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반 / 후드조] 달밤의 소풍

늦은 밤, 달만이 혼자 빛나고...

어느 겨울밤이었다. 제법 차가워진 공기가 그의 코 끝을 스쳤고, 매서운 바람은 힘이 죽어 가벼운 산들바람만이 거리를 활보하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조용한 골목길을 타박타박 혼자 걸어가는 그는 날씨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무표정을 지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적막이 흐르는 골목길에는 그의 발걸음만이 남아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죽어있던 방에 활기가 돌아온다. 하지만 그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코트를 대충 정리하여 옆에 놔두곤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휑한 냉장고. 장을 보는 것을 깜빡했나 보다. 그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며 테라스로 나간다.

교교하게 둥실 떠있는 보름달이 창밖에 있었다. 마치 노란색 레몬 사탕같이,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입김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며 그는 달을 감상했다. 달빛은 모두를 어루만져 주며 포근히 안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달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별 하나 없이 혼자 떠있는 것이 퍽 외로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볼 때였다. 그는 어디선가 들은 문장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누구에게서 들었더라. 달과 별 중 무엇이 더 좋냐고 물어보다가 나왔던 말로 기억한다. 그는 별이 더 좋다고 했다. 달빛은 너무 밝아서 별빛이 안 보이게 한다고 했다. 달님은 모두를 포용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녀의 옆에 있는 이들은 챙겨주지 않는다니, 너무나도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그녀는 자신이 빛나기 위해 작은 희망들을 짓밟아버렸다. 갑자기 그 생각이 드니 달을 보기가 싫어졌다. 별이 보고 싶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을 별이 보고 싶어졌다. 그의 눈동자와 닮은 노오란 별을. 그는 보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그도 당황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싶어 그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무전기를 집었다.


"아니 각경사님. 그래서 별을 보러 가고 싶다고요?"

"응. 여기 주변에 볼 수 있는 곳 없냐."

"어... 잠깐만요....에.... 일단 저희 집으로 오실래요? 이거 설명하기가 힘든데."

"금방 갈게."

무전기의 잡음이 들리자 그는 무전기의 버튼을 누른다. 도대체 갑자기 이 야밤에 별을 보러 가고 싶다고 무전을 치는 사람이 어디 있지-라고 생각하는 공경장이지만 그는 방금 갈아입은 옷들을 다시 주워 입는다. 오랜만에 쉬려고 했는데-를 꿍얼거리는 그. 하지만 그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오랜만에 하는 별구경이었다. 요맘때면 토성이랑 목성이 그렇게 잘 보인다던데-라며 능력을 사용하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피곤은 어느새 사라진 모습이 꽤나 재미있는 구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를 보자마자 평소라면 먼저 무전도 안 했을 인간인데-. 뭐 잘못 먹으셨어요?를 웃음 지으며 내뱉는 그. 각별은 그게 할 소리냐?로 반박한다. 만나자마자 활기찬 아우라가 퍼진다. 암담하고 가라앉던 골목길은 그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한번 광명을 되찾는다.

그렇게 싱그러운 활기를 퍼트리며, 이 야심의 소풍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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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달밤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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