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희극적 아이러니
히프노스 드림
신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도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물고기가 새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그렇기에 양쪽 다 자신들의 몰이해를 특별히 부끄러워하지도 한탄하지도 않았지. 신화시대의 그리스에선 이 이질감은 그야말로 상식이나 다름없었으며, 오히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불경(不敬)한 주장에 가까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상식이란 기원후까지 이어졌으니.
지금까지 도착한 망자의 조사를 마친 히프노스는 오직 저승의 왕만을 위해 준비된 옥좌의 옆에서 오순도순 모여있는 두 여인의 대화를 엿들었다.
“도와줘서 고맙구나, 얘야. 자그레우스는 오래 지상에서 머물 수 없어서 함께 가기 힘든데, 네 덕분에 방치되어 있던 밭도 다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지상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하며 제 옆에 선 이를 격려하는 여인은 페르세포네. 지하의 왕 하데스의 아내이자, 저승의 여왕 되는 여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존재에게 칭찬받고 있는 이는, 놀랍게도 평범한 인간이었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도 혼령도 아닌 모호한 존재였지만 말이다.
“아니에요! 여왕님께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죠! 저는 여기에 얹혀사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리스어 사용자는 제대로 발음도 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저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이 하데스 궁에 있는 석류 정원에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후의 미래에서 태어났지만, 운명의 신의 장난으로 이 시대의 저승으로 오게 된 저 이방인 여인은 본래라면 하데스의 궁에 머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저리도 뻔뻔하게 궁전의 안주인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특수성과 언젠가 벌인 기행 덕분이었지.
“저승과 이승을 오갈 수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생기니 참으로 편하구나. 운명의 여신들도 이런 이유로 너를 보낸 걸지도 모르겠어.”
“그, 그런가요? 저야말로 여왕님에게 귀염받을 수 있어서 기쁜걸요.”
저건 거짓말은 아니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다. 히프노스는 아직 살아있는 풀 내음이 가시지 않은 손으로 양 뺨을 감싸며 수줍어하는 인간 여인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저 여자가 굳이 이 볕도 안 들고 밤이 계속되는 죽음의 공간에 머무르는 건, 돌아갈 방법을 몰라서도 지하세계의 여왕에게 귀염받을 수 있어서도 아니다. 어떻게든 원래 시간대의 지상으로, 혹은 지금 이 시대의 지상으로라도 보내 주겠다는 하데스의 은혜를 거절하고 눌러앉은 이유는. 혹여나 살아있는 몸이라고 쫓겨날까 봐 석류 한 통을 훔쳐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먹어 치운 이유는…….
“코베르타, 돌아왔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수다를 기다리다가 지친 히프노스는, 슬그머니 인간 여인의 뒤로 다가가 상대의 애칭을 부른다.
언제나처럼 빠른 속도로 조잘대지 않고 간결하게 할 말만 하는 건 그에게는 꽤 어색한 일이다. 그러나, 히프노스는 이제 볼 진풍경을 떠올리면 좀 더 떠들고 싶은 욕구 정도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다.
“헉!”
갑자기 뒤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코베르타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더니, 자신보다 조금 클 뿐인 페르세포네의 뒤로 쏙 숨어버렸다.
‘어머.’ 재미있는 광경을 봤다는 듯 소리 죽여 웃은 여신은 태연하게 히프노스와 인사했다.
“미안하구나, 히프노스. 내가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빼앗은 게 아닐까?”
“오,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여왕님께서 외출하신 동안 일을 모두 마쳐놓을 수 있었고, 바쁘게 일하느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저보다는 하데스 님께서 오붓한 시간을 원하시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얼른 남편에게 가봐야겠구나.”
‘아앗.’ 자신을 두고 하데스에게 가는 페르세포네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코베르타는, 그제야 목각인형처럼 어색한 자세로 히프노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얼굴이 아스포델의 용암처럼 새빨간 그는 자신을 향해 생글생글 웃고 있는 히프노스에게 인사했다.
“다녀왔어요, 히프노스.”
“어서 와, 하데스의 궁전에! 그래, 이승에서 뭘 하고 왔길래 이렇게 늦은 거야? 일을 다 끝냈는데도 안 와서, 나는 네가 아예 이승으로 올라간 줄 알았다니까?”
“예? 많이 기다리셨어요?!”
사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만, 상대를 놀릴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지. 히프노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스럽게 굴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 신들은 죽지도 않고, 아주 오래 살고, 여기는 늘 밤이니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나 실감이 잘 안 나거든!”
“죄송해요! 다음에는 더 일찍 올게요!”
“아하하, 그럴 필요 없어! 여왕님이 오고 싶을 때 돌아와야지, 너 혼자서는 스틱스강도 건널 수 없잖아?”
그 점은 반박할 수 없는 걸까. 코베르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풀물이 든 손만 매만졌다.
아,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제 곁에 있고 싶다고 신이 기르는 석류를 냅다 서리한 사람과 눈앞의 여자가 동일 인물인 게 믿기지 않는다.
정말이지. 살면서 수많은 인간 혼령들과 위대한 영웅, 괴물까지 전부 본 자신이지만 이 인간 여자는 유독 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흥미로우니, 어찌 되든 좋지 않겠나. 저 좋다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히프노스는 도무지 진정할 줄 모르는 코베르타를 보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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