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엣 가문에 생긴 놀라운 이야기

마르엣 가문에 생긴 놀라운 이야기 5

“...아무에게도 말 한 적 없는 비밀 이랍니다. 조수님만 알고 계셔 주세요.”

“... ...어, 어떻게...”

“정말…. 이군요..”

“뭐?!”

“사실... 확신을 가진 건 아니었답니다. 다만... 추측 이었지만요...”

“....”

“후후... 조수님도 사실... 순진한 분이었군요.. 이렇게 넘어가시다니..”

“뭐야?!”

“네에~ 이런 코볼트가 우리 누님의 조수라니.. 가여우신 누님.”

“...너, 잉게르를 언제부터...”

“그리 오래되진 않았답니다. 사실.. 누님의 얼굴도 몰라요. 이름도 확실치 않았답니다. 그저.. 남겨진 기록을 읽고.. 저는 누님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외에는요..”

“.. ...뭐?”

“후후~”

“뭐?”

“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누님은 엄청난 천재셨고, 어머님의 교육철학에 반기를 들고.. 마법을 배워, 이 가문을 나가셨다는 것. 그것뿐이랍니다.”

“아니, 너 방금...!”

“후후... 참을성 없으시긴... 누님은 그리도 똑똑한 분이실 테니, 이렇게 바보 같은 자를 조수로 두신것에.. 이유가 따로 있으시겠죠?”

“아니, 니 누이를.. 뭐?!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그게 뭐 대수인가요? 사랑은 영혼끼리 하는 건데, 세상 모든 기록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담긴답니다. 제가 누님의 영혼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아니, 너...... ...”

“후후... 조수님, 제 동생들이 찾겠어요. 슬슬 가 보시는 게 어떠세요?”

“겨우 그거 하나... ....하아, 아닌데....”

“저는 원하는 대답은 다 들었답니다.. 조수님과 누님이 집에 돌아오셔서 뭘 하실는지는 신경 쓰지 않을게요... 다만, 저와 대화한 것은 비밀로 부탁드려요...? 특히 어머님께는..”

‘별 이상한 놈이...’

충격적인 소식을 가져온 사람 치고는 협박하지도, 뭔갈 요구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자기가 있다는 것만 알아달라는 것이었을까?

맥스는 식은땀을 닦으며 미니와 마이니의 작은 정원으로 돌아왔다.

“...무슨얘기를..하고있었더라?”

“마, 마법지를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세상엔 마법사가 많다는 이야기도요,,..”

그리고.. 그리고...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잉게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녀석이 눈앞에서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있다.

‘...맥스, 적당히 얼버무리고 방으로 돌아가세요. 지금처럼 당황한 상태면 뭘 해도 안될테니까...’

잉게르의 교신이 마치 신이 내려준 계시 같았다. 맥스는 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머리가 아프다는 말만 반복하고 주춤거리며 손님방으로 돌아갔다.

‘좀 자연스럽게 못하겠어요?’

‘이게 최선이야... 어떻게 말을 더 잘해..’

‘머리아프네..’

‘잉게르, 수리 다 끝내려면 멀었어?’

‘아직 한참남았어요... 에휴.. 어떡하... 어, 잠시만요 누가 왔네..’

‘누가 와?’


“안녕하세요, 마법사님! 어제 계약하실 때 주인님이 약속한 조수입니다!”

“아, 그새 왔군..”

“전 비록 마법은 기초지식밖에 모르지만, 집안의 일이고.. 제 일터의 문제니까! 최선을 다해서 보조하겠습니다!”

“... 마법으로 고용된 자가 아니지?”

“예! 저는 빨래와 청소를 담당합니다! 마법은 개인적인 취미예요!”

“흠... 그래, 일단 이쪽으로 와 봐라.”

“옙!”

잉게르는 벽면에 서서 저택의 마법설계도를 조수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이 설계도에 새겨진 모든 마법을 뜯어내라는 아주 귀찮고 손이 가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새로운 마법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마법이 작동하는 동선을 짧고 명료하게. 누가 또 와서 손을 보더라도 고치기 쉽게 깔끔하게. 그러면서도 잉게르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매우 교과서적인 마법을..

“저... 마, 마법사님!”

“뭐냐. 다 뜯었냐?”

“그게 아니라 저.. 저.. 정5급..! 가면마법사 잉게르님...! 저, 저... 저번..! 언어와 이해 논문...! 정말로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지. 진짜로 많은걸... 배운 마법사님인데.. 이렇게 만나뵙게되서…. 영광입니다...!”

“아..”

팬? 아니면 팬인 척하는 방해꾼? 어느 쪽이든 가까이는 하지 말자.

“..고맙네.. 그거나 마저 뜯고 다시 이야기하지.”

“네... 네!”

고장 난 마법을 뜯어내는 조수의 손길이 한결 힘이 있고 빨라졌다. 잉게르는 잠시 바라보다가 남은 마법식 계획을 천천히 구체화했다.

‘잉게르, 조수가 온 거야? 잘됐다.’

‘아, 맥스.. 네. 다행이에요. 앞으로 한 이틀만 고생하면 끝날 것 같아요.’

‘다행이네.. 그래서.. 네 동생 말인데...’

‘네에.. 제가 좀 생각해봤는데요.. 맥스, 며칠만 그 애 앞에서 당황하지 말고 모른 척 지내주실래요?’

‘뭐 생각해둔 게 있어?’

‘이 집에 걸린 마법들은요.. 집이 돌아가게 만드는 생활마법들이랑... 제가 건, 기억 조작마법이 애매하게 엉켜있는 것들이에요.’

‘응..’

‘그러니까, 지금 마법들을 새로 짜 넣으면서, 기억 조작마법도 손을 볼 수 있다는 말이에요. 계약은 [이 집의 마법을 고친다] 였으니까... 이미 걸려있었던 기억 조작마법을 고치는것도... 당연히 계약서 위반이 아니에요!’

‘그 녀석의 기억을 지울 거야?’

‘어때요? 그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나야.. 물론이지.’

‘..버티는거에요. 맥스. 딱 이 삼 일만.’

‘너도 처음 보는 사람이랑 잘 버텨야 해?’

둘은 결연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귀에 달아둔 통신기를 껐다.

이제부터 각자의 일에 집중할 때다.


“...조수, 잠깐 이리 와 봐.”

“예!”

“여기 이 장소가 어딘지 알겠어?”

잉게르는 벽에 그려진 설계도 한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요?... 아, 다락방이네요. 저택 제일 위층에 다락방이 하나 있거든요.”

“쓰는 방인가?”

“아뇨~ 오래된 책이나 버리지 않는 고물들을 모아놓고 있어요. 주인님도 저희가 거기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시고요.”

“그래.. 그렇군. 알겠다. 얼마나 뜯었지?”

“저, 가장 급한.. 조리실과 식당은 다 뜯었습니다..”

“그럼 여기 이걸 옮겨적기 시작해. 내가 나머지 뜯을 테니까.”

“예.. 예..!”

“그냥 따라 쓰기만 하지 말고,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확인하면서 써. 급하면 네가 나중에 진단이라도 내려야 하니까.”

“네... 네!”

타인에게 명령하는 데에 제법 소질이 있는 잉게르는 조수와 자리를 바꿔, 벽에 달라붙은 난잡한 마법들을 힘있게 죽죽 찢어냈다. 제법 일할 맛이 난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낼지도 모른다.

‘어?’

잉게르는 뭔가 발견했다.


맥스는 느릿한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오늘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시네요..”

문 밖에 첫째가 서있었다.

“...첫째.. 너 때문이잖냐.”

“후후.. 머리 아프신 건 괜찮으시죠?”

“...”

“이렇게 할까요? 제가 조수님을 연모하는 거고, 조수님은 제게 바른길을 제시하며 거리를 두는 것이에요. 원래 남자아이는 사랑에 금방 빠지니까, 어머님도 이해해 주실 거에요~”

“...괜히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정말~ 전 도와드리려는 거라니까요?”

“됐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렇게 자꾸 저랑만 만나면서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 말 안 하면 더 의심 받으신다고요! 어휴 정말로..”

‘진짜 잉게르랑 똑같네...’

“아, 조수님~! 또 형님이랑 오시네요~”

“아프신 건 다 나으셨나요?”

“약이 있어서.. 먹고 나왔다.”

“형, 어머님이 왜 부르신 거예요?”

“별거 아니었답니다~”

어린 세 코볼트와 어른코볼트가 탁자에 둘러앉았다.

“...내가 마법지 보여주기로 했지?”

“네~!”

“...여기있다. 아직 두세 번 쓸 수 있겠어..”

“우와아...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그것까진 몰라.. 이런거 쓰는 사람 중 대부분은 모를걸.”

“마, 마법을 쓰는 사람들은 그런 걸 다 아는 게 아니에요..?”

“응... 그렇지 뭐. 똑똑한 애들 한두 명이 만드는 걸 수많은 사람이 사서... 편하게 쓰는거지...”

“우와.. 대단하네요! ..”

맥스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마법지를 구경하며 저들끼리 이건 뭘까, 저건 뭘까 조잘거리던 와중,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왔다.

맥스는 재빨리 마법지를 숨겼다.

“계약서께서 수고하고 계시군.”

“어머님!”

“계약서나 마법사나, 너무 귀찮게 굴지는 말게.”

“예, 어머님. 물론이죠!”

“아 그리고... 오늘따라 좀 부산스럽긴 하네만, 계약서군은 따라와주겠나?”

“...나를?”

“그래. 오래 붙잡진 않겠네.”

“그래..”

맥스는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걸까, 생각하며 순순히 카이사르 마르엣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다양한 종족의 사용인들이 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묵례를 했다.

“....”

카이사르는 큰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는 계약서군과 눈을 마주쳤다.

“자네 이름을 묻는 것도 계약 위반인가?”

“...글쎄다.. 그냥 맥스라고 불러.”

“좋아, 맥스군... 지금 하는 일은 어떤가?”

“갑자기 무슨 질문이지..”

“내가 너무 빙 둘러서 얘기했나..? 다시 말해보겠네. 코볼트로서 마법사 밑에서 일하기가 어렵진 않은가?”

“...별로. 코볼트인게 뭐 어때서.”

“자네도 알지 않은가. 뭐... 당신의 스승일지 고용주일지 모를 가면 쓴 마법사는.. 당연히 코볼트는 아닐 테고, 통계적으로도 코볼트는 마법사를 하지 못해. 그럴 머리가 없어.”

“...본인도 코볼트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건 자기 객관화라고 하지. 그리고 경험에 의한 진실일세.”

경험에 의한 진실! 그런 문장이 존재할 수 있나? 맥스는 서툰 제 공용어 어휘를 탓했지만, 카이사르의 발언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객관화의 오류를 범하고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나이 많고 완고한 고집불통 귀족이었기에, 그의 세상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맥스가 이해했든 못했든, 카이사르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의 의지를 높이 사는걸세. 코볼트라는 태생적 한계를 이겨내고 마법사의 조수로 일하니 말일세.”

“...”

맥스는 기분이 나빴다. 이 사람과 잉게르에 대해 생각하니 불편함이 스멀거렸다.

“마법사의 밑에서 일하는 게 싫증 나면,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나?”

“...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일세. 자네가 내 밑에서 일했으면 좋겠어.”

“... 아까는 코볼트의 태생적.. 어쩌고 하지 않았어?”

“그건 마법사나 마법과 관련된 일이니까 한 말이지, 자네라면 내 밑에서 일해도 잘할 거야.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보게. 내 밑에서 일한다는 말은 곧, 언젠간 내 일을 이어받게 될 거라는 뜻이니까.”

“...?”

후계자 선택. 그것을 원하는 건가? 무리의 수장, 가문의 후계자, 자식을 낳아 대를 이을 수 있는 딸이 없어서! 지금 눈에 보이는 아무 암컷 코볼트나 후계자로 들이겠다고 말을 꺼내는 건가?

맥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제 얼굴을 감싸 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마른세수를 하며 손을 귀 뒤로 넘겼다.

“...지금.. 처음보는 사람한테 할 말인가?”

“걱정하지 말게. 난 사람 보는 눈이 꽤 좋아. 마법사의 밑에서 잡일꾼이나 자처하면서 닿지도 못한 마법에 대한 선망만 갖지 말고, 자네 손으로 기회를 잡아. 어때?”

“...갑자기... 처음..보는 사람이...직업을 바꾸라고 하는데... 누가 좋다고 그러겠어.”

“그래, 알겠네 알겠어. 이번 의뢰가 끝날 때까지 잘 생각해보게.”

“....”

맥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만 꾸벅 숙이며 서재를 나섰다.

이번엔 정원이 아닌 방으로 향했다. 주변에 누가 있나 조심하며 혼자임을 확인하고, 문을 굳게 닫았다.

‘..잉게르 들었어?’

‘...무슨대화였어요 그거?’

‘네가 들은 그대로야. 중간부터 켜긴 했지만...’

‘...설마 후계자로 삼겠다는…. 그런 거예요? 진짜로?’

‘응...’

‘별....’

맥스는 말을 아꼈다. 카이사르는 그들에게 상당히 불편하고 기분 나쁜 인간상이긴 하나, 잉게르의 어머니였다.(잉게르도 싫어하고, 기억도 모조리 지워진 상태라 해도!) 함부로 말을 하기에 꺼려졌다. 잉게르를 너무 닮았었다.

‘별 그지같은 상황을 다 보곘네..’

‘...잉게르 나 어떡하지...’

‘걱정 말아요.. 좀 어이없긴 하지만... 의뢰가 끝나면 다 없던 일이 될 거니까...’

‘휴우... 왜이렇게 험난하냐..’

‘으음... 제가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요. 대충... 왜 이렇게 된건지... 이거랑 연결 지어보니까 그럭저럭 말은 되거든요...’

‘뭔데?’

‘..놀라지 말고.. 주변에 아무도 없죠?’

‘응, 나 혼자야.’

‘맥스, 마르엣 가문은... 대대로 마법사 가문 이예요.’

‘뭐?’

‘카이사르도 마법사였어요 맥스.’

‘..무슨소리야 이해가..’

‘우리집안은 대대로.. 마법을 쓸 줄 알아요. 가주만 몰래!’

‘몰래? 그럼... 지금 카이사르도….’

‘아니, 그건 아니에요. 천천히 설명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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