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00
201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동성회 3차 단체 토미키(富来) 조 사무실로 가는 골목길.
토미키 후지모토(富来 富次基)는 한참이나 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아버지인 토미키 에이지로(富来 栄治朗)의 호출을 받고서 5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떨리는 양손에는 방금 구석에서 주워온 콘크리트 벽돌 한 장이 들려있었고, 주변은 이따금 늦게 떨어진 낙엽이 스치는 소리만 들려올 정도로 고요했다.
아버지는 이제 막 글씨를 쓰기 시작한 아이를 자신과 같은 야쿠자로 키우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야쿠자 단체에서도 1차, 2차라면 모를까. 이렇다 할 위세도 위신도 없는 3차 단체의 조장이지만 그가 품은 배포만큼은 허망한 만큼 커다란 것이었으므로, 그에게 소속된 모든 사람들은 그 허황된 꿈을 따라가야만 했다.
자신이 죽어서도 제 꿈을 이어가야만 하는 존재.
토미키 조장에게 아들 후지모토는 그런 대체자 정도였다.
하지만 후지모토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설득 시키는데 폭력과 공포가 필요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소년은 오로지 타인에게 따듯하고 싶었다. 갈취한 힘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강한 불은 쉽게 주변을 태우고 삼킨다. 야쿠자 조장인 아버지 곁에서 자라며 보고 기억한 모든 것들이 제게 그렇게 가르쳤으므로.
후지모토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겨울 찬 바람이 등을 떠밀어, 겨우 건물로 들어섰다. 계단을 올라가는 상상만으로 숨이 옥죄는 감각에 어지러웠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도 어쩌면 더는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이후로는.
저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3개월 남짓의 기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잔을 나눠야만 한다. 그 압박감에 시달려 하루하루를 무감각하게 떠나보냈다. 흘려보낸 시간들은 벗어나려 발버둥 친 시간과도 같았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은 몇 번이고 실패했다. 설득 될 것이었다면 애초에 야쿠자 조장이라는 자리까지도 가지 않았을테지.
‘후지모토, 상대가 누구든 늘 베풀며 살아야 해.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서로의 온기를 기억하는 다정함이란다.’
은사(恩士)는 그렇게 말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들린 콘크리트 조각은 꼭 얼음을 쥔 것처럼 차가웠다.
“왜 이렇게 늦었지? 후지모토.”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빨리 와야한다고 이야기 했───”
한 문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소년이 힘껏 팔을 내리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워서 견딜 수 없던 어느 뒷모습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나동그라진다.
소년은 피 묻은 벽돌을 쥔 채, 그대로 찬 바람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달렸다.
익숙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윽고 모르는 공간에 다다른다.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그런 후회 따위, 이제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테니.
후지모토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수신음이 이어지는 동안 찬 공기가 폐를 채웠다가 수증기처럼 흩어져 나갔다. 이윽고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소년은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먼저 꺼냈다.
“선생님, 저…… 드디어 자유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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