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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클라우스

기본 타입|소설형 프로필 [4천자]

hatsukoi 99.9% by 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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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얇은 머리카락이 결마다 부서지며 흩날렸다. 안광 없는 흑빛 눈동자가 냉엄한 하늘을 오시한다. 무거운 전투복이 빛을 흡수해, 유독 그의 얼굴 부근이 빛나 보였다. 이안 클라우스, 불리는 이름은 미타. 헤드라인 A-2팀의 리더란 한 문장으로, 적어도 타인이 아는 그를 정의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내보이는 편은 아니었다. 눈밭은 밟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흔적이 남는 법. 미타는 누구든 그를 곡해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사람이다. 관대한 것이 아니다. 무감無感이다.
 

북해

HK416A5 총신을 붙잡은 손이 지지 자세를 취한다. 사선으로 붙잡고 지탱한 돌격소총은 화염 불티를 모르고 차갑게 식어있다. 굳은 입매, A-2팀의 일원이 떠드는 모습을 힐긋거리는 것이 부는 바람을 닮아있었다. 통제광,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뒤지게 변덕스럽다, 야생마와 함께 생활하는 것 같다.... 뒤에서 들리는 말은 그렇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석적인 자세를 하고 곧게 서있는 것을 보면 대강 성격을 읽어낼 수 있기 마련이다. 성향은 말로써 드러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몸에 닿는 것, 행하는 것이 더욱 노골적으로 사람을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타는 짧게 말하여 북해 같은 사람이다. 암초가 선저 하부를 찢고 갈라놓는 것처럼 미타의 작전 수행 방식은 대체로 독선적이고, 정확하며 군더더기 없다. A-2팀은 제멋대로 구는 주제에 용케도 살아 돌아오고-하기야 죽어오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이다만-베네핏까지 긁어모은다며 뒷목을 잡았다. 그들이야 사전에 설명한 것 이상을 일언반구 없이 '해 버리'는 미타가 아니꼬울 테지만. 해안가를 철퍽이며 파도를 걷어찬다고 한들 바다가 밀려주지는 않는 법이다. 미타는 스스로의 납득으로만 움직였다. 타인의 괴상한 시샘과 흉봄에 반응해 주기에는 내어줄 자리가 없다. 세계에서 차지한 역할은 높디높은 파도가 울렁이는 북해인데, 정작 내딛을 수 있는 제 세계는 방 한 켠만 못했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키고자 날을 세우고 발톱을 갈았다. 사회적인 사람이란 꼬리표를 달기 위해서는 우선 경계를 느슨히 하고 타인을 믿을 수 있어야 했는데, 미타는 온통 적으로 치부하고 영역을 지키고자 동공을 좁히니 스스로 그 꼬리표를 좍좍 찢어 버린 격이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오는 이는 없다. 쓸려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폭풍 치는 날 해안을 걷는 이도 없다. 우습게도 외적으론 바다인 탓에 쉽게도 저는 포용력 있는 사람이며, 겁쟁이들이 다가오지 않을 뿐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미타마저 스스로를 곡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이 중력중심에 서 있는 만큼 일그러지는 빛과 굽어진 물길이 저에겐 진실일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공감 또한 불필요하다. 미타는 타인의 중심에 흘러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그 정도로 나약하지도 않다. 미타의 모든 언행은 그 스스로에게로 수렴한다.
 

빙하

날카로운 기감은 그의 외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혹은 고고하며 무정한 눈밭. 무색의 머리카락이 볼을 스치운다. 그의 언어대로 '먼지'같은 머리카락은 종종 주인의 의사를 반하고 멋대로 그의 몸을 섬겼다. 허리까지 닿는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땋아 묶는다. 삐져나온 것들을 넘기면, 날개뼈에 아슬아슬 닿게 된다. 도시의 눈, 날개보다도 부슬부슬 낱개로 떨어지는 눈을 닮은 터럭. 깊이를 알 수 없는 흑색 눈을 감으면 미타는 그저 희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눈을 빼놓고 그를 논할 수는 없다. 불온한 눈매, 야생성을 그대로 표하는 날카로운 눈 끝이 시선을 피하게 만든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던데 그는 눈에 무언가를 담는 법이 없다. 본다. 비친다. 인지한다. 반응한다. 간단한 프로세스로 설명될 뿐이다. 패션센스는 꽤나 기이한 편.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그는 내면적인 사람이다... 라고 애써 부연 설명을 붙여도 영.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아 A-2팀의 골만 울린다. 우리 리더는 뭐... 백화점 마네킹 벗겨먹는 게 더 낫단 생각은 안 하는 건가? 하고. 다만 속의 피부-진정한 인간의 소유물, 미타에게는 그것 또한 옷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는 단단했다. 곧게 뻗은 뼈 위로 세밀하게 붙은 근육은 그간의 이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준다. 말하자면 운동보다는 수없이 살아남은 자의 근육이다. 혈관이 온몸을 감싸고 심장을 박동시키고 있다.
 

절벽

미타의 심장을 감싸는 것이 혈관과 갈비뼈 뿐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짙고 지겨운,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얼핏 죄악감을 느끼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대체로 사람의 영혼이란 뇌에, 눈 가까이 붙어 이상 세계를 지켜본다고 말한다. 아니더라도 맞을 것이다. 미타가 임무 중 들린 서점 벽판에 크게 붙어있던 괴이한 포스터는 분명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러나 미타, 이안 클라우스, 여하튼 이 이의 영혼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손을 들어 올려 가슴팍에 대어야 한다. 심장 박동을 느낀다. 퍼져가는 것은 삶이자 죽음. 미타의 영혼은 심장에 있다. 그의 육체를 수복하고 정신을 온전케 하는 대신 뇌를 파먹는 것의 중심부가 심장이므로. 미타의 좁은 세계는 모든 자•타의적 변화를 거부한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 금방 이전과 같은 밀도로 자라나고, 재앙의 총탄에 팔이 날아가면 기묘하게 간지러운 감각과 함께 세포가 형태를 이루고 돌아가 빈 공간 없이 육체를 채운다. 복원은 심장에서 시작해 사지 말단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죽기 직전의 것들을 먼저 챙겨주는 자비로움. 그의 몸을 꿰뚫고 자리 잡은 이물질은 심장, 피, 혹은 무언가가 분해해 주는 모양이지만 애매한 경계에 선 것들은 직접 손으로 뜯어내야 한다. 그런 번거로움을 제한다면 미타가 용케 이안이 아닌 미타로 살아갈 수 있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존재. ...존재? 형상이다. 머리가 덜 자랐을 적의 이안이 겪은 행위들이 펼쳐낸 방어기제 혹은 마지막 선물이다. 그가 이런 식으로 복원을 설명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수없이 되돌리고 되돌려지는 그의 세포들은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뇌만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라난다. 그의 수많은 수치, 무게나 체온, 길이, 농도 같은 것이 유지될 때 기억만은 어느 시점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어진다. 그러나 복원이 수차례 진행됨에 따라 일종의 반작용으로 기억의 일부가 날아가고는 한다. 잊어도 되는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을 한낱 세포가 판단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다행인 점은 상처의 크기 및 심각성이 기억 상실의 정도와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것. 그러므로 미타는 무난히 미타로 남는다. 기억이 남아 인간인 채로, 잊어버려도 되는 것을 잊고 잊으면 안 되는 것을 잊었는지는 모르는 채로....
 

미타 

그렇다면 미타를 미타로 살게 하는 무엇인가? 뇌를 뒤져 오랜 장기 기억으로 내려간다. 죽어가는 뉴런을 해치면 서늘한 온도가 맞이한다. 깊이 저 아래 있는 것은 영하 270.4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사유라 함은 죽은 자를 죽은 자로 내버려 두어야 하기 때문. 미타는 죽지 않았다. 다만 이안은 죽었다. 살아가는 것은 미타, 이안은 영원히 이곳에 남아....
 

부족한 생을 채우도록 하자.
 

덜 자란 어린애였다. 이안 클라우스에게도 분명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그의 유전자에 분명히 존재하던 어떤 특수 반응 인자는 깨어나기 위한 매개를 필요로 했다. 어린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므로, 어미가 부리로 쪼아 구멍을 내 줘야 했다. 이안에게 필요한 것은 어미가 아니라 부리였다. 정확히는 이안이 아니라 메릭에게 그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보통의 인자가 복제된 채로, 이안의 어쩌면 불완전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둘에게 특정한 자극이 가해진다. 이 자극은 이안에게 부리였지만 아미타에게는 섬광이었다. 시야를 짓씹고 영혼을 파괴하는 일종의 빛. 그것도 빛이라면 빛이다. 그러나 꽉 차 있는 보통의 세계에 이물질을 넣으면, 보통 거부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미타의 영혼은 눈물샘으로 빠져나갔을까? 아니면.... 코마에 빠진 아미타를 발견한 것은 보통의 이안. 우리는 모두 별이 되지 못한 탄소들. 우주의 온도는 영하 270.4도다. 새하얗게 얼어붙은 연구소 바닥에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다. 피아 식별 불가능한 얼음은 친애하는 아미타마저 얼려버리고, 그를 껴안은 미타의 눈물샘에서도 영혼이 흘러내렸다. 너는 내 몫까지 살아줘. 나의 생을 너에게 맡아두도록 할게, 다정한 의도였을 테지만 미타의 귀로 들려온 소리는 분명히 너를 두고 나를 살으라는 말이었다. 사랑하는 친구의 말을 곡해하는 것은 네가 사랑한 나보다 너를 사랑한 내가 더 오래 살아있었기 때문이야. 그날부터 잃어버린 어떤 영혼과 어느 이름은 미타의 감각을 앗아갔다. 철저히 타자화된 삶, 객관적으로 오시하는 육체. 혹은 다른 영혼에게로 실시간 전이되는 것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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