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의 종류
공미포 2,213자
* 2023. 05. 20 포스타입에 올렸던 글입니다
* 포스타입 메인에 뜬 #크리에이터n제 - 초록색의 종류를 봤고... 초록색? 초록색?? 초록색이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 단항카일 단항남척
* 스포일러 주의. 선주 나부 + 단항 과거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있습니다
색채용어사전 - 초록 [ Green , 草綠 ]
약호 : G
K값 : #007644
대표색 : 초록
대표색좌표값 : 2.5G 4/10
관용색 : 수박색, 상록수색
노랑과 파랑의 중간색으로 스펙트럼의 파장 520nm 윗 부분의 색. 2003년 색 이름 개정에 의해 녹색의 색명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평화와 안전, 중립을 상징하며 우리 눈에 가장 편안함을 주는 색이다. 안전 색채(安全色彩)에서는 안전과 진행 및 구급·구호의 뜻으로 쓰여 대피장소나 그 방향, 비상구, 진행신호기, 구급상자, 보호 기구 상자, 들것의 위치, 구호소 등의 표지로 사용한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혼합색인 초록은 온도감에서는 중성색에 속하므로 강렬한 느낌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이 들고, 심리적으로는 스트레스와 격한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아니야. 비슷하기는 했지만 이 색은 좀 더 어두워 보인다. 카일루스는 예시 색상을 확인하고는 눈을 돌렸다. 화면 우측에 [함께 많이 본] 목록이라는 게 있길래 스크롤을 내리자 제가 찾던 색이 보였다.
색채용어사전 - 청록 [ Blue Green, 靑綠 ]
약호 : BG
K값 : #01787c
대표색 : 청록
대표색좌표값 : 10BG 3/8
관용색 : 피콕그린
초록과 파랑의 중간색으로 10색상환의 하나. 색상 기호는 BG, 보색은 빨강이다.
심미, 깊은 삼림 등의 이미지를 주고자 할 때, 이론적 생각을 추진할 때, 그리고 상담실, 수술실의 색으로 사용된다. 심리적으로는 정신적 긴장과 피곤, 패배감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도와준다.
카일루스는 옆에 누운 사람을 슬쩍 보고, 단말기 화면으로 눈을 돌려 예시색상을 보았다. 귀걸이 색이 이랬다. 지금은 편한 차림이라 입고 있지 않지만, 겉옷 곳곳에 달린 장식이나 한쪽 어깨를 감싸는 견갑도 이런 색이었지. 예의 그 코트는 자료실 한편에 잘 개켜둔 채였다.
그런데 피콕그린이라고? peacock green. peacock. 공작. 공작이 조류의 일종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에 어떻게 생긴 새인지 궁금했다. 청록색 깃털을 가진 새라. 제가 본 새는 열계 침식과 함께 나타났던 새 모습을 한 괴수뿐이었다. 아, 벨로보그에 갔을 때 비둘기를 몇 마리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색채용어사전에서 조류대사전까지 아카이브를 탐독하고 있으려니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유도 모르고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 수 없어 곤란하던 차였기에, 그는 얼른 단말기를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눈을 가볍게 감고, 천천히 몸에서 힘을 뺀다. 양을 헤아릴 필요까진 없겠지.
평화와 안전, 중립이라. 그리고 의사소통?
분쟁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푸흐흐,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뒤에는 아차 싶었다. 한 박자 늦게 입을 틀어막고 옆을 슬쩍 곁눈질했다. 다행히 듣지 못한 듯, 단항의 눈은 가볍게 감겨있는 상태였다.
무례한 타인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누군가가 흉흉한 쇠붙이에 '대화'니 '타협'이니 어울리지도 않는 별명을 붙여주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떠올랐다. 웃어버린 것 때문인지 졸음이 가시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이런.
분쟁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라……. 그 정도 무력이면 웬만한 분쟁쯤은 정면돌파할 수 있을 터다. 단항이라면 어려울 것도, 번거로울 일도 없을 텐데. 수십 번의 연습 전투에서 제가 이긴 횟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대련이 아니라 실전이었으면 수십 번씩이나 부딪칠 기회도 없었겠지. 운이 좋으면 3번까지는 버텼으려나?
그런데도 계속해서 되풀이해 말하는 것이다. 분쟁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싸움은 무의미하다고.
은하열차에 오르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들었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으나, 고향에서 추방당했고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거라는 건 안다.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전투와 오해와 도피 같은 것들.
자의로 떠난 여정도 아니었고, 그 아름다운 거함은 아주 먼 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떠날 때는 어떤 기분이었어? 은하열차에 오르기 전에 지냈던 곳은 어땠어?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널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떠났어? 아니면 가능한 한 더 멀리 가고 싶었던 것뿐이야? 은하열차팀보다 너를 더 멀리 데려가 줄 사람이 함께 가자고 제안하면, 우릴 떠날 거야?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정말로, 온종일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과거 대부분을 망각한 저였지만 이런 말을 꺼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 정도는 안다.
평화와 안전, 중립, 그리고 의사소통.
자신이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의식이 또렷하다.
옆에 누운 사람 때문에 깬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제가 인기척에 기이할 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이었다. 카일루스는 그걸 '탐지력' 이라고 불렀는데, 심할 때는 자료실 밖을 지나는 사람이 소리죽여 걸어도 누군지 알아차릴 정도였다. 오랜 도피생활 때문에 인기척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스으윽.
천 스치는 소리에 그의 눈이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온기를 찾는 건지, 옆에서 몸을 붙여온다. 제 배 위에 놓이는 손에는 조금의 힘도 담겨있지 않아서, 카일루스가 잠결에 조금 뒤척인 것만으로도 허리를 제대로 감지 못하고 줄줄 미끄러졌다. 깨어있었다면 몸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끌어안았을 텐데. 그는 고민하고, 잠든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겨우 움직일 용기를 얻었다. 흘러내린 손을 잡아다 제 배를 덮으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사실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깨어 있었다. 굳이 눈을 뜨고 쳐다보거나 말을 걸지 않은 것은, 글쎄, 왜였을까? 감은 눈으로도 이쪽을 향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랬지?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단항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잠든 이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었다. 온기가 느릿하게 퍼져 나가고, 그 뒤를 수마가 쫓는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