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테르seter, 해홍기海紅紀.

[대만태섭] 해홍기海紅紀 01.

제 一 장, 사자지연死者之練 01.

해홍기海紅紀 ~東海使臣 紅川紀行~

슬램덩크 2차 창작, 세테르seter 대만태섭.

사자지연死者之練.

……그러니까 이게, 인천 코앞의 서해 용궁이 아니라 동해 용궁이란 말이지. 확실히 수사귀 하나를 용궁에 붙들어 놓고, 거기에 추모굿의 매개체가 될 산 사람의 의식을 초대하여 대면시킬 만큼의 신통력을 생각한다면 서해 용왕으로는 다소 격도 떨어지고, 사바세계의 산 사람에게 간섭할 권한이 없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 굿거리를 할 때마다 그 기원이며 그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던 게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될 줄이야. 어느 순간부터 꾸기 시작한 몽유도원이 자신이 추모굿 매개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기까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던 것들이 이제사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사실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푹 한숨을 내쉬던 대만은 여태까지와 다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이지, 당최 이게 무슨 변인지 모르겠다.

 ― 호오오.

온 천지가 그 자그마한 감탄사에 우르르 진동하며 울린다. 해저에서 백두산 천지가 분화한다면 꼭 이런 느낌일까. 뒷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용왕의 목소리에 심호흡도 잊은 채 곁을 돌아보자, 마치 기다렸다는 양 색색들이 햇살이 스르르 몰려들어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 오로지 빛으로만 형체를 이루어 이목구비조차 분별할 수 없지만, 풍모가 뛰어나다는 옛 기록대로 우람하고 건장한 신장이며 물결에 너울너울 춤추는 머리카락과 그 틈사이로 보이는 날렵한 얼굴 윤곽이 동해 용왕의 미색을 짐작케 한다.

 ― 과연 그리운 핏줄이로고. 정순貞純하여 곁에 둔 만큼의 보람이 있어 짐을 만족스럽게 하누나.

오롯한 호기심이 깃든 시선이 정대만을 꼼꼼하게 훑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궁금해할 뿐인 순수한 시선에 도리어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어, 대만은 자꾸만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하고픈 마음을 애써 다잡는다. 하고픈 말, 묻고픈 말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지만, 결국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왜 하필 저였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 유혼과 저는 연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 짐은 그 지위가 한미하여 너의 물음에 답을 알려줄 수 없구나. 다만, 저 아이는 네가 아니고서는 성불을 맞이할 수 없도다.

왜? 어째서? 대답은커녕 아리송한 말을 능청스럽게 내뱉은 동해 용왕이 시선을 돌려 유혼을 가만히, 나직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사람의 연이 그렇게 쉽게 맺고 끊어지는 건 아니라지만, 제 주변에서 그나마 동해와 연이 있을 법한 사람이 송태섭뿐인 상황을 생각하면 동해 용왕의 말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유혼이 정말로 자신이 짐작한 대로 태섭이랑 연이 있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태섭이랑 연이 닿은 유혼이 어떻게 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그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줄 알고. 저도 몰래 발걸음이 움직인다. 점점 가까워지는 유혼은 멀리서 바라만 보던 순간과는 달리 어느 정도 인상을 짐작할 수 있다. 얇은 뼈대와 훤칠한 신장은 그대로였지만 흐릿한 눈매는 느슨하니 나긋한 구석이 있고, 도톰한 입술이며 매끈한 콧날은 누가 보아도 송태섭과 같은 틀에서 찍어누른 듯 똑 닮았다. 그에 반해 부드럽게 휘어 올라간 입가는 어딘가 권준호를 떠올리는 어른스러움이 엿보인다. 그 내력조차 잊어버린 잡귀들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생전, 마지막 죽은 순간의 모습을 띠고 있어야 마땅한데도 눈앞의 유혼은 그러지 못하여 이리저리 생김새가 바뀌는 모양이다. 할머니께서 새벽같이 전화를 하신 이유가 새삼스럽게 짐작이 간다. 적어도 정대만이 알기에 이만큼이나 비이상적인 유혼은 민담으로 들어본 적도, 기록으로도 읽어본 적도 없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신기가 없는 것도 아닌 주제에 왜 이렇게 반응이 느려? 나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어.

“뭐야, 너 말 할 줄 알았냐?”

 ‘당연하지. 너 나를 벙어리 귀신으로 봤구나?

얼핏 보아서는 중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는 백호나 태웅이 또래처럼 보이기도 하는 유혼이 뾰로통한 목소리로 답한다. 마냥 바라보고 있을 때와 달리 희뿌옇게 드러나는 표정이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다채로워, 그는 동해 용왕이 눈앞의 유혼을 정순하다고 말한 이유를 깨닫는다. 유행을 타진 않지만 계절감이 뚜렷한 차림새를 보면 제 생각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죽은 건 분명한데, 바다에서 비명횡사한 수사귀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말그란 시선이며 뾰로통하기만 한 목소리에는 그 어떤 원怨도 한恨도 느껴지지 않는다. 짧은 인생을 바다에서 허망하게 쏟아버렸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고, 스스로의 목숨을 그렇게 앗아 가버린 바다에 원한을 품을 만도 한데……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눈동자에는, 정말 티끌만큼의 원망도 원한도 보이지 않아서.

다만 무색투명하게,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거울처럼 상대의 감정을 스스로의 시선에 담아 내비칠 뿐. 차분하게 유혼을 관찰하는 대만과, 그런 남자를 몹시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유혼을 바라보며 동해 용왕이 길고 나붓한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푸스스 웃는다. 천지가 웅웅거리며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어깨가 절로 쭈뼛하니 소름이 돋는다. 사근사근하면서도 나긋나긋한, 그저 한없는 애정만이 가득한 웃음소리인데도 등골 오싹하니 소름이 돋아 차라리 귀를 틀어막고만 싶을 지경이다. 태주太子鬼¹가 되어도 이상치 않건만 마냥 정순하기만 한 유혼. 동해 용왕의 웃음에 유혼을 향한 애정만 가득 담겨 있었다면 차라리 이해하기 쉬웠을 거다. 허나 동해 용왕이 마냥 애정으로 바라보는 대상에는 정대만 그 자신도 포함된 모양인지 시선이 등 뒤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깨달은 듯이 말했으면서 그리운 핏줄이니 뭐니 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토록 순수한 애정을 보내줄 수 있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적어도 그는 가족 친지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지금과 비슷한 일을 겪어본 기억도…… 없다.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정대만이 기억하기로는, 그랬다.

“근데 왜 하필 나야? 우리 서로 만난 적도 없잖아. 안 그래?”

 ‘……무신경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무신경하기보단 그냥 신경을 안 쓰는 거였네. 있잖아, 나도 딱히 너한테 부탁하고 싶지 않거든? 그치만 너 말고는 나를 성불시켜 줄 요건을 충족할 만한 사람이 없는 걸 어떡해.

“아이씨. 진짜. 서로 만난 적도 없는데 내가 네 일에 휘말려야 하는 게 말이나 돼? 새빨간 타인의 시간을 빌려 쓸 거라면 적어도 설명은 제대로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부러 유혼의 성질 긁는 이야기를 내뱉는다. 물론 여전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유혼의 성불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게 불만스럽긴 하지만, 한참은 어릴 녀석에게 노골적으로 굴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팀의 주전으로 뛸 수 있게 된 순간에 시간을 빼앗긴 셈이니 그만한 항의는 해 줘야 속이 풀리니 유혼에게 마냥 숙여줄 생각은 없다. 대만의 사뭇 유치한 책망에 유혼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고는, 동해 용왕의 오롯한 애정 가득한 미소보다도 더더욱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만의 곁으로 다가온다.

다만, 시선만큼은 여전히 무색투명하니 냉정하게 빛나고 있는 탓에 대만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둔하고, 무신경하고, 욱하는 성질머리까지 있네? 하기야. 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까 꽤나…… 짜증 나는 성격이네, 너. 북산고 14번 슈터 정대만은.

쿡. 유혼의 손가락이 정대만의 심장 위를 정확하게 찌른다. 마냥 무색투명하다고만 생각했던 시선은 어느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꾸역꾸역 억누른 분노가 들끓고 있다. 하물며 굳이 콕 집어서 고등학교 시절 포지션과 등번호를 들고 들어온다는 건, ……역시, 이 녀석은 송태섭과 연이 깊은 거구나. 그런 확신을 가져다준다. 그럼 형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저 말그란 눈동자가 품은, 꾸역꾸역 억눌러 삼킨 분노마저도 이해가 간다. 그래. 그 녀석과 연이 깊다면, 날 보고 화내지 않을 수 없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해 용궁에 성불을 위해서 추모굿을 해줄 매개체가 필요한 만큼 유혼도 필사적이고 간절했을 거다. 그렇게 필사적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찾은 매개체가 하필 저라니, 스스로 저지른 일인 만큼 송태섭에게 휘둘렀던 폭력의 부당함과 잔인함을 알고 있다. 만약 자신이 저 유혼의 입장이었더라면 백 번 고민하다가 성불을 포기했을 만큼.

그런데도 성불을 결심한 건, 용궁에 못 박혀 그저 혼으로만 존재하는 작금의 상황을 더이상 유혼이 견딜 수 없어서 그런 거겠지. 동해 용왕이 몸소 정순하다 말하기도 했고, 직접 겪어본 언행도 과연 그만큼 올곧아 앞으로의 행보가 쉬이 짐작이 간다. 스스로 모든 걸 잊은 채 산 사람을 위협하는 잡귀가 되는 것도, 있지도 않은 원과 한에 잡아먹혀 원귀나 악귀가 될 리 없는, 말 그대로 마냥 깨끗하고 정순貞順한 영혼. 어쩌다 원망이나 원한을 품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러한 사유로 누군가에게 피해 입힐 바에야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고 말 법한……. 그러니 생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사랑받았을 거다. 분명, 송태섭에게도.

“차라리 진작 성불했다면 좋지 않았어? 내가 알기론 시기만 놓치지 않았다면 굳이 나한테 손 벌릴 필요 없는 걸로 알거든?”

 ‘……사바와 완전히 연이 끊기는 결심을 하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잖아. 넌, 그런 결심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 그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도록. 짐이 더는 듣고 싶지 않노라.

머지않은 시간에 이미 성불을 결심했었던 유혼― 송준섭이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려 격노하려던 참을 동해 용왕이 능숙하게 끼어들어 사자와 생자生者간에 있던 대화의 맥을 끊어버린다. 하필이면 가장 예민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하필이면 가장 예민하게 만든 사람이 멋도 모르고 쿡쿡 찔러대니 둘의 대화를 차분히 지켜보던 입장에서는 이만한 날벼락도 따로 없다. 도통 원망도 원한도 미련조차도 몰라 마냥 정순하기만 하던 아이에게 자칫 그 씨앗을 싹틔우도록 부채질하는 모양새가 그렇게 어찔할 수 없다. 한동안 망연하게 넋을 빼고 지내던 준섭을 기억한다. 이제야 겨우, 간신히 넋을 차리고서 성불하려고 마음먹은 아이가 또다시 흔들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성불하고 싶다며 말을 꺼내던 순간부터 내심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의 손가락마다 묶인 청실홍실을 바라보며 짐작하던 동해 용왕은 남몰래 쓴웃음을 짓는다. 송준섭에게 있어 정대만은 도무지 좋게 봐주려야 봐줄 수 없는 인연이다. 그러한 인물이 하필이면 자신의 성불을 위한 추모굿의 매개체가 되었으니, 그토록 정순한 영혼을 가져 아무런 죄 하나 지은 줄 모를 아이에게,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아 성불하려는 상황을 그리 쉽게 끝내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이 또한 상제이신 천지왕天地王께서 아이에게 내리시는 격랑激浪이련가. 동해 용왕은 부러 아이들의 투닥거리는 말다툼 때문인 양 한숨을 푹 내어 쉴 따름이다.

동해 용왕이 묵묵히 응시하는 순간, 연배를 쉽게 짐작하기 힘든 유혼의 상相이 찰나에 선명해져 말그랗고 깨끗하던 시선과 달리 눈매며 그 형태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던 눈동자가 무척이나 밝고 부드러운 빛을 띠어, 송태섭과 그 동생 송아라의 눈동자까지 그대로 쏙 빼어 닮았단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여태까지도 생김새며 여러 가지 정황에 있어 눈앞의 유혼과 태섭이 사이가 웬만한 인연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쯔음 되면 몰라보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어려서 잃은 형제일까. 그렇담 명백히 저쪽이 태섭이네 형…… 이었던 거겠지. ……형이, 있었구나. 그 녀석. 거기까지 알아차려서야, 더는 눈앞의 유혼을, 송태섭의 어려서 죽은 형을 상대로 마냥 삐딱하게 굴 수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유혼과 시선이 마주친다. 오롯이 빛무리만으로 이루어진 형상일진대, 동해 용왕의 측은하면서도 보드랍게, 안쓰럽게 여겨주는 시선이 그토록 뚜렷하고 선명할 수 없다. 그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어 하는 그 심정이 마냥 정대만 저 홀로 그런 게 아니라, 상대, 그러니까 태섭이네 형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시선을 마주쳤을 뿐인데도 섬광처럼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다.

“……아무튼, 네가 먼저 성불하려고 날 찾아온 거야. 망자의 소원이 성불이라는데 그걸 안 들어줄 수도 없는 거니까 그 부분은 확실하게 도와줄 거지만, 너도 미적지근하게 굴지 마. 성불이 하고 싶으면 제대로 협조해. ……덕분에 또 당분간은 농구에서 손을 놔야 할 거 같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서 농구를 그렇게 오랫동안 빼앗고픈 맘, 없으니까.

여상스러운 태도와 다르게 목소리는 몹시도 쓸쓸하게 느껴졌고 억양도 어딘가 생소한 구석이 있다. 찰나에 직시하게 되었던 외양은 온데간데없이 얼굴 윤곽이며 눈매가 다시금 뿌옇게 흐려져 이목구비의 구분도 가질 않았고, 목소리도 더욱 낯설게 다가왔지만, 저를 바라보는 시선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발산은 기이하리만치 익숙하다. 뾰족하게 날을 세운 마냥 행동하다가도 막상 대화해보면 둥글둥글하니 상대를 배려하는 구석이 있더랬지. 송태섭도, 송아라도. ……걔네 집 부모님은 만난 적이 없으니 잘 모르지만, 적어도 눈앞의 유혼의 태도가 태섭이와 아라 남매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 건 확실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간 그 쓸쓸하기만 한 생소함이 이따금 태섭이에게서도 익히 봐왔던 구석이라 대만의 마음을 몹시도 심란하게 만든다. 형제라는 게 원래 다 이런 건가. 채치수 채소연 남매도 가끔 보면 이상한 데서 서로 꼭 닮아있더니 한술 더 떠서 눈앞의 유혼과 송태섭 송아라 남매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텐데도 여전히 꼭 닮아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섭이네 죽은 형제가 대상이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 해 줘야지. 워낙에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게 송태섭이니 눈앞의 유혼도 그렇게 변덕스러울지 모른다. 어디까지 말 한 바를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제 입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으니 정대만으로서는 그저 믿을 수밖에. 아무튼 겨울이 오기 전에 성불시키기만 하면 농구 선수 경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남지 않는다. 추모굿 매개체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바빠진다고 해도 팀 스포츠로써 농구를 하기 힘든 거지,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보면 저 혼자 공을 튕기며 연습하는 건 마냥 불가능하진 않을 거다.

그는 쓰라린 속을 그렇게 달래며 다시 한번 못 박는다.

“약속했다?”

 ‘그래. 약속할게. ……너 이거 영광으로 알아야 해. 나, 이제 약속 같은 거 잘 안 해주니까.

……갑자기 덜컥 죽는 바람에 태섭이랑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사람 찜찜하게 왜 괜히 사족을 달아서는. 대만은 서글픈 미소와 함께 등을 돌려 파도가 여울치는 수면 너머에서 쬐어 들어오는 윤슬을 가만히, 마냥 그리운 듯이 올려다보는 유혼을 울렁거리는 속으로 관찰하다가, 그대로 눈을 감아 잠에서 깬다. 고작 햇살이 수면에 반사되어 나타날 뿐인 윤슬의 어디에 의미가 있다고 저렇게 마냥 같은 자리에 못 박혀 해바라기처럼 한결 바라만 보는지. 잠에서 깨어나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몽유도원의 용궁 속에 남아, 태섭의 형제일 유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그 녀석이 태섭이네 죽은 형제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으면, 마음이라도 좀 편했을까.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심 지금 상황에서 도피하고픈 생각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아니,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걔가 날 대하는 태도가 너무… 생각보다 훨씬, 무척이나 부드럽고 다정하여서. 얼굴을 마주친 순간 서로 날카로운 말로 상처 주기 위해 달려들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송태섭을 향한 집단폭력의 가해자이자 주모자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런데도 자신을 대하는 유혼의 태도는 제법 모난 데 없이 둥글고 부드러웠고, 마지막 순간에는 그리움 가득한, 몹시도 아련한 시선을 빛내기까지 해서.

정말, 정말 도무지 그 유혼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1. 태주, 혹은 새타니. 어린아이가 죽어서 된 귀신 혹은 그러한 귀신이 몸에 실린 무당. 태주는 인간의 운명을 말해 주는 신으로 인식되며, 때에 따라 자손 번영, 인간의 무병장수, 혹은 죽은 자를 살리는 힘까지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공미포 5,827자.

변경된 연도며 설정을 기반으로 퇴고하다보니 초기 연재본이랑 설정 차이며 이것저것 차이점이 너무 많아서 쓰는 저도 헤매고 있습니다. 처음 연재할 때도 말했지만, 동해 용왕의 비중은 지금 이상으로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작중에서 명확하게 누구라고 명시하지도 않을 예정이구요. 실역사 기반인 부분은 스리슬쩍 뭉갤 예정이예요. 왜냐면, 쓰다보니 세테르 세계관 자체가 전반적으로 신라계 중심이 되었는데 그, 저, 그게.

제가 특히 신라가 한반도사 최애국가이고 하필이면 또 한반도 고대사 최애인물이 동해 용왕이랑 연이 깊은 인물이라서... 분명 동해 용왕이 누구인지 명시하고 나면 한반도 고대사 최애도 명시를 하고싶어 질텐데, 그렇게 되면 저는 더이상 폭주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슬램덩크 2차이고 애들 원본은 일본인이라는 점을...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열심히 속에서 꾸물거리는 신라사 러버의 정체성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네... 암튼 네. 다음 편부터 대마니는 본격적인 추모굿 매개체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근데 그전에 대만이네 큰집 가서 현지 조력자와 협력자를 얻어야만()

아참, 해당 연재본에 삽입된 각주는 소장본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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