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잤던 여자들

[외전] 룸메이트 (7)

가람은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지만 신중한 편이라 혜림에게 연애 상담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그런 혜림에게도 가람의 눈물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안 좋게 얘길 해줘도 흔들림 없어보이던 가람의 연애가 금이 간 게 아닐까. 기대하는 혜림이었다.

"울었어? 무슨 일이야."

가람이 고민의 내용을 털어놓은 건 혜림이 한참을 어르고 달랜 뒤였다. 기대완 달리 헤어질 만한 사안은 아니었지만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첫 키스가 망하다니.

"원래 처음 하면 다 못 해. 괜찮아."

"근데 표정이 너무 안 좋아보였어. 가면서 연락도 없고."

당장 혜림 앞에 있는 가람의 표정이 훨씬 어두워보였지만 혜림은 그런 가람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키스를 더럽게 못 한단 말이지? 누가 모태솔로 아니랄까봐.'

"키스를 잘 하는 건 어려울 수 있어도...."

시무룩한 표정의 가람이 혜림을 보았다.

"못하지 않을 정도로 하는 건 어렵지 않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가람의 표정을 보니 마음 속에서 욕정이 치닫는 게 느껴졌다. 혜림이 본능을 억누르며 가람의 어깨를 잡았다. 

'얠 따먹을 수 있을까?'

"이걸 시범을 보여줄 수도 없고...."

웃음기 없이 말한 혜림이었다.

가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떠나던 연인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가람의 첫 키스는 긴장해서인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고 지나치게 격렬했다. 둘 중 한 가지만 했어도 평범한 축이었겠지만 상대에게는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소설 같은 데에선 그렇게 하던데.'

각종 미디어와 글들에서 봐왔던 스킨십의 묘사대로 충실히 학습한 가람은 문제의 원인을 깨닫지 못했다. 휘감고, 회오리치고, 강렬하게: 이게 가람이 24년 간 배운 공리였다. 별 집중 없이 유튜브를 넘기던 가람은 검색창에 다음을 입력해보았다.

키스 잘 하는 법.

누르면 알고리즘이 오염될 것 같은 저급한 썸네일들이 가득했지만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었다. 가람이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눌렀다.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으나 계속 재생되는 영상의 음성은 가람의 귀로 들어와 양심을 쿡쿡 찔렀다.

"첫 번째, 힘을 무조건 빼야 합니다. 특히 남자 분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하시는데요."

가람이 영상을 멈췄다.

'더 못 보겠어....'

자신의 키스는 누가 봐도 힘이 가득 들어간 키스였다.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연인의 어두운 표정이 그제야 이해 됐다. 가람이 이불을 발로 팡팡 찬 뒤 침대를 뒹굴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 누웠다. 가람은 급격히 우울해졌다. 사귀고 처음 만난 날이었는데, 첫 키스였는데, 사귀기로 한 걸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각종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를 채우고 나니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본인을 향한 원망, 속상함, 후회 등이 밀려왔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처지도 못 되는 기분이었다.

"어? 뭐 해?"

혜림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였다. 서러움이 폭발한 가람은 혜림의 등장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 같았다.

"혜림아...."

혜림에게 사실대로 털어놓는 건 꽤나 부끄러움을 이겨내야 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말할 상대가 혜림 밖에 없다.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가람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흠. 키스를 잘 하는 건 어려울 수 있어도, 못 하지 않을 정도로 하는 건 어렵지 않아."

혜림이라면 확실히 고수일 것 같았다. 이왕 다 까발려진 거 차라리 혜림에게 모든 지식을 전수받으리라. 그래서 달라진 모습을 연인에게 보여주리라. 가람은 생각했다.

"이걸 시범을 보여줄 수도 없고...."

혜림이 가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시범을 보여준다고? 허공에 대고 혀를 내미는 건가?'

영문도 못 알아들은 가람이었지만 혜림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그때 어떻게 했는데?"

"엄청... 뻣뻣하게 했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무표정의 혜림이 흠 하고 고민을 하더니 침대에 가람 오른 편으로 앉아 손을 내밀었다.

"자. 이게 네 여친 혀라고 하면. 해봐."

혜림이 가람의 왼손을 끌고 와 혜림의 오른손과 닿게 만들었다.

"해봐."

혜림이 가람의 손 바깥쪽으로 제 손을 휘둘렀다. 혀와 혀가 맞닿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자 가람은 왠지 소름이 돋았다.

"이런 식으로 했을 거 아냐."

"어, 어...."

가람이 첫 키스 때 혀의 움직임을 흉내내려 애썼다. 힘을 최대한 주고 어기적거리는 자세로 혜림의 손을 마구 내쳤다. 마구 치대진 혜림의 손이 혈액순환이 잘 되었는지 빨갛게 물들었다.

"그만, 그만. 그만해."

혜림이 가람의 손을 붙잡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 가람을 응시하더니 뭘 말하려는 듯 혜림이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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