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1차 창작, 윤호시문

흑미님 커미션2, 23.07.12 작업물

장장 사흘간 지속된 장마로 형태를 잡아놓은 석고가 미처 마르지 않을까 염려되어 환기부터 할 요량에 집안의 창을 연다. 틈입한 햇살은 희멀건 빛깔의 조각상을 비추어 눈부신 백색의 광택을 집안 곳곳에 흩뿌린다. 조각가가 주로 손을 보는 암석들은 온도며 습도에 따라 쉽사리 팽창 또는 수축하지는 않지만, 암석질이 아닌 석고나 백토는 관리하기가 비교적 까다롭다. 이 나라의 풍토는 1년 내내 건기나 우기로만 이루어져 여린 흙이 단단히 굳을 여력을 미처 허락하지 않는다. 그 탓에 조각가는 형질이 쉽게 변형되는 매질보다는 한 번 공을 들인 이후로는 영원을 약속하는 암석질의 작업을 조금 더 선호했지만, 최근 수락한 의뢰는 백토를 사용한 자기를 여럿 납품해달라는 요구였으므로 조각가는 오늘도 어젯밤에 빚다 만 도자기 앞에 앉는다.

암석 속에 갇혀있는 미를 끌어내는 작업에 매료되어 조각가라는 업을 선택하였으나 실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의뢰란 빠른 속도로 필요한 물품을 찍어내는, 조각의 미학과 인내를 요하지 않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조각가는 손을 움직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손으로 익힌 기술이란 쉽게 풍화되는 암석과도 같아서 매일 다듬지 않으면 들이친 빗방울과 불어오는 칼바람에 형편없이 깎여나가고 만다. 조각가는 조심스레 물레를 돌리면서 손끝의 감각을 세심하게 끌어낸다. 조각가는 자리에 앉은 그 길로 집안에 들어찬 햇빛이 습윤한 공기를 온전히 밀어낼 때까지 한자리에 앉아 몰입한다. 자기 하나의 형태가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쯤, 부드러운 팔이 조각가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른 시간부터 작업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그가 만들어 낸 일생의 역작, 최고의 미가 조각가를 바라본다. 신의 숨을 얻은 갈라테이아를 마주 본 피그말리온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흙 묻은 손가락을 작업 천에 문질러 닦는다.

“잘 잤어? 내가 깨운 건 아니지?”

“설마요. 아주 푹 자고 일어났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깨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이르게 깬 김에 잠깐 바다에 다녀왔어요.”

바다 요정의 이름을 붙인 탓일까. 생명을 얻은 조각상은 흡사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 미를 관장하는 여신이 되었다는 설화의 현신과도 비슷한 형질을 갖고 있었다. 사람을 홀릴 듯한 고혹적인 미모와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 조각가가 사는 폴리스는 바다에 인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신의 숨을 얻은 갈라테이아에게 문제 될 것이 아니었다. 조각가는 흙 묻은 손가락이 깨끗해졌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의 역작이자 반려에게 입 맞춘다. 바닷바람의 눅눅함이 표피를 타고 옮겨붙는다.

“바다에 가서 뭘 보고 왔어?”

“바다생물들하고 이야기하다 왔죠.”

“그런 것도 가능해?”

“그냥 알아들을 수 있어요.”

신이 직접 숨을 불어넣었기 때문일까. 인간의 몸을 타고 잉태된 생명과 달리, 갈라테이아는 종종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행위를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행하고는 했다. 인간의 걸음으로 쉽게 닿을 수 없는 지역을 눈 깜짝할 사이에 방문하거나, 날카로운 암석에 베인 조각가의 손을 쓸어주거나 하는 순간마다 조각가는 자신이 빚어낸 조각상이 신의 반절을 닮았음을 실감한다. 오랜 기간 품었던 소망이 실증적 존재로 승화되었던 순간뿐만 아니라, 그의 조각상이 시시각각 선보이는 경이와 경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각가는 자신의 소망을 애틋하게 여겨 기꺼이 조각상에게 생을 허락한 미의 여신에게 흠숭 어린 경배를 보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바다까지는 어떻게 다녀왔어?”

“음, 그냥 다녀왔는데요. 걸어서.”

이따금 갈라테이아는 인간의 기준에서 되묻는 우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기색을 비쳤으나 조각가는 그마저도 기껍게 여겼다. 자신에게 허락된 기적이 신들의 권위라는 것을 재차 체감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신의 입김은 때때로 인간들에게 경외 어린 공포를 촉발한다는 것 또한 알았기에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갈라테이아에게 자신 이외의 인간에게 함부로 말을 섞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는 했다.

“다른 사람을 마주치지는 않았고?”

“마주치긴 했지만, 상대방은 절 보지 못했어요. 잠깐 안개 속에 몸을 숨겼거든요.”

“아차, 맞아.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했었지. 자주 잊어버리네.”

갈라테이아는 평범한 인간의 눈을 홀릴 정도로 매혹적인 외양을 가졌기 때문에 피그말리온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정잡배의 눈에 자신의 반려가 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갈라테이아가 지닌 권능의 일부를 체험할 때마다 괜한 걱정을 곱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안도하고는 했다.

“마저 조각할 건가요? 아니면 식사부터 할까요?”

“음……. 식사하고 나서 신전에 들를까.”

“아프로디테 신전에요?”

“응, 이번 주에도 경배를 드려야지. 너 같은 반려를 맞이하게 해주셨으니까.”

“그거 좋네요. 저도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가고 싶어요.”

갈라테이아는 흡사 자신이 조각상이 아니라 아프로디테의 육으로부터 나타난 존재처럼 답하고는 했다. 갈라테이아의 어문이 여신의 분노를 사지 않은 것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어쩌면 미의 여신 또한 갈라테이아를 수많은 딸 중 하나로 불리기를 허한 것이 아닐까.

“가는 김에 같이 식자재도 마련하러 가요. 아니면 자기에 들이는 흙을 사러 가도 좋고요.”

“괜찮겠어? 이른 새벽부터 바다에 다녀왔다며. 피곤하지는 않고?”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인데 피곤할 리가 없잖아요.”

미의 여신으로부터 파생한 생명은 자신의 눈에 드는 모든 것을 애틋하고 경이롭게 여기고는 했다. 새벽녘을 밝히는 여명의 빛깔, 식기 안에서 피어오르는 먹음직한 내음, 사람들이 모였을 때 피어나는 소요와 밤하늘을 수놓는 천체의 신성까지도. 그중에서도 갈라테이아는 자신을 빚어낸 피그말리온의 애정을 가장 사랑했다. 갈라테이아는 그의 손끝이 빚어내는 물질의 형태와 파형, 부드러운 음절이 자아내는 속삭임과 조언을. 따스한 품이 허락하는 온기와 다정을. 신이 허락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변치 않을 애정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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