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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꾼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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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막이다. 끝내기에 들어섰다. 좌상귀와 중앙을 대충 손본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집을 만들까 고민한다. 전력으로 임한다면 아마 압도적인 차이로 이겨먹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용돈벌이 치고는 짭짤한 금액이 손에 쥐여질 테고, 당분간은 그림을 설렁설렁 그리면서 살아도 배를 곪지는 않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대체 누가 실력자와 판돈을 걸고 승부를 보고 싶겠는가. 객기 어린 젊은 놈이 있다면 얘기는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이곳의 주 고객층은 저보다 열 살 스무 살은 많은 장년들이다. 게다가 정력적인 인간들이 딱히 많지도 않다. 봉이 될 타겟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번에 큰 돈을 버는 건 미뤄둬야 한다. 언제까지? 이 동네에서 벗어나 외지로 이사 갈 때까지... 혹은 고객층이 완전히 바뀔 때까지. 물론 후자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부러 장고하는 척하던 그는 겨우 한 수를 놓았다. 총명하지는 못한 수였고, 머리가 벗겨진 상대방은 더더욱 총명하지 못한 수를 두었다. 맛 없는 한 판이다. 대체 누구냐? 이 판에 제야고수가 많다고 한 놈은.

대국이 맛이 있든 없든 구리든 말든 어쨌든 이 판을 마무리 짓기는 해야 했다. 흘러내린 둥그런 안경을 슬쩍 밀어 올리며 흑돌 하나를 집어든 순간, 테이블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제 것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전화였다. 대뜸 손을 뻗어 전화를 받으니 반면을 살피던 상대방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여보세요."

"형, 통화 돼요?"

오늘도 기운찬 목소리가 다짜고짜 물었다. 그는 어쩐지 그 양기에 압도당해선, 그래, 된다, 하고. 흐물거리는 투로 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깊게 생각할 여유도 필요도 없어진다. 그는 즉흥적인 판단에 수를 맡긴다. 상대의 당황한 표정을 보면서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누가 봐도 전의가 상실된 포즈지만 실제로 전의를 잃은 건 상대이리라.

"그림 그리기 전에 건물 한번 둘러보시겠다면서요. 이번 주 주말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내가 안 되는 날이 있겠어? 그럼 주말에 갈게."

"아니, 다른 업무 있으실까봐 미리 연락했죠. 형, 요즘은 일이 별로 없나 봐요?"

"요즘 이쪽 업계가 완전 불황이야."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기운찬 상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 그럼 저희 그림 잘 부탁드려요, 앙탈부리는 어조로 애교를 떤다. 생리적인 징그러움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돌을 놓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건 필연적인 수순이었고. 따악, 참으로 청명한 소리가 기원에 울려퍼졌다.

백두대간을 품에 안은 강원도 어드메. 그가 사는 곳에서 삼십 분 정도 자차를 타고 달리면 높고 두터운 산등성이가 하나 나온다. 산허리를 다듬은 샛길을 (운전할 때의 흔들림을 보아하니 그의 자차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십 분 정도 굽이굽이 타고 올라가면 멀끔하게 빛나는 건물이 하나 외로이 서 있는데, 그것이 무언가 하니 바로 천문대다. 풀네임은 별지기 천문대─인데, 솔직히 촌스러운 네이밍이다. 첫인상을 말하자면 그러했다.

이 촌스러운 천문대에 아는 동생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건 겨우 얼마 전의 일이다. 태생이 활기찬 성격인 아는 동생은 천문대 내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다. 천문대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걸 일러스트를 구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를 찾다가 아는 형의 이름을 본 모양이었다. 워낙 특이한 이름이니 동명이인도 아닐 것이고. 하지만 그 형이 그림을 그린다고? 의아한 마음에 그에게 연락을 했고,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협소한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걸어나오니 웃는 얼굴의 그가 다가왔다. 연락은 자주 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몇 년 만이었다.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시익 입꼬리를 올리더라.

"어서 와요, 형."

그도 겨우 입가를 틀어올렸다. 미소를 짓는 건 오랜만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오랜만이다."

"손님이 온 거 아닌가요."

"귀가 밝군. 괜찮아, 내 손님이 아니라 직원 손님이거든."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렸던 남자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흐리멍텅한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다른 이들에 비해 유달리 탁해보인다. 귀를 덮고 목을 가릴 정도로 기른 머리칼은 나이에 무색하게 아직 흰머리 하나 나지 않았는데, 그것이 자연인지 염색인지 구분할 능력은 의엽에게 있지 않았다. 남자는 잠시 제 앞의 술잔을 내려다보다가, 그렇군요, 하고 중얼댄다.

"일러스트레이터라던가. 홈페이지에 걸어 놓을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군."

"아아."

대답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호응이었다. 그가 활달한 인종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유달리 침울한 인상이다. 오랜만에 본 탓일까. 그 사이 성격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의엽은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고, 그러자 상대 역시 술잔을 든다.

"정말로 이쪽에서 일해도 괜찮겠나? 바쁜 사람 아니었어?"

"아뇨. 요즘엔 쉬고 있어서... 몇 년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아니, 아니. 몇 년이나 있을 필요 없어. 자네가 괜찮다면야 우리로선 쌍수 들고 반기겠네만."

"......예."

천문대의 직원 한 명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퍽 유능하고 사교성도 좋은 직원이었기에, 천문대의 모두가 슬퍼하며 명복을 빌었다. 슬픈 건 슬픈 거고 어찌 되었든 하루라도 업무가 멈추어선 안 된다. 워낙 소규모로 꾸려진 천문대인 탓에 한 명의 빈 자리는 너무나 컸다. 때문에 천문대의 소장─이의엽이 급하게 대타를 찾았고, 그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이가 바로 눈앞의 남자였다.

의엽과의 관계는 대학 후배. 재학 당시에도 천재 중의 천재라고 익히 알려졌었고, 졸업 후에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연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괴짜 연구자.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해에는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올해의 년도가 찍힌 활동은 전무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의엽이 그에게 연락을 했고, 그는 음울한 목소리로 조만간 한번 뵙겠다고 했다.

"천문대 바로 뒤편에 직원 기숙사가 있어. 거기서 지내면 돼."

"예."

이것이 길고 긴 인수인계의 마지막이었다. 그 동안 술잔이 도합 다섯 번 정도 비워졌고, 상대적으로 술이 약한 쪽은 의엽이 아닌 후배였던 모양이었다. 발간 얼굴로 시선을 떨군 채 무언가, 의엽이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스누핑에 익숙하지 않은 그가 알 수 있을 만큼 뻔한 감정을 계속해서 내비친다.

의엽은 어렴풋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배라는 녀석은 이상하리만치 감정의 진폭이 작았다. 다른 이들의 절반조차도 미치지 못하는 희노애락. 다르게 말하면 각 감정들 사이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가 되겠고, 또 달리 말하면 제가 무슨 감정인지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되겠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몰랐다는 것이 되겠다.

제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도 모른 채 살다가 외부에서 강력한 충격을 받는다면? 잔잔한 호수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다면. 첫 번째는 당혹. 두 번째도 당혹. 세 번째도 당혹이다. 눈앞의 상대는 틀림없이 그런 상태일 터였다. 제 내면도 수리하지 못한 와중에 외면을 수리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운석을 맞은 게 올해 초라면 그의 행보가 대강 이해가 된다. 졸업 후 한 번도 끊이지 않던 그의 연구 소식이 처음으로 끊긴 해이니 말이다. 그 충격 탓에 지금까지도 연구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걸 미장이질 해 주는 것도 선배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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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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