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25살의 어느날
행운의 부재
이상하다.
“···안녕하세요?”
“안녕, 타냐쌤~”
말을 걸면 평소처럼 대답해 주는데, 분명히 뭔가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아, 다들 조금씩 달라지긴 했다. 못 보던 옷을 입거나, 머리 가르마를 바꾸거나, 아예 출근인데도 보이지 않거나···. 이 경우엔 벌써 현장에 간 건가? 타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튼 이상한 점은 이것이다.
“···?”
지금쯤이면 다들 와서 아침 인사 겸 잡담을 나눌 시간인데, 타냐가 상담실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조금 멋쩍어진 타냐는 마루에게 말을 붙였다.
“마루 씨, 안녕하세요?”
“아, 네.”
“···머리 묶으셨네요?”
“네.”
···? 타냐는 잠시 멍하니 멈춰섰다. 평소 같으면 짧게 대답하고 지나쳤을 성격의 마루가, 타냐를 한참이나 바라봤던 것이다. 그에 타냐가 긴가민가하며 달라진 점을 지적하자, 만족했다는 듯 넘어가는 것은 마치,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세라 씨.”
“안녕하세요!”
“···”
“···”
“···오늘 입은 옷 예뻐요.”
“고마워요~”
원피스는 어디 갔는지, 평소와 다른 스타일로 출근한 세라도 마찬가지.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안녕하세요?”
“안녕, 타냐쌤~”
“그, 가방···.”
“어제 새로 샀어요.”
결국 타냐는 모든 사원이, 인사를 받고도 타냐의 칭찬을 받고 나서야 만족했다는 듯이 물러나는 것을 영 형용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사실 전날부터 이상하긴 했다. 갑자기 좋아하는 거니 취미니 뭐니를 묻고 가는가 싶더니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오전 내내 타냐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기까지. 이럴 거면 대체 왜 그런 걸 물어본 거지? 타냐는 혼란스러웠다.
“점심 뭐 먹을까요?”
“새로운 곳 뚫기 귀찮은데, 가던 곳 갈까?”
점심에도 이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타냐는 저들끼리는 얘기하면서도 타냐는 부르지 않는 이 상황이 어색했다. 나도 같이··· 가도 되는 걸까? 영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
맙소사, 이젠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해버렸다!
타냐는 원래 혼밥 장인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닦아온 실력이다.
원래대로라면 어쩔 수 없지, 포기하며 대충 때우고 말았을 것이다. 근데 앞으로도 계속 이러면 어쩌나? 하는 사소한 고민을 하며. 그마저도 도시락을 싸고 다닐 기회라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어, 저도 같이 가는 건가요?”
“타냐쌤? 오늘은 좀···.”
그런데 언제 이렇게 됐지? 당황스러움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하루 내내 오랜 시간을 같이해서? 좋은 사람들이어서? 히어로니까? 상담했던 내담자들이라서? 아니, 이건 더더욱 안 돼. 대체 이유가 뭐지? 타냐는 차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싫어진 거라 넘기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은 익숙했다. 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고, 타냐를 싫어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게 도리어 타냐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어쨌든, 그래서 수많은 친구가 오고, 다시 떠나가고, 이제는 완전히 연이 끊겼지만- 아쉬울 것이 없었다.
‘야, 너네도 얘랑 천년만년 있을 것 같지? 버리는 거 순식간이야~’
‘니가 한 짓을 생각해, 미친놈아!’
‘맞아! 너 때문에 타냐가 얼마나 힘들어했는데!’
타냐에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연락처는 말끔했다. 다들 타냐에게 질려서 떠나간 것이다. 그래, 타냐는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는 인간이라 질리기 쉬웠다. 그래서 깊게 사귀지 않고 두루두루 친한 관계, 그게 타냐에게는 제일 편했다. ‘반의 착한 친구1’ 정도의 위치가. 왜냐하면··· 타냐 역시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래, 쓸데없는 기대를 해서 그들이 등을 돌릴 때 상처받는 것보단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낫다. 고작 그 작은 상처 하나를 돌려받으려 편애하느니,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낫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꼭···
-그들이 떠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서.
특기뿐만 아니라, 타냐가 상담사로서 지켜야 할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첫째, 내담자와 상담실 밖에서 깊은 관계를 갖지 않을 것.
둘째, 상담사는 재판관이 아님을 명심할 것.
셋째, 언제든 거부 받을 수 있으니 기대하지 않을 것.
이때부터 타냐는 모두에게 거리를 뒀고, 습관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 이 모든 것은 부족한 타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상담을 위해서다.
* * *
“음-”
여긴 별로네. 다시 가지 말아야겠다. 결국 타냐는 혼자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로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타냐는 안절부절 휴게실과 상담실을 오가다가, 겨우 한 번 레인에게 말을 걸었다.
“레인 씨, 지금 읽고 있는 거···.”
“아, 타냐 쌤이 읽는 거야. 나도 좀 읽어보려고 하나 사봤지~”
화악, 스스로 자각도 하지 못한 채 타냐의 얼굴이 밝아졌다. 모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대화였다!
-어디까지 읽으셨어요? 어떤 캐릭터가 좋아요? 아, 그 부분도 진짜 좋았는데. 전 굿즈도 받았어요. 요즘은 SNS로 공동 구매도 하더라구요···.
레인이 표정이 살짝 질려가자, 타냐는 다시 눈치를 보았다.
“아냐 아냐, 신기해서 그래. 더 말해주라!”
“아, 그렇다면-”
“···그래서 듣느라 죽는 줄 알았어.”
“타냐쌤 은근히 오타쿠적인 면이 있구나···.”
“아니, 그동안 어떻게 숨겼대?”
“어쩐지 취미 얘기는 하나도 안 하더라. 일코 하느라 바빴나 봐.”
“일코가 뭔데?”
일반인 코스프레. 아.
타냐가 모르는 사이에, 여사원들은 따로 휴게실에 모여 각자 타냐가 오늘 보였던 모습을 공유하며 희희낙락 떠들어대고 있었다.
“타냐쌤이 말 걸려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본인은 쿨하게 지나간다고 생각했겠지만, 눈에서 미련이 뚝뚝 떨어졌지?”
"안쓰러운데 귀여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고의로 연출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똑똑-
“타냐쌤, 바빠요?”
“세라 씨? 아뇨, 괜찮은데-”
타냐는 뜻밖의 방문에 바로 일어나 상담실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인형을 부리는 것이 특기인 히어로, 세라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조금 걱정이 되면서도, 오늘 처음으로 저를 먼저 찾아주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런 자신이 낯설도록.
“무슨 일이에요?”
“케이크 먹자구요! 레인 씨가 맛있는 걸 사 와서 다 같이 휴게실에서 먹기로 했거든요~”
“저도 가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죠!”
그 대답이 타냐가 그들에게 있어서 아직 친구라고 말하는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런 걸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 이 사람들과 심적으로 멀어지게 되면, 어쩐지 아주 많이 슬플 것 같았다.
“근데 타냐쌤,”
“네?”
“타냐쌤은 왜 먼저 연락 안 해요?”
그때, 조용한 공기를 깨고 세라가 타냐에게 질문했다. 연락. 전화나 문자, 메신저. 연락의 종류를 떠올리던 타냐는 적당한 대답을 골랐다.
“아? 아. 제가 원래 핸드폰으로 오는 연락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메신저를 잘 안 쓰고 오히려 다른 SNS를 쓰는 편인데, 그건 다른 분들이 안 하시니까···.”
안 좋아한다기보단 무서워하는 것에 가깝지. 특히 그 신호음을 무서워한다. 타냐는 뒷말을 삼키며 애매하게 웃었다.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이라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다.
“에이, 그런 거 말고요. 단톡방에서도 영 반응이 없고, 저희한테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여서···.”
“아.”
타냐는 그제야 오늘의 작은 헤프닝의 원인과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스푼 히어로들의 혼란을 헤아렸다.
관심이 없거나, 연락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냐의 관찰력은 좋은 편이고, 늘 관심을 두는 편이라 할 수 있겠다. 연락 역시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타냐가 유난히 무심해 보이는 이유는···.
“그, 제가 의식해서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표현을 잘 못해서요···.”
그래, 표현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타냐는 관심을 표하기보단 표현 받는 것에 익숙했고, 의사소통은 늘 일방향이었다. 특별한 위치로 늘 관심의 대상에 섰던 타냐는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일방적인 칭찬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아온 것을···. 그것을 한때는 무서워했단 걸,
말하기는 좀 그렇지
“네? 상담할 땐 그렇게 잘하면서.”
“그건 좀 다른 얘기죠. 음, 그건 내담자와의 관계니까 좀 더 신경 쓴다면 여러분과 얘기할 땐 좀 더···”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게 나으니까. 타냐는 무심코 뱉으려던 뒷말을 멈췄다. 굳이 더 생각하지 않아도 이 말이 상처가 될 거란 것을, 타냐는 잘 알았다.
···필요 이상의, 죄책감이 들었다.
“아, 다 왔다. 잠시만요?”
다행히도, 도착한 모양이라 억지로 말을 지어낼 필요는 없었다. 조금 아쉬워하던 세라가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타냐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해, 타냐쌤~”
“오늘 고생했어···.”
펑, 생일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케이크가 앞으로 다가왔다. 굳어버린 타냐는 눈을 껌뻑거리기만 할 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세라는 넉살 좋게 타냐를 앞으로 밀었다.
“자자, 안에 들어가서 얼른 케이크 먹자구요?”
타냐는 그대로 떠밀려 들어갔다. 휴게실은 활용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런저런 음식 대신 간단한 조각 케이크와 커피, 장식은 선물상자 몇몇에만 겨우 달려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었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바빴고, 좀 커서는 생일 파티를 챙기는 게 멋쩍었고, 더 커서는 선물을 주고받을 사이는 무슨 부모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전부였다.
“이 나이 먹고 이런 생일 파티를···."”
“뭐야, 타냐쌤. 무슨 오십 살 먹은 노인도 아니고~”
“어르신도 예순 잔치는 한다구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일단 먹어요! 저 지금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단 말이에요!!”
어느샌가 타냐는 소파 한가운데 앉아 빈 접시 위에 조각 케이크를 올리고 있었다. 생일 당사자니 먹으라며 얹어준 오렌지 조각이 귀여웠다.
“자, 타냐쌤을 위하여~”
“위하여~!!”
술 대신 커피잔을 부딪치며 여사원들은 깔깔 웃었다. 타냐는 왠지 속으로부터 울컥 올라오는 기분을 다스릴 수 없었다. 그래서 퍼뜩 고개를 위로 올리자마자 타냐를 내려다보고 있던 의료반의 사원인 마유와 눈이 마주쳤다.
“타냐쌤 울어?”
“뭐, 울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위를 본···.”
“운다! 우리 타냐쌤 눈물 흘리는 거 다 봤대요!!”
타냐는 결국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억지로 감추려고 웃어봤지만, 눈꼬리에 맺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바람에 도리어 여사원들이 웃게 만들었다.
누군가 걱정하며 휴지를 내밀긴 했지만 웃으면서 반쯤은 눈을 감느라, 또 반쯤은 눈물에 묻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결국 타냐는 코를 한 번 흥 풀고 나서야 제대로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아, 목표 달성했다. 그치?”
“그게 설마 절 울리는 건 아니죠?”
“에이, 설마요.”
큼, 타냐는 짓궂게 웃는 여사원들에게 둘러싸여 다시 코를 먹었다.
-아, 이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멀어진다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아파한다면 나 역시 너무나 슬플 것 같았다. 충격적인 편애였다. 이런 사감을 가지고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데, 이제와서 이성적이기엔 이미 그들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건 ‘공평’하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게다가 상담자는 내담자와 너무 가까운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 언제나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나무와 같은 편안한 장소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내가 그들에게서 마음의 쉴 곳을 찾게 된다면···.
이들이 내 감정의 원인이 된다면,
상담사, 실격이다.
-아모르를 찾을 이유가 없었구나. 이미 답이 있었던 것이다. 타냐는 이제 와서 깨닫기에는 너무 늦은 답을 떠올리고는, 울면서 웃었다.
“타냐쌤은 훌쩍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아.”
“무슨 소리예요?”
“그치, 아무래도?”
타냐가 볼 일이 있다며 함께하는 디저트 시간을 거절한 그 시간, 스푼의 여사원들은 이 자리에 없는 당사자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욕은 아니고, 푸념이었다. 타냐가 모든 사람과 미묘하게 거리를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타냐쌤이랑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 있어?”
“어, 내가 문자 보내면 답해주시던데?”
“타냐쌤이 먼저 보내는 거 말이야.”
“어···.”
“개인적으로는 무슨, 단톡방에서도 조용하신데 뭘.”
여사원들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단 한 명도? 아, 저 한 번 있어요!
“상담실에 지갑 두고 갔다고···.”
“그게 아니지!!”
“어쨌든 개인적으로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다는 거네.”
“근데 회사 사람들끼리는 그러는 게 보통 아니야?”
다른 회사에서 이직해온 사원이 말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회사 내에서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주말에는 감감무소식이었다는 내용이 주였다.
“아니아니, 뭔가···. 평소에도 말 자체를 안 거는 느낌?”
“항상 누구랑 얘기하고는 있던데?”
“그거 80퍼센트는 상대가 먼저 말 걸었거나 끌고 온 거.”
“아.”
으음~··· 여섯 명 정도 모인 자리에 고민하는 소리가 퍼졌다. 결론은 ‘없다’. 타냐는 늘 누구에게 끌려가거나 휘말리는 일은 있어도 먼저 말을 걸거나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서장실도 자주 가는데, 말 한 번 안 하고 나올 때도 있었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야, 나 이런 거에 민감하다구. 로나가 중얼거렸다.
“그런가? 그냥 원래 그런 성격 아냐?”
“근데 우리는 타냐가 좋아하는 게 뭔지, 취미가 뭔지도 모르고···.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잖아.”
사실은 그럴 맘도 없는데 우리가 마음대로 끌고 다니는 거 아냐? 우리한테 별 관심도 없어 보이고- 레인이 자신 없게 중얼거렸다.
“좋아, 확인해보자!”
그때 의료반의 마루가 탕, 테이블을 치며 일어났다. 무기력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주 의욕적인 태도였다.
“어떻게?”
“당연히 방법이 있지~”
일단 생일이 있으니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자. 그거랑 이거랑 관련 있어? 아니 서프라이즈라니까,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하는 거지. 대신 타냐쌤 관심을 끌어서 일부러 먼저 말 걸게 만들고-
-그것이 ~타냐쌤의 마음을 확인하자! 대작전~이 실행된 계기였다.
-그는 생각보다 목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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