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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싫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할 텐데

해리포터 2차, 논커플링 / 2020년 작

소마 by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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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 애가 싫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전쟁 속의 인간은 투박해지기 마련이다. 감상적인 태도는 전쟁이라는 단어와 함께하기에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웠다. 우리 모두는 오랜 전쟁 곁에 살았다. 나는 따지자면 그 최전방에 자원해 있었다. 전쟁의 핑계를 끌어오지 않아도 솔직한 마음을 꺼내어 보는 것은 내게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사고나 가치 같은 것을 녹여넣는 과정을 생략한 채 대강 장난치듯 줄줄 지껄이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나는 꽤 자신감 넘치는 학생이었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녀석들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되받아치곤 했다. 혹자는 그걸 능글맞다고 표현했다. 생각기에, 그건 프롱스 ― 제임스 포터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었다. 

내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만한 상대는 프롱스뿐이었고, 조금 더 넓히자면 무니와 웜테일까지 있었다. 그들에겐 굳이 심정을 꺼내어 보일 필요가 없었다. 눈만 마주쳐도 생각이 통했다. 입술만 보아도 기분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나 자신에게 다듬어진 감정을 선보이는 것에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니 지금 떠올리는 모든 생각도 서툰 단어를 빌려 절제되지 못한 채 함부로 튀어나오는 열거일 뿐이다. 

그 애가 싫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할 텐데. 

나는 그 애를 싫어한 적 없다고. 그 애를 왜 그렇게 싫어해? 라거나, 그 애의 어떤 점이 그렇게 싫어? 같은 질문에는 답할 수 없었다. 아니면 차라리 그 애에게서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쯤 있을 거 아냐, 같은 질문이라도 누가 했다면 좋았을 거다. 어쨌든 그 애와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내가 그 애를 싫어한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 기실 그 학교에서 나와 그 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테니, 그리고 그때 나의 세계는 아직 학교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그냥 모두라고 표현해도 좋다.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말투의 문제인가? 비꼬고 조롱하는 건 내 특기였다. 굳이 그 애여서가 아니다.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빈정거리듯 내뱉곤 했다. 친구를 걸핏하면 놀려댔고 교수에겐 느긋한 투로 장난을 걸었다. 말투라면 그 애에게도 문제가 있다. 무슨 말을 하든 그리 평온한 어조로 약 올리듯 대꾸해대니 (독설가로서의 재능은 우리 둘의 공통점이었다) 간혹 그 애가 발끈할 때면 본능적 장난기가 치밀며 이것 봐라, 싶은 마음이 되곤 했다. 본능적 장난기라는 멋진 표현은 맥고나걸 교수님의 것을 빌려봤다. 어찌 되었든 나는 말투를 통해 그 애를 싫어하는 티를 낸 적은 없었다. 그야 싫어하지 않으니. 

그 애가 순혈 멍청이들과 어울리는 건 못마땅하긴 했지만, 순수혈통 멍청이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그렇지 않은 쪽이 더 괴상하다면 괴상했다. 시리우스 포터가 될 것처럼 구는 내가 그 괴상한 예였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포터는 삶의 빛이었고 블랙은 삶의 그림자였다. 그 애가 블랙에 충성스럽지만 않았어도, 난 그 애를 프롱스네 집에 데려가 레귤러스 포터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애야말로 레귤러스 포터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미친 부모의 관심과 인정과 사랑이라도 갈구하는 애야말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면 오히려 꽤 있었다. 그 애의 성적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다. 어떠한 성취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프롱스가 훌륭한 추격꾼인 건 그의 재능 덕분만이 아니듯이. 성실하고 부드러운 태도라거나 차분한 상냥함은 내겐 없는 것이었다. 그 애는 굽힐 줄 알고 인내를 알았다. 간혹 그 굴복은 나를 화나게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앤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순종의 대상은 명백하고 드물었다. 

그 앤 정중하지만 성격이 나빴다. 그 앨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겠지만 난 알았다. 그 점도 꽤 좋아했다. 내가 진작 관둔 퀴디치를 아득바득 하는 게 퍽 기꺼웠다. 그리핀도르의 우승 이후 웃으며 떠들 때 스쳐 지나가며 나를 흘긋 바라보는 눈길과 녹색 슬리데린 경기복을 쥔 손을 기억했다. 땀으로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새까만 머리카락을 걷어내지도 않은 채였다. 방문 앞에 붙인 출입 금지 따위의 팻말을 보며 큰소리로 헛웃음을 친 적도 있다. 어른스러운 척해도 몇 년 늦게 태어난 티를 이런 식으로 낸다, 하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 번 그 애와 내가 늙었을 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덤블도어처럼 턱에 수염이 난 모습을 상상하며 웃다가, 자연히 생부의 얼굴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진 탓에 그만두었지만. 나는 아마 그 작자와는 다른 얼굴일 것이다. 나는 그와 다르니까. 너는? 너는 그를 닮았을까? 너는 블랙이니까? 영영 알 수 없게 된 것은 더욱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앞서 나는 말했다. 아니, 생각했다? 아. 마구잡이로 내 몸속에서 떠돌던 생각을 엮어 문장으로 되새김으로써 자신에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전쟁을 투과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사치니 뭐니 지껄였지만 정작 전쟁 속에서 누구보다 사치를 꿈꾸고 있던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상실을 동반함을 알고 있었지만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즉, 나는 언제든 그 애와 내가 함께하는 미래만을 생각했다. 각기 다른 곳에 서 있을지언정, 다른 이상을 바라볼지언정, 서로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게 될지언정. 그 애가 없는 미래는 고려한 적 없다. 그런 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뻔했다. 모두가 실종이라고 말하고 살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 포터가 내 눈치를 보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 드문 상황이 당연할 때였다. 불사조기사단의 몇몇 인물들은 내가 그를 싫어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다행이라는 단어도 우습지만. 굳이 쓴다면 아무도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나라도 입을 다물었을 거다. 다른 모든 걸 차치하고도 나는 위로의 어휘를 몰랐다. 같은 상황에서, 그 애라면 알았을 거다. 

내 언어는 짧고 직선적이고 뭉툭한 덩어리처럼 던져졌다. 그 애의 언어는 세밀하고 까다롭게 선택되어 한 꺼풀 감싼 채로 건네졌다. 아마 그 애가 나에 대해 말한다면 이렇게 무성의하게 늘어놓진 않을 거다. 그 애의 말은 언제나 머릿속을 한 바퀴 휘감은 뒤 정제되었다. 그렇게 교육받고 그렇게 자랐으니까. 본래 성향도 그런 면이 있다. 있나? 나는 또 확신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어쩌면 그 애는 내가 이 정도라도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랄지도 모른다. 아마 조금은 기뻐할 것도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다. 

우린 사이가 나빴다. 사이가 나빴나? 나빴다. 살갑지는 않았으며, 여느 형제처럼 다투고 화해하길 반복하며 평범한 우애를 나누지도 않았다. 난 그 애가 유약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 앤 내가 무모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이라 생각했을 거다. 그게 내가 그 애를 싫어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 애와 마주친 적은 없었다. 난 블랙에 가까이 가지 않았고 그 애는 블랙에 묻혀 있었다. 아마도. 그리몰드의 저택을 폐허처럼 여겼다. 거긴 별들의 무덤이었고 스러진 영광이 남은 전장이었다. 그 묘비 같은 문을 걷어차고 뛰쳐나온 순간부터 나와 그 애는 학교에서만 종종 서로를 스쳐 갈 뿐이었다. 난 그 애가 내게 짜증스럽게 몇 번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블랙을 생각하라는 둥, 돌아오라는 둥, 뭐 이런 거 저런 거. 그 앤 멀리서 단조로이 날 쳐다보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양 지나갔다. 그 애의 행동 양식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애의 행동이 날 당황스럽게 만든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 내가 알던 그 애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언젠가부터 그 앤 연회장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심장별*처럼 파랗게 일렁이던 눈이 가공된 보석의 빛을 띠었다고 생각했던 시기쯤부터였다. 그와 어울리던 멍청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딘지 유리처럼 투명해졌다고 생각했던 시기. 

*Regulus

마지막으로 그 애를 본 건 졸업 직전이었다. 확인할 것이 있어 셋은 먼저 연회장으로 보내고 불도 꺼진 빈 교실에 남아 있던 때였다. 웬만해서는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도 돌아볼 정도로 큰 소음과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네모난 빛이 쏟아졌다. 답지 않게도 조금 숨을 헐떡이며 흐트러진 교복을 입은 채 그 애는 교실로 뛰어 들어오다 말고 문가에 우뚝 멈춰 섰다. 그 애의 그림자가 교실을 가로질러 길게 뻗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애는 날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리며 말했다. 안녕. 

“안녕.”

그 애가 답했다. 호흡이 가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운동도 꾸준히 하는 녀석이 어쩌다 저렇게 급하게 뛰었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대강 짧은 대화가 오갔다. 항상 그랬듯, 뻔했다. 나는 블랙이 싫다. 너 그 멍청한 사상 지지는 그만둬라. 그리몰드로 날 다시 부를 생각은 하지 마라. 그 망할 저택에선 요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그 인간―오리온 블랙―이 쓰러졌다는 소문은 사실이냐. 멍청이들과 계속 어울릴 생각이냐. 벨라트릭스가 너에게 잘해준다고 착각하지 마라. 볼드모트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 자를 지지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그 앤 간혹 대꾸하는 것 외엔 비교적 얌전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는 거다. 괜히 머쓱해 이것저것 툭툭 내뱉다가 말이 끊겼다.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 애를 바라볼 때 한숨과 함께 입술이 열렸다. 

“그럴 생각 없어.”

그 애의 음성은 나이가 들어도 맑은 구석이 있었다. 약하게 흘러나온 목소리 속에 어딘가 맹목적인 힘이 깃들어 있었다. 대체 내가 뱉은 문장들의 어느 부분에 대한 대답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 애의 호흡이 조금 더 힘겨워진 것 같았다. 

가라앉은 정적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빛을 등진 그 애가 물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싫어?”

그 물음에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문이 탕 튕겨 나가다가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뚜벅뚜벅 힘주어 걷는 발소리도. 그게 끝이었다. 뒷모습도 기억에 없었다. 

그게 완전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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