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그들의 행복한 결말 (上)
행복만 남기를
타냐가 처음 다나에게 계획을 말했을 당시의 일이었다.
“간부?”
“네.”
“스푼이 만들어지는 데 기여하신 대선배님들- 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지. 딱히 히어로 출신이 아닌 위인도 있으니까.”
그냥 이름 있는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야.
다나가 시니컬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타냐는 태연하게 웃으며, 폭탄 같은 말을 이어 내뱉었다.
“그럼 저도 간부가 될 수 있을까요?”
“뭐?”
“제가 봤을 때는 대중에게 알려진 이름, 재력, 정치적인 영향력, 그리고 개인의 무력… 정도만 있으면 되는 걸로 보여서요.”
“틀린 말은 아니, 그래서 네가 간부가 되겠다고?”
타냐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표를 위해서 요 몇 달간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다른 것보다도 여러 단체를 후원하며 중심을 지키고, 틈틈이 이름을 알리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나마 돈이 충분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앞으로 동태를 지켜봐야 할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스푼 사원들을 위해서 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히어로, 하면 제가 떠오를 정도로 언론에서 자주 나오고 있잖아요.”
“재력은. 고작 스푼에서 받은 월급으로 될 일이 아니다. 스푼 히어로들이 깨부수는 걸 생각하면 훨씬 많은 예산이 필요-”
“음…. D 씨 자제분이 제 내담자였던 것 기억하시죠? 마지막 상담에서 제게 회사 지분을 상당히 많이 주셨어요. 제게 가족 상담을 받았던 L 사 사장님은 아예 유언으로 제게 상당한 자본금을 주셨었고… 제 내담자분은 저와 상담을 시작한 후로 착실히 자수성가를 하셨더라구요. S사라고-”
“너…. 대체 언제….”
“이건 꽤 예전 일이에요. 스푼에 입사한 지 한 1년? 좀 넘었을 시기네요. L 사는 최근.”
…대체 왜 스푼에서 일한 거냐? 스푼이 좋으니까요…?
이제 다나는 힘숨찐을 보는 듯한 어이없는 얼굴로 타냐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쓱해진 타냐는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나의 눈치를 보았다. 간부가 되고 싶어 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세였다.
“그리고 정계의 V 의원님 자제를 제가 맡았었는데, 덕분에 웬만한 요구는 다 들어주고 계셔서 제 전 내담자였던 분을 의원으로 후원해드리고 있어요. 이번에 당선 되셨더라구요. 그리고….”
“너, 뭐 하는 애냐?”
“음, 스푼을 사랑하는 사원?”
“-무력은. 알다시피 간부들은 직속 부하를 거느리고 있고,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넌 아니잖아.”
“그건 작업 중이에요. 간부이신 원강 님과 라몬 님께서 직속 부하들을 굉장히 험하게 다루시더라구요- 그분들은 이제 저한테 의지하는 중이죠. 저를 보호하겠다고 나서주시는 다른 지원자분들도 많구요.”
“하….”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아, 이걸로 되는 걸까? 타냐는 희망을 품고 이어 말했다.
“제게 유일하게 모자란 건 경력뿐인데…. 그건 차차 쌓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일단 간부가 아니어도 이사 자리에 앉으면 나름 비슷한 위치인 것 같은데. 준 간부, 어떨까요?”
“…차고 넘치지.”
K.O. 선언이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나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스푼을 위한 간부가 되어 드릴게요.”
그러니 후원부터 할까요?
“존속이 결정됐다.”
“새 스폰서분들이 도와주셨거든요. 그리고 그중 한 분은-”
타냐 양! 간부님들의 의견까지 대통합해주셨죠!
“와아아!”
“멋있다!!”
“언제 그렇게 돈 벌었대? 나도 비결 좀!”
“대주주가 되면 되더라구요.”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지….
나가는 조금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실직 위험에서 벗어나서인지, 스푼의 사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나가 역시 공무원 철밥통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함께 박수를 치긴 했다. 하지만 설마 타냐 선배가 진짜로 간부가 되었을 줄이야. 여전히 따뜻한 난색 계열의 치마와 니트를 입고 흰 케이프를 걸친 채 순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영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타냐 님, 커피 사 왔어요!”
“고마워라. 같이 마실래요?”
“고, 고마워….”
붙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좀 실감이 난다.
하나같이 하얀 케이프며 코트를 걸치고 있는 그들은 간부가 된 타냐의 직속 부하들이었다. 심지어 쪽수도 많아서, 무리로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전엔 영정 소속의 히어로였던 언럭키와 윤 역시 타냐와 같은 복장으로 타냐 곁에 앉아 있었다. 그 많은 사람이 스푼 소속이 아니라 타냐로부터 봉급을 받는 직속 부하라고 생각하면, 새삼스럽게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도,
간부가 된 타냐는 여전히 스푼과 함께 일하는 히어로였다. 게다가 스푼 옆에 타냐의 사옥을 세웠는데, 스푼 사원들은 밥 먹듯-실제로 회사 밥이 맛있다며 자주 먹었다- 건물을 드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담이 필요한 사원, 그냥 자고 싶은 사원, 협조가 필요한 사원… 각종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도움을 받는 건물이기도 했다.
“나가 씨~ 해당 지역에서 인력 요청이 들어왔어요!”
“아, 그쪽은….”
“짜잔. 히어로 아이돌, 루리입니다!”
“아, 네….”
게다가 타냐의 지령으로, 간부 직속 부하들은 히어로들을 도와 일하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설 업체에서 공무원을 도와주고 있달까. 그래서 사옥에 상주하고 있는 상담 치료 관련 직업 종사자들을 포함한 타냐의 직속 부하들은 언론에 스푼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정작 정확한 명칭은 히어로 타냐가 설립한 사설 히어로 협력 단체, ‘버터컵’이지만. 아, 우습지만 스푼은 ‘롤링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이프가 잡히자마자 스푼이 해체되면 나이프와 관련 있다고 간부진이 윗선에 덜미를 잡히니까…. 기관명은 바뀌게 될 예정이에요.’
‘뭘로 바뀌나요?’
‘롤링핀.’
‘…’
‘뭔 이름이 주방을 떠나질 못하네….’
“나가 군, 웬일이에요?”
“아, 저 휴식이 필요해서….”
“그럼, 상담 시간을 좀 가질까요? -여보세요, 메로 씨. 나가 군 대신 출동해주시겠어요? C시 일인데-”
[네, 타냐 님.]
어쨌든 타냐는 스푼에서 해왔던 일과 마찬가지로, 히어로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다. 오히려 요즘은 심리 상담사들을 위한 강연도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뭐, 그래도 나가는 그 혜택을 보는 입장이니 외면하고 있는 의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어떤가요?”
“좀… 매너리즘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어서 찾아왔어요.”
“네? 나가 씨가요?”
“그냥, 일도 재미없고, 좋은 일도 없고, 그렇다고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그저 그래요.”
“오….”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타냐의 모습만은 그대로이다. 하얀 케이프가 어깨를 따스히 감싸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동그란 안경, 따뜻한 색감의 치마, 다 헐은 어그부츠….
“저도 그랬어요.”
“진짜요?”
“막, 만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너무나 커다란 기쁨이나 다이나믹한 감정 변화, 그리고 재미있고 보람찬 생활을 동경했죠.”
“지금은, 그렇지 않으신….”
“적어도 보람은 있어요. 하지만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죠. 그냥 늘 잔잔해요.”
아, 타냐는 이제 좀 더 표정이 다양해졌다. 의문스러운 웃음, 해맑은 웃음, 멋쩍은 웃음 정도가 전부였던 얼굴은 제법 화가 나거나 거만한 표정도 해 보이고는 했다. 물론 히어로들 앞에서는 언제나 다정한 얼굴이었지만.
“그건, 우리가 평범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또요?”
“그런 다이나믹한 감정변화를 느끼기 위해서는 그만큼 길고, 큰 사건이 필요하거든요. 아니면 처음부터 격한 열정을 갖고 있거나….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많아요.”
“그럼… 다들 어떻게 사는 거죠?”
“평범할지라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
아리송한 말이었다. 나가는 흔한 공익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말에 순식간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냐는 예상한 반응이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고 있었다.
“이런 의미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
“이유가 필요 없는 문제라니까요. 다만,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겠죠.”
“…어떻게요?”
간단해요. 취미활동, 친구 관계, 몰두할 수 있는 일…. 재미를 주는 소소한 자극들을 찾아 나서는 거죠.
타냐는 가끔, 이렇게 상담을 하며 아주 옳은 말을 할 때가 있었다. 너무 옳아서, 공익 광고에 나올 법한 얘기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아 전혀 실현 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나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불만스럽게 웅얼거렸다. 귀여운 반항 수준의 중얼거림이었다.
“그걸 찾았으면 이런 고민을 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제가 그걸 도와줄게요.”
“네?”
“자, 숙제예요. 이 만화책을 30페이지 이상 읽고 오세요.”
“네, 네?”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할 수 있는 분량이니까, 부담은 가질 필요 없어요. 다 읽으면 또 찾아와야 해요, 알았죠?”
“네에?!”
그렇게 나가는 손에 만화책 한 권을 든 채, 상담실에서 쫓겨났다. 빨리 돌아오게 될 거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니, 일에 몰두하라길래 더 열심히 일하라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난데없이 만화책을 들려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요즘 꽤 인기 있는, 서점에서 종종 보이던 제목이었다. 나가는 툴툴거리며 책을 펼쳤다.
…그리고 1시간 만에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나가는 다시 머리를 긁적이며 상담실로 되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윤입니다. 언럭키 님이 출동하실 때면 으레 곁에 붙어있곤 하는 갈색 단발머리, 그 사람이 맞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리더 곁에서 보좌를 해왔고, 그것은 소속을 옮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리더가 아닌 언럭키 님은 버터컵 제2팀의 팀장이며, 저는 부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사설 히어로 협력 단체 ‘버터컵’이 무슨 단체일까요? 네, 그것을 설명해 드리기 위해서 제가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버터컵은 나이프 일당을 잡아들인 직후 그 공로와 배경을 인정받아 간부가 되신 타냐 님이 만든 단체입니다. 롤링핀과 같은 공공 기관이라기보다는 비영리 단체에 가깝습니다. 그 밑으로 타냐 님을 따르고 있는 직속 부하와, 타니아나 정신의학과 재단을 통해 지원받은 인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죠.
“다, 다녀, 오자….”
“네, 팀장님.”
그래서 버터컵은 총 4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기준은 위험도와 특기의 특이성, 그리고 개인의 의사와 업무의 차이입니다. 저와 언럭키 님이 속해 있는 제2팀은 특기가 거의 없는 수준인 사람이 속하고 있으며, 위험도가 거의 없는 업무에 차출됩니다. 주로….
“어린이 여러분~ 이쪽이에요!”
“아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노인장, 계세요~? 이대로 들어갑니다?”
노약자의 복지와 거리 질서 유지를 위한 업무죠. 언럭키님은 주로 어린이를 위한 교통지도에 종종 차출되는 인력이랍니다. 타냐 님의 특제 안정 반지를 끼고서는 인상도 좀 누그러져서, 어린아이들이 나름 좋아하는 히어로이기도 해요. 참,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어이~ 언럭키 팀장~!”
“아, 아안녕….”
“푸학, 왜 아직도 그렇게 뻣뻣해? 내가 오빠라고 불러줄까? 그럼 좀 나으려나?”
“팀장님, 좀 그만….”
“하, 하비 팀장님. 너무 짓궂은 장난은….”
그때, 이제 막 업무에서 돌아오는 길로 보이는 제4팀의 팀장이신 하비 님과 부팀장이신 데비 님이 오셨습니다. 저 두 분 역시 저희처럼 버터컵이 생긴 당시 즉시 소속을 옮긴 경우의 특기자입니다. 지난번에 한 번, 타냐 님이 납치당했을 때 활약을 하셨다고 하는데, 저희는 잘 모릅니다.
어쨌든 업무가 겹치지 않아 그렇게 얘기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하비 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저희 리더를 놀리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리더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면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봅니다. 그래도 너무 곤란하게 만들면 리더의 특기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 슬쩍 피해야,
“죄송합니다, 윤 씨. 저희 팀장님이 좀….”
“아뇨, 어쩔 수 없죠…. 하비 팀장님, 저희 이제 돌아가 봐야 하는데요,”
“아, 그래? 그럼 같이 가지 뭐! 우리도 가는 길이거든!”
…좋지 않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내가 계산, 하고 오, 올게….”
“응? 내가 아까 주문할 때 계산도 했는데?”
“?!”
“리더, 여긴 계산이 먼저라서….”
돌아오고 보니 11시, 애매하지만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결국 네 명이서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늘 장난스러운 것 같아도 나름 재미있는 대화 상대인 하비 팀장님이 주로 대화를 이끌고, 데비 부팀장님과 제가 반응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아, 버터컵 건물 근처라 그런지 저희의 주변을 지나가며 무어라 인사하는 제1팀 사원들도 있습니다. 다른 팀원은 히어로 지원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요.
아, 버터컵의 팀을 조금 더 설명할까요. 총 4개의 팀은 1개의 상담 전담팀과 3개의 히어로 지원 전담팀으로 구성됩니다. 그중에서도 제1팀은 히어로를 전문으로 상담하는 전문 인력이 포진해 있으며, 교육이 필요한 예비 상담사들의 교육도 담당한다고 해요. 당연히 타냐 님은 이 팀을 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띠리리-
“어, 잠시만…. 어, 진짜요? 넵, 그럼 지금 바로 갑니다~”
“롤링핀으로 가나요? …죄송합니다, 언럭키 팀장님. 윤 부팀장님. 저희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아냐… 괜찬, 찮으니까….”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두 분 다.”
그리고 제일 위험도가 낮은 제2팀에는 저와 리더가, 제일 위험도가 높은 제4팀에는 전투 인력인 하비 팀장님과 데비 부팀장님이 속해있는 거죠. 사실 히어로의 인력난은 늘 있는 일이다 보니 제2, 3, 4팀은 건물 내에서 거의 볼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 일이 쉬운 2팀이 한가할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앗, 찾았다!”
“루리 씨?”
“팀장님, 업무 내려왔어요! 지금 저랑 바로 가봐야 한다구요? 정말, 전화도 안 받으시고….”
“앗, 아, 미안….”
“뭐야, 그럼 우리 다 일어나야겠네. 다들 고생하자고~”
…사실 제일 사소하고도 많은 일에 자주 불려 나가는 것이 제2팀입니다. 저와 리더는 멀어져가는 두 분께 인사를 하고 나서야 루리 씨와 함께 걸음을 옮겼습니다.
“혼혈 학생에 대한 왕따, 학교 폭력이래요! 얼른 가서 혼내주고 와요!”
그러고 보니 루리 씨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아이돌과 버터컵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니 힘들 법도 한데, 잘못한 일이 있다나. 그런 이유로 버터컵 일로는 돈도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런데…. 우리가 끼어, 도, 개, 괜찮을까…?”
“끼어들어야 하니까 가는 거죠!”
“맞아요, 리더. 평소에 싸움 말리던 것처럼 말리면 될 거예요.”
“맞아요. 도를 넘으면 머리 위로 짱돌을 확!”
“앗, 루리 씨 그건 좀….”
…가끔은 그 의욕이 과할 때도 있지만요.
“-이, 이상입니, 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럭키 씨.”
오늘은 금요일. 그동안 제2팀에서 스푼을 지원해서 해왔던 일을 수합해 보고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저와 리더는 이전 스푼의 서장, 그리고 현재는 롤링핀의 서장인 다나 님 앞에 서 있습니다. 이런 날마다, 전 묘한 기분이 들고는 합니다.
보고를 받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된 것. 굳이 부담스러운 ‘님’을 붙여가며 리더를 부르던 스푼 서장님의 호칭이 변한 것. 리더의 존댓말….
아마 리더가 특기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으며, 명목상은 더 이상 간부의 직속 부하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버터컵’이라는 비영리 단체의 직원일 뿐이니까.
롤링핀과 버터컵의 관계는 조금 독특하지만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히어로를 위해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같은 업무를 하고, 또 함께하기도 하다 보니 같이 점심을 먹거나 수다를 떠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시민들 역시 버터컵을 스푼 소속의 부서 중 하나로 생각하기 일쑤. 그런 걸 알면서도 타냐 님은…
‘딱 그 정도가 좋지 않을까요? 굳이 구분되면, 두 개의 히어로 단체처럼 보여서 괜히 비교만 될걸요.’
…그랬었죠. 생각보다도 더 롤링핀을 위하고 있어서 새삼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버터컵 측의 불만은 없냐고요?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타냐 님이 도와준 전적이 있는 지인과 단체 쪽에서 보내준 인력, 타냐 님이 후원한 재단 측에서 선별한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히어로 내지는 타냐 님을 존경하거나, 팬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영리 단체의 탈을 쓴 타냐 님의 직속 부하들인 입장이죠. 애초에 히어로의 이름을 원하지 않으니 불만도 없습니다.
아, 보고가 끝났습니다.
“아, 그, 타냐 님은….”
“아, 방금까지 여기 있다가 방금 상담실로 갔을 겁니다.”
리더와 저는 고맙다며 인사를 하곤 서장실을 뒤로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조용한 복도에는 몇 없는 스푼 사원들과 함께 버터컵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떠들다 저희에게 인사를 합니다.
롤링핀 버터컵 구분 없이 서로의 사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입니다. 롤링핀은 버터컵 건물의 회사식을 좋아하거든요. 병실 침대도 충분해서 쪽잠 자기에도 좋고요. 버터컵의 경우, 어차피 롤링핀에게 들어오는 업무를 받아오려면 차라리 롤링핀에 상주하는 편이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조용히 손을 흔들어 주고 리더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앗, 팀장님~”
“아, 아안녕….”
“타냐 님 뵈러 가세요? 이거 저희가 사 온 건데, 가서 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팀장님도 좀 드시고요!
…아니, 가끔은 타냐 님을 보러 상주하는 것 같다는 생각할 때가 가끔은 있습니다. 타냐 님을 찾으러 갈 때마다 상담실에는 선물이며 먹을 것들이 한가득 쌓여있으니까요. 버터컵이 타냐 님의 직속 인력이 아니라 팬덤 집단이었나, 가끔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충성도는 높으니 좋은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타냐 님은 그런 애정을 기꺼워하는 것 같으니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아, 안녕하, 세요….”
“안녕하세요, 타냐 님.”
언제나와 같은 상담실.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언제나와 같은 모습의 타냐 님이 앉아있습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해 보이는 모습, 금색 테의 안경과 투명한 붉은색의 눈동자는 늘 사람의 마음이 풀어지게 합니다. 리더는 그에 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편입니다. 아, 저는 자연스럽게 차 한 잔을 받고 항상 밖에서 리더를 기다립니다.
“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윤 씨.”
“아니요, 당연한 일인걸요.”
그리고 타냐 님은 언제나 미안하다며 쿠키를 쥐여주시곤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냐 님은 여전히 롤링핀의 히어로입니다. 실질적인 버터컵의 수장이긴 하지만, 운영진은 따로 있고 타냐 님은 최대 후원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일개 사원이 협력 단체의 후원자라니 모양새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구조입니다.
이게 다 타냐 님의 히어로 사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제 돈을 쓰면서 수장 행세나 해도 좋을 텐데 여전히 상담사 일을 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여전히 타냐 님의 상담 일정은 스푼과 버터컵의 사원, 그리고 여타 다른 의뢰자들로 꽉꽉 채워져 있고, 그 외의 일로도 찾는 사람은 끊이지 않습니다. 제약, 특기 물품 제작, 방송, 강사, 강연…. 타냐 님과의 상담이 하루의 마지막 일정인 저희와는 다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그런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는 타냐 님이 늘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헌신적으로 히어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
정작 본인이 누구보다 히어로다움을 모른다는 점.
그 무엇보다, 소박하고 바쁜 삶 속에서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이 말입니다.
“다들 안녕? 히어로 아이돌, 루리예요!”
저는 오늘 공공 히어로 기관인 롤링핀을 소개하러 나왔답니다?
화사한 셔츠에 플레어스커트, 그리고 검은 털이 달린 하얀 케이프까지. 완벽한 버터컵의 복장을 하고 선 루리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오늘 루리는 교양 방송사인 OOO에서 방영하는 교양 프로그램 속, 롤링핀의 취재를 맡은 일일 리포터였다.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히어로 아이돌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아이돌은 루리가 유일하니까!
“오늘은 제가 롤링핀의 취재를 맡았어요. 기대되시죠? 히어로 아이돌이 직접 취재하는 히어로 기관의 모습!”
더불어 롤링핀의 서장인 다나와 버터컵의 후원자인 타냐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루리는 모처럼 기합을 넣은 상태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롤링핀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결심이었다! 그에 맞게 씩씩한 모습으로, 루리는 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오늘 제가 멋지게 취재해보겠습니다! 흐흥, -역시 롤링핀의 제대로 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에서 뛰고 있는 히어로의 말을 들어봐야겠죠! 이날을 위해 미리 섭외해둔 분이 계신답니다?”
무려 롤링핀 내 최고 인기남, 비비안 씨!
루리는 와아, 박수를 치며 휴게실 한쪽 문으로 어색하게 입장하는 비비안을 맞이했다. 어린 신사처럼 정장을 입고, 단정한 생김새를 한 것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실 롤링핀의 몇 없는 정상인이기도 하고.
비비안은 사실 롤링핀의 히어로 중 인터뷰이 후보 중 하나였다. 제일 외관이 괜찮으며, 방송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을 법한 몇 안 되는 인원 중 하나였다는 소리다. 그때 회의하는 상황이 참 요지경이었지…. 얼굴만큼은 100점이었던 사사는 발음 문제로 결국 기각되었다. ···본인은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점만 말해두겠다.
“자, 비비안 씨! 카메라를 보고 자기소개를 해줄 수 있을까요?”
“롤링핀의 히어로, 비비안입니다. 늑대 영물이고, 공격조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와아, 공격조라니 너무 멋있으세요! 게다가 이런 외형이지만 나이는 저보다 훨씬 많다는 게 사실인가요?”
“…아무래도 영물이니 그렇습니다만, 나이를 말하는 건 좀.”
“에이, 안 물어봐요. 미취학 아동을 착취한다고 오해하시는 시청자분들이 있으셔서, 그 오해를 풀고자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거랍니다?”
비비안은 큰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통 어린아이라기에는 점잖아 보이는 제스쳐였다. 좋아, 이걸로 서장님이 특별히 부탁하셨던 부분은 확실히 해명했다. 사실 5년 전 당시 고작 12살이었던 혜나를 히어로로 활동하게 했던 것을 제대로 해명해야 맞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뭐, 알아서 하시겠지. 루리는 갓 고등학생이 된 혜나의 문제와 함께 옛 흑역사를 외면해 보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시청자분들이 보낸 질문이 이만큼이에요~”
“제가 아는 선에서라면 성심성의껏 답해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첫 번째 질문! 롤링핀의 히어로는 총 몇 명 정도인가요?”
“흠, 사무직을 포함해 대략… 100명? 그리고 버터컵의 인원도 상담사를 포함해 50여 명을 더하면 약 150명을 좀 넘습니다.”
“정말요?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걸요. 평소 히어로분들을 보는 건 일상적인 일이라 훨씬 많을 줄 알았어요. 한 경찰만큼?”
“사복 경찰이라 생각하는 분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훨씬 수가 적죠. 늘 인력난입니다.”
좋아, 스무스하게 첫 번째 질문이 넘어갔어. 루리는 잠시 시간을 확인했다. 인터뷰에 배정된 시간은 한 시간. 그중에 5분이 벌써 지나갔다. 이 많은 질문을 하나라도 더 하려면 좀 더 빠르게 진행할 필요가 있겠다. 루리는 질문지를 빠르게 확인하며 말을 서둘렀다.
“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 롤링핀은 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조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인원이 부족하면 조 구분 없이 업무를 수행하고는 합니다.”
“오, 그런가요? 그래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거죠?”
“인력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범죄자 추적 및 검거, 교통정리, 테러 진압, 재난 혹은 사태 현장 정리…. 아, 일반 시민의 민원 역시 처리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의뢰해주시면 됩니다.”
“롤링핀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는 기관이었네요! 평소에 사복이라 티가 나지 않았을 뿐인가요? 정말 놀라워요!”
“네, 종종 월급도둑이란 소리를 듣곤 합니다만…. 이런 사정도 알고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비비안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은 아주 작은 진동 수준이지만 뱀 혼혈인 루리에게는 분명히 들렸다. 비비안도 그를 느끼고 있는지,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ㅈ, 자,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요? 아까 롤링핀은 많은 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조가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아, 네. 제일 큰 조로는 의료실이 있는데, 전체를 한 조 취급합니다. 의료 관련 특기를 갖고 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속해 있어, 히어로의 치료와 사고 현장 피해자들의 응급처치에 투입됩니다.
공격조는 조금 수가 많은데, 3~4인 1조로 구성되어 약 10여 개 조입니다. 범죄자의 추격 및 검거, 테러 현장 진입 등과 같이 무력이 필요한 종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타지역에서 인원을 요구할 때 인력을 지원하는 출장조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수가 적죠. 3개의 조라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그리고 유일한 비행조가 있습니다. 역할은 공격조와 다를 게 없으나 세 명 다 비행이 가능한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좀 더 다양한 직무를 맡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ㄷ…”
“비비안 선배! 왜 연락 안 받아요!!”
“앗, 로나 씨? 아직 비비안 씨는 인터뷰 시간….”
“그럴 시간이 없어요! 비비안 선배, 빨리빨리!!”
“아니, 잠깐…”
…방금 순식간에 인터뷰 자리가 파투 난 것 같은데.
루리는 순식간에 휑 비어버린 휴게실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인터뷰 장면을 찍고 있던 카메라맨도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루리를 보며 연신 입을 뻐금거리고 있었다. 영상에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혼신의 노력이었다.
“하, 하하~ 역시 롤링핀의 히어로는 바쁜 하루를 보내는 것 같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자리에서 인터뷰이를 모집해볼까요? 당장 복도로 출발!”
루리는 끝장난 인터뷰 자리를 뒤로하고 일어나 복도를 걸었다. 이번에 나온 신곡에 대한 홍보를 잠깐 하는 것은 덤이었다. 할 말이 없을 때 하려던 얘기가 벌써 털릴 줄은 몰랐는데…. 그때, 의료실이 눈에 띄었다.
타냐의 상담실은 의료실에 있다.
“앗, 의료실이에요! 아까 히어로 비비안 씨가 롤링핀에서 제일 큰 조라고 말하셨죠? 한 번 가보도록 할까요?”
-그럼 이 미친 상황이 어떻게든 수습될지도 몰라! 루리는 희망을 품고 의료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OOO방송에서 나온 일일 리포터, 루리라고 합니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에?”
“방송?”
그리고 다시 불안해졌다. 영 반응이 안 좋아! 이제 보니 의료실 사원들의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다. 거기다 이제 막 치료를 끝냈는지 늘어져 있는 의료실 힐러와 히어로까지…
특히 힐러들의 모습은 걸어 다니는 시체에 가까웠다. 대체 얼마나 바빴던 걸까, 동정심이 절로 들기도 했다. -어쨌든, 여러모로 방송에 나가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뭐야, 루리 씨? 타냐쌤 여기 업…”
“루리 리포터예요! 음, 다, 다들 바쁘신 것 같네요~ 다른 분을 찾아가 볼까요? 아, 좀 이르지만, 서장실이 좋겠네요!”
다들 수고하세요!
결국 루리는 도망치듯이 의료실 문을 닫고 서장실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렇게 인터뷰하기 열악한 상황이 있을 수가! 그래도 서장인 다나에게 찾아가면 뭐라 인터뷰를 따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루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제발, 자리에 계시기를…!
그 바람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또… 또 무기를 빼앗겨?”
“안녕하세요! OOO방송의 일일 리포터, 루리입니ㄷ…”
“네에…”
“서, 서장님, 진정….”
“타냐, 이번엔 건들지 마. 이 새끼가 지금 덜 혼나서 그래-”
쾅,
“아, 하하. 서장님이 바쁘신 모양이에요. 다른 히어로분을 찾아볼까요?”
타오르는 붉은 눈으로 사사를 노려보던 다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사사, 그리고 그 옆에서 그런 다나를 말리던 타냐(왜 여기 계시지?). 누가 봐도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아마 조금만 더 오래 서장실에 있었다면 서장님의 암바 쇼를 직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싹, 끼쳐오는 소름에 루리는 괜히 팔을 쓸어내렸다.
“어, 루리 언니?”
“혜ㄴ, 아니 히어로 혜나 씨 아닌가요? OOO방송의 일일 리포터, 루리랍니다! 이렇게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인터뷰를 부탁해도 될까요?”
“-라는데?”
“아….”
“어머, 나가 씨도 있었네요! 같이 인터뷰해요, 네?”
그때, 혜나와 함께 피곤해 보이는 낯의 나가가 등장했다. 서장실에 들어가 있는 사사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서장실의 상황을 모르나? 그게 아니라면 사사를 버리고 나온 건가?
-딴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루리는 그런 기색을 감춘 채 뻔뻔하게 인터뷰를 요구했다. 업무를 보고 들어온 듯한 지금 이 타이밍이 기회였다!
“네, 뭐….”
“좋아요! 사실 아까 인터뷰 대상이었던, 비비안 씨가 일이 생겨서 중간에 나가셨군요. 나머지 질문에 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비비안 오빠 방금 나가는 거 보긴 했는데 그랬구나….”
“그럼 네 번째 질문이에요! 월급은 어느 정도 받나요? -음, 이 질문은 패스할까요?”
“아뇨,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공무원 받는 만큼 받습니다.”
“그 이상으로 초과 근무ㄹ…”
“참아, 혜나야!”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겠다. 루리는 하드한 롤링핀의 업무 강도를 떠올렸다. 늘 인력난이라 초과근무는 여느 집 개 이름이나 다름없었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의 호출까지…. 그러고 보니 롤링핀의 신입 직원이던 호야 씨가 지나친 추가 근무에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말았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방송으로 나가는 건 좀 아니지. 루리는 나가의 행동을 말리지 않으며 다시 큐시트를 넘겼다. 그래도 다음 질문부터는 가벼운 내용이라 조금 마음을 놔도 될 것 같았다.
“자자, 다음 질문이에요! 아주 재밌는 질문이네요. 롤링핀 내 최고 미인은?”
“이건 이견이 없는 질문인데?”
“그러게, 사사 선배랑 타냐 선배잖아.”
“에이,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음, 그럼 자료사진을….”
혜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몇 번 뒤적이나 싶더니, 일상에서 장난스럽게 찍은 듯한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주로 혜나와 찍은 셀카였다. 몇 장이나 있는 사사와 타냐의 사진에서는, 자라는 혜나의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이 정도면 이견이 없겠지?”
“설명을 하자, 혜나야….”
“쳇, 이 오빠는 우리 비행조에 속한 까마귀 혼혈, 사사인데 타냐 언니가 롤링핀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유구한(?) 롤링핀의 얼굴마담이었어요. 타냐 언니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지 않나? 얼마나 유명한데. 어쨌든 롤링핀의 상담사인데 TV에 진짜 자주 나와서 진짜 의미로 롤링핀의 얼굴마담. 까면 깔수록 매력이 엄청난 사람이죠. 이젠 방송으로 모두가 알고 있어서 슬프지만….”
“사사 선배는?”
“그 오빠는 좀 몰라도 돼.”
“…. 하, 하하, 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이따가 타냐 선생님을 뵈러 갈 건데 특별히 잘 찍어야겠어요. 카메라맨님, 아셨죠?”
카메라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한 것 같다. 루리는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괜찮을 거라고 인터뷰를 요청했던 과거의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 차라리 좀 좀비 같아도 의료실에서 인터뷰를 따지 그랬어! 때늦은 후회였다. 이제는 폭탄 덩어리로 보이는 혜나를 보며, 루리는 애써 웃었다. 카메라에 찍히고 있으니까.
“그럼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네요! 롤링핀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어… 수명 단축 지ㄹ….”
“혜나야!!!”
“에이, 농담이지. 우리나라 유일무이의 히어로 기관 아니겠어?”
“하아….”
“하하, 그럼 나가 씨는요?”
“저도요? 음…. 우리나라에서 특기자를 제일 많이 보유한 집단…?”
“묘하게 구체적이네….”
“···이걸로 인터뷰는 끝입니다! 두 분 다 협조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저희 OOO 방송사에서 소정의 선물을 전달해 드릴 테니 기대해주세요?”
“와”
“아, 선물도 주나요?”
“물론이죠! 그럼 저는 이만 다음 분을 찾아서 가볼게요~ 오늘도 파이팅!”
몇몇 질문을 생략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넘겼다! 루리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들어 올렸다. 해냈어-! 인터뷰 중간에 뛰쳐나간 비비안부터 좀비들의 향연이었던 의료실, 그리고 지옥의 현장이었던 서장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내용이 폭탄 폭발 일보 직전이어도) 인터뷰를 따냈으니 남은 사람은 타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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