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2 연성

[드림] 백중사리

현재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곤 한다.

* PVNQ님의 자캐 “디어” 등장……. 등장 정도가 아니라, 꺅도요 드림글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 항상 저에게 캐를 빌려주시는 여러분께 사랑과 감사를 전달합니다.

* 등장인물 NPC [까마귀, 마라 소프]

* 등장인물 자작캐릭터 [디어, 새벽제비]

약간은 어수선했다. 디어는 물건들을 헤치며 새벽제비를 찾았다. 집은 불도 꺼져있고, 한 눈에 둘러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새벽제비를 찾았다. 침대를 들춰보고, 책상 밑을 살펴보고, 화장실도 뒤졌다. 믿고싶지 않았다. 새벽제비는 사라졌다.

오늘은 어디를 갈건가?

강철 인장을 입고 발에 천을 감는 새벽제비를 보고 디어가 물었다. 새벽제비는 웅얼거렸다.

어디를 가기는, 그 전쟁군주에게 설득하려는 서신을 전달하러 갈걸세.

다른 사람을 시키라 청하는건 어떤가.

새벽제비는 약간 굳은 얼굴로 디어를 쳐다보았다. 그의 옆에는 이제 고스트가 떠있었다. 애상한 표정에서 디어는 읽어낼 수 있었다.

하이옌, 내 말을 듣는게 좋을 걸세.

일은 일이네. 내 감정은 감정이고.

디어는 알고 있었다. 가끔 그는 평상한 일들로 스스로를 해치려 든다는 것을. 이번도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새벽제비는 다시 협곡을 달릴 것이고, 그 어두운 협곡에서 상처를 입을 것이며, 피를 흘리며 돌아올 것이다. 영광도 뭣도 없이 그렇게 맨발로 타박거리며 홀로 돌아와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누울 것이다. 그게 그의 회복하는 과정이었으니까. 하지만…….

버틸 수 없을거야.

디어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벽제비는 이제 병들었어. 까마귀, 자네는 알지 않나? 새벽제비와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꽤 친해보이던데.

불편해보이는 것은 까마귀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제비가 탑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가볍게 말다툼을 했었다. 디어는 도착한 새벽제비에게 손을 흔들려고 했다. 그의 옆에 안내자 역할로 낯설고도 익숙한 얼굴이 서있는걸 보고 그는 손을 어정쩡하게 든 채로 멈춰버렸다. 까마귀는 그런 그를 보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잠시 집을 비운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나도 그 이상은 몰라.

말했지만, 그는 병자일세. 고스트도 없어.

나도 그 이상은 모른다고,

모른다고만 말하지 말게!

디어는 까마귀가 못마땅했다. 그의 과거 뿐이 아니라, 주변 평판 중에서 시건방지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도 있었다. 새벽제비는 그 때, 고개를 외로 틀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자, 왼쪽 눈이 희게 떠있었다. 희끗한 반점이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 아픈가?

디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 몸상태는 대충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굳이 본인의 입으로 들어야한다니, 잔인하군.

까마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디어는 못마땅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으로 그 대화는 끝이었지만, 주변 평판과 더불어 디어가 까마귀를 영 아니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르겠으면 주변을 살펴 그 인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아야할 것 아닌가. 아니면 하이옌이 나가 죽길 원하나?

슈.

까마귀가 정정했다.

내 앞에선 슈다.

그의 묘한 확신에서 디어는 속이 꼬였다. 그게 그렇게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까마귀의 청명하고도 굳은 눈동자에 다시 못마땅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새벽제비는 디어가 자신의 영토를 강철군주들에게 넘긴 이후로, 꽤 오랫동안 하이옌이었다. 그의 얼굴은 확신이 없었고, 헤메고 있었다. 그의 정신과 몸이 불일치한 탓이었다. 오랫동안 머리를 빗었다. 푸석한 머리는 빗과 맞물렸고 엉켜 매듭진 머리카락을 하이옌은 그냥 뽑아버렸다. 그렇게 한 웅큼이고 두 웅큼이고 찢어내버린 머리털은 그의 발치에 쌓였다. 그것도 자해의 일종이라는 것을 디어는 D와 트로이메라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슈는 나에게도 행선지를 안 알려줬어.

까마귀는 힘없이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나한테도 안 알려줬다고.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불었다. 새벽제비의 몸은 점차 망가지고 있었기에, 까마귀와 디어가 번갈아가며 그를 돌보곤 했다. 초기에는 까마귀가 불시에 방문했다 디어와 함께 셋이서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하기도 했었다. 까마귀는 제법 섬세한 면이 있었다.

저 아이.

까마귀가 돌아가고 새벽제비가 말했다.

저 머리칼이 꼭 친씨엔을 닮았어.

디어는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 새벽제비는 그에게서 문을 닫고 있었다. 새벽제비가, 슈가 까마귀에게 어떻게 말했을지 뻔한 일이었다. 까마귀는 분명 슈를 말렸을 것이다. 마치 디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러나 슈는 자신의 발에 천을 감고 덤덤한 표정으로 길을 나섰겠지. 그 표정은 이 세상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영웅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아니라, 호랑이의 발톱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다음 장면을 그려 받아들인 사람의 표정. 그건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그건 슈와 하이옌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주었다. 그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은 하려던 말을 되삼켜야했다.

이봐.

까마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음 말이 나오기엔 시간이 좀 걸렸다. 디어는 그가 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슈가 나에 대해 한, 말이, 있나?

디어는 어떻게 말해야 그를 상처주지 않을지 몰랐다. 새벽제비는 그의 앞에서 까마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딱 한 마디, 저 머리칼이 꼭 친씨엔을 닮았어, 그게 전부였다.

그것보다 일단 슈가 갈만한 곳을 찾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디어는 대답을 회피했다. 까마귀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디어는 까마귀에게 새벽제비가 길렀던 아이들의 무덤 좌표를 알려줬다. 까마귀도, 디어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아이들의 무덤을 방문하여 마지막으로 애도하고 싶어했다. 첫 번째로 길렀던 다섯 아이들은 새벽제비의 거처였던 절벽 동굴 근처에 무덤이 있었기에 까마귀는 그 곳 부터 둘러보겠다고 했다. 디어는 선봉대 인사들과 안면이 있으니 탑에서 수소문을 해보겠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미래는 관능이며 미지의 것이며 자주 여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마라 소프가 디어를 내려다보았다. 여왕은 앉아있고, 디어는 서있는데도, 그렇게 느껴졌다. 지배자의 시선이었다. 디어는 그러나 무거운 산이라, 지배자가 움직이라 하여도 움직이지 않는 기개 정도는 있었다.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는 새벽제비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소, 여왕이여.

그 자의 행방은 나도 모른다. 다만 일은 그만두지 않았으니, 이것만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이다.

확신하는 이유는?

현재는 미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결코 과거로는 가지 않지.

디어가 여왕의 말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마라 소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른 바쁜 일이 있다는 듯 자리를 떴다. 그것은 거절의 의사였다. 새벽제비는 여왕을 흠모하였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수호자들이 본능적으로 여행자를 쳐다보듯, 새벽제비는 그런 느낌으로 마라 소프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많았다. 마라 소프에게 닿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새벽제비는 까마귀에 대한 얘기 만큼이나 여왕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왜 하필 리프였나? 왜 하필 여왕이었나?

새벽제비는 꽉 막히고 고루한 성격은 아니었다. 지도자, 의회와 같은 것들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도시에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만 나다녔던 것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왜 하필 여왕을 섬기게 되었단 말인가? 그래서 다소 도발적으로 묻기도 했다.

까마귀 때문에 마라 소프를 섬기는건가?

새벽제비는 말 못한다는 듯 웃기만 했다. 디어는 달력을 확인했다. 다음주가 새벽제비와 여왕이 만나는 날이었다.

여왕은 신과 다름 없는 존재일세.

대신, 새벽제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여도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 분의 목소리가 되는 일이다.

여왕의 말에 따르면, 새벽제비는 다음주에 나타날 것이다. 새벽제비처럼 믿음이 있다면 가만히 기다리겠지. 디어는 근본적인 질문을 맞딱뜨렸다. 나는 그렇다면 왜 그 자를 찾는가? 사실, 새벽제비를 나서서 찾은 적은 없었다. 단 한번도. 전령 일을 할 때 새벽제비는 일이 없으면 며칠이고 몇주고 자리를 비우곤 했다. 그래도 디어는 마음만 편했다. 자기 일을 하며 새벽제비가 돌아오면 그를 반겨줬을 뿐이다. 사라지는건 새벽제비의 천성이다. 그는 정말로 제비와 같았다.

언제나 고맙다.

새벽제비가 디어의 손을 잡았다.

이 말을 할 정신이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몰라 미리 말해두네.

디어는 그 순간이 참 어색했다. 정말로 새벽제비는 아이들의 무덤을 찾아간 것인가? 까마귀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디어는 새벽제비의 집으로 다시 갔다. 역시나 불이 꺼져있었고, 약간은 어수선했다. 새벽제비가 그린 수많은 지도는 선봉대에 양도하였다고 했다. 군사 지도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술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묵지근하게 들쩍한 냄새. 디어는 서둘러 불을 켰다.

새벽제비?

디어의 목소리가 떨렸다. 새벽제비는 술냄새를 풍기면서 식탁에 엎어져있었다. 그 순간 무엇을 느껴야했는지, 디어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자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응?

그의 고함소리에 새벽제비는 비척거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뿌연 눈동자가 풀려있었다. 새벽제비는 힘없이 웃었다. 고개를 가누는 것이 힘든지 벽에 머리를 박고 몸을 뒤튼 채 디어를 쳐다보았다.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익어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그래, 지금 당장도 죽을 수 있지 않나,

그러게…….

새벽제비의 꼬인 목소리에 디어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아무렇게나 번졌다.

자네가 사라진 줄 알았네.

디어는 자신의 감정을 가다듬었다.

나, 내 애들한테 항상 미안한데,

그럼 죽을 때 까지만이라도 정정해야할 것 아닌가.

,근데 그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자네에게 행복했던 때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네. 자, 일어나. 침대에서 한 숨 자고, 내일 해장해야하면 부르게.

그 때가 제일 행복해서 지금 너무 미안한데, 그게 가능한건가?

디어는 새벽제비를 일으키려다 손을 거두었다. 새벽제비의 머리는 풀어져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서리 내린 낙엽처럼 푸석하고 희끗한 머리가 뚝뚝 끊겨있었다. 디어가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칼을 만졌다. 스스로 자른 것인지 들쑥날쑥하게 잘려있었다.

그래서 술을 마셨나?

자네는 왜 나를 찾았나?

새벽제비가 디어의 손을 쳐냈다.

지금 당장에라도 죽어버리라고 했으면서.

그건 미안해, 내가 홧김에 그랬어, 하이옌.

슈.

그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디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슈. 일단 누워, 자네 지금 많이 취했네.

새벽제비가 취한 모습은 자주 보았다. 사랍과 있을 때, 어쩌다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새벽제비는 취해서 제멋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제법 듣기 괜찮았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인데, 새벽제비의 노래는 그의 아들이 지은 노래였다. 부질없는 세상에서 부질없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자신을 따라나섰다 죽고 만 아들.

까마귀가 나를 찾았는데……. 그 녀석, 마주치기 싫었어.

슈…….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는지 모를 리 없잖아, 그게 너무,

알았어, 일단 눕자니까.

디어는 식탁에 앉아 맞은편을 쳐다보았다. 술병은 엎어져있었고, 방은 불이 꺼져있었으며, 맞은편에 앉아있어야 할, 아니 앉아있었으면 좋았을 사람은 없었다. 엎어진 술병에서 찌르는 듯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새벽제비는 비싼 술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싸구려 발포주나 마셔서 귀한 술은 입에 안 맞는다나. 독한 술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병이 들고 난 이후에 독주를 사왔다.

아파서.

새벽제비는 멋쩍게 변명했다.

한 모금 마시면 고통을 잊고 쉽게 잠 들거든.

정말로 그는 아플 때 빼고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디어는 다시 질문했다. 왜 새벽제비를 찾고 있는지. 왜 그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지. 왜 나는……. 평소와 같지 않은지.

무엇이 그렇게 두렵느냐.

여왕이 새벽제비에게 물었다.

모든 것입니다.

새벽제비는 공손히 말했다.

일전에 마음을 나눈 이가 물어보았죠, 우리는 영생을 살고 마법을 부리는데도 무엇을 두려워하느냐고.

너의 대답이 그것이었나?

두렵지 않은 사람은 소중할 것이 없는 사람이고, 소중할 것이 없는 사람은 죽은 자 뿐입니다.

그 말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새벽제비는 도전적으로 덧붙였다.

그러니 저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새벽제비는 항상 피동적으로 살았소.

디어는 여왕 앞에 다시 섰다.

스스로의 몸에 칼을 댈 용기도 취미도 없어서 머리카락을 끊었고, 스스로의 목숨을 해할 용기도 취미도 없어서 병이 들게 하였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한다.

당신을 만나는 것도 그것의 일환이요?

여왕은 그를 쳐다보았다. 디어는 답을 알고 있었기에, 마라 소프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앞에서 그 자는 하이옌인가?

마라 소프는 미소했다.

내가 호명하는대로 그는 변모한다.

그것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거늘, 디어는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달에 의해 조수가 변화한다 한들 그것을 누가 원망할 수 있으리. 새벽제비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니 그의 변모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예측 불가능한 면에서 그는 끌렸을지도 모른다.

만나줘서 고맙소.

나가기 전, 디어가 덧붙였다.

폐하.

전쟁군주에게 서신을 가지고 새벽제비가 출발했다. 디어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강철군주에게로 갔다. 그들은 디어를 쳐다보았다. 서로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대답이 먼저 나왔다.

그 말고 적임자가 없네.

그렇다고 그런 잔인한 일을 시키십니까? 무엇보다 그 자를 증오하는 사람이 새벽제비인데?

그들은 새벽제비의 이름을 몰랐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제비는 그들이 모르는 채로 두었다. 그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새벽제비라는 이름에서도 상처를 받으면서, 작은 생채기라고 무시하며 그냥 두었다.

그 자는 하이옌의 아들을 죽였소.

그는 전령이고, 전령은 당연히 말을 전해야하네. 개인적인 감정은 개인이 해소해야지.

그가 무엇 때문에 당신들이게 협력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입니까?

디어는 막사를 나왔다. 이렇게 얘기를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게 그를 비참하게 했다. 후에 새벽제비가 찾아와 디어를 위로했다. 괜찮다고. 뭐가 괜찮은지 디어는 궁금했다. 상처받는 것? 그게 왜 괜찮단 말인가. 까마귀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는 김에 의사도 하나 필요하다고. 머리가 띵했다. 새벽제비는 자신의 동굴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좁아진 시야와 약해진 몸으로는 절벽을 기어오를 수 없었다.

슈,

디어가 해안가에 담요를 덮고 끙끙거리고 있는 새벽제비에게 달려갔다. 왼쪽 다리였다. 의사는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잠시 뒤에 도착했다. 그가 숨을 고르는 동안 까마귀가 상태를 설명했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고. 언듯 보니 서툴게 붕대가 감겨있었다. 의사는 디어와 까마귀를 조금 떨어뜨려놓고 제대로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미안.

까마귀가 뜬금없이 말했다. 디어는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내가 좀 더 빨랐으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겠지?

괜찮다. 네 잘못 아냐.

약간 짓궂게, 디어가 말했다.

잘못이라면 슈 녀석을 잘못일거다.

새벽제비는 이 어중간한 관계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디어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는 상황을 통해 스스로 상처입히고 그걸 수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를 얻었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사람이 가장 살고싶어하는 것 처럼. 너는 뛰어내리려고 그 동굴로 돌아갔던건가, 슈, 디어는 마음 속으로 물었다. 디어가 까마귀를 위로했다.

슈는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고,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미안해한다.

디어는 그 중 어디냐면, 디어였다. 의사가 거진 진료를 끝낸 것 같았다. 디어는 새벽제비에게로 갔다. 새벽제비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디어를 보았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이 사람아, 어딜 갈 때는 말을,

한두번 그런 것도 아닌데.

새벽제비는 애매하게 웃어보였다. 활짝 웃고 싶은데 고통때문에 일그러진 미소였다. 의사가 말도 안 하고 이렇게 다치면 진짜 혼나야한다고 옆에서 장단을 넣었다.

꼭 병원 가세요, 이대로라면 상처 썩습니다.

의사가 마무리를 하며 말했다.

다시 달릴 수 있습니까?

디어의 질문에 의사는 새벽제비를 힐끗 보았다. 디어는 너무 오래 살았다. 새벽제비도 그랬다. 달릴 수 없는 전령이라. 까마귀는 자기가 새벽제비를 부축하겠다고 나섰지만, 새벽제비는 부축보다 업히는게 나을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들것이 가장 좋지만 들것이 없지 않는가. 그것도 자기가 만들 수 있다며 까마귀가 열정적으로 나섰지만. 결국은 디어가 새벽제비를 업게 되었다. 그들이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까마귀는 의사와 먼저 도약선에 가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나를 왜 찾았나?

순간, 디어는 새벽제비의 방에 있었다. 그는 술에 취했고, 디어도 의자에 늘어져있었다. 싸구려 독주는 해가 되었다. 디어는 웃었다.

자네가 죽었단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네.

새벽제비가 뭐라 대꾸하기 전, 디어가 덧붙였다.

언젠간 듣겠지, 그래. 하지만 그게 오늘은, 오늘은 아니었으면 했어.

디어는 새벽제비와 있으면서 어렴풋이 그의 변화하는 정신을 알아차렸다. 그는 달과 같아서 어쩔 때는 여인으로 어쩔 때는 사내로 변모하였다. 여인일 때는 그의 몸과 정신의 위상이 가장 어긋나 애상에 가득한 표정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노래하였으나, 사내일 때는 몸과 정신이 합치하여 유쾌한 표정으로 살아있는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보곤 했다. 디어가 알아차린 것은 그의 표정이었다.

슈.

디어가 물었다. 새벽제비는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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