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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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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좋아하는 마음도 돈으로 살 수 있대."

"무슨 소리야?"

건조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미술실에서 붓질을 한다. 미지는 그림을 그릴 때 창을 여는 걸 싫어한다. 덕분에 나까지 환기가 안 되는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길목에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일 지경이다. 

"사람이나 물건, 아니면 어떠한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잖아. 그런데 요즘에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부적을 만들어서 판대."

"그런 게 말이 돼? 그럼 원래는 싫어했던 것도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미신 아니야?"

미지는 그림을 그릴 때 이야기를 나누는 걸 싫어한다. 이렇게 먼저 입을 열었다는 건, 오늘 계획했던 부분까지는 작업이 끝났다는 뜻이다. 예상대로 파레트는 미지의 손이 아닌 옆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다. 시선은 캔버스를 향하고 있으면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소의 그 아이가 하지 않을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그래도 꽤 인기 많더라. 나름 연구까지 해서 만든 부적인가봐."

나도 결국 붓을 내려놓았다. 집중이 깨진 탓일까.

"요즘 사람들은 연구했다는 말만 붙이면 뭐든지 믿잖아."

"그렇지."

어느새 정리를 끝낸 미지가 의자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다. 이제 슬슬 집에 가자, 라는 신호다. 지루한 얼굴로 이쪽을 빤히 보고 있는 모습이 어이가 없을 정도다. 미술실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오려고 하면서 집에 가는 것도 누구보다 빠르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미지를 보니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야, 너만 다 끝나면 다야? 조금만 기다려."

"응. 빨리 끝내."


요즘 세상은 그야말로 연구만 되었다는 말을 하면 무엇이든지 믿는 세상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술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온갖 과학용어를 가져다 붙이며 물건을 설명한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과학이 발전한 건 사실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이제 그 정도는 정서니 호르몬이니 피드백이니 감정 역학 상호 보완이니 하는 것들로 모두 규명이 된 시대니까. 하지만 그만큼 그럴듯한 말만 붙이면 정말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처럼 믿기 쉬운 시대다.

미지가 이야기한 "부적"도 비슷한 종류의 물건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때 분비되는 호르몬을 그대로 재현해서 작은 티백모양 비닐 주머니에 담은 제품. 주머니에 들어있는 무색무취의 액체가 증발하면서 마치 방향제처럼 공기 중에 퍼지면 그 물건의 주인은 자연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어떠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 상당히 간단한 원리라서 정말 이것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의외로 꾸준한 수요가 있는 듯하다.

웹서핑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뜬금없이 나온 부적에 관한 이야기가 신경 쓰여서 조금 찾아봤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미지와 함께 목표로 한 공모전의 마감 기한이 코앞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미지는 아무 말 없이 그림을 그렸고, 나는 미지의 작품에 매번 마음을 빼앗겼다. 미지가 한 스케치는 무심했지만 얇게 올린 물감은 다정했다. 완성된 그림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 했지만 내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일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지가 다음에 그릴 그림을 예측할 수 없어서, 더 기대하게 되었으니까.

"너도 그려볼래?"

캔버스만 바라보던 미지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을 때. 미지가 건넨 각이 지게 깎은 연필을 얼떨결에 받았을 때. 그때부터 미지의 옆자리엔 내가 있었다. 

그 뒤로 매일같이 함께 미술실에 드나든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함께 그림을 그렸던 시간은 그렇게 길었으면서 같이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왠지 경쟁하는 기분이 들어서 피했다거나, 누가 상을 받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우리 둘 다 그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지가 먼저 공모전 포스터를 가져와서 함께 작품을 내자고 제안했다. 공모전이니 입상이니 둘 다 관심 없지만, 이왕 하는 거 목표를 가져보자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이번 그림은 꼭 완성 시켜서 제출해야 한다.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잡다한 생각을 하고 나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내일은 디테일을 올리는 데에만 집중하자. 마무리에 들어가기는 아직 부족하니까.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다행히 기한에 맞춰서 작품을 제출했다. 맨날 이젤에 올려놓고 쓰던 캔버스는 막상 어딘가에 보내려고 하니 왜 이렇게 무거운지, 우편은 믿을 수 없다며 직접 들고가야 한다는 미지의 말을 따라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비는 뭐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그림은 제출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릴 때보다 그림을 내러 가는 길에 내 입에서 튀어나왔던 불평불만이 훨씬 많았다.

"아, 그래도 갈 때엔 좀 편하게 가겠다."

버스 뒷자리에 앉자마자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우니 밖에서 잠깐 놀다가 가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영아."

"응?"

"중간에서 내리자."

내 마음을 읽었나 싶었다. 

"집에 가기 전에 뭐라도 마시고 가자. 시내에 카페 많으니까 아무 데나 가도 돼."

하지만 평소처럼 마음이 통했다느니 하는 농담으로 받아치기는 어려웠다. 잠깐 내리자는 말을 하는 미지가 미묘하게 낯설었다. 늘 보는 얼굴이지만 지금 미지가 짓고 있는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평소처럼 웃는 얼굴인지 살짝 찌푸린 얼굴인지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시간도 많으니까."


차가운 얼그레이 티 옆에 쏟아진 것은 티백 모양의 비닐 주머니들이다. 안에 들어있던 것은 이미 바짝 말라서 도톰한 비닐 주머니에서까지 버석버석한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이 안에 들어있던 것은 무색무취라고 판매자들이 말했으니까.

"이건 작년 가을에 썼던 거야. 이건 겨울방학 하기 전에 썼던 거. 이건 3월에."

빈 주머니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이어간다. 미지가 한 마디씩 말을 덧붙일 때, 나는 테이블에 흩뿌려진 비닐의 수를 몇 번이고 다시 셌다. 미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나는 지금 입을 열면 분명 실수를 할 것 같았다. 조용히 미지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차라리 수를 세는 쪽이 나았다.

"사실은 오래전에 그만두고 싶었거든."

"그림 그리는 게 싫었어?"

몇 번이고 수를 세도 결과가 달라지는 법은 없어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내 얼굴이 어떨지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미지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열세 개.

텅 빈 비닐이 햇빛을 받아 반들반들한면에 광택이 졌다.

"싫다기보다는. 더 그릴 마음이 안 생겨서."

"왜?"

"내 눈에는 네 그림이 제일 좋아 보였거든."

얼그레이 티에 입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티백에 들어있는 찻잎도 휘발되어서 날아가면 어쩌지? 내가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느 날부터 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버렸어. 그 뒤부터는 굳이 내가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고 느꼈어."

"나는, 너랑 같이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그래서 계속 그렸던 건데."

"응. 알아."

 미지의 입가에 번진 웃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보던 눈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요즘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늘 봤던, 캔버스를 보는 눈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미지는 지금까지 정적인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비어있는 캔버스를 보고 있었다. 아직도 알 수 없는 건, 대체 언제부터 캔버스를 향한 미지의 시선이 건조한 것으로 바뀌었는지.

"그래서 바로 그만둘 수 없었어."

"나 때문이야? 더 그리기 싫은데도 계속 그림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니야, 영아. 네 덕분이야."

미지가 시선을 내리까는 것을 끝으로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네 덕분에 그림에 미련을 가질 수 있었던 거야."


입상을 했다.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은 전시된다고 한다. 

전시장에 찾아온 미지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미지의 그림은 전시장에 없었다.


상금을 받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단숨에 내 계좌에 이체해버렸다. 어차피 금방 사라질 돈이다. 물기에 눈이 부셔 모니터도 제대로 못 보는 주제에 대체 뭘 사겠다고 꾸역꾸역 온라인 쇼핑몰을 돌았는지. 질리도록 읽은 상품 설명은 바로 넘겨버리고 그대로 주문했다.

하루, 길어도 이틀만 있으면 집에 도착하겠지. 매일매일 울어서 코가 막혀있지 않는 한 사용하는 데에 문제는 없겠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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