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소녀
240206
내 힘을 빌려줄게, 그러니 세상을 지켜줘.
네 젊음을 대가로, 지금의 세계를 지켜줘.
D는 나에게 3일을 주었다. 다시 찾아왔을 때는 고민해 볼게요, 따위의 어중간한 말이 아닌 정확한 대답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 아니냐면서, 이 세계를 지키는 데에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거절할 거라는 가능성은 염두에도 두지 않은 희망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래, 되새겨보자면 D의 표정이야말로 마법 소녀에게 어울렸다. 세상을 지킨다는 자부심에 가득 찬,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에 가득 찬. 한편으로는 M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표정이었고, 태도였고, 어투였으며 화법이어서.
하지만 D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나는 누구보다도 마법 소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으며, 열등감에 휩싸여 친한 친구의 좋은 일도 온전히 축하해주지 못할 때가 있을뿐더러 사람이건 상황이건 물건이건 좋지 않은 점을 항상 제일 먼저 찾아내곤 했다. 무언가 바꾸고 싶어도 원인을 몰라 현상 유지가 고작이었고 나쁜 습관은 고치려고 시도해도 작심삼일이 전부였다. 해야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남들 다 간다는 대학이나 가 보겠다고 공부는 붙잡고 있지만 성적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지금까지의 성적으로는 인서울도 어렵다는 이야기만 상담 때마다 듣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소원을 들어준다 했다면 조금 더 깊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든가, 이미 망쳐버린 성적을 올릴 수 있다든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든가. 그런 걸 조건으로 내걸었다면 마법 소녀를 할 사람은 널렸을 텐데. 단순한 동경으로는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D, 당신은 어떻게 마법 소녀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떤 환경에서 자랐길래 현실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 마법 소녀를 할 수 있었나요. 질문은 많고,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미안, 못 하겠어요.
그때 D의 표정은 어땠더라. 마냥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D는 내게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전부 안다는 듯이 고개 한두 번 끄덕였을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미소에 대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저도 한때는 마법 소녀가 되고 싶었어요.
결제창 아래에는 글에 대한 간략한 해석과 약간의 하고 싶은 말이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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