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신 드림] 연애 상담
오리캐 드림 21.02.02 타싸 재업
“어, 성헌아! 여기, 여기!”
나는 캐럴이 들리는 술집에서 캐럴보다 큰 목소리로 외치며 손을 힘차게 흔들어 내 위치를 알렸다. 착한 후배는 머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빈 술병을 옆으로 치우고 술을 몇 병 더 시켰다. 뭐 먹을래? 모둠 소시지? 두부 김치? 여기는 모둠 소시지가 더 맛있어. 그럼 저는 그걸로 할게요.
오랜만에 조의신과 셋이 모이기로 한 자리였다. 올해는 내가 졸업하고, 너도 취업 준비를 시작하며 연락이 뜸했다. 대체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든지, 내가 솔로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같이 마시자며 둘을 꼬드기지 않았더라면 얼굴도 잊었을게 분명하다. 막 도착해 술을 즐기기 시작할 무렵에 맞추어 후배가 도착했다. 우리는 조의신을 빼놓고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천성헌과 나는 전화로는 주고받지 못하는 근황을 떠들며 새로 나온 술과 안주를 즐겼다. 조의신이 조금 늦네. 언제 온담.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는 시계를 흘끗 볼 때, 성헌이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의신이 형은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대요. 누나에게 연락했다는데 확인을 안 해서 제게 연락했다는데요.”
“그래? 진짜네. 무음으로 해뒀더니 확인을 못했네···. 아쉽다. 모처럼 보나, 했는데.”
맥 빠진 목소리로 스마트폰을 켰다.
[조의신] 오늘 급하게 과외 일정이 바뀌어서 못 갈 것 같아. 미안해.
[나] 미안하면 다음에 네가 술 사라.
나는 조의신에게 답장을 보내고 술을 들이켰다. 내가 먼저 졸업하고 예전처럼 자주 마주하지 못해 아쉬운 참이었다. 이번 술자리를 핑계로 얼굴 한 번 볼까 했더니. 하필이면 네가 급한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천성헌이 묘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마주 보았다.
“왜?”
“누나, 혹시 의신이 형을 좋아하세요?”
콜록.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술이 역류했다. 성헌이는 급하게 휴지를 뜯어다 주었다. 나는 아주 제대로 사레가 들러 기침했다. 아까까지 알딸딸했던 기분은 어디 가고 또렷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술이 확 깨네.
“뭐? 아니야. 너 어떻게 알았어? 의신이도 알아?”
나는 기침이 대충 멎자 빠르게 말을 쏟았다. 티 안 낸 것 같은데. 티 났나? 와, 미치고 팔짝 뛰겠네.
그러나 천성헌은 눈썹을 내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만 알아요. 그래? 듣던 중 다행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었다.
“···티 많이 났어?”
“전혀요.”
“그런데 너는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어쩌다 보니까···.”
“대체 어쩌다···.”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아, 이런 충격적인 소식은 술을 마시고 잊어야한다. 나는 환상적인 비율로 만 소맥을 목구멍에 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달았던 술이 썼다.
잠시 우리 사이에서는 술 따르는 소리만 났다. 아, 잠깐. 생각해보니까 분하네. 좋아하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분위기가 왜 이렇담. 술맛 떨어지잖아.
나는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의신이가 좀 다정하니. 나라고 조의신을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진짜 번개처럼 찾아온 사랑을 놓지 못하고 6, 6년··· 이젠 7년째 하고 있는 거거든. 나 진짜 조의신 옛날만큼 좋아하지 않아. 어? 진짜야. 이대로 가면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어···.”
누가 들어도 완벽한 변명이었다. 나는 얼굴을 책상이 박았다. 아, 망할. 후배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성헌이가 내 등을 도닥였다.
나 진짜 조의신 그렇게 많이 안좋아해···. 이제 짝사랑 접을 수 있다니까? 네, 네.
반쯤 어지러운 머리로 내가 얼마나 조의신을 예전보단 적게 좋아하는지, 그럼에도 단지 네가 매력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질문 한 번 잘못한 죄로 의신이와 나 사이에 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영혼 없이 맞장구치며 듣던 성헌이가 물었다.
“이랑 누나는 고백 안 하세요?”
고백? 푸흡.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백이래. 나는 깔깔 웃었다. 천성헌은 질문을 고르는 센스가 지독히도 없었다. 배가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에이, 안돼. 고백했다가 친구도 못 되면 어떡해. 걘 나 그렇게 안 봐. 내가 고백해서 우리 사이 어색해지면 난 못 견뎌.”
밝은 목소리로 손사래 쳤다.
조의신은 다정해서 모른 척해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네가 모른 척해주면 나는 헛된 희망을 품고 상처 받길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게 낫다.
나는 일부러 킬킬 웃으며 두 번째 모둠 소시지를 시켰다. 성헌이는 오묘한 얼굴로 말했다.
“형이 누나를 좋아할지도 모르잖아요.”
“아냐, 내가 걔랑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그 정도도 모를까. 조의신은 완전 나를 게임친구로 봐. 너랑 나랑 취급이 똑같다니까. 오히려 너를 더 예뻐하지. 네가 어지간히 귀여운 후배여야 말이야.”
기분이 슬슬 좋아지는 게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깔깔 웃었다. 아휴, 우리 귀여운 후배, 귀여운 성헌이.
“근데 내가 조의신 좋아하는지는 왜 궁금했어? 누나 연애 사정 궁금해서?”
“예?”
“되게 싫어한다···. 농담이었거든. 누나 삐진다.”
툴툴거리며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기름지고 짭짤했다. 여러 안주를 시켜 먹어봤지만 이 집은 소시지가 최고였다.
“아무튼 그래. 난 곧 죽어도 고백할 생각 없어. 차라리 딴 사람을 사귀었으면 사귀었지.”
성헌이 너는, 연애 안 해? 가볍게 던진 말에 후배가 고갤 저었다. 당분간은 생각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 하기야 너도 고생이 많지···. 빈 잔 두 잔에 조금 남은 술을 따랐다. 마지막 방울이 떨어지고 나서 잔을 들어 천성헌이 쥔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유리와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그럼 귀여운 후배의 앞길을 위하여, 건배!”
“건배.”
성헌이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훤칠하네. 물론 나는 조의신이 짓는 이상한 웃음이 더 좋았지만.
시간이 늦을 만큼 늦어 슬슬 술자리를 정리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데려다드릴게요. 어, 아냐. 괜찮아. 나 집이 바로 이 앞이야.
“아, 성헌아.”
나는 택시를 부르는 성헌이를 불러 세워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술에 취해 알딸딸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늘 일은 비밀. 내가 걔 좋아하는 것도 당연히 비밀! 무덤까지 가져가는 거 알지?”
나는 그대로 씩 웃으며 뒤를 돌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거리에 흘러나오는 캐럴을 흥얼거리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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