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관찰 마법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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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새벽에 한 번쯤 깨는 일이 줄어들었다. 달에 두어번은 꾸던 악몽은 온데간데 없이 무사히 한달이 지났다. 부스스 일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가늘게 뜬 눈으로 확인한다. 일찍 잠드니 일어나는 시간도 점점 일러진다. 오전 8시 10분을 방금 막 지난 시곗바늘을 시야에 담고 나면 방 안에 만연한 고소한 크림 스튜의 향기가 마른 코끝에 감돈다. 천천히 침대
주인 없는 꽃다발을 샀다. 가끔 그런 날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요근래 종종. 두려움 위로 덮힌 외로움의 살갗을 꽃으로 덮는 일이 종종 생겼다. 상처가 난 곳을 새살이 덮으며 올라오는 것으로는 차마 세상의 따가운 것들을 전부 막아낼수는 없으니. 꽃들을 집에 잠시 손님으로 들였다가, 다시 땅에 심을 수 있으면 라벤더 안식처의 작은 텃밭에 심
소녀는 때때로 어린 해바라기와 같았다. 밝고 환한 곳을 향해 걸음 하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들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꽉 찬 사람들과의 한 때, 누군가와 닿는 온기들이 실재함을 알게 되면 자라날까 봐. 다시금 먼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봐. 그때 소녀의 눈은 많은 것들을 담아 눌렀기에 가득 찬 해바라기 씨앗과도 같았다. 하지만 가끔 그
“⋯케인 경은 이 방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예.” 이름이 불린 기사는 방의 열쇠를 들고 사라졌다. 미소와 함께 열쇠를 건네고 그 자리에 남은 콜린은 턱을 쓸며 골똘히 생각했다. 곧 돌아올 기사이자 친우와 자신이 들어갈 방만 있으면 방 분배는 얼추 끝난다. 예상보다 길어진 출정 탓에 급히 선회한 영지에 꽤 규모가 큰 여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2주라는
찬바람이 들었다. 밤사이 집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새벽 공기가 폐로 들어와 오랜 잠을 깨웠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로, 어림짐작은 이미 끝냈다. 비어있는 옆자리와, 창문이 있던 방향을 떠올리면 해는 머지않아 올라올 것이다. 오랜만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등불을 끄고 간 손길을 발견하고서야, 간신히 어둠에 시야를 온전히 회복할 수
상아색이 산화하는 햇빛을 받으며, 금빛 머릿결이 반짝였다. 오드리는 이제 막 목욕을 마치고, 느긋한 오후의 태양에 잘 데워진 안락의자에 눕듯이 기대어있었다. 요즘 인기 있다는, 마탑에서 발명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연주자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운 뒤로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이 느긋한 휴식을 종용하고 있었다. 행복하다고도 평할 수 있는 오후 2시 즈음의
“그러니 말해줘, 영원히…” 제 마음에 머물렀던 것 중에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을 모두 잃었기에, OO는 영원을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모든 것들은 순간과 찰나에 지나지 않아 손끝을 휘감고, 마음을 어지럽히고는 떠나기 마련이었다. 음유시인은 그러한 것들을 붙잡아 기나긴 영원 중 찰나를 따와 이야기로 만들기도 하고, 찰나를 영원히 남게 노래로 만들기도
어느 아침에 그 어두컴컴한 불안과 마주친 뒤로, 점성술사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흔적을 남겼음을 깨달았다. 반려가 임무를 나선 아침 이후에, 향 호트고는 간만에 외출을 결심했다. 먼지 쌓인 모자의 먼지를 털어내고, 아직은 살짝 냉랭한 초봄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오늘도 그 분류의 책 이십니까?” 점성원의 서고에서 한참 고민한 책을 꺼냈을 무렵이었다. 점성
귀에 스치는 것은 무엇이었지? 사랑한다는 말이었나, 아니면 바람 소리였던가? 따스히 비추는 무언가가 오늘도 나를 내리쬔다. 이 주째 같은 꿈이었다. OO는 슬슬 이 황금색의 친절함이 진절머리 났다. 보란 듯이 재현된 고향의 어떤 기억. 그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찬란히 부서진 햇빛을 받으며 OO는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어떤 손길이 뺨을
*주의!*글 내부에 다소 심리적 압박감을 일으킬 요소와 직-간접적인 사망의 묘사가 들어가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뛰는 몸에서는 언제까지고 뛸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아났다. 생존의 위협을 받은 사람의 몸은 마치 위대한 전사와도 같은 힘을 낸다고, 언젠가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너도 위험한 때가 되면 선택해야한다고. 쐐액 뿔 옆을 스쳐 지나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