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인간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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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 마차는 그들이 도착한 지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여관 앞에 멈춰섰다. 상단의 짐마차들도 함께였다. 하늘을 가르는 해의 기울기를 가늠하며 시간을 재던 서혜가 담장 너머에서 휘날리는 익숙한 문장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갖가지 장식용 장포에 머리를 틀어올려 비녀까지 꽂았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마차에 주희를
희의 우려와 다르게 조사전은 꽤 괜찮은 도피처였다. 황실의 문장을 단 사자가 강제집행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외지인 취급을 받는 건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맹자께서 잔당 소탕을 위해 이산 장군과 타지로 향하고 다른 셋은 마을로 내려간 탓에 강제집행당하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희는 한껏 비아냥댈 각오로 천자를
“오늘도요?” “매일 그렇죠… 하하.” “어휴, 수고가 많으십니다.” “한창 어른들이랑 말하기 싫어할 나잇대라고 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조금은 말해주었으면 하는데. 하곡은 말을 덧붙이는 대신 나직히 웃었다. 사천의 관아에서 내어준 마차는 금방 쓰러져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두 시진 즈음 들었을 때 맹가는 가장 가까운 도
朱熹는 눈을 뜬다. 그의 목을 친 공신의 앞에서. 음, 정정하지. 공신의 낯이 아니다. 공신의 머리칼은 저것보다 좀 더 밝지 않았던가? 스산한 달빛 아래 아해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朱熹였다. 이제 사서에서 사라진 제 이름을 존재의의로 삼는 것. 너는 평생 불행하겠구나. 그리고 내가 널 불행하게 만들겠구나. 다만 그는 무독하게 웃기
“다산은.” “지금 양명 선생님이랑 같이 있습니다.” “책은?” “오백 권 다 쓴 지가 언젠데요. 다 쓰기 전이었으면 약용이 오기 싫다고 했을겁니다.” “애 나이가 몇인데…. 그래, 됐네. 차는?” “녹차 있습니까?” “바닷가에선 못 마실 품종이 많지. 며칠 전에 상단이 다녀갔거든.” “서호용정도 있습니까?” “수인이 좋아하는 거라서. 안길백차도 있고.”
선산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희는 뛰고, 또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거하게 넘어질 때야 그 사실을 알았다. 바지가 찢어졌는지 살갗에 피가 맺혀 바닥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가 곪을 것이다. 희는 반사적으로 주변에 있는 물길을 찾으려다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순황의 가르침을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의 응급처치였다- 떠올리고는, 입술
“… 선제후요?” “출발하기 전에 일거리를 얹는 것도 주나라 방식인가?” “재상을 제가 죽였으니 일거리가 자꾸 생기겠죠. 말하세요. 선제후라니요.” “송에서 칙서를 보냈습니다. 주를 자치구로 정하는 게 어떻느냐고 그러는데요.” “거절하세요. 송의 자비엔 감사하나 중원에 송을 제외한 다른 국가를 만들 생각은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요?” “… 수사법까
맹자가 그 젊은 황제를 찾은 건 정변이 일어난 지 보름은 더 지났을 때였다. 전소한 산의 기슭에 있는 오두막의 잔해 사이에 그가 있었다. 새빨간 장포로 잿더미에 파묻힌 백골을 감싸고, 다시 그 장포 채로 백골을 끌어안아 몸을 웅크리고. 오두막은 오래전에 불탄 것을 수습조차 하지 않았는지 불탔던 나무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 울었나?” “아직 어려 보
아이의 어미는 소림이 있는 하남성 출신이었다. 주의 황제에 의해 성리학을 접할 수 있었던 운 좋은 학생이기도 했다. 어미는 동기들 중에서도 특출난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운 좋게 황제의 눈에 들어 수도에서 좀 더 공부할 수 있었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어미는 관에서 사직하고 하남성에 돌아왔다. 황제의 좌가 혁명으로 성이 바뀐 지 일 년만에 아이가 태어났
낭패다. 실수했다. 하지만 어디부터? 주희는 숨을 삼킨 채 제 손목을 붙든 남자- 하곡을 가만 바라보았다. 산동에서 사천까지 오는 것이 이렇게 빨리 걸릴 줄 몰랐다. 관리 둘이 사천에 왔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나갔어야 했나? 아니, 나가지 못했겠지. 분명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아래서 붙잡혔을 것이다. 그는 일평
하곡은 맹가가 도착한 지 이틀 뒤에야 도착했다. 운성은 연휴가 끝난 탓인지 일련의 사건 때문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온통 어수선했다. 운이 좋아 하남성 근처에 있어 이틀만에 달려온 것이지, 타지에 있었더라면 합류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역참에 말을 맡기고 안장에서 뛰어내리기 무섭게 맹가가 평소처럼 침착한 낯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곡은 예에 맞는 인
“아이고, 선생 있어서 살았네. 제사 지낼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돈을 써야 하나 싶었어.” “별 거 아닙니다…. 저, 그럼, 단주님. 제가 부탁드린 건,” “아아, 그건 내 힘써보지. 마침 새 무역로를 트긴 해야 했거든.” 타지에서 맞는 두 번째 신년이었다. 북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얼얼한 자국을 남겼다. 주희는 가만히 눈을 깜
“아이고, 선생님! 어디 가셔요? 수업은 어제까지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아…. 저, 사천에, 가려고요. 여비도 어느정도 생겼고.” “하남에서 오셨다고 했나?” “예, 장강 타고 쭉 내려왔습니다.” “장강 타고 광동까지 왔어? 크게 돌아오셨네. 사천엔 무슨 일로 가세요?” 선착장엔 고기잡이배와 빈객용 배가 뒤엉킨 채 떠다니고 있었다. 경매가 있는 날이라
“아직 다 안 달았으니까 헷갈리거나 잊어버리면 안 된다. 붉은 끈이 있으면 그 앞으로 가면 안 되고.” “녹색 끈만 따라가요?” “그래. 그럼 노란색 끈은 무슨 뜻이지?” “어른들이랑 같이…?” “옳지. 똑똑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얼씨구, 맹자께서 이렇게 팔불출인 거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나 몰라. 의약당 위치는?” “사당 쪽으로요.” “다른
하곡이 어린 아이를 데려왔다. 한껏 당황한 젊은 학자가 어쩔 줄을 모르고 얼르던 품에는 붉은 머리의 아이 하나가 안겨있었다. 다섯 살은 되었나? 충년도 되지 못한 것 같은 낯이었다. 그 머리색이 붉은 색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선산에서 키우네 입양처를 찾아주어야하네마네 소란스러워졌을테다. ‘유’는 새벽녘에 잠든 적이 없었으므로. 혁명 이후, 양명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