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024

네가 거기 있는 걸 내가 알지

소년은 남들이 제게 담배를 권하는 것이 싫어서 피우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유적 by 량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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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수중에 가진 거라고는 둘로 쪼개지는 이름자밖에 없는 그 레인저가 담배를 처음 입에 댄 것은 무려 열아홉 살의 일이다. 폭풍 숲과 그 근방의 또래 애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로, 그들은 대체로 어른들의 담배를 훔쳐다 피웠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담배를 순순히 도둑맞아 줄 어른도, 그런 어른들에게 꿀밤을 맞아가면서도 꿋꿋하게 금지된 일을 저지를 멍청함도 없었다. 대신 그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 그 목표는 그 또래가 저지를 수 있는 어떤 일탈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 된 소년이 첫 전투가 끝나고 연합군 야영지 구석에 침울한 얼굴로 앉아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에게 담배 따위를 권하지 않았던 것이다.

젊은 레인저는 마른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갖다 대 불을 붙이고, 그 불을 다시 물고 있던 궐련에 옮겨 붙였다. 붉게 빨아들인 연기가 새하얗게 토해져 나왔다.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도로 던져놓고, 흉강을 매캐하게 채웠다가 올라오는 연기를 멍하니 날숨에 섞던 그는 문득 생각했다. 아무도 없군.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전혀 문제도 없었다. 따지자면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레인저는 궐련을 다시 한번 빨아들이고 숨을 뱉었다. 산들바람조차 불지 않았으므로 연기는 그가 뱉는 방향으로 흩어져 갔다. 레인저는 연기를 아주 흩어 버릴 요량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어? 목소리가 잡아먹히듯이 나무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숲은 젊은이의 목소리를 삼키고도 태연하게 거기 서 있다. 레인저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림자와 더 짙은 그림자 사이를 노려보았다. 아니, 네가 거기 있는 걸 내가 알지. 언제나. 그림자 너머의 시뻘건 점 같은 눈이 보이는 듯했다가 사라진다. 냉혹하고 검은 것. 그러나 볼 수 없을 만큼 깜깜하지는 않다. 불그스름한 것이 시야에 걸린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의 시선. 고개를 돌리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를 몇 년이었다. 젊은 레인저는 이제 그것이 어딘가에서 나타나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네가 거기 있는 걸 내가 알지. 그렇게 연기를 뿜으며 말하면 은신을 들키기라도 한 듯 사라지는 환영.

그가 아직 단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었을 시절의 일이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이는 어느 마물의 턱에 찢겨 죽었다. 그래서 소년은 2년 동안 전쟁이 헤집고 간 설원을 헤매며 붉은 눈의 마물을 쫓았다. 그리고 끝내 그것을 잡아 죽였다. 소년은 그 해 새롭게 참전한 레인저 사이에서도 손에 꼽게 훌륭한 사수였으므로 그 순간을 활시위의 떨림만으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날 놈은 머리에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소년은 걸어서 다가가, 화살을 놈의 머리에서 뽑고 두꺼운 가죽에 촉을 문질러 피를 닦아냈다. 개운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 적 없었다. 소년은 실망하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열아홉에 처음 담배를 입에 대고도 극구 거절하고 다니던 그가 그 끔찍한 물건을 이젠 아주 물고 사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는 후각이 예민한 적을 상대하는 일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당초에 전쟁이 끝난 순간부터 그는 남은 평생 더는 마물을 죽이지 않고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야영지를 정리하고 군의 철수를 자진해서 도왔다. 마치 거기에 아직 찾지 못한 붉은 눈이라도 있는 양. 그렇게 하면 여태 그 피로 물든 겨울에 그를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입이 썼다. 레인저는 반쯤 탄 궐련을 그대로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몸에서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난다. 사냥은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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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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