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45화

샛길 하나

여전히 꼭대기 층에 위치한 태홍은 웬일로 갤럭시단의 복장이 아닌 멀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제노가 빤히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연구 시설 증축에 관한 회의를 하고 오는 길이다.”

아 맞다, 얘 대기업 회장이었지.

갤럭시단의 겉모습은 신오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업이었다. 도서관이며 연구소, 역사박물관 등 여러 시설이 태홍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도시에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신오신화의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재계의 유명인, 그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태홍.

이런 범죄 조직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으로서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납득을 마친 제노가 말했다.

“호수에 감시를 붙이지 않았던데.”

“그게 조건이었으니까.”

“… 전투를 하면서 호수 근처가 좀 엉망이 됐어. 연구원 한 명에게도 최면술을 걸었고.”

“야생 포켓몬의 소행으로 해두겠다.”

태홍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제노가 속으로 감탄했다. 대기업 최고. 제노가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태홍이 입을 열었다.

“다쳤나?”

“움직이는 데 무리는 없어.”

제노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미 온몸에서 소독약 냄새가 풍기고 있었기에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런가. 담백하게 답한 태홍이 말을 이었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 따라와라.”

태홍과 같이 움직이면 간부들은 물론이고 몇몇 조직원들도 우르르 따라왔다. 대충 풀어놓으면 떼로 몰려다니며 알아서 산책하는 시골 동네 포켓몬이 된 기분이었다.

제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태홍이 철저한 보안으로 잠긴 공간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안은 여러 기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초록색의 액체로 채워져 빛나는 실험관 세 개였다.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들의 용도를 눈치챈 제노가 전설의 포켓몬이 든 몬스터볼을 꺼냈다. 수석 과학자인 플루토가 다가와 그것을 받아 갔다. 그리곤 실험관의 앞, 볼이 딱 맞게 들어가게 생긴 동그란 구멍에 볼들을 하나씩 끼워 넣었다.

위잉- 세 몬스터볼이 기계 안으로 삼켜지듯 들어가고, 실험관에 거품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눈을 감고 있는 전설의 포켓몬들.

“오오…!”

“정말로 잡아 왔잖아…!”

“… 허세는 아니었단 말이군요.”

곳곳에서 자그마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간부들 또한 제노가 혼자 힘으로 포획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이윽고 플루토가 키보드를 조작하자 세 포켓몬들의 몸에 가느다란 기계 줄기가 촉수처럼 움직이며 달라붙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한 에너지야…!”

화면에 뜨는 수치를 보며 플루토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지시에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작동하는 기기를 바라보던 태홍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으로 시작되었다, 신세계를 만들어낼 위대한 발걸음이…!”

*

“- 이런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제노는 플루토의 목소리에 회상을 마치고 정신을 차렸다. 그가 실험관에서 시선을 떼고 뒤돌자,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모두가 제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부담스러워.

“… 듣고 있기는 했나?”

“아니, 뭐….”

엄청 대단하다는 건 알겠어. 제노가 그렇게 말하자, 플루토의 표정이 말하는 감자 수준의 학부생을 보듯이 변했다. 얀마, 나도 내 전공인 배틀로 싸우면 자신 있거든? 제노가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결국 복제 준비가 끝났다는 얘기잖아?”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완성한 빨강쇠사슬을 하나 더 만들어낼 예정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처음 만들 때보단 수월하겠지.”

전설의 포켓몬들의 힘을 과학기술만으로 복제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태홍은 결국 해낼 것이다. 태홍의 답에 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너무 조급해하진 말고.”

“알고 있다. 서두르다 일을 망칠 순 없으니.”

태홍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아무래도 순조롭게 준비가 착착 되어가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제노가 이어 말했다.

“참, 빨강쇠사슬을 만들어낼 공간은 따로 준비했겠지?”

“폐쇄된 지 오래된 공장 하나를 사용할 생각이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설비를 다시 세우느라 돈이 배로 들었다고.”

마스가 품에 든 바구니에서 포핀을 주섬주섬 꺼내먹으며 물었다. 제노가 답했다.

“그렇게 해야 추적을 따돌리기 쉬워. 국제 경찰이 엮이는 건 너희도 사양이잖아?”

“….”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방해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국제 경찰, 그 단어에 마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넌 그냥 포핀이나 맛있게 먹으렴.

“그리고 얘기한 대로 호연 지방에 감시 인원을 배치해 두었다.”

“고마워.”

“그건 또 왜 그런 거야? 너, 여기서 호연지방이 얼마나 먼지 알기나 해? 거기까지 애들을 보내느라 꽤 고생했다고. 그 파이어단이랑 워터단인가를 꼭 봐야 돼?”

“마그마단이랑 아쿠아단이야.”

“아무튼.”

포핀먹음이가 이번에도 태클을 걸었다. 제노는 준비해 둔 변명을 꺼냈다.

“지금은 별거 아닌 집단 같지만 그들의 목적은 결국 세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거야. 그 과정에서 유적도 많이 파괴될 거고. 여러모로 방해돼.”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는지 드디어 마스가 조용해졌다. 적당히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태홍이 말했다.

“유적을 정말 소중히 여기는군.”

“….”

“뭐, 네 계획에 방해가 된다면 원하는 대로 해라.”

태홍의 눈이 순간 거짓을 꿰뚫듯 날카로운 빛을 띠었다가, 한 번의 깜빡임에 그것을 사그라트렸다. 젠장, 이래서 그를 직접 보길 꺼린 거였는데.

태홍은 매번 제노가 가진 불안을 예리하게 잡아냈다. 감정 때문에 세계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속을 읽어냈다.

“… 그래.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그리고 이런 보고는 웬만하면 전화로 해, 여기까지 오는 것도 귀찮으니까.

제노가 그렇게 말하며 모자를 한층 더 깊이 눌러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무례한 녀석이라며 간부들이 제각각 제노의 흉을 보았으나, 태홍은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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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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