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프롤스토] 추억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눈을 꿈벅였다. 깊은 바다속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꿈길에 내려앉은 과거의 나와 내 친구들. 싸우고 있는 내 선생님들. 그리고 익숙한 함선.

“그리고 알고 있겠지? 너희와 나 사이에는-”

‘아, 알았다.’

이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민희가 납치된 뻔 했던 그 날. 하지만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마법연습을 하거나 시공간이 꼬인 것도 아닌데.

‘머리아파...’

지금까지의 마법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마법의 성장은 무한하니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강한 마법사, 그러니까 세계권 마법사 중에는 이럴만한 사람이 없다. 시간마법은 고위마법인걸.

띠링!

그때, 알림음이 울렸다. 순간 문이가 자동으로 켜진건가 했지만 그게 아님은 내 마력과 눈앞의 현상으로 알 수 있었다. 알림음과 함께 하나의 팝업창이 뜬 것이다.

[과거를 살짝 바꾸어봅시다!

이곳은 당신의 마지막 책을 좋아하던 독자들의 2차창작물입니다. 독자들은 ‘미래에서 온 당신’이 이 상황을 압도하고 그리워하던 이들과 인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세요! 당신의 욕망을 충족시켜도 좋습니다.

보상: 마법석x10, 2차창작물 원본(소설)x1 ]

팝업창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독자님들이 쓴 책 속이구나.’

나도 한 때 동인을 좋아했던 입장에서 그들이 이해가 갔다. 그게 어떻게 마법으로 발현됐는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결국 나와 내 글을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2차창작물은 나오지 않는다.

‘조금 어울려 줄까?’

나는 작가인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외면할 줄 몰랐다. 그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감사하잖아. 다른 사람의 수작이었으면 부쉈겠지만… 독자님이니까. 나는 다시 안내창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거 되게 스승님 생각나네.’

반가운 안내창을 살짝 끌어내리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분명 ‘압도’하라고 했지? 세계 2위, S랭크 마법사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소리일테다.

‘상대는 에이온, 하늘마법사니까… 새벽하늘을 띄워볼까.’

나는 동영 전체에 내 마력을 깔았다. 남빛과 은빛의 마력이 조화롭게 세상을 뒤엎었다. 언듯보면 밤하늘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내 속성은 정화고, 새벽이니까. 마력으로 뒤덮인 밤하늘 끄트머리에서 해가 떠올랐다.

“무슨!”

“긴장을 놓치지 마라! 다른 마법사다!”

“저것도 하늘이니 같은 하늘마법사 아닙니까?”

“달라! 마력도, 속성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하늘마법사 본인이 당황하고 있지않나!”

“아군일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10% 미만. 대현과 관련있는 인사중에 저런 마법사는 없다. 계속 경계해.”

스승님과 제현오빠,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바짝 긴장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차피 그들과 인사하는 것도 미션이었으니, 나는 조심히 그들 곁으로 내려앉았다.

“안녕하세요, 대현의 선생님. 그리고 가드분들.”

“너는 누구지?”

나는 말을 삼켰다. 물론 가상세계인만큼 말을 꺼낸다고 타임패러독스가 일어나진 않을거고, 문제가 생긴다 해도 기억을 지우면 괜찮아질 거다.

“누구냐고 물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건 참을 수 없어서…

“새벽별무리 리더이자 <새벽의 별>, 유은하입니다. S랭크 마법사고요.”

나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웃어보였다. 아, 물론 환각으로 숨기기도 했지만. 선생님을 한 번, 한 때 적이었던 동료들을 한 번, 그리고 내 친구들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다 과거의 나와 눈이 마주쳐 나는 웃어주기도 했다.

과거의 나는 들켰다는 감각에 몸을 떠는 거 같지만… 나라면 알 거다. 우리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어릴 때부터 감지에 능했고, 감도 좋았으니까.

“은하? 저 사람이 은하라고?”

“그러면 은하는 S랭크가 되는 건가? 멋있다...”

“동명이인 아니고 진짜 은하가 맞아?”

“박한수 너 바보야? 누가봐도 은하잖아!”

“누가 누구보고 바보라는 거야? 의심정도는 해보는 게 보통 아냐?”

“얘들아, 쉿… 이쪽, 본다.”

““헙.”“

“그리고 진짜 ‘나’는 맞는 거 같은데…”

“그럼 아군이네! 민희 구해주겠다!”

인하의 어린 모습, 그리고 죽어버린 다른 친구들의 만담은 귀여웠다. 하지만 저 때 나름 보호자들 속이고 구경간거라, 들키면 난감했던 거 같다. 끝내고 불러볼까.

“지원, 나왔습니다.”

나는 에이온과 한재일을 마력으로 밀쳐내고, 민희의 최면을 풀어냈다. 최면이 풀려서 얼떨떨한 민희는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나는 그런 민희를 염력마법으로 쑥 끌어 선생님과 선배들 곁으로 옮겼다.

“어, 내가 왜 여기에… 헉, 선생님? 오빠?”

“민희야!”

재회장면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참 좋아. 나는 대현 인사들이 감격에 젖은 틈에 도주하려던 한재일과 에이온을 잠재웠다.

'화려한 효과를 보이는 것도 좋지만, 압도에는 역시 일격필살이 낫지?‘

앞으로 고꾸라지는 둘의 곁에 다가가 둘을 짐짝처럼 들처매고 대현 사람들의 곁으로 향했다. 에이온은 몰라도 한재일은 꼭 시키고 싶은 게 있었거든. 가상상황인 만큼 욕망껏 해보자. 현실에선 이제 불가능하니까.

“귀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귀하, 협조. 딱딱한 말이었다. 못알아보신건가? 새벽하늘을 깔았으니 적어도 정신세계 구축에 대한 팁을 준 민 선생님은 눈치챌 줄 알았는데. 나는 조금 더 힌트를 던졌다.

“천만에요. 저는 어린 아이를 지키는 대현의 교칙을 정말 사랑하는걸요. 대현초중고 출신이라 그런가.”

“그러십니까? 저희로썬 감사한 일이군요. 그 둘은 넘겨주시죠.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건 곤란해요. 한재일이라면 모를까, 에이온은 안됐다. 얘는 돌아가서 별을 지켜야지. 하지만 내 말에 대현사람들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음, 역시 부가설명을 더 해드릴까.

“다시 소개드릴게요. 저는 미래에서 온 유은하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은하?”

“은하라고? 내가 아는 그 은하?”

“네, 대현초등학교 6학년 유은하요.”

앗, 사람들의 눈이 똘망해졌다. 이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도는 건 금방이었다. 대체로 은하가 S랭크라니 신기하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이럴거면서 첫 소개때는 왜 못알아본건지. 물론 어린 애가 갑자기 커서 S랭크마법사라 하면 나도 못믿겠지만, 흥이다. 어린시절 지인들과 있어선지 좀 유치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은하야, 둘의 신병을 양도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이지?”

그 와중에 스승님은 냉철하게 현 상황에 대해 물으셨지만. 물론 어조는 친절했다. 응, 스승님답네. 나는 에이온은 아공간에, 한재일은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둘의 납치 사유는 일단 죽어가는 행성을 살리기 위해서인데… 어쨌든 그 행성엔 마법사가 필요하더라고요. 민희는 못주고, 방법은 잘못됐지만, 이해는 가서요. 한재일은 그냥 제가 좀 쓸 데가 있어서?”

한재일에게서 잠을 거두자 내손에서 떨어진 충격에 잠이 깼다. 한재일은 인상을 찌푸리고 일어나더니 스승님과 눈이 마주치자 탈주를 시도했다.

‘이런, 그러면 안되지.’

선생님들은 미우나고우나 당신을 그리워했다고. 당신이 셋의 사후에 계속 무덤에 드나들었듯. 나는 한재일을 결계에 가두었다. 시공간마법이라지만 원형은 결계라. 익숙한 마법에 선생님들은 한결 친근한 표정을 지었다.

“일어났으면 당신이 해야할 게 있어요.”

“이게 무슨 일일까…”

“진솔하게 모든 걸 털어놓으세요. 민선생님과 민아선생님 앞에서. 감정이든 할 말이든 좋으니까. 준휘선생님은… 통화를 연결할게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헛소리. 계속 그러면 마법으로 다 말하게하는 수가 있어요. 저, 정신계 마법사라.”

“...나도 한 정신계 하는데 말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환각의 하위마법인 최면인데다 랭크도 나보다 낮아 제압당한 건 벌써 까먹었나보지. 소니아도 이긴 나다. 정신계에서 날 이길 자는 드물다.

“서로 그리워할거면서 왜들그러는지 모르겠단말야. 어쨌든 준휘쌤 연결해줄테니 대화해요. 조금 있다 올게요.”

“어디가는데?”

“온 김에 친구들 좀 보려요. 아, 제현오빠. 민희 잠깐 빌려가도 돼요? 아니다, 같이 가죠.”

“...그래.”

“한재일씨, 후회할 일은 하지마세요. 마법사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뭐? 잠깐만-”

나는 한재일에게 한마디를 던져둔 채 제현오빠와 민희의 손을 잡고 친구들이 있는 차원으로 들어갔다. 사실 손은 안잡아도 되지만 그냥 잡고싶었다. 오랜만이니까. 내가 사이세계에 내려앉자 친구들과 과거의 나는 놀란 토끼눈을 했다. 제현오빠나 민희도 눈이 커졌지만… 그건 얘네가 여기 있어서지.

“제현오빠!”

“민희야!”

“은하다!”

“진짜 은하예요?”

“어, 응...”

어린 친구들과 대화하려니 낯설었다. 과거 친구일 때도 나이차가 나는 건 똑같았는데. 역시 신체나이에 영향을 받는걸까. 조금 정신사나운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애들은 민희와 감격스러운 인사를 나누었고, 이윽고 그들의 관심의 대상은 나로 넘어왔다.

“그래서 진짜 은하야? 신기하다~ 은하는 S랭크 마법사가 되는구나.”

“근데 그럴거 같았지? 은하잖아!”

“은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냐. 그래도 친구가 S랭크라니, 신기하긴 하네.”

“오빠, 오빠는 은하가 S랭크 될 거 알았어?”

“꼬맹이 재능이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정도일 줄은 몰랐지. 아니, 시간이 충분하다면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제현오빠는 어린 나를 지켜보다가 머리를 짓누르듯 쓰다듬었다. 장난기와 화가 어린 표정을 보아하니, 혼날 거 같은데.

“근데 유은하 너. 애들을 이런 데 끌고오면 돼, 안돼.”

“자모태서여...”

역시 혼났다. 볼도 잡아당기고, 머리는 엉망. 과거의 나 좀 삐지겠네. 본인 잘못인 거 아니 금방 풀리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무모한 행동이었다.

[어쩌면 특수한 마법이라면 그곳에 있는 네게 먹혔을지도 모른다!]

그 때 스승님이 해주신 말이 맞았다. 지금의 나만해도 과거의 유은하를 정확히 보지 않았나. 하고자한다면 공격도 가능했겠지. 캘리, 그 중에서도 일부 정도가 아니라 더 위협적인 적이었다면 당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저 때의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 같다. 꿈은 날 배신하지 않을거라고. 그래봤자 학생, 저랭크인 이상 위험한 건 매한가지지만. 제현오빠는 과거의 내 머리를 쓰다듬다 나를 힐긋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빠 저 피해요? 궁금한 건 없고?”

“아니, 그, 낯설어서 그래,요.”

우와, 제현오빠가 나에게 말을 높여? 이건 신선했다. 마지막으로 본 (들은)모습이 처참했고, 그 까닭에 좀 울었기에 어린 제현오빠가 더 신선했다.

“제현오빠가 말높이니까 낯설다. 편하게 말해요, 오빠.”

“노력해보마… 이 시간대는 어떻게 오게 된거냐?”

“음, 아마도 독자님의 시간마법?”

“아마도는 또 뭐야.”

“하하. 깨고 나가면 알게되겠죠? 일부로 여기 있는거라. 반갑잖아요.”

나는 웃고서 친구들을 꼭 껴안았다. 친구들의 어린버전은 오랜만이란 말이에요- 거짓은 아니었다. 어린 친구들의 작은 품은 너무 따스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복수와 정화가 전부였다. 이 순간을 지키고 싶었는데.

“저, 다시 선생님들께 가볼게요.”

“응? 나 미래 은하에게 묻고싶은 거 많았는데!”

“야, 다시 오겠지.”

“음, 다시 안 올 거라 하나 정도는 받아볼까. 아, 랭크질문은 안 돼.”

지금즈음이면 선아아주머니가 왔을 거 같다. 그러니까 아무리 없어질 세계라 한들, 재미로 작은 미래 선물을 줄 겸 답변해주고 가야지. 아무리 그래도 친구들의 마지막 랭크와 내 랭크를 비교하긴 좀 그러니까 랭크는 빼고. 나는 대학을 갔어도 졸업준비하고 있을 나이고 애들은 영원히 고등학생인걸. 비교될리가 없다.

“은하 너무해!”

“안너무해. ”

나는 일부러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민희는 안그러면 징징대며 조르는 면이 있으니까…. 아, 물론 남들 앞에선 안그랬지만 말이다. 얘가 화내거나 상황정리하는 거 보면 애가 성숙하긴 했다.

“그럼 나 질문할래. 미래 은하는 연애중인 사람 있어?”

아, 그러고보니 인하가 6학년이 끝나고 한수랑 사귀었던가? 청춘이구나. 계속 예쁘게 연애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살짝 불그스름한 인하의 얼굴을 보다가 게이트를 열었다.

“있어.”

그리고 답해주자마자 쏙 게이트로 도망갔다. 으아, 내 얼굴 새빨간 거 아냐? 혹시 몰라 얼굴에 환각을 꼼꼼히 둘렀다. 다들 A랭크 수준이니 들킬 일은 없을 거다. 아마도.

“어, 은하 왔다!”

“은하야.”

“아, 선아 아줌마.”

“이야기는 들었는데, 진짜 은하니?”

“네, 저예요.”

“우리 은하가 S랭크 마법사라고…. 그래, 우리 은하가 잘나긴 했지. 기세가 안 느껴지는 걸 보니 컨트롤 실력은 여전하구나?”

그리운 선아아줌마의 목소리에 나는 웃어보였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컨트롤은 내 장기였다.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학년 때 마력을 옮기는데 그 제현오빠도 나의 몇 배는 걸렸다길래 뜨끔했었지. 물론 지금 선아아줌마가 못 느끼는 건 컨트롤도 있지만, 내가 최상위권 마법사여서겠지.

“그럼요. 여전하죠.”

“으음, 은하가 S랭크면 대련은 해 볼 수 있으려나? 아니, 역시 은하는 별로 대련하고 싶지 않아할 거 같기도 하고?”

하긴, 굳이 힘자랑 하자고 맞대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때즈음에도 실력향상을 위한 대련에는 적극적이었던 거 같은데? 뭐,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선아아줌마가 아는 ‘나’는 공격을 기피하던 모습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공격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련이 무리인 건 똑같지.’

같은 S랭크여도 격차가 크다. 내 쪽에서 파워를 조절 못 할 건 없지만, 여기는 동영인걸. 해저도시도 도시이고, 그말인 즉슨 선아아줌마의 마법에 부서질 게 많다는 거다.

“아줌마가 원하면, 결계를 치고 할까요…?”

물론 내가 결계를 치면 다르겠지만.

“은하가 싫지않다면 우리 은하 얼마나 컸는지 보고싶긴 하네. 사실 나 정도 되면 괜찮은 대련상대 찾기도 어렵고.”

크게 공감이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건 우리의 특이성이겠지. 일반적으로 저게 맞을 거다. 특히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점이라면 더더욱. 나는 조용히 결계를 쳐 선아아줌마 말에 동의를 표했다. 선생님들 곁에는 특히 결계를 단단히했다.

“그럼 간다?”

선아아줌마의 말 직후 냉기가 치솟았다. 맑고 서늘한 마력이 선아아줌마를 감쌌다. 하지만...

‘약해.’

그래, 약했다. 옛날엔 정말 강해보였는데. 옛날에는 선아아줌마만 있어도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테러도, 민희의 납치도…

‘기껏해야 트라베리아의 실험장 정도일까.’

그러고보니 이 때도 트라베리아만 해결하지 못했구나. 하긴, 미영할머니마저 그들의 목표물이었는데. 돌아보니 선아아줌마가 다르게 보였다. 물론 한참 성장중일 때도 선아아줌마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음은 느꼈지만.

‘어렸어. 약하고.’

나는 날라오는 얼음창들을 가볍게 쳐냈다. 피할 수도 있지만, 굳이? 방향이 바뀐 얼음창은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래서 이내 그 창들을 마력으로 분해해 새벽하늘의 별로 만들었다. 수분이 빛에 반짝이며 별처럼 보였다.

“은하 정말 강해졌구나! 방어가 정말 뚫리질 않네.”

“방어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알지, 은하야? 공격이 필요할 때도 있어.”

그래, 필요했다. 나는 그 사실을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내 소설 속 드래곤을 불러냈다.

“이제 저도 알아요.”

그리고 선아아줌마를 삼켰다. 텁. 삼키는 건 한순간이었다. 벨라트리저에게 그 참극은 고작 이정도였겠구나. 어렵지 않다못해 손쉬워서 짜증이 났다. 손쉬운만큼 가벼운 마음가짐이었을까. 아무리 복수가 명목이라지만, 관련자를 잡은 것도 아닌데 웃을 필요까지는-!

‘진정하자, 이제 끝났어.’

나는 지난 복수를 생각하며 감정을 내리앉혔다. 여기 오래있으면 안될 것 같다. 대련이 끝나면 마지막 인사만 나누고 돌아가야겠어. 나는 선아아줌마를 다시 꺼냈다.

아줌마는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물론 난 선아아줌마에게 부상을 입힐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마력에 의한 충격만 받은 상태였다. 상대가 다치지않는 대련은 오랜만인 기분이다.

“아, 졌네. 지는 것도 오랜만이다! 우리 은하, 정말 강해졌구나? 인하도 그만큼 강해졌으려나?”

“네, 인하도 정말 강해요. 다른 애들도 그렇고요.”

“그거 궁금하네!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있겠지?”

나는 대답없이 웃었다. 기세를 내뿜기 시작한 이후부터 경악에 차있던 스승님, 선생님들, 그리고 오빠와 친구들을 전체적으로 훑었다.

“이제 갈 시간이 다 돼서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들의 얼굴을 면면히 살폈다. 다시 뇌리 속에 박아넣었다. 마지막 기억보단 조금 어리지만, 여전히 익숙한 얼굴. 내 그리운 얼굴들.

“미래에서 봐요.”

그리울거예요. 오랜만에 무덤에 찾아갈게요. 나는 속으로 그런 말을 삼키고 이 가상세계를 부수었다. 부수고 나오자 아까의 상태창이 현실에도 떠올랐다.

[과거를 살짝 바꾸어봅시다! (완료!)

독자들은 ‘미래에서 온 당신’이 이 상황을 압도하고 그리워하던 이들과 인사한 모습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당신의 미래가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보상: 마법석x10, 2차창작물 원본(소설)x1 (수령하기) ]

수령하기를 누르자 보상이 뚝 떨어졌다. 오늘은 내가 쓴 책이랑 이 소설을 들고 무덤에 들러야겠다. 식물마법엔 일가견이 없으니 오랜만에 한수의 마법을 써야겠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꽃을 피워 가져가야지.

나는 능소화 한 송이를 만들었다. 무덤에 둘 거는 별개고, 이건 장식용이라 환각마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보단 조금 더 부드러운 주황빛인 능소화를 작은 유리병에 꽂아넣었다. 그리고 유리병에 꽃말을 적어넣었다.

-능소화: 그리움, 영원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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