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빈칸을 채우세요

20240122

링클의 안 by 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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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다고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걸어’오더니 나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그건 당신네 인간들의 의견이죠. 사실, 저희가 보기에 당신들의 상상력은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각기 자신의 유리 상자를 갖고서 그 안에 반짝이는 것들을 넣고 이리저리 흔들어 모양을 만들어 낼 뿐이지 않습니까.”

당연하게도 나는 그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이 외계인들은 생각을 머리에 직접 때려 박는 능력을 갖춘 거겠지…

“보세요, 지금도 떠올린다는 게 고작 그런 빈약한 어휘. 당신들의 체계로 우리를 이해하려 하니까 그 정도의 발상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쪽의 생각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슬슬 다리가 저려 왔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되레 죽으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이 동해 슬쩍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인가 싶은 것이 나를 응시하는 듯하더니(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그 정도의 발상이 한계였다) 시선을 돌렸다(이것도 마찬가지).

“어쩌면 우리도 우리 나름의 유리 상자를 가졌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확실히 당신들의 상자는 우리보단 작아 보이는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아, 나왔군. 인간 특유의 ‘발화’. 되도록 말로 해 주는 쪽이 좋겠습니다. 흥미롭거든요.”

“애초에 절 여기 데려다 둔 이유는 뭐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기억에도 손을 댔나요?”

“인간.”

이들의 ‘발화’는 상당히… 역겨웠다. 머릿속에 생각을 냅다 밀어 쑤셔 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머리가 아프고… 역겹다.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우리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상’합니다. 우린 그게 필요하단 말이죠.”

나는 간신히 고개를 쳐들고 그를 응시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쩐지, 그가 웃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인간 특유의 상상일까?

“그러니까, 상상하세요. 그 모든 ‘왜’를, 당신의 상상으로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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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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