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자유의 하늘

1987•창작과비평사 23인 신작시집

타이프치는 소리가

무표정하게 튀다 멎는

검찰청의 복도를 너는 걸어오고 있다

오랜 동안의 잠행으로 여윈 얼굴 깊이에서

충혈된 너의 눈이 반짝이고

두 손에 채워진 수갑이 무겁게 중얼거리고 있다

침묵하라 침묵하라고

나는 모르겠다.

네가 나에게 무엇을 물었었는지

내가 선생이고 네가 학생이었던 그 학교의

복도에서였는지, 퇴근길의 교문에서였는지

네가 죄수복처럼 걸치고 있던 제복의 의미에 대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해의 늦봄에 핀 피의 의미에 대해서였는지

쏘아보던 너의 눈빛은 오래 남아있지만

내가 너에게 무엇으로 기억되어 있는지

몇마디 네가 확인하고 싶었던 진실로 기억되어 있는지

막히는 말 대신 흘리던 눈물로 기억되어 있는지

몇년 만인가 수갑 찬 손으로 더듬는 우리들의 만남

따스한 체온이 짧게 흐르고

타이프치는 소리가

무표정하게 우리들의 만남을 갈라 놓는다.

무엇을 치고 있을까

네가 확인하고 싶어했던 몇마디 진실들을

너의 눈빛을

너의 따스한 체온을

그것은 범죄행위로 기록하고 있겠지

무표정하게 튀어오르는 타이프라이터 너머로

뿌옇게 김서린 유리창 너머로 내리는 숨죽인 눈발

내리는 눈발이 침묵으로 쌓여 얼어붙는다 해도

그러나 쌓이는 눈 속 깊이 너의 눈빛은 살아 있다.

눈물이 얼어붙은 풀뿌리에도

잠들 수 없는 우리의 말들은 식지 않는 체온은 그러나

-김진경, 〈그 사람〉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