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00

: 신들의 고향, 별

"비록, 나는 여기서 잠들 테지만 다시 깨어날 거야.“

 

천천히, 누군가를 달래려는 듯한 내용을 담은 나긋한 목소리가 넓은 공간을 울렸다.

 

"꼭…너여야 할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왜 너여야 하는지, 네가 나서야만 하는지 모르겠어."

 

돌을 깎아 만들어진 낮은 제단 위 꽃과 잎사귀, 덩굴로 꾸며진 곳에 누워있는 여성의 손을 자세를 낮춰가며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주인이 의문을 표했고, 이내 여성은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무릎 꿇고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의 얼굴을 쓸어주며 웃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다른 신들은…권능을 생각하면 돌아오는데 더 오래 걸릴 거고. 다른 신이 없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

 

괜찮다는 듯. 다시 한번 안심시키려 일부러 밝게 웃은 여성은 깔린 자연물들을 사부작거리며 누워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더니 잡고 있던 손을 매정하게 놓지 못하고 남성의 얼굴을 쓸어주었던 손으로 자신의 옆에 처음부터 놓여있던 단검을 잡고 남성에게만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안녕, 잘자. 나중에 봐."

"…꼭, 데리러 나갈게. 꼭 너를 만나러 갈게."

 

서로, 아니, 한쪽은 다음 날에 눈을 뜰 것처럼 상대방에게 잠들기 전 하는 인사를 전하고, 다른 쪽은 먼 곳을 떠나는 상대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배웅하자 여성은 그제야 잡았던 손을 놓고 단검을 받쳐 들며 칼집에서 꺼내들고 날카로운 날의 끝을 자신 쪽으로 겨누며 이내, 자신의 가슴에 단검을 박고 그대로 뒤로 천천히 쓰러졌다.

 

조금 멍하니 누운 채 앞을 응시하던 여성은 흐려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들고 숨을 가다듬으며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연인을 마지막으로 두 눈에 담고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 시선을 마주쳤던 남성은 온기를 잃어가는 이의 한 손을 다시 잡아 자신의 얼굴에 묻으며 눈물을 흘렸고, 조금 먼 곳에서 떨어져 제단을 빙 둘러 있던 이들도 자신들의 방법으로 이별을 슬퍼했다.

 

조용히 다른 공간에 고립되어 후일에 소식을 전달받아 소매로 입가를 가려 웃던 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이별을 슬퍼했다.

 

이날, 생명과 대지의 신은 죽어버린 땅에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조각내서는 땅에 잠들었다.

 

 

-

 

 

태초에 검은 공간에서 작은 점이 나타났다.

 

작은 검은 생명체가 숨을 쉬듯 오르락내리락,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며 밝음과 어둠을 오갔고

점점 크기가 커지며 지금의 사람들이 추후, 별이라 부르는 항성처럼 일정한 빛을 내게 되었다.

 

쭉 빛을 유지하며 검은 공간을 은은하게 밝히던 별은 어느 순간부터 붉은빛을 품더니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별 뒤에 남아있던 검은 공간에서는 ‘팔’이라 인식할만한 무언가가 옆으로 뻗어 검은 공간을 휘어잡듯이 팔의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검은 공간이 한쪽으로 말리듯이 쏠리다가 중심을 잃기 전, 검은 형체가 별에 ‘발’이라고 인식될만한 형태를 내디뎠다.

 

그 충격인지, 아니면 당연한 순서였는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던 별에 금이 가고, 조각하나가 떨어져 나와 하나의 땅을 이루게 되었다.

 

그걸 본 검은 형체는 검은 공간을 자신의 의복 삼아 자신에게 감고 너울과 함께 춤을 추었고, 남은 조각들이 가루가 되어 액체형태로 아래로,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가루가 되어 아래로 흐르던 액체는 깨지기 전 별과 같이 붉은 빛을 내고 있었지만, 이내 푸른 빛으로 물들어 흘러갔고, 흐름을 이뤄 어느새 자리 잡았던 땅을 적셨다.

 

계속, 계속 쏟아지던 물을 더는 땅이 흡수하지 못하고 검은 공간으로 다시 흘러갈 때쯤, 남은 물이 고여 작은 샘들을 이루고, 그 샘에서 최초의 생명이 샘 밖으로 하나 혹은 자신의 뒤로 태어난 다른 이를 끌어주며 땅을 밟으며 검은 공간을 바라봤다. 최초의 생명인 ‘신’들이 태어나 자신의 창조주와 같은 검은 형체에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받은 검은 형체는 웃는 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검은 공간을 울리더니 자신 주변의 검은 공간을 끌어당겨 몸을 감싸 검은 공간을 걷어가곤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검은 공간과 창조주는 온데간데없고, 장막을 걷은 그 뒤에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의 푸르스름한 빛과 함께 땅, 물, 그리고 최초의 생명체, 신들만이 남게 되었다.

 

태어난 신들은 같은 샘에서 태어난 신과 형제, 자매를 맺고 가족을 이뤘다.

 

신들은 갈라져 기존에 내딛었던 땅보다 위쪽에 떠 있던 땅에 자릴 잡아 창조주의 뒤를 이어 세상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나와 있는 땅과 하늘을 다듬고, 더해가며 대륙이라 불릴만한 모양새를 향해 조성해나갔다.

 

신들은 바다와 대륙, '아실링'을 다듬었고, 아실링에 살게 할 자신들을 닮은 생명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신들 사이에서 '테라'라 불리는 ‘생명과 대지의 신’이 그릇을 만들면 다른 신들이 숨을 불어 넣어 생명체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들게 만들어진 그릇들은 축복을 내려 인간들을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남들보다 뛰어난 역량을 주고 앞길을 알려주며 도와주었다.

 

신들이 각자 힘이 다르고 생긴 게 다르듯 인간들도 다양성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이루게 되었고, 신들은 인간들의 행동에서 느낀점이 있었는지,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은 ‘태양과 불의 신’ ‘이그니’가 신들의 우두머리인 ‘주신’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신들은 인간들이 나라를 세우고 사회를 이루는 걸 보자 인간들의 나라가 아닌 자신들도 나라를 만들어보자며 자신들의 말을 전할 대변인을 두고 인간들이 살아갈 장소를 자신들이 자리잡은 곳과 분리한 뒤, 자신들을 따를 새로운 인간들을 창조했다.

 

주신 이그니와 그의 가족인 ‘달과 마법의 신’인 ‘아일린’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땅을 만들고자 시범을 보이겠다며 먼저 신들의 백성을 지내게 할 땅을 만들어 봤으나 창조주가 건든 지형에서 시작한 탓이 아닌 두 신의 권능으로만 탄생한 땅이라 일반적인 ‘인간’들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전락했다.

 

신들은 비록 아쉬워 했지만 자신들이 만든 걸 거둬가며 없애고 싶지 않았고, 이왕 창조한 이상 자신들은 자신들이 만든 땅에서 신들끼리만 어울려 살기로 하고, 땅을 내어주며 ‘천계’와 ‘마계’로 이름 지었다.

 

그렇게 기존 만들어졌던 다른 인간들과 다른, 분리된 장소의 신들이 자리잡고있던 곳에 생활하게 된 천계인들과 마계인들은 신들이 지내고있던 장소에 남아있던 권능의 ‘힘’을 흡수해 기존 인간들과 다른 강함을 띄었고, 천계와 마계는 인간과 다른 자신들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신들에게 요청했다.

 

이그니와 아일린은 기존에 천계와 마계를 만들 뻔 했던, 한번 실수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이 있는 장소를 형성했던 힘을 쪼개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우두머리를 만들어 천계와 마계에 자리 잡은 강한 이들에게 지도자로 보내주었고, 이후 주신 이그니와 아일린이 창조한 지도자는 각자를 창조한 신이 달라 서로 성질 다른 왕이 각자의 나라를 세워 강한 존재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천계는 ‘천왕 아스트라’가, 마계는 ‘마왕 아이타치’가 나라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평화롭게 살던 와중 마계에 천계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계의 백성인 마인들의 고유한 신체적 특성과 아일린으로부터 이어진 아이타치의 특출난 지식과 마력을 탐낸 일부 천인들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천계인들이 분리되어 있던 인간계를 통해 마계를 침공한 탓에 인간계의 땅으로 퍼져 두 나라간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천왕 아스트라는 전쟁을 일으킨 자신의 뜻에 반하는 천인들을 막고자 내부에서 노력했지만 반란군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는 무기로 아스트라를 공격했고, 아스트라는 다쳐 그들만이 아는 위치에 유폐되었다.

전쟁을 종결짓고자, 동분서주했던 지도자의 행방을 잃어 천계는 혼란을 맞이했고, 마왕 아이타치는 자신의 가족과 같은 아스트라를 구하고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신의 위치인 마계에서 노력했지만 밀려드는 공격에 아스트라를 구하겠다고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왕, 천왕 아스트라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욕심을 내세운 천인들의 전쟁이 [천계의 침략]이라 불렸지만, 시간이 흐르며 두 나라 간의 전쟁의 규모가 커지며 어느새 [별을 가린 전쟁]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여파가 천계와 마계가 위치한 땅이 아닌 인간계의 내륙에 위치한 초목까지 피해를 끼쳐 시들어 버릴 무렵, 천계와 마계의 전쟁은 의견 차이가 벌어진 신들에게도 퍼지게 되었고 큰 권능을 가진 열 명의 신들 중 ‘열망과 축복의 신’ ‘디디에르’는 원하는 게 뚜렷한 욕망 있는 천계의 편을 들어주게 되었다.

 

디디에르의 선택을 시작으로 ‘바다와 평화의 신’ ‘프리드’, ‘전쟁과 승리의 신’ ‘힐다’는 무고한 마계 그리고 억울했던 마인들의 편을 들었고, 프리드와 힐다 외에도 ‘바람과 지혜의 신’ ‘크피르’는 자신이 숨을 불어넣었던 백성들 중에 일부 중 마인이 있다는 이유로 합세하였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지위가 뚜렷한 신들이 한쪽의 편에 들어 전쟁에 가담하자 공격을 가하던 천계와 막기 급급해하며 패전을 전전하던 마계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고 서로 팽팽한 격전을 치르게 된 전쟁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길어지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립을 지키던 남은 신들도 억울한 입장에 서서 전쟁의 의미가 목적없는 학살로 달라지기 전에 전쟁에 가담해 전쟁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쯤 원래도 시시각각 기분파이던 디디에르가 오래도록 길어진 공방에 흥미를 잃어, 전쟁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뒷배로 작용하던 신을 잃어 순간적으로 밀린 천계는 평화를 원하던 마계의 사정으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버린 인간계는 인간들에게 상처로 남게 되었고, 회복의 토대가 되는 기반이 무너진 인간들은 신들의 말을 전해주던 대변인을 통해 신들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중립을 지키던 지켜야 했던 이그니, 아일린, 테라 그리고 테라의 동생인 ‘죽음과 문화의 신’

‘루에이리’, ‘예언과 균형의 신’ ‘테르사’가 인간들의 고통을 듣고 가슴 아파하며 석연치 않았던 의문을 파헤치게 되었고 원인, 시작이나 다름없던 분리된 인간계의 통로를 뚫고, 천왕 아스트라를 몰아세웠던 무기의 출처가 디디에르였다는 걸 알아채고 알리자, 주신 이그니의 주도하에 디디에르의 처벌이 정해졌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순환하는 테르사가 아이에서 다시 아이로 그리고 어른에서 다시 아이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 생명체와 접점도 없는 고립된 공간에 갇히게 되었다.

 

디디에르를 유폐로 벌한 후 마계의 편을 들어줬던 신들은 천계와 마계를 분신을 통해 나서서 수습하고, 중립이었던 열 명의 신을 따르는 아래 신들은 인간계에 나와 상황을 살피게 되었다.

 

인간계는 오랜 천계와 마계의 전쟁으로 도저히 인간들 스스로 힘으로 복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최대한 빠르게 회복시키고 인간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잠재우기 위해 테라 스스로가 나서기로 하였다.

 

자신을 희생시켜 이른 시일 이내 폐허였던 삶의 기둥이 대지부터 회복시키기로 하고 연인이었던 이그니와 다음을 기약하며 이별을 전하고 자신을 바쳐 인간계에 내려와 흩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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