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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아르세우스 6화

가지 않은 길

제노는 코기토 교수님께서 내어주신 과제… 아니,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호수로 향했다.

진실호수.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동굴로 들어간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포켓몬을 제압하고 나자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엠라이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를 지키는 전설의 포켓몬과 마주하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원래의 세계에서 갤럭시단의 연구소에 갇혀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을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이 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당기는 느낌이었다. 몸이 무거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제노에게로 허공에 부유한 엠라이트가 다가왔다.

- 그대의 감정을 원한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일순 엠라이트의 이마에 박힌 붉은 보석이 빛났다. 너 말할 줄 아는 거였니. 제노가 당황한 사이 팔다리를 팔랑인 엠라이트가 말했다.

- 그대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미안한데 사람 잘못 봤다. 허나 제노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엠라이트가 답했다.

- 다만 그 마음이 너무나도 여려 지금은 도망치고 있는 것뿐.

“….”

제노는 답하지 않았다. 이쪽을 향한 금빛의 눈동자가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것에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 슬픔의 괴로움을 알아야 즐거움의 소중함을 아는 법….

- 슬픔이 두려운가?

눈을 한 번 깜빡인 엠라이트가 허공에서 빙글, 돌았다.

- 세계를 다시 하나로 잇기 위해 그대에게 이것을 주겠다.

눈앞에 생겨난 작은 빛이 제노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엠라이트의 깃털이다. 그것을 받아든 제노가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는듯 뒤돌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대와는 다시 만날 거란 느낌이 든다.

- 파트너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 다시 만났을 때, 우리도 그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제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엠라이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 잊지 말아다오, 영원한 슬픔이란 없다는 것을.

큐우웅, 울음소리를 흘린 엠라이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멍하니 서 있는 제노를 향해 월로가 다가왔다.

“방금 그 포켓몬과 대화하신 건가요? 포켓몬이 뭐라고 했나요?”

“… 포켓몬이 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제노가 그렇게 말하자 월로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제노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다음 호수로 향했다. 너 N(중의적 표현)이야?

*

중간에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무사히 모든 재료를 모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예지호수의 숨겨진 동굴에서 만난 조로아크를 제압하면서 생긴 사건이었다.

데리고 있는 포켓몬으로 적당히 두들겨 패주다가 마무리를 지으려던 순간 위기를 느꼈는지 조로아크가 갑자기 그 모습을 바꾸었다.

대체 어떤 환영을 만들어낼지 긴장하던 그때, 익숙한 남자가 나타났다. 오렌지색으로 보일 정도로 짙은 금색 머리, 날카로운 눈매, 목에 걸린 은빛 펜던트.

제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린의 모습과 같았다. 그가- 아니, 그린의 모습을 한 조로아크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제노에게로 손을 뻗었다.

제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머리에 헤비볼을 세게 던져버렸다. 빠악-! 굉장한 소리와 함께 조로아크가 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띠잉, 띠잉, 띠잉, …달칵. 바닥에 떨어진 헤비볼에서 포획이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노는 그것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대신해 월로가 다가와 볼을 손에 쥐었다.

“… 뭔가요, 시공의 균열 너머에 두고 온 연인이라도 되는 겁니까?”

“….”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제노는 말 없이 그의 손에서 볼을 뺏어 들었다. 오 박사님이 들으셨다간 뒷목 잡고 쓰러지실 소리다. 그러나 제노의 침묵을 뭐라고 해석했는지, 월로는 그의 옆에 착 붙어 마구 쨍알거리기 시작했다. 어우 시끄러워.

“잠시만요, 이도 님! 어디 가세요!!”

제노는 월로를 두고 혼자 워글에 탑승했다. 워글이 순식간에 높게 날아오르고, 밑에서 월로가 무어라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안개의유적.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월로는 제노의 뒤를 이어 도착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호수의 세 포켓몬의 도움을 받아 빨강사슬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순순히 풀리는 일에 코기토가 드디어 마음의 짐을 덜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월로가 물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바로 빨강사슬을 주었다면 될 텐데, 어째서 세 번의 시련을 거치게 한 걸까요?”

“가지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시험하려는 게 아닐까.”

“….”

그 답에 제노가 눈을 도르륵, 굴려 코기토를 바라보았다. 다시 월로가 말했다.

“그렇죠.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빨강사슬을 나쁜 사람이? 쓸 곳이 있긴 하겠니?”

“글쎄요, 세계를 잇는 것 외에도 어떤 역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다시 눈을 굴려 이번엔 월로를 바라보았다.

그게 나야. 양심이 심장 위에서 탭댄스를 췄다. 입을 꾹 다문 제노는 상황의 마무리를 위해 천관산의 꼭대기, 신오신전으로 향했다.

*

“이도… 그간 자네를 의심해서 미안했다. 내 진심으로 사과하마…!”

“….”

아, 예, 뭐….

“신오 님께서 내게 말하고 있어! ‘빨 강 사 슬 잘 왔 다. 나 를 잡 거 라!’”

“….”

이건 좀 창피할지도.

“아니, 이도. 신오 님은 ‘자신을 잡으라’고 했지 전투 불능상태로 만들라고 하시지 않으셨어….”

“….”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오리진폼의 난폭한 디아루가와의 싸움이 끝나고, 시공의 균열이 닫혔다. 하늘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제노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일은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제 침묵을 마음대로 해석했다. 어째서 레드가 말을 많이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창기둥이 만들어진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 아니지, 창기둥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신오신전이 파괴되었다고 봐야하나?

그럼 설마 내가 문화유산 파괴범인 건….

제노의 그런 엉뚱한 생각을 멈춘 것은 월로였다. 그가 이번에도 비기 배후노리기로 어깨를 잡아 왔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위를 올려다보자, 월로가 제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이야, 이도 님! 히스이지방을 구한 영웅이 되시고 나서도 여전히 부지런히 조사대원으로서 활동하고 계시군요!”

월로의 말대로 제노는 마을에 복귀하자마자 도감의 완성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이제는 제압해야 할 폭주한 왕도 없고, 마지막 이벤트만을 남겨둔 상황. 오롯이 모든 포켓몬을 만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였다.

“만물의 신의 조각. 용기 있는 자는 포켓몬과 마음을 모아 조각이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자신이 평소 관심 있는 유적 탐사를 하다가 발견한 것이라며 월로가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이도 님, 모든 플레이트를 모아 보는 건 어떨까요?”

나왔다.

제노는 기다렸다는 듯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월로의 미소가 짙어진다. 대립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계획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플레이트를 모을 수 있도록 인도하던 월로가 생글생글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도 님께선 왕들을 진정시키고 손에 넣은 플레이트가 이미 많이 있었죠? 제가 맡아드릴까요?”

이 자식이 어디서 내가 어릴 적 오 박사님도 안 하셨던 개수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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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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