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가 정말 싫어

백정

자캐들 썰 by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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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에서 네가 보인다. 속은 엉망진창이 되고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그 혼란 속에서 침착함을 찾게 되었다. 너의 이름을 불렀고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너에게 다가간다. 여기까지는 대본대로이다. 그리고 이제, 이 연극의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너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고 여유롭게 말한다.

“... 수시야, 그거 알아? 난 말이야~ 네가 정말로 싫다? 농담 같지, 근데 정말로 싫어”

떨릴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준비했던 말은 모두 침착하게 내뱉었다. 표정 역시 일그러지지 않고 준비된 대본대로였다. 그렇다면 너는 어떨까? 내가 예상한 대로, 언제나처럼 같은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왜 너는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걸까? 이번에는 왜 나를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걸까? 왜 이번에는 평소처럼 대하는 게 아닌 거야? 왜 너는 계속해서 내가 짠 대본에서 벗어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책임질 거라는 너의 말은 그저 모래성과 같았다. 바람 한 번에도 금방 무너지는, 오직 잠시간의 쾌락을 위해 가볍게 던진, 책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믿었다니, 이건 분명 나의 불찰이었다. 청아고 X 반에서 그런 걸 믿었다니, 분명 미쳤던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단지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할까?

너의 말도 안 되는 그 말을 믿어 너와 키스를 한건 나의 호기심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한 거라고 말해야 할까? 그러면 우리는 전처럼 친한 친구 관계로 지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나는 너에게 책임을 지기를 원한다. 내가 이기적인 거니? 하지만 빈말이어도 네가 책임져준다면서. 그러니 나쁜 건 너이고, 내가 너에게 집착하는 건 당연한, 네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 해왔다

어쩌면 내가 너에게 집착할 때마다 네가 보여주는 한결같은 반응은 나를 안심시켰을 수도 있다. 너의 표정으로 멋대로 우리 관계를 정의 내렸다. 나는 너에게 집착하고, 너는 그런 나를 받아주는, 그런 관계로 말이다. 하지만 너의 경멸하는 표정은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난 너에게 무슨 의미였던 걸까? 정말로, 단순히 쾌락만을 위한 상대였을까.

뭐...이제는 모두 필요 없어진 고민이다.


예상도 못한 너의 반응에 다시 한번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게 되어 다시 한번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갇히게 되었다. 내가 준비한 모든 대본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더 이상 연극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이 환상에서 벗어날 시간이자 너의 ‘나도’라는 답장에 대답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더 이상의 표정관리는 불가능했으나 어떻게든 노력했다. 다시 한번,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래? 진짜 다행이다~ 난 정말로, 진심으로 네가 싫거든. 그러니깐 수시야, 축하해. 내가 너 인생에서 꺼져줄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표정을 억지로 꾸며낸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너를 떠난다. 그래, 우리는 이런 결말이 어울렸다. 이건 정해져 있는 결과였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서로에게 상처만을 주는 관계였던 것이다. 이렇게 끝나는 게 맞는 관계이다. 더 시간을 끌지 않고 이리 끝나는 게, 우리에게 서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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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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