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원작-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커플링- 태현우주
분량- 1,742~2,386
오늘은 화이트데이였다. 연인이나 친구들끼리 사탕 같이 달달한 간식거리 따위를 주고받는, 일종의 작은 행사였다. 그래. 연인끼리는 거의 필수로 챙기는 기념일이라고.
나는 텅 빈 가방 안을 뒤적였다. 혹여나 아주 작은 간식이라서, 정말 너무나 작았기에 내가 찾아내지 못했을까 봐. 그러나 몇 번이나 털었던 가방 안에는 먼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일 먼저 태현이에게 받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이 주려는 간식조차 받지 않았다. 그 탓에 더욱 비어있는 가방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가방 안을 힐끗힐끗 쳐다본 친구들이 내게 안쓰럽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를 싫어하던 아이들은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비밀 연애를 하는 같은 처지로서,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예쁜 사탕 봉지가 눈에 거슬렸다.
발렌타인 때 줬던 수제 초콜릿을 귀찮게 여겼었던가? 그렇다기엔, 초콜릿을 받으며 지었던 미소는 평소보다 훨씬 밝았었다. 화이트데이에 보답하겠다는 말도 착실히 받아냈었다. 순전히 잊었을 뿐인 걸까? 만약 일부러 주지 않았던 거라면? 태현이라면 전자의 가능성이 컸기에, 내가 무슨 날인지 상기시킬 완벽한 계획을 세워갔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데뷔조만 연습하는 시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니, 이때 알아차리게 만들면 될 터.
“우주 형!”
한태현은 예정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날 보자마자 달려오는 태현이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지는 주머니가 없었고, 가방도 들고 있지 않았다.
“…뭐 들고 온 거 없어?”
“응? 뭐 가지고 와야 해?”
심술을 부리려 했었다. 그러나 순진한 얼굴로 되묻는 태현이를 보면 심술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나보다 어린 애한테 뭘 받아내려 했다는 게 새삼 민망해졌다.
“별거 아니야.”
내가 챙겨주면 되지. 내가 안 잊으면 됐지.
친구들이 주려던 간식들을 그냥 받을 걸, 괜스레 후회가 몰려왔다.
* 일정이 끝나고도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을 걸 본 친구들이 어깨를 두들겼다.
“그러게, 이 형님들이 줄 때 받으라니까.”
“맞아. 그래도 아직 늦지는 않았다.”
“우주가 하나도 못 받았대!”
벼르고 있었던 건지, 텅 비어있었던 가방은 한 아이의 말을 끝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태현이한테 받고 싶었는데…….
묵직해진 가방 속에 단 하나, 태현이의 것만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했다. 어쩔 수 없지. 이해해주자. 서운함과 이해해주자는 마음이 계속해서 번갈아 나타났다. 물론 바쁜 게 당연하지만, 비밀 연애라서 숨기는 게 맞지만!
첫 연애. 첫 화이트데이. 기대감이 부풀기엔 충분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춤 연습에 정진하려는데, 인상이 험해진 태현이가 무섭게 다가왔다.
“……형.”
“어엉?”
대답하는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들어갔다. 처음 보는 인상 탓에, 몸이 굳으면서 극도로 긴장되었다. 태현이는 널찍한 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와, 내 가방을 낚아챘다. 각종의 단 간식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굴러떨어졌다. 그걸 본 태현이의 인상은 더욱 사나워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탓에, 주변에 몰려들었던 연습생들이 우르르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얼핏 보면 정말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래서 도망간 거겠지, 하지만 나는 태현이가 화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미세하게 기울어진 눈썹과 촉촉해진 눈망울은, 내 예상에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보면 볼수록 낑낑대는 강아지 같았다.
“푸핫!”
귀여움에 먹혀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서운했던 감정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좋아함을 표현하는 단어들만 머릿속을 메웠다. 좋아한다는 감정만 남은 나는, 태현이의 손을 붙잡으며 입을 맞췄다.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저지르고 말았다.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CCTV에 잡혀서 약점으로 활용될지도 모르는데. 이미 일을 치른 뒤에야 떠올랐다.
“혀엉…….”
서서히 붉어지는 태현이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혹시나 누가 이 일을 언급한다면, 연예계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조사를 해둬야겠지. 우선 이 일은 뒷일로 미뤘다. 지금은 내 바로 앞에 있는 태현이가 더 중요했다. 간식 가지고 질투라니. 너무 귀엽잖아!
“미안해. 내일인 줄 알았는데.”
“으응. 괜찮아.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종일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걸로 우리의 애정도가 증명되는 건 아니었다.
“오늘 계속 기운이 없었잖아. 이거 때문 아니야?”
“…….”
그랬던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서운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게 티가 많이 났던 걸까. 태현이를 꼭 끌어안고서 조용히 고민하고 있자, 태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나라도 먹을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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