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아그] 어떤 부재
아그네스는 가족을 잃은 사람을 많이 보았다. 소중한 줄도 모르고 늘 곁에 있을 줄 알고 가슴에 품고 있던 것을 상실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자들의 애끓는 통곡소리도 여즉 선명했다.
아그네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들의 아픔을 나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내일로 이어지는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맹세코, 가까운 이의 가족을 잃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가르침 받은 적 없었다. 심지어 그 가까운 이가 자신의 연인이었을 때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가장 먼저 부고를 전해들은 이의 낯이 당혹과 곤란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더듬더듬 자신이 전해들은 바를 전달했으나 다이무스 홀든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조차 달싹이지 않았다. 한참을 자리를 지키고 선 다이무스 홀든을 바라보던 아그네스는 흔들리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우선 소식을 전했던 사람을 물렸다. 그리고 다이무스 홀든의…… 곁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일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감정도 이성도 죽은 것처럼 머릿속이 혼돈으로 뒤덮였다. 이는 단순히 아는 사람을 떠나보내서가 아니라 은연중에 그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이기심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런 이기적인 자신이 연인을 위로하지 못하는 이유는.
“…… 다이무스.”
“…….”
“이제 가야 해.”
가장 잔인한 역을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을 다이무스에게 수많은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부고를 전해들은 순간부터 굳어버린 다이무스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아그네스에게는 그가 사람들에게 사냥당하지 않는게 더 중요했다. 아그네스는 위로하기 위함이 아닌, 그의 이성을 붙들 목적으로 다이무스의 팔에 손을 얹었다. 다이무스는 그제야 미세하게 몸을 움직여 아그네스와 시선을 맞췄으나 아그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이무스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야 해, 정신 차려.’
그제야 다이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네스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입을 꾹 다물어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다이무스보다 앞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보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뒤따라왔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발소리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그런 사치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그네스는 얼음보다 차가워진 심장으로 정보를 긁어모으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이무스와 함께 홀든가로 향했다. 평소에 입던 흰 원피스 대신 목과 손발목을 꼭 옥죄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다이무스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필요한 말 이외엔 어떤 말도 하지 않던 다이무스의 말수가 더욱 줄어들었다. 아그네스는 종종 걱정을 담은 시선을 던졌으나 다이무스는 그 시선이 닿지 않는다는 듯 허공만 바라보곤 했다. 차라리 이대로 무너지기라도 했다면 핑계라도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그는 그정도의 틈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가 너무도 강인했기 때문이리라.
아그네스는 다이무스의 등에 뺨을 대고 살짝 기대며 입을 열었다.
“…조금은 자는게 어때? 기도문이라도 외워줄게.”
“…괜찮습니다.”
“내일 도착하려면 지금 자두는게 좋을 거야. 그냥 자.”
“…….”
아그네스는 다이무스의 등을 몇 번 토닥이더니 고개를 든 다이무스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부고를 전해듣기 전처럼 친근하고 다정한 손길에도 다이무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한참 뒤에야 피로한 표정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더니 아그네스의 손바닥에 가볍게 입맞추고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긴장을 풀 생각이 없다는 의사가 확고했다. 아그네스는 한숨을 삼키며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흉터와 굳은살이 박힌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짧은 기도문을 외우며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다이무스의 손을 꼭 잡았다. 천천히 맞잡아오는 손틈 사이로 환한 빛이 번졌다.
“내가 다이무스의 등을 지킬게.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앞도, 미래까지도 지켜보일게.”
“…….”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고개만 한 번 끄덕여 주겠어?”
다이무스는 어떤 답도 하지 못한 채로 아그네스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몸으로 스며드는 한계 없는 신성력을 느끼며 아그네스의 손등을 덮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듯, 고개도 작게 저었다.
“그런 맹세 없이도 저는 당신의 검입니다.”
“할 수 있다면 네 상처까지도 다 짊어졌을텐데.”
“…아그네스.”
서로를 감당하는 경계가 옅어졌다. 아그네스는 다이무스를 사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아그네스는 전쟁터에 있었을 때처럼 강한 무력감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이무스의 손을 더 힘주어 잡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다이무스는 고개를 숙여 아그네스의 손등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당신께…… 제 미래를 맡기겠습니다. 그러니 잡은 손은 놓지 말아주십시오.”
경애를 담은 애정표현에 괜히 울컥한 아그네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다이무스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대꾸했다. 응. 그리곤 둘 사이에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그러나 새벽은 곧 어둠을 물리치며 다가올 것이기에 아그네스는 걱정 없이 얕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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