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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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원하는 대답을 들은 적이 별로 없어서 그래. ……정말 뭐든 대답해 줄 거야? 이미 늦었어. 이미 알아 버렸는데 어떻게 잊어? 그럼 너도 나한테 물어봐.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겪어서 내가 되었는지. 내가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게 뭔지. 나도 정답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할 수도
나른한 오후. 길게 늘어진 볕이 제법 따사로웠다. 이런 날에는 산책을 나가거나 소풍을 즐기는 등, 날씨의 이점을 한껏 즐기는 하루를 으레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은 삼 교시부터 내내 보건실에 갇힌 신세였다.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다 싶더니 그대로 열이 오르기 시작한 탓이다. 그냥 조퇴해야 하나. 명여휘는 달뜬 숨을 내쉬며 가물가물한 정신
그럼 그냥 알지 못하는 채로 넘어가야 해? 생을 반복할 순 없잖아. 그렇다 해도 나는 널 알고 싶어. 넘겨짚는 것만으론 부족하니까. 파도가 밀려든다. 주홍빛 물길이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가면 다음으론 짠 내음이 물씬 풍겼다. 새하얀 포말이 사그라들며 짙어지는 모래가 퍽 볼만한 광경을 만들어 냈다. 어느 날의 기억이었다. 해소할 수 없는 불안감이
우린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서로에 대한 건 더더욱 그렇고. 눈을 떴을 땐 이미 낯선 장소였다. 천장이 새하얬다. 시야는 전과 달리 한쪽만 사물을 비추었고, 코에는 싸한 소독약 냄새가 스쳤다. 병원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상은 의문. 내가 왜 병원에 있지. 되짚어 보아도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없다. 마지막 기억은 담력 시험
딱히 어울리는 건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라 넣었어요 “너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지해 이번에 결혼한다잖아. 며칠 전에 청첩장 돌리더라.” “……그래? 난 지금 처음 듣는데.” 톡, 톡.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다. 그 옆에는 절반도 채 비우지 못하고 식어 가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명여휘는
이런 만남으로도 만족할 수 있어? 난 못 하겠는데. 우린 무수한 갈림길을 지나쳐 왔다. 매 순간이 그리 순탄치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만남의 시작부터, 우주로의 초대를 받은 오늘까지도. 번복하고 싶은 선택도, 아쉬움이 남는 시점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시 그날로 돌아가더라도 변하지 않을 행동들이 있다. 너를 만나는 것, 그리고 네 투영
짧은 여름 방학이 끝났다. 가을은 무덥고, 화창한 날씨로 막을 열었다. 새파란 하늘. 새로운 학기. 단어만 들으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청춘의 한 장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K-고등학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집 가고 싶다. 야, 우리 아직 1교시도 안 했어. 더운데 에어컨 못 틀어? 가을이라 안 틀어준대. 시시콜콜 만담 같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봐, 우리가 그렇잖아. 그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약속이었다면, 우린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대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답을 알고 있어서였다. 대체 가능한 관계가 좋다던 이를 억지로 붙들고 부정을 강요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자라난 욕심이 기어이 상대를 이 자리까지
역시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구나. 이러니 평생을 약속하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헷갈리게 굴지 않기. 솔직하게 대해주기. 언젠가 그런 약속을 나눈 적 있었다. 우리가 주고받은 모든 약속이 그러하듯 절대적인 제약은 아니었다. 허점이 많고, 어긴다 하더라도 크게 책망하지 않을. 말을 꺼내기 직전에야 재차 사고하게 만드는, 딱 그 정도의 구속.
이 우주는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될까. 십 년? 백 년?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세월일까? 우리는 우주에서 비롯되어, 우주에서 종장을 맞이한다. 한 편의 이야기처럼. 명여휘는 검푸른 하늘을 주시했다. 너른 자리를 가득 메운 천체들이 일제히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밤이라기엔 환했고, 낮이라기엔 어두운 공간. 저
영원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던데. 그렇다면 영원한 이별이란 것도 없지 않을까? 명여휘는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떴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고. 생경한 장소에서 덜컥 정신이 든 사람이라면 으레 떠올릴 법한 생각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쳤다. 가장 먼저 한 건 제 몸을 살피는 일이었고, 별 이상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끔찍한 일이 뭐라고 생각해? 여러 답변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개 악의를 가진 자들이 할 법한 행동이었고, 일부만이 그렇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개중에 사랑은 없었다. 명여휘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오래전에 증명된 명제였다. 부모님에게 받는 사랑, 친구들과 주고받는 사랑,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사랑.
나의 이야기는 매번 너의 부재와 함께한다. 거창할 것도 없었다.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시간은 그대로인데, 엇비슷한 이별만이 반복되었다. 넓지도 않은 건물에 괴담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누구는 어딘가에 갇혔고, 누구는 괴담의 일부가 되었고. 대강 위치가 짐작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신지해는 명백히 후자였다. 어디로
왜 정을 준 것들은 하나같이 떠나가는 걸까. 명여휘는 생각했다. 신지해의 부재를 깨달은 시점이었다. 공기 중에 비산하는 매캐한 먼지 더미가 지긋지긋했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공간은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같은 풍경만이 자신을 반겼다. 콜록, 반사적으로 터진 기침이 왼눈의 고통을 자각시킨다. 극심한 작열감이 쏟아졌다. 텅 빈 공간마저 전부 태워
명여휘明餘暉. 자의 반, 타의 반. 소문을 몰고 다니는 요주의 인물. 한없이 긍정적이고, 한없이 부정적인 평가들. 개개인마다 극명하게 갈리는 이야기들은 일부러 만들어내려 해도 불가능할 수준이다. 걔 성격 진짜 이상하더라. 사람이 좀 꺼림칙하지 않아? 저번엔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야……. 대놓고 험담하는 꼴을 목격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구태여 부정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