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엣 가문에 생긴 놀라운 이야기

마르엣 가문에 생긴 놀라운 이야기 6

설탕과 후추 교역의 토대를 쌓아 착실히 부를 쌓기 시작한 마르엣가문.

사업의 시작은 어느 똑똑하지만 나약하고 따돌림 당하는 인간과, 그 인간을 아꼈던 다정하고 힘 센 코볼트였다.

둘은 마을에서 따돌림당하는것을 피해 산에서 숲으로 탐험을 하며 살다가 동굴에서 나는 야광후추와, 깊은 지하에서 자라는 마그마설탕을 발견했다. 둘은 머지않아 큰 부를 축적했다.

코볼트는 사랑을 만나 대를 잇기 시작하고, 인간은 사업에 전념하며

인간과 코볼트 두사람이 힘을 합쳐 마르엣 가문이 시작했다.

마르엣 1세는 점점 욕심이 커져서 사업을 지휘하는 인간을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했고, 후에는 마법을 배워 인간의 사업을 모조리 빼앗았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은 마르엣 1세는 인간의 기억을 조작해서 제 가문에 헌신하는 집사로 만들었다. 이 인간은 아직까지도 대대로 집사에서 유모로 헌신하고있다.

그렇게 대대로 기억마법을 몰래 전수하며 가르치던 마르엣가는 마법의회에도 등록되지않은 비밀의 마법사 가문이 됐다.

지금 마르엣가문의 14대 가주 카이사르 마르엣은 가장 특출난 마법사였으며, 여지껏 보수적이었던 마르엣중에서 가장 넓은 생각을 할 줄 아는 딸이었다.

다양한 종족을 가문에서 일하게 하자는 생각도 할 줄 알았으며, 이들 중에서 마법에 해박하거나 조금이라도 재능이 보인다면 곧장 그들을 포섭해 기억마법을 보완하는것을 도울 도우미로서 일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다양한 종족을 실제로 고용한것은 몇십년이 지나 가문의 참고인들이 모두 죽은 후 였으며, 기억마법 도우미들은 매번 문제를 일으켰기에 결국 혼자서 모든것을 감당하고있었다.

늦은 나이에 본 딸은 너무나 반가웠으며, 어서 딸에게 기억마법을 가르치고 어엿한 마르엣의 주인이 되는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사업주이며 가주이고, 비밀의 마법사였던 카이사르의 기대치는 지나치게 높았고, 그에게 양육이란 '사람을 만들어가는것'이 아닌, '완벽함을 빚어가는것' 이었기에 딸은 속에서부터 썩어가기 시작했다.

기억마법의 전문가라는것을 숨기기 위해 저택과 마을 전체에 ‘코볼트가 마법을 사용하면, 모두의 기억속에서 사라진다.’ 라는 소문을 퍼뜨렸으며, 딸을 더욱 완벽한 마르엣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카이사르는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겉으로는 마법과 마법사를 혐오하는 냉혈한 가주였고, 뒤에선 아무도 몰래 딸에게 세상의 규칙을 깨버리는 마법을 가르쳐줄 생각에 제법 기뻐하고있었다.

딸, 막시무스 마르엣이 어머니가 기억마법을 전수해주기 전, 혼자 마법을 터득하고 가문에서 자기를 지워버리고 도망치기 전까진.


‘...그러니까, 너네엄마가 마법을 알려주기 전에.. 네가 마법을 알아내고 도망치는바람에... 지금 저... 무서운 사업가가 된거야...?’

‘그런거죠!’

‘...왜 날 자기가문에 끌어들이는거지?’

‘기억을 조작하더라도 오랜시간 살아온 무의식은 어느정도 남아있긴 해요... 이 경우에는 아마 본인이 마법사라는걸 기억하진 못해서 마법사인 저를 경계하지만, 무의식은 마법을 반기고 있을거에요. 그래서 마법사랑 일하는 코볼트에게 끌리는거고요.’

‘...동료의식이 있다는거야?’

‘그 편이 정확하네요... 카이사르는 지금 자기가 예전에 만들어둔 "마법사를 혐오하는 가문"이라는 기억에 강하게 사로잡혀있어서 마법을 굉장히 싫어하는 동시에, 마법을 좋아하는거에요. 웃기죠?’

‘진짜 이상하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거야..?’

‘집안 보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날거같아요. 하는김에 카이사르한테 걸린 마법을 조금 보완할수도 있어요.’

‘그래?.. 아, 도우미 갔다고 했지. 도우미는 어때? 말 잘들어?’

‘도우미요? 네.. 뭐.. 생각보다 잘 해요! 제가 쓴 논문도 알더라고요~’

‘...다행이네’

‘어라 좀 퉁명스러운거 같은데~’

‘아니야. 일좀 빨리 끝내줘..’

아~ 물론이죠~ 일은 물론 잘하지만, 맥스보다는 조금 부족한 조수랑 열심히 할게요~’

‘놀리지 말고!’

‘킥킥’

‘그리고, 어. 일 끝났으면, 통신 열어놔.’

‘알았어요~ 켜 둘게요.’

잉게르는 통신을 편히 열어두고 남은 마법을 짜넣기 시작했다. 설계는 다 해뒀고, 선대부터 만들어둔 기억조작 마법에는 작은 장난을 쳐 뒀다.

“내가 써둔 마법진 다 베꼈나?”

“예... 예! 지금 다 써두고, 틀린건 없나 다시 보고있습니다!”

“좋아.. 오늘은 이만 가 봐. 내일 와서 마무리지으면 될 거 같으니까.”

“네..! 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그리고...”

“네!”

“...비밀유지서약, 알지? 네가 입을 여는것도 포함이니까, 카이사르가 뭔가 물어보면 기밀 유지 때문에 말 못한다고 해.”

“예, 알겠습니다...!”

잉게르의 이날 저녁은 어제와 달리 꽤나 즐거웠다. 여행이라도 온 양 맛있는 식사를 제대로 즐기고, 아무도 없음을 즐기며 혼자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내일아침이 뒤집어지도록 기대됐다.

‘내일 할 일은 다 정해진거지?’

‘물론이죠~ 내일은 제가 집안을 좀 돌아다닐거에요. 사용인에게 말해서 저랑 마주치지 않도록 계약서는 방 안에만 있으라고 전달은 할거지만, 지금 미리 알아두시라고요.’

‘알았어. 근데, 마법진은 지하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거 아니였어?’

‘지하에서 물론 다 되긴 해요~ 집안 어디에 무슨마법이 있는지, 거기에 다 지도처럼 있으니까... 그냥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고 싶어서요...’

‘이게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무슨소릴..’

‘어쩌면 또 오게될지도 모르잖아. 그치?’

‘다~시는! 안올거거든요?!’

‘정말로?’

‘네! 이딴집안 당신이나 의뢰만 아니라면 절대로 영원히 다시는 안돌아와요!’

‘잉게르, 네가 너무 극단적으로 결정하니까.. 나도 말 한마디만 보태도 될까?’

‘뭘 웅얼웅얼할건데요?’

‘음... 그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가문은 어떻게 할거야?’

잉게르의 빈정거림에 맥스는 마음이 상했지만,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몰라요~’

‘네 동생들은?’

‘친척들이 알아서 하겠죠~’

‘음... 그럼 네 가문의 명성이랑 돈 들은?’

‘알게뭐에요~ 집사장 가지라 그래요’

‘네가 가지면 안돼?’

‘아, 혹시 탐나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잖아..’

‘뭐, 탐날수도 있죠.. 당신이 가문 이어받을 거에요? 양딸로 들어와서?’

잉게르는 야단스레 웃었다. 하고싶으면 하라는 듯 한 장난스러움이었다.

‘그게 되겠냐! 네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아니, 저는 이 가문에선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이어받아도 솔직히 상관없어요! 하고싶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요!’

‘그게 무슨소리야~ 그리고, 가문이나 핏줄이라는게 얕볼게 아니라니까?’

‘가문이나 핏줄같은건 허상이에요! 그냥 같은집안에서 보고 배우고 자라니까 비슷한거지, 저는 마르엣가문 같은걸 이어 받을 생각도 없고, 이 집안이랑 연 끊고 잉게르로 살거에요.’

‘잉게르, 마르엣가문을 물려받으면, 이 가문이 대대로 가져온 힘도 네 거가 되는거야. 네 마법을 연구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될거라고..’

‘저는 이상태로 만족해요. 연구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있다고요. 그리고 뭐라고요? 물려받으라고요? 제가 뭘 버리고 나온덕에 당신을 만난건지 아직도 몰라요?’

‘아니야, 잘 알아. 당연히. 나는 그냥, 너를 그렇게 힘들게했던 가문을, 네 힘으로 삼아서 그동안의 힘들었던걸 보상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란 말이야.’

‘이런거 필요없어요.’

‘...카이사르는 꽤 늙었어.’

‘그래서 뭐요..’

‘...있잖니,잉게르..’

‘뭐야 또 그 늙은이말투’

‘좀 들어봐.. 잉게르. 네가 몇살때 가문을 나왔다고 했지?’

‘...몰라요 열 다섯 인가 열 여섯 인가..’

‘음, 그래... 있지, 내가 하는말 주의깊게 들어줘. 그러니까.. 다른 의도같은거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줘.’

‘뭔데요...’

‘음... 내가 집안 생활고때문에 불법 격투장에 갔다는거, 너도 알지?’

‘알죠. 기억 다 봤어요.’

‘그때 내가 격투장에서 엄마를 만나고... 엄마도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불법격투장에서 싸우고 있었다는걸 알게된 게.. 아마 열다섯인가 열여섯인가 그랬을거야.’

‘...’

맥스가 격투장에서 어머니를 만난건 링 위였고, 그날 맥스는 어머니를.

‘있지, 코볼트들은.. 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이 많지않아.. 특히, 다치지 않는 직업은 더... 그런 환경속에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런걸 굳이 한다는건.. 아마 처음엔 나름 계획이 있었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확신 아닌 확신을 가지고.. 삶에 풍덩 뛰어드는거야.’

‘... 그래서요..?’

‘그 물은 항상.. 생각보다 더 깊어서.. 겨우 숨을 쉬고 사는거지... 잉게르, 내 말, 천천히 이해해줘.’

‘네.. 마저 이야기 하세요...’

‘응, 그러니까 내가 하고싶은 말은... 잉게르, 네 가문에는.. 정말 다양한 종족들이 있었어. 알지?’

‘네.. 종족..보존..어쩌고 법 때문에요..’

‘그거야, 잉게르. 네 가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어. 이 말은, 어쩌면 이 저택의 사용인들 중에는.. 아직 직업을 잃지 않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만일 이 일이.. 이 가문이 사라진다면, 정말 더이상은 일 할 곳이 없는...’

‘...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는게 종족 다양성 보존사업 이에요. 불법도박장에서 투견으로 소모되고 죽지말라는...’

‘늙은 사람들도 보호를 해주니?’

‘...?’

‘잉게르, 네 어머니... 너는 믿기 어렵겠지만... 나이 많은 난쟁이나 취업장에서 아무도 찾지않는 트롤을 고용했어. 그사람들이 직업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얼마동안 보호받을까? 잉게르..’

‘...그,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제... 제가 무슨 자선사업가에요?’

‘잉게르 너는, 막시무스 마르엣으로 태어나서.. 취업시장에서 코볼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보호받으면서 살다가.. 마법을 배우고, 도망쳤잖아. 그리고 무슨종족인지 알 수 없게 겉모습을 감춰서야 네 실력을 인정받아 마법의회에 들어갔고...’

‘...제, 제 실력으로 들어갔잖아요! 다들 종족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멍청이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빠져나와서 넓게 보면 되는거라고요!’

‘물론, 당연하지. 우리 잉게르만큼 대단한 마법사는 세상에 없을거야.. 그리고.. 잉게르 네가 맞아. 종족을 보지 않고 능력만 보는 좋은 곳을 찾아야지..

그런데, 내가 결국 하고싶었던 말은 이거야. 네가 어릴적에 널 보호해준 마르엣 이라는 이름을.. 직장으로 삼고 한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적어도 다음 직장이라도 무사히 찾게 도와주자. “종족을 보지 않는”녀석들 이랑 이어질 때 까지만..

그러고 나서 마르엣가문을 완전히 없애버리자.’

‘....’

‘카이사르가 네게 심하게 대한건 맞아. 마르엣가문이 보기도 싫고 밉고, 무슨 부정부패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네가 가장 잘 알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사용인들에게는 다음 나아갈 길을 알려준 다음에.. 마르엣가문을 정말로 모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없애버린다던지... 그래도 되지않을까..?’

‘...’

‘... 유모한테, 감자스튜 레시피를 직접 물어볼 기회 정도는 남겨놔야지..’

잉게르는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맥스와 자신간의 미묘한 삶의 거리감을 쭉 느껴왔으면서, 맥스가 말을 않고 있던것은, 맥스는 다수지만 힘이 없는쪽이었고, 자신은 수가 적지만 힘이 있던 쪽이었기 때문일까.

‘.....’

‘잉게르, 울고있니?’

‘....몰라’

‘...자, 잉게르. 나 베개 끌어안고있어. 너도 베개 끌어안고 내가 안아준다고 생각해봐.’

잉게르는 냉큼 침대로 달려가 베개를 끌어안았다. 차갑고 폭신한 깃털베개가 제 온기로 점점 따뜻해졌다.

‘아이구 울리려던건 아닌데..’

‘안울어 멍청아! 그리고 베개같은것도 안 안고있어!’

‘알겠어 미안해~’

맥스는 미묘하게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 너머로 잉게르가 중얼거리는것을 들었다.

언젠가 잉게르에게 꼭 하고싶었던 말이었다. 아마 집을 막 벗어난 어린 잉게르였다면 말을 듣지 않았겠지만, 지금 잉게르는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행동의 결과’ 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고, ‘의도하지 않은 잘못’ 이라는 것도 배운 녀석이다. 분명히 이해 할 것이다.

‘...그럼...니까...’

‘잉게르?’

‘...그럼 내일...마지막으로... 마법들 잘 돌아가나.. 확인 하고.... 카이사르도.. 깰 수 없는 마법을.. 준비할거니까... 저녁이면...의뢰도 끝마칠수 있을거에요... 그럼 그때... 카이사르한테는 제가 말할거에요... 당신은...제안 거절해요..’

‘당연하지~’

맥스는 침대시트를 팡팡팡 두드렸다.

‘...무슨소리에요?’

‘너 엉덩이 때리는소리.’

‘아~! 정말~!!’

‘잘한다 잘한다 잉게르~’

‘아! 진짜아~!’

육아와 연애 어딘가를 달리는 두사람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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