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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시 한 번 여쭤보겠는데. 직업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콜센터 상담원입니다."
"콜센터 상담원."
토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아니지, 표정관리 하자. 표정관리. 애써 차가운 우롱차가 담긴 유리잔을 입으로 가져가 보지만 안타깝게도 잔은 투명했다. 일부러 시간을 끌며 차를 마셔도 못 미덥다는 눈은 숨기지 못했다.
그야,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정말로 영매가 맞는지 의심스러우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이 허름한-페인트칠도 벗겨지고 다 쓰러져가는 구식 아파트의 803호- 집에 방문까지 했는데.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데에도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으니. 아, 시간만 날렸다. 이럴거면 집에서 넷플릭스나 볼걸.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정말 귀신이랑 대화할 수 있으면 그냥 영매사라고 하시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요즘 사람들은 영매사라고 하면 곧바로 사기꾼인 줄 압니다."
"그러면 왜 하필 콜센터 직원인데요?"
"저는 전화기로 죽은 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아, 그럼 1인 운영 콜센터?"
"제가 직원이자 사장입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갈아입은 건지, 버튼만 누르면 아무 대답이나 하는 출력기처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꼬박꼬박 대답하는 남자는 새까만 양복으로 무장한 채로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방석 위에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이 정갈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안색도 창백한 데다가 새카만 눈에는 빛 한 점도 들지 않아 영매나 콜센터 상담원보다는 저승사자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토가는 슬슬 다리가 저려 자세를 고쳐앉았다. 이미 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용건은 제대로 해결하고 가는 것이 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자 낮은 탁자에 놓인 까만 유선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콜센터에서 쓸법한 모델이군. 토가는 생각했다.
"아무튼. 정말로 귀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 맞죠?"
"맞습니다."
"...그리고 애완동물하고도 대화가 가능하시고?"
"전문입니다."
"13년 전에 떠난 애하고도?"
"문제없습니다."
이어지는 즉답에 토가는 더는 상대에 대해서 가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좋아요. 돈은 드릴 테니까 전화 좀 걸어주세요. 제가 옛날에 키웠던 고양이한테."
토가의 말에 남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유선 전화기를 가까이 가져왔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화는 상대방이 걸게 되어있습니다."
"네?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해요? 막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방울 들고 흔들고, 그런 거 해야 해요? 아니면 막 하얀 종이쪼가리 붙은 나뭇가지...? 그런 거 흔들고?"
이쪽 방면에는 전혀 지식이 없는 토가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아니, 지식이 있다고 해도 문제였을 것이다. 유선 전화기로 곁을 떠난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매...가 아니라 인바운드 텔레마케터에게 어떤 오컬트 지식을 접목시킬 수 있을까.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양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이야기요?"
"네. 굳이 비유하자면 강령 의식 같은 겁니다. 누구라도 남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 궁금해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는 "이쪽"에 가까이 다가와야 하고, 근처에 도착하면 귀를 가져다 대야만 합니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이쪽"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전화벨이 울리는 겁니다."
"아... 예."
"그러니 이름부터 말씀해주십시오. 고양이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이젠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가 없겠군. 한발 늦은 후회를 하며 토가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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