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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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할 일 유성못가에 매어둔 쪽배 확인하기 말리고 있는 계화 뒤집기 묘동들 머릿수 헤아리기 광한전 내부 등불 단속 광한문 단속 “후욱.” 이게 마지막 등불입니다. 그래도 광한전은 완전히 어둠에 잠기지 않지만요. 유성못에서도 은은한 빛이 일렁이구요, 월면에도 아주 엷은 빛이 스며있거든요. 또 가끔씩 제존께서 다녀가신 날에는 용마루 위에 별빛도
천지신령 앞에 고한다. 얘네 사귄다. 왜? 라기보단 어떻게? 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게 납득하기 더 좋을 것 같다. 거칠게 압축하자면, 서로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서로 뿐이었다. 이걸 이해하려면 두 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부터 짚어봐야한다. 우선 광한전 항아 묘정선녀 망연 廣寒殿 姮娥 妙情仙女 茫然 내 캐다. 사랑과 달의 신이라고 거창하게 짰는데
・ 。゚: *.☽ .* :゚. “안녕하세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명랑하게 인사한 작달막한 여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질 정도로 힘을 주자, 흐릿한 상이 조금 명료해졌다. 연두색 치마를 입고 금빛 머리칼로 쌍환을 말아 올린 탓에 여아는 꼭 노란색 꽃처럼 보였다. 아이는 노인이 분별에 애를 먹고 있다는
"기분이다!" 호쾌한 외침이 채찍처럼 담장을 후려치고 그 너머 길가에까지 울렸다. 뒤이어 오곡과 가을 열매를 담은 비단 주머니들이 마구 바깥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안쪽에서는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왔고, 등롱을 든 채 걷던 행인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날아오는 곡낭에 얻어맞거나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챙겼다. 걸인 하나가 날아온 주머니를
더위 대강 다 가셨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사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야흐로 가을이라, 곧 중추절이다. 연중 가장 크게 뜨는 달이 차오르고 있으므로 사람 모여 사는 곳에서는 제법 들뜬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양주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골목마다 장명등 내걸리고 상가에는 둥글게 생긴 과자와 과일이 들어찼다. 그리고 그 사이로, 사람을 본 게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세상 열린 셋째 날 쯤 되자, 하계는 일별만으로도 제법 구색 갖춘 태가 났다. 염재는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주었고, 정법신 둘이서 죄로써 질서를 세우고 이해와 연민을 가르쳤다. 목신은 뭇사람들 정주할 수 있도록 농경을 전수했고, 의선이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 심어주었다. 그동안 하늘 덮고 사람 만들어 이미 본분 도리 다한 낭랑께서는 무얼 하셨냐 하면은. 내
세상 열린 둘째 날에는 온 천지에 생명이 맥동했다. 서천 꽃밭 감관께서 한평생 일군 습관대로 초목 틔웠고, 그 위를 호령이 빚어낸 길짐승이 내달렸고, 까막새 신령이 온갖 날짐승을 바람과 함께 풀었다. 고독이 저 닮은 작은 미물 빚어 남은 빈틈 메꾸면 비로소 세상이 사람 품을 준비를 마쳤다. 딱 한 자락 진심 품을 나와, 그것 받아줄 너를 만들어야지. 그래,
세상 열린 첫째 날, 망월은 창세의 권능을 손에 쥔 채로 고민했다. 나, 무엇을 만들고 싶지? 그래, 가까이 가 닿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을 만들어, 그들의 사랑으로 세상을 채우면 되겠다. •͙✧⃝•͙ 그러려면 그들이 거할 세상을 지어주는 것이 먼저지. 해신, 해무가 솔선하여 순환의 원리로 생명의 요람을 빚었다. 바로 곁에서 창파의 용왕, 청현이
만월이 기운다. 그대 어째서 뭇사람들이 월선 이르기를 만월 아닌 망월이라 했는지 아는가? 신월부터 합삭까지 언제 기원 올리건 월녀 응답했기 때문이다. 해서 바랄 망자 썼다고 한다. •͙✧⃝•͙ 남해 용왕이 벗을 위해 친히 달에까지 올라와 밝혀준 유황불은 그이 떠나고 오래 가지 못해 도로 사그라들었다. 광한전 심처 유성못에 괴어있던 별의 잔해 역시 삼태궁
“절기가 바뀌어 더 이상 천황의 연호로 날짜를 헤아리지 못하나 다만 금일이 모월 모일인 것만은 앎으로 천지신령께 고하나이다. 온역현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곤 없이 살아온 저희 환모와 소현 이날서 부부지연 맺고자 하오니, 내외 앞날에 그저 웃음만 가득하도록 보우하여 주시기 간절히 비옵나이다. 공양 드릴 재물이랄 것도 없는 세간 합치느라 무사히 맺힌 산열매나마 공
앞날 볼 방도가 없구나. 청운 위에서 월녀가 한탄했다. 해와 별이 저물었으므로 하늘이 일주하지 못한다. 와중에 달이라고 무사할까. 역산이며 참위가 다 무슨 소용이랴. 인세에 남은 인연 또한 한 줌이다. 굽이굽이 이어져 유수 되지 못하리라. 기어이 마음 가진 이들 중 살아남는 자 없을 것이다. 길사에는 갑자 전에 세워진 월녀의 목상과 정안수 담아두는 달항아리
“언니!” 쾅 하는 소리 장렬했으나, 그보다도 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얼마나 컸냐면, 심처에까지 다 들릴 정도였거든. 이에 늘어져있던 월녀가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소리 소문 없이 들고 나는지도 모르게 다녀가는 제자와 달리, 명경은 온 달에 내가 왔노라 선포하듯이 나타나곤 했다. “우리 누이 일어났나?” 월면에 착지하는 소리 들린 지 얼마
중천 가는 길이야 눈 감고도 훤하지. 하계 가는 길 반 밖에 안 되는 걸. 향불 태워 부르는 이 없어도 문 박차고 들어가던 시절이 어저께 같다구. 하지만 혼자서 가르는 하늘은 조금 춥구나. 규성이를 물릴 것이 아니라 데리고 함께 갈 것을. 아니면 명경이를 불러보든가. 그것도 아님 중천에 서간 보내 도섭이나 대군더러 마중 좀 나와다오— 할 것을 그랬지 뭐야.
푸드드 하고 홰치는 소리가 광한전 앞마당을 울린다. 그러나 검은 깃 몇 개 떨어진 것 말고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다만 날렵하게 무복 갖춰 입은 청년 하나가 포석 위에 내려설 뿐이다. 평소와 다른 적막이 객을 감싼다.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청년은 토도돗 지나가는 옥토 달랑 들어 올려 안고서 묻는다. “낭랑께서는?” 안즉 수행 끝마치지 못한 어린 녀석이라
난세에는 혹독하되 더 큰 사랑이, 치세에는 안온하되 더 많은 사랑이. 허면 이치 흐트러진 세상엔 어떤 사랑이 흘러 넘칠까. 무엇이건 묘정은 그 사이로 광기 흐를 것을 알았다. 늘 그렇듯. 그것 또한 월녀의 신성중 하나. 사랑의 본질중 하나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몸소 겪어 알았다. 인간이든 신령이든 월녀와 엮인 이들은 속절없이 업과 겁에 휩쓸려 산산조각
얻은 이름이 그러하므로, 직분에 충실해 묘정은 달에 닿는 수많은 기원 중 연이 얽힌 기원을 골라 응신한다. 연戀자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 있는지 아는가? 헌데도 그 글자가 사람이 갖는 그리워하는 감정의 일 할도 채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묘정은 모순어린 기원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한 사람을 두고 쏟아지는 기원들 간의 모순이라면 차라리 낫
기탄 없이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월녀란 존재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서 기원 보내기엔 그다지 좋은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한때는 그녀만한 존재가 없던 시절도 있었겠지. 작금에야 숱한 인연 이어주는 크고 작은 신령들이 또 없던 시절에. 혹은 사람들의 기원 단순하고 인과 분명하여 흐름 지금만치 복잡하지 않던 시절에. 그리고 달이 지금보다 땅에 더 가깝던 시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