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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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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하게도 그 녀석이 좋아하는 바다가 아주 건방지고 무례한 바다인 관계로. 우리는 이 한겨울에 기차에 올라타고 만 것이다.

2

"이왕이면 남을 아랑곳하지 않는 타입이 좋아."

"매니악하네."

시호는 액자를 벽에 새로 걸며 말한다. DSLR로 찍은 사진을 인화하니 확실히 카메라가 제값을 하는 듯 하다. 불규칙한 수면의 결이 선명하다.

"그리고 난폭했으면 좋겠어."

"...그러냐."

"폭력적일 수록 더 이끌려."

"그만, 그만! 누가 들으면 변태라고 오해할 테니까 주어를 똑바로 붙여!"

"뭐 어때. 손님도 없는걸."

그렇다. 여느 소품샵이나 독립서점이 그렇듯 오래 머무르는 손님은 없다. 시호와 내가 한가하게 떠들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동 창업자라고는 하지만 둘 다 서점 일은 뒷전으로 하고 10시부터 4시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 업무다. 

시호가 액자의 수평을 맞추고 이쪽을 돌아본다. 외벽과 한몸이 된 액자는 주변의 액자들과 다시 연결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틀에 의해 다시 구분된다. 서점의 한쪽 벽은 전부 "바다" 사진이다. 그것도 죄다 시호가 직접 촬영한 것. 색차로 인해 사진 사이의 구별이 가능해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마치 모자이크 그림 같아 진풍경이긴 하다. 다만 저 벽이 아닌 다른 벽에까지 사진을 걸어놓으려고 하면 그땐 말려야 할 것이다. 그러다간 서점을 둘러싼 여섯 면이 전부 사진으로 뒤덮일 테니까.

서점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시호는 바다에 낭만이 있는 사람이다.

"사려 깊은 바다보다는 자기만 알고 잘난 체 하는 바다가 더 멋있잖아."

종종 이런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인데, 유. 나 소원이 있어."

"이상한 소리 하면 안 들어줄 거야."

3

"망할, 얼어 죽겠네. 이 날씨에 여행은 무슨 여행이야!"

"와, 바람 너무 시원하고 좋다. 서점 문 닫고 오길 잘했어."

"안 그래도 책도 안 팔리는데 이렇게 놀러 나올 생각이 들어? 난 너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한 거지 쫄쫄 굶겠다는 이야기는 안 했어!"

"돈이 벌고 싶었으면 서점 말고 다른 걸 했어야지. 로망을 좇는 이여, 빈곤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약을 올리려는 속셈인지 양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로 기묘한 말을 하는 시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기차를 타고 먼 동네까지 오게 된 것에는 시호의 "소원"이 한 몫 했다. 

-겨울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

시호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일 년 중에 태풍이 불어닥치는 시기를 제외하면 파도가 제일 묵직하게 몰아치는 것이 바로 겨울이라고 한다. 그것도 맑은 날에는 위력이 반감되고 늦은 밤 시간,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순간에 육지로 밀려오는 파도가 진짜라고.

시호가 원하는 것은 그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었다. 발목까지만 담그는 것이 아니라 전신으로 파도를 끌어안아 휩쓸리는 것. 위험하다. 게다가 이후에 딸려올 추위와 번거로움까지 견뎌야 하는 미련한 소원이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특이한 소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그쳤겠지만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을 보면 말려야 할 만큼.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지. 

왜냐고 물어봐도 대답할만한 이유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유, 저녁 먹고 들어갈까?"

"으응? 숙소에?"

시호가 발로 모랫바닥을 구르며 눈을 부라린다. 어물쩍 넘어가려는 나를 전혀 봐주지 않는다. 

"아니! 안 그래도 공복인데 찬 바다에 막무가내로 들어가면 분명히 저체온증 걸릴걸?"

"한겨울에 물에 들어가겠다는 소리를 하는 녀석치고는 멀쩡한 소리를 하는구나."

내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건지 시호는 감자탕, 감자탕 노래를 부르며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한숨을 쉬니 입에서 새하얀 김이 흘러나온다. 새삼스럽지만 벌써 겨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코끝이 찡해지는 계절이다. 사람들이 묵묵하게 추위를 견디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철로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무섭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겨울은 그다지 싫지 않지만, 굳이 어디론가 여행을 다닐 마음은 지금까지는 들지 않았다. 당연히 요동치는 파도를 보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경계선 너머에서 일렁이는 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나도 시호에게 옮아버린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 녀석이 매일같이 바다 예찬론을 펼쳐대니 나도 모르게 바다에 질려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 가자."

시호가 옷자락을 잡아끌며 나를 불렀다.

4

과연 이 시기의 바다는 시호가 말한 대로 탐욕스러웠다. 

"기대했던 대로야?"

시호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혀를 날름거리는 파도가 거리를 좁히자 시호가 한발 물러나며 웃는다. 예상치 못한 파도에 웃으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표정과는 다르다. 그들은 멀어지고자 물러난 것이고, 시호는 가까워지기 위해 잠시 여유를 두는 것이다.

"응. 너무 좋아."

팔에는 두툼한 담요를 걸치고 한 손에는 핫팩이 잔뜩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매달려있다.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나는 물살을, 시호를 마주한다. 방금까지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던 시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멈췄다.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기 전의 얼굴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턱을 슬쩍 들어 시호에게 집중했다.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둘만의 신호였다.

"유."

"응."

"고마워. 같이 놀러와줘서."

"그래."

"밥도 사주고."

"...그건 절반 송금하라고 이따 톡 보낼거니까."

"내 말이라면 전부 들어주고."

그 말에는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웠다.

다소 위험한 소원임에도 함께 하기로 했던 이유를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던 것처럼. 시호의 말이라면 늘 한풀 꺾이고 마는 이유를 곧바로 떠올리기 어려웠다.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늘 시호에게 끌려다니고 만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시호의 뒤를 따라가는 이유를 당장은 시호에게 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아니, 솔직해지자면 나는 이미 이유를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말로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알면 앞으로 잘해."

시호의 눈가가 잠시 떨렸다가, 이내 그친다. 시호가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대화를 단숨에 끊어버린 것은 멀리서 날카롭게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였다.

시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로 뛰어든다.

그 순간 깨닫는다. 나는 이 순간이 낯설지 않았다

서점의 벽은 칙칙한 회색이거나, 어두침침한 남청색이거나, 구름 낀 하늘과 구분이 되지 않는 지저분한 색이다. 시호가 촬영한 사진은 언제나 그런 것들뿐이었다. 시호가 좋아하는 난폭한 바다는 맑은 날에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벽 앞에서 사진의 배치를 바꾸고 각도를 바꾸는 시호는 늘 자신이 보았던 난폭한 바다의 이야기를 했다. 사진이 늘어선 벽 앞에서 볼을 붉히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을 늘어놓는 시호는, 이미 회색 바다에 휩쓸린 듯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끊임없이 상상하곤 했다. 벽에 걸린 사진에서 어두운 바닷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이미지를, 시호가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에 마음껏 휩쓸리는 장면을, 뺨까지 튀는 하얀 물거품과 몸이 하나 되는 광경을, 아끼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에 둘러싸여 높은 목소리로 웃는 모습을.

시호가 바다를 기대했던 것처럼 나는 시호를 기대했다.

바다에 몸을 던진 시호는 꼭 그대로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는 형광 조끼를 입은 해양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쫓아오고 있다. 새까만 물이 시호를 삼키고 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시호가 바다와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나는 경찰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해변을 나뒹굴었다.

5

파출소에서 나오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잔뜩 가지고 있던 핫팩과 담요, 따뜻한 옷이 우리가 위험한 마음을 먹고 바다로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저체온증 응급처치'나 '주변 시설 좋은 찜질방'이나 '찬 바람 쐬고 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따위를 검색한 기록까지 보여주니 창백한 얼굴로 화를 내던 경찰의 낯빛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이상한 로망 때문에 먼 동네에서 기차표까지 끊고 달려온 치기 어린 젊은이들로 인정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나는 파출소에 잡혀있는 동안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지만.

유리문을 열고 나온 시호가 콧물을 훌쩍거렸다. 얼어서 버석거리는 머리카락을 맨손으로 쓸어넘기며 갈아입은 깨끗한 옷의 소매로 코를 슥 문질렀다.

"다행이다. 경찰한테까지 붙잡힐 줄은 몰랐어."

모르기는. 호루라기 불면서 달려오는 것도 다 봐놓고 뛰어들었으면서. 시호의 어깨에 마른 수건을 걸쳐주면서 튀어나오려던 말을 애써 삼켰다. 원래라면 물에서 시호를 건진 뒤에 목욕탕이든, 찜질방이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글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파출소에서 뜨거운 난로와 유자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치고받고 싸우느라 열이 오른 나야 괜찮지만 시호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소원성취는 했지?"

"응."

"그럼 목욕하러 갈까?"

"숙소로 가자."

"으응...?"

의외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시호는 진심이었다. 그는 물에 뛰어들기 직전의 얼굴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남은 얼굴.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의 대화는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샤워 정도로 괜찮아? 안 춥겠어?"

"괜찮아. 그보다..."

시호는, 바다는 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유한테 하고 싶은 말. 아직 안 끝났어."

코끝이 시큰해지는 계절이라 그런 것일까. 괜히 콧잔등을 긁으며 뜸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쪽도 제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슬쩍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래. 나도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6

"겨울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

호선을 그리며 가늘게 휘어진 시호의 눈을, 나는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반응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죽으면 시신 꼴이 말이 아닐 테니까 좀 참아주라."

"아니야, 아니야. 유! 그럴 생각이었으면 너한테 이야기도 안 했겠지. 파도에 휩쓸려서 행방불명 되는 게 목적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버렸을 거야."

그럼 대체 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냐는 눈빛을 지그시 보내니, 시호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유가 옆에서 옷이랑 수건 좀 들고 있어줘."

"허?"

"아아, 부탁이야. 아무리 그래도 야밤에 혼자서 겨울 바다에 뛰어들었다간 정말로 얼어 죽을 거야. 이 소원을 이루려면 옆에서 날 돌봐줄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동업자가 냉골에 몸을 던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죽기 전에 건져달라는 건가? 로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영역에서 아름다움이 쏟아진다고 하지만 이것만큼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것이 여행에 함께 따라나서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유는 내가 하자고 하면 뭐든지 같이 해줄 거잖아."

나는 이미 이 녀석에게 넘어간 지 오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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