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46화

샛길 하나

예정에 따라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차량. 길고 지루한 이동길에 난천은 울리는 알림을 확인했다. 화면에 뜬 것은 카드 사용 내역. 상세 내용에는 장막시티 내 한 마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 가격이면 뭘 산 걸까, 식재료? 난천의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뒤이어 문자가 전해졌다. ‘나무 열매가 할인을 해서 포핀을 잔뜩 만들었어요.’ 그런 내용과 함께 전해진 것은 알록달록 예쁘게 완성된 포핀들의 사진. 그것을 확인한 난천이 슬쩍 웃었다.

스스로도 지나친 감시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순순히 따라주는 제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난천이 처음 제노를 혼자 두고 외박을 했던 때,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가 본 것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제노였다.

냉장고며 서랍에 탁자까지, 난천이 자리를 비운 약 이틀 동안 전혀 변화가 없는 집안의 모습에 다급히 그를 깨워 추궁하자 제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래,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제노는 누군가 할 일을 쥐여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잠만 자는 유형이었다. 그 잠은 무언가 이상이 생길 때까지 전혀 깨지 않았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모습에 난천이 큰 충격을 받은 사이, 제노의 가디안은 이런 상황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그를 일으켜 화장실로 데려갔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제노가 머리를 질끈 올려묶으며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 죄송해요. 식사는 하셨어요? 지금 바로 준비할까요?

그러고선 휑한 냉장고 안을 확인하고 곧장 외출준비를 하는 모습에 난천은 그를 붙잡고 강제로 소파에 앉혔다. 너나 챙겨 먹어! 소리를 지르곤 곧장 전화로 음식을 주문했다.

배달 온 죽을 멍하니 바라보는 제노에게 숟가락을 쥐여준 그는 다 먹을 때까지 일어날 생각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단단히 화가 난 그 모습에 제노는 미적미적 식사를 시작했다.

이후 제노의 이미지가 어떻게 바뀐 것인지는 몰라도, 난천은 그가 잠시라도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를 혼자 두고 나가 있을 때면 적어도 삼십 분에 한 번씩 연락이 왔다. 문자에 답장이 없으면 곧장 전화가 오는 탓에, 제노는 낮잠조차 자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암묵적으로 생긴 룰은 제노가 주기적으로- 특히 식사 시간마다 먼저 연락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나마 제노의 취미가 요리라서 다행일까. 난천은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 답장을 남겼다. 차량의 속도를 높인 난천이 벌써부터 돌아갈 때 무엇을 사갈지 고민했다.

*

“… 그래서 이걸 다 사 오셨다고요.”

“응!”

자랑스럽게 답한 난천이 이것저것 꺼내 보였으나, 관심 분야 외엔 딱히 보는 눈이 없는 제노로선 그저 예쁜 잡동사니들 같았다. 이건 언제 쓰고, 저건 어떻게 쓰고, 어쩌고저쩌고.

설명을 이어 나가던 난천이 음흉하게 웃으며 비장의 무기로 숨겨두었던 마지막 상자를 꺼내 들었다.

“자, 이건 마음에 들 거야.”

“뭔데요?”

“짜잔~”

포장을 열자 나타난 것은 위스키병이었다. 추운 지방이니만큼 신오에는 유명한 술이 많았다. 병에 붙은 라벨을 확인한 제노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위스키 좋아하니? 난천의 물음에 제노가 곧장 답했다. 저 술은 다 좋아해요.

늦은 시간,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탁자 위에는 위스키가 든 잔 두 개와 플래터가 놓여있었다.

안주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말린 고기에 세 종류의 치즈, 그리고 짭짤한 맛의 크래커와 프레첼까지.

난천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제노는 술을 마실 때 짠맛이 나는 간식을 곁들이는 걸 좋아했다. 딱히 직접 물어본 건 아니고, 냉장고 안을 확인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난천이 위스키가 든 잔을 들자 제노 또한 제 것을 들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유리잔이 부딪쳤다.

난천이 잔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향을 맡았다. 이윽고 잔에 입을 댄다. 입술만 살짝 적시듯이 적은 양을 입에 머금고 맛과 향을 음미했다. 충분히 즐긴 난천이 의견을 묻기 위해 제노를 바라보았다.

“….”

“….”

“… 괜찮니?”

“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이미 비어 있는 제노의 잔이었다. 마파람에 돌살이 눈 감추는 속도보다 빨랐다. 그는 강한 알코올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침을 자꾸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순간 든 불안한 느낌을 무시하지 않은 난천이 위스키병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토닉워터와 레몬을 꺼냈다.

아까보다 커다란 크기의 잔을 찬장에서 꺼내 얼음을 가득 채운다. 위스키와 토닉워터를 적당한 비율로 채운 후 반으로 자른 레몬에서 즙을 짜내어 넣는다. 나머지 반쪽에서는 토핑으로 올려줄 조각을 하나 잘라 잔에 담갔다.

“자, 훨씬 나을 거야.”

“감사합니다.”

난천에게서 잔을 받아 든 제노가 내용물을 한 모금 삼키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맛있어요! 곧장 돌아온 감상평에 난천이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이볼로 만들면 상대적으로 섭취하는 알코올의 도수가 낮아진다. 그렇게 생각한 난천이 안심하고 제 몫의 위스키를 즐기기 시작했다.

다만 그가 간과한 것은 어차피 많이 마시면 도수는 상관없다는 점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난천이 제노에게서 잔을 뺏어 들자, 그의 손이 느릿느릿 난천에게로 향했다.

“안돼.”

단호한 난천의 말에 제노가 대놓고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 한껏 모은 눈썹. 평소 감정 표현이 적은 제노에게서 볼 수 없는 귀한 표정이었으나 난천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가 작게 한숨 쉬곤 테이블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귀여운 얼굴을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더- 뎌도 도우게여.”

“그냥 앉아 있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모양새에 난천이 그를 다시 소파에 앉혔다. 하지만 제노는 난천이 빈 잔을 들고 부엌으로 사라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비틀비틀 방으로 향했다. 난천이 거실로 돌아왔을 때 소파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에 갔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방 안에서 포켓몬의 비명이 들려왔다.

난천이 급하게 제노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난천은 제노의 기이한 술버릇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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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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