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귀여우면 X된거라던데

박문대의 부정

DDD by 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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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3월 초, 아직 겨울에 가까워 봄이니 뭐니 그런 건 생각조차 나지 않는 추위에 벌벌 떨며 강의실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였다.

박문대는 유독 소란스러운 강의실에 의아함을 느끼고 내부를 둘러봤을 때 마주친 눈에, 저 사람과는 절대로 엮이지 말자 다짐했다. 별 이유는 아니고,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잠시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엮이게 된다면 필히, 순탄치 못한 대학 생활을 보내게 될 것 같은 예감. 박문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빈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다행히 상대는 별 느낌이 없었는지, 그의 시선은 박문대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 뒤 이어진 강의도 아주 평탄하게 흘렀기에, 그 잠깐의 충격을 이유로 수강을 취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판단한 박문대는 수강 정정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그런데, 음.

‘뭐라도 할 걸 그랬나.’

“그럼 잘 부탁할게.”

“예,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박문대는 류청우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민 손을 잡아 가볍게 한번 흔들고 빠르게 멀어졌다.

’조별 과제 미쳤냐?‘

믿지도 않는 신이 미쳤든, 교수가 미쳤든 둘 중 하나는 확실했다. 하필 필수라 드랍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졸업 안에 듣기만 하면 되는 과목이니 드랍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무조건 들어야 하는 거 수강하고 있을 때 얌전히 수강하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기 때문에 박문대는 심장 내려앉는 것 쯤은 학점을 생각하면 별거 아니라며 견디기로 했다.


...그리고 조졌다.

아니, 학점 얘기가 아니다. 박문대는 다행히 수많은 추락과 상승을 반복해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대가로 조별 과제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조진 건...

“오늘 회식 청우 오빠도 온다는데 갈 거야?”

“...그 선배 오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 청우 오빠 피하잖아.”

“...티 났냐?“

”아마 청우 오빠도 알걸?“

류청우, 그 사람과의 관계다.

최대한 티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그간 해 온 노력이 전부 허사였다는 말에 박문대의 기운이 훅 빠졌다.

“그런데 왜 피하는 거야? 그 오빠 혹시 뭐 좀... 그래?”

’아니, 류청우는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눈앞의 동기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보단 네가 더 잘 알지 않냐?”

“에이, 혹시 모르잖아~ 너한테만 이상하게 굴었다던가.”

”...그런 적 없다. 사람 성격 좋더라.“

”그래? 그럼 피할 이유도 없지 않아? 좋은 사람이라며~"

...좋아하게 될까 봐 겁나는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답 할 수는 없었기에 박문대는 입을 열지 않았고, 동기는 눈치껏 답을 들은 것처럼 주제를 넘겼다.

“음, 뭐, 그래. 그럼 나도 가지 말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개인적인 감정 하나 갈무리 못해서 남 인간관계 박살 낼 일 있냐.’

박문대는 옆에서 조잘거리는 동기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간다.“

”...어?“

”간다고, 오늘.“

안 그래도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를 대가며 많이 빠진 탓인지, 선배 놈들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지고 있어 오늘 회식은 무조건 가야만 했다. 류청우가 안 왔으면 좋겠지만... 오겠지. 안 그렇게 생겨선 사람 깨나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나 때문이면 굳이 갈 필요 없는데~“

”너 때문에 가는 거 아니라니까.“

그리고 도착한 회식 장소에서, 박문대는 류청우가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선배들이 내미는 술잔을 받아 들었다. 물론 술이 오를수록 도착한 순간부터 시선 한 구석에 계속 잡히는 류청우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걸 참는 것은 조금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해내긴 했다. 그러다 다들 불콰해진 얼굴로 탁자에 엎어질 때 쯤. 마찬가지로 불콰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박문대를 따라나선 누군가가 있었다.

술기운이 달아오르게 만든 얼굴을 식히려 가게 밖으로 나가, 통행에 방해되지 않을 만한 구석자리에 다리를 굽혀 앉은 박문대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리다 멈췄다.

‘실수한 건... 없는 것 같고.’

맨 정신이 아님에도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던 박문대는 옆에 닿아오는 영문 모를 온기에 고개를 돌렸다.

류청우.

‘...가, 왜 여기에.’

덜그럭. 술에 취해 눈에 띄게 둔해진 몸이 순간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다행히 류청우가 받아 다치지 않았지만, 그게 박문대에게도 다행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효과 좋네.’

술이 확 깼다는 소리였다.

괜찮냐는 물음 몇번과 괜찮다는 대답 몇 번이 오간 후, 찾아온 정적에 이미 술 깨기라는 목적을 이룬 박문대가 일어나려는데... 류청우가 말을 걸어왔다.

“문대야,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을까?”

“...예?”

불편하냐 물었다면 그렇다 답했겠지만, 류청우가 물은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없는 잘못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기에 박문대는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뇨. 잘못하신 거 없는데요.”

“그렇구나.”

“예.”

다시 정적.

끝났나 싶어 일어날까 싶었던 박문대는 류청우의 얼굴에 묻은 머뭇거림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혹시 술 먹고 나도 모르게 꼬라봤나? 그거 꼽 주려고 그러나?'

그러나 류청우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아니면 혹시, ...팬이야?”

“...예? 팬이요?”

그 말을 듣자 무슨 헛소리냐는 말을 하는 듯 변한 박문대의 얼굴에, 류청우는 자신이 한 착각이 부끄러웠는지 긴 음주에도 붉어지지 않던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내가 양궁을 했었거든...“

그 정도는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하도 떠들어대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 팬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너처럼 나를 피하는 분도 계셔서... 그래서 너도 그런 건가 해서 물어본 거야.“

뭔가 잘못을 해서 피한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을 좋아해서 피한다는 선택지를 남겨두다니. 보면, 류청우도 꽤 자기애가 있는 사람이구나 싶다. 그리고 그런 점이 귀엽고.

...

귀엽고?

‘...아.’

그렇게 박문대는 X됐다.

자신이 류청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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