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산책
240215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나는 지금 엄마집에서 포스팅을 하고 있다.
일의 시작은 약 오후 1시 반 경으로 돌아간다.
역시나 아침에 눈을 뜬 후 침대에서 몇 시간 째 미적대고 있는데, 1시 반 쯤 엄마가 집에 왔다. 오후 2~3시쯤에 산책을 하러 가자던가? 2시에 마룬파이브 콘서트 티켓팅이 있었으므로 대강 알았다고 한 뒤 누워 있었더랬다. 산책을 갈 거면 내가 우선 엄마집으로 가서(엄마는 5분 거리의 다른 거주지에 산다) 엄마를 데리고 산책로로 향하리라 짐작했는데 예상에서 벗어났다.
엄마는 집에 샤워를 하러 왔다고 했다(엄마집은 씻는 공간이 좁다). 종종 그랬으므로 놀랄 일까진 아니었다. 어쨌든 엄마가 와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티켓팅에 장렬히 실패하고, 시무룩해있다가, 뒤늦게 사람 꼴을 갖춘 뒤 산책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산책로는 정확히 산책로라기보다 일직선 길을 그냥 쭉 내려갔다 돌아오는 것이었다. 약 2km쯤 된다고 한다. 그 길을 걸으며 엄마는 거의 매일 이 루틴을 반복한다고 했다. 재작년에 무릎 수술을 한 이후 가만히 앉아있으면 무릎이 뻣뻣하게 굳어서 걸어줘야 한다고. 나는 ‘음, 오, 응, 어, 그렇구나’를 돌려가며 반응하다가 어느 순간 엄마의 말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너는 서울만 가면 몸이 다 망가져서 오냐.
기운을 잃는 거랑 쳐지는 건 다르지.
일도 중요하지만 생활 패턴을 개선해야지.
아파보니까 몸이 재산이더라.
대충 그런 식의 대화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한 열흘만 엄마집에서 잘래?”
라고 했다.
내가 엄마집에서 살 경우, 엄마가 강제로 적용할 루틴은 다음과 같다.
1. 아침 열 시쯤 기상하여 사과, 당근, 양배추를 간 즙을 먹인다.
2. 12시~1시쯤 점심을 먹고 3시 내외에 산책을 한다.
3. 6시에 저녁을 먹인다.
4. 잠이 안오면 저녁 이후 바나나와 삶은 달걀을 먹인다.
5. 자정 전에 잔다. 혹은 배부르게 저녁을 먹인 후 8~9시쯤 재워서 새벽 1~2시에 일어나게 한다.
요컨대 때에 맞춰 밥 먹이고 산책시키고 재우는 루틴이다.
나는 잠을 못 잔다. 깊게 잠들지 못한 지는 너무 오래됐고, 수면 시간은 평균 4시간이다. 새벽 4~5시 정도에 잠들어서 8시~10시 사이에 일어나거나 아침 6~7시쯤 침대에 들어가서 10시~11시쯤 깬다. 소화는 (당연히) 안 된다. 하루에 한 끼 먹으면 많이 먹는 것인데 그마저 더부룩해서 대충 때우고 만다.
이걸 고치려고 좋은 약을 많이 써 봤다. 한약도 먹고 있다. 별로 효과는 없다. 살은 계속 찌고 머리카락이 숭숭 빠진다. 배가 (많이) 나온 골룸 꼴이다.
자기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다. 생패를 억지로 맞춰두면 머지않아 또 원래대로 돌아간다. ‘인간의 의지란 얼마나 나약하고 볼품없는가’라는 주제로 연구할 때 나를 보면 된다. 그래서 갓생이니 뭐니 하는 표현들이 나온 거겠지만, 아무튼 나는 갓생이고 자시고 제때 잠들기부터 어렵다. 12시에 누워서 천장만 보고 6시까지 샐 수 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해왔다.
엄마는 희한하게 쓰레기 생활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딱 열흘 간만 “잘 채워넣자”고 했다.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독립할 때 나는 분명 다시는 엄마와 못 살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벗어났었다. 서울에서 첫달은 속이 시원했던 것 같다. 독립한 시기가 9월이었는데, 그해 처음으로 8시간인가 자 봤나…. 아무튼 한 일주일 정도 잠만 잤던 것 같다.
역시 독립을 하니까 잠이 잘 오네.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후의 잠을 끌어다 잔 게 틀림없다. 해가 바뀐 2월, 혼자가 된 나는 그냥 제어해줄 사람이 없어 더 엉망진창이 된 꼬락서니를 하고 있다.
조금은 충동적으로, ‘괜찮겠는데?’ 싶었다. 말이 나온 김에 엄마는 간단히 짐을 챙겨 가자고 했다. 당장 오늘부터 하자고.
그렇게 산책에 끌려갔다가 갑자기 짐을 싸서 엄마집으로 들어왔다. 손님방처럼 쓰는 곳에 내가 예전 작업실에 놔뒀던 침대가 있었다. 정작 나는 몇 번 누워보지도 못하고 작업실을 뺐었는데…. 서울에는 필요한 짐만 가지고 가서 이 침대는 엄마가 처리해주기로 했었다. 엄마는 여섯 개의 방 중 가운데 방에 그걸 떡하니 놓아두고는 (퀸사이즈라 방에 침대만 있다. 이게 침대방인지 손님방인지;) 아주 잘 쓰고 있었다. 누워 보니 아늑했다. 이제 와 이곳에 누워 자게 된 게 희한하다.
어제 멘토의 부재 어쩌구 이런 말을 썼던 것 같다. 내 무의식은 엄마를 멘토로 삼은 걸까. 아무튼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생활 패턴이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잘한 점은 산책과 엄마집에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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