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룸메이트 (8)
손빨기
뻐끔뻐끔.
"에?"
순간 자기가 알아듣지 못한 건지 헷갈린 가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렇게 하는 거야."
혜림이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하면서 공중에 키스하는 시늉을 했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잠깐 빌려도 되지?"
하곤 가람의 손을 가져가서 손가락을 입에 넣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이 혀라도 되는 것 마냥 정성스럽게 빨고 부드럽게 휘저었다. 감각이 느껴졌다.
어안이 벙벙해진 가람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그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가락을 빼내려 힘을 주었더니 힘을 빼라는 질책만 듣고, 그렇게 가람이 얼빠진 사이 가람의 왼손 검지는 혜림의 침으로 촉촉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십 초가 흘렀다. 가람은 손가락 피부로 전해져 오는 혀 근육의 부드러움에 감각이 홀린 듯 멍한 상태였다. 혜림이 시범을 멈추고 손가락을 놓아준 뒤에도 정신이 나가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기분 나빴어?"
가람이 별 반응이 없자 혜림의 마음이 뜨끔했다. 방금의 행동은 혜림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승부수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저졌다.
"음.... 너도 해볼래?"
혜림이 아까 가람의 손가락을 끌고 왔던 것처럼 제 손가락을 가람 얼굴 앞에 내밀었다. 혜림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박이었다.
"......."
가람은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지만 지금 눈 앞의 손가락이 달콤한 악마의 제안과 같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걸 빨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제안한 상대방도 알고 있다. 알고 제안한 것이다. 어쩌면 가람을 시험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
가람이 혜림의 손가락을 입에 문 것은 순전히 가람의 욕심 때문이었다. 가람은 첫 키스를 그렇게 망쳐버린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별로였다는 말도, 괜찮았다는 말도 없는 연인이었지만 가람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첫 키스의 기억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으로 못 박아져 있었다. 가람은 첫 키스 때 그랬던 것처럼 혜림의 손가락을 회오리치듯 휘감고, 열심히 빨아들였으며, 강하게 혀를 튕겼다.
가람의 입 안에서 요동쳐지는 손가락에 혜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람의 턱을 잡아 가람을 멈추게 했다.
"힘 빼고. 힘 빼라고 했지."
여전히 손가락을 물고 있어 대답하지 못한 가람이 눈동자를 굴려 혜림을 한 번 확인하고는 훨씬 힘을 뺀 움직임으로 혜림의 손가락을 감쌌다.
"좋아. 아까보다 훨씬 나아."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주는 혜림이었다. 칭찬을 받은 가람이 무심코 웃음을 내려다 혜림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얏."
"아, 매안."
혜림의 손가락을 문 채로 가람이 대답했다.
"부드럽게,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다고 생각해봐. 약간 빨아들이면서."
혜림의 코칭 대로 가람이 움직임을 바꿨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는데?'
도박처럼 던진 말에 큰 수확을 얻은 혜림은 마음 저편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쾌감에 욕심이 더욱 커져갔다.
"좋아. 힘이 좋은 건 알겠는데 일단 처음은 무조건 부드럽게 시작해. 그 다음은 조금 강렬해도 좋아."
가람의 입에서 손을 빼낸 혜림이 말했다.
"직접 키스해보는 수 밖에 없긴 해. 손가락으론 아무리 연습해도 한계가 있고... 또 자기 손 보다는 남의 손이 나으니까."
"나... 그렇게 키스 못 해?"
"어... 좀?"
휴지로 손을 닦고 가람에게 건네며 혜림이 대답했다.
"더 연습해보고 싶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은 혜림이었다.
가람은 그날 혜림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때 마침 기숙사 점호할 시간이 되어 가람은 다행히 어색한 자리를 끝낼 수 있었다.
다만 혜림의 말대로 키스는 상대가 있어야 연습할 수 있는 거란 게 문제였다. 혼자서는 허공에 아무리 혀를 내밀어봐야 우스운 꼴이었고 제 손가락을 빠는 것도 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람의 고민이 깊어만 갔다.
그 다음 날부터 가람은 연인과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혜림과의 사건은 은근히 가람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왜 찜찜한 건지. 가슴 한 켠에 드는 찝찝함과 죄책감을 묻어두고 연락을 이어나가던 참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우리집 놀러 올래?'
사귄지 2주 차가 되는 시기였고 데이트로는 두 번째였다. 금요일까지는 앞으로 3일. 가람의 눈이 커졌다.
'이건...! 무조건 자고 가라는 거다...!'
김칫국을 마신다고 해도 혹시나 모르는 일이었다. 가람은 평소에 입지 않던 불편한 예쁜 속옷을 떠올리곤 마음 속으로 하룻밤을 지낼 채비를 했다.
'그런데 누가 깁이지?'
가람은 스스로 깁텍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 쪽도 경험이 없어 모르겠다고 했었다. 만약 가람이 깁이라도 하게 되면? 포르노 같은 데에서 봤던 것처럼 했다간 첫 키스 때처럼 처참하게 망해버릴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급습했다.
'그래도 내가 언닌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꽂힌 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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