이, 아니면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해주었다.

 

덩그러니 남아 부상병을 살피는 의사와 칼을 찬 청년 그리고 부상병들 조합이 자리를 잡은 공간은 이질적으로 변했고 사람들의 흐름을 알아챈 부상병이 치료로 만들어진 소음만이 남은 고요 속에서 시타라의 마무리가 끝난 것처럼 보이자 일어나서 급하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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