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장나민

 

 

야. 7반이랑 풋살할 사람.

3대3 할 사람? 두 명만 있으면 된다!

아, 꺼져봐. 지금 체육대회 예선 멤버 모아야 됨.

어쩌라고 알 바임?

다 시끄러워!

 

 

 

열성적인 호객행위는 담소를 방해받은 여학생들의 사자후로 잠시간 사그라들었다. 소란은 그렇게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듯했으나 눈치를 보던 이들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소중한 점심시간이었다. 무의미하게 사람만 모으다가 날릴 수는 없었다. 그런 시장바닥에서 제대로 잘 수 있을 리가. 선잠이 들었던 장나민이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눈에 띄게 기지개를 켰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시야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1년 내내 맨 뒷자리를 점지받은 거구가 바로 앉은 것뿐인데 자연스레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부끄럼을 타는 학생이었다면 곤란한 상황이었겠으나 장나민은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앞앞 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생들이 일어난 장나민의 상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짱나, 점심 안 먹고 잔 거? 오늘 건새우마늘쫑볶음 나왔잖아. 앉아있는 상태로도 여학생들보다 머리 두 개는 큰 장나민이 하기에는 지나치게 귀여운 반찬 투정이었다. 이마에 자국났다, 짱나. 여학생 중 하나가 손거울을 건넸다. 장나민은 자리에 앉아서 팔을 뻗는 것만으로 쉽게 받아들었다.

 

 

 

저 새끼는 안 어울리게 여자애들이랑 잘 논단 말야. 남학생들이 불가사의한 일을 해낸 장나민을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잘생긴 데다 성격도 무난하면 이성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이 교실에 많지 않았다. 아, 맞다. 열심히 사람을 모으던 남학생 중 하나가 장나민의 자리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야, 가자. 장나민.”

 

 

 

왕년의 드라마 남주도 울고 갈 박력이었다. 다음은 놀란 토끼 눈을 한 여자 주인공이 얼굴을 붉히며 따라올 타이밍이었다.

 

 

 

“어딜?”

 

 

 

그러나, 그가 상대하는 것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의 여자 주인공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까칠한 주인공과 정반대되는 매력의 쾌남 서브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박력은 통하지 않았다. 손거울로 새빨개진 이마를 확인한 장나민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풋살하러. 주인공은 꺾이는 법이 없다. 그는 장나민의 책상을 손으로 짚었다. 여학생에게 손거울을 돌려주던 장나민이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쫄쫄 굶은 내가 그런 격한 운동을 어떻게 하겠니.”

 

 

 

아니 씨발 누가 굶긴 것도 아니고. 처먹지 않은 것은 장나민이었다. 험한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아쉬운 것은 이쪽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작년 체육대회의 장나민을 알고 있지 않은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작년의 1학년 담임들은 초임 교사가 많았다. 그 결과, 의욕 넘치는 초임 교사들의 미묘한 자존심이 결국 체육대회라는 애들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1학년 전체가 야자 한 달 면제권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 걸린 대회에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

 

 

 

피가 터지는(실제로 부상자가 있었다.) 대회는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평정된다. 키가 큰 놈들은 몸치라는 편견을 깨고 등장한 장나민이었다. 축구면 축구, 야구면 야구, 농구면 농구… 구기 종목뿐 아니라 체육대회의 꽃 계주까지. 온갖 종목에 주전으로 출전한 장나민은 전교생이 놀랄만한 활약을 보이며 1학년 7반을 야자 한 달 면제라는 영광스러운 길로 이끌었다.

 

 

 

저 미친놈은 저 피지컬로 왜 체고에 안 가고 인문계에 온 거야? 그렇게 말하며 치를 떤 것이 전생의 일 같았다. 그러나, 적진의 명장이 우리 팀이 되었다. 비록 이전과 같은 빛나는 상품은 없을지라도 2학년 5반의 남학생들은 장나민이 5반의 에이스가 되어 자신들을 이끌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굳이 무리 안해도 돼. 예선 전에 합 한번 맞춰보자는 거라서.”

“무슨 예선?”

“체육대회.”

“…체육대회 예선인데 내가 왜?”

 

 

 

정말로 의아하다는 듯 묻는 장나민을 보며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남자 주인공이 아니었다. 은퇴한 히어로를 설득하기 위해 쌔빠지게 고생하는 사이드킥이었다.

 

 

 

푸핫. 얼빠진 사이드킥을 보고 웃던 장나민이 앉은 채로 의자를 뒤로 밀어 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짱나 어디 가? 매점. 장나민이 그렇게 대답하며 얼빠진 채로 서 있는 그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쳤다. 고생해라. 장나민은 그렇게 말하며 교실을 나섰다. 문 끄트머리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이는 폼이 굉장히 재수가 없었다. 장나민의 땡으로 얼음이 풀린 그가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장나민 씨발, 속물 새끼야!”

 

 

 

난데없이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 마냥 서러운 외침에 그를 향했던 시선이, 자연스레 장나민에게 향했다. 복도를 향해 난 창문 너머 장나민이 보였다. 장나민은 걸음을 멈추고 교실 안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나 겨우 보이면 다행일까 싶을 정도로 높게 난 창문이었으나 장나민은 증명사진 프레임마냥 가슴팍까지 보였다. 씩씩대는 그를 향해 장나민이 윙크를 했다. 꺄, 짱나 뭐야. 끼부리네. 여학생들이 즐겁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하하. 장나민의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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