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Moth Waltz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판타지 AU 

*아이돌 안함 

*사망소재 주의 

 

#슈미카_전력_60min 

주제: 죽은 자들

 

 

 

작은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옷을 짓는 부티크가 하나 생겼다. 간판도 세련된 프랑스어로 씌어 있어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조차 이 동네에는 없다. 사람들은 선망과 생소함이 섞인 시선으로 쇼윈도 안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다니곤 헀지만, 얼핏 보기에도 비싸 보였기에 쉽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값비싸 보이는 옷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언제나 카운터 안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거나 그렇지 않을 때는 밖을 가만히 노려보는, 까다로운 인상의 주인 때문이었다. 목덜미와 이마 아래쪽에 머리카락이 닿지 않을 정도로 짧은 머리에, 도자기 인형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그 남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면 사람들은 금세 위축되곤 했다. 옷을 살 생각도 없었는데 '내가 지은 옷을 입을 가치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꾸중을 받는 듯한 시선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슈 군, 이번에는 정말로 찾으러 가지 않을 생각이야?] 

 

앤티크 테이블로 만든 카운터 한쪽에 앉아 있던 소녀 인형 쪽에서 소리가 났다. 고개 숙여 바느질에 열중하던 남자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환생을 반복하면서 영혼의 기척이 점점 옅어지는 바람에 갈수록 그 아이를 찾는 게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야. 어쩌면 지금쯤은 나를 완전히 잊어버려, 실제 찾아낸다 해도 내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이번 생은 그 아이의 삶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싶군." 

[슈 군도 참, 거짓말이 서투르다니까.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 그 아이가 사는 동네에 이렇게 눈에 띄는 부티크를 내?] 

"…." 

 

할 말이 없는지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계속 바느질에만 몰두했다. 소녀 인형이 마치 한숨이라도 내쉬는 듯 약간의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약속했잖아. 몇 번을 태어나도, 몇 번을 다시 만나러 가겠다고. 몇 번이고 다시 사랑하겠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거야?] 

"…오늘따라 사정이 없군, 마드무아젤." 

[항상 거침없이 행동하는 슈 군이 우물쭈물하는 걸 보니까 답답할 뿐이야. 혹시 지난번 일 때문에 그래?] 

"…마드무아젤. 아무리 사랑스러운 너라도, 지금만큼은 이야기를 들어 주기가 어렵다는 것이야." 

 

결국 슈가 고개를 들자, 마드무아젤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마지막일 수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해, 슈 군. 안 그러면 정말로 후회가 남을 거야.] 

"하아…." 

 

슈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가,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미간의 주름을 꾹꾹 눌러 폈다. 그 모습을 본 마드무아젤 쪽에서 방긋 웃는 기척이 났다.

 

[그것 봐, 미카쨩한테서 여러 번 지적받은 걸 여전히 의식하고 있으면서.] 

 

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용서해 다오, 사랑스러운 이여. 나는… 다른 누구의 거절도 두렵지 않지만 그 아이만큼은…." 

-딸랑딸랑, 우당탕! 

 

갑자기 종이 달린 유리문이 요란하게 울리고 누군가가 쏟아지다시피 안으로 굴러들어 왔다. 

 

"시, 실례합니더! 죄송합니더! 불 켜진 데가 여밖에 없어가꼬… 하아, 하아… 사, 살려주이소!" 

"카…?!"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깨끗이 닦인 대리석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는 그 덩어리의 정체는 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던 슈는 소년에게 재빨리 달려가려다 헛기침을 한 번 크흠, 하고는 험악한 시선을 보냈다. 

 

"무슨 일이지? 이곳은 부티크. 손님이라면 조금 더 격식을 갖추어 들어오기를 바라지만, 옷을 맞추러 온 것이 아니라면 내 손님이 아니다. 가게는 손님이 아닌 자는 받지 않는 곳이다. 나가도록." 

"하아, 하아… 응…? 숨 쉬기가 편하구마…." 

 

숨을 헐떡이던 소년은 문득 고개를 들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슈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눈치였다. 

 

"방금 전까지 숨이 막혀가 딱 죽을 거 같았는데, 왠지 이 가게가 눈에 띄어가 내도 모르게 들어왔더니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아졌네예…." 

 

언뜻 쇼윈도 밖을 보니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수백 개의 눈이 달린 그것은 소년 쪽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가게 안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는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슈는 한숨을 내쉬고 손을 몇 차례 내저었다. 그러자 안개는 언제 존재했느냐는 듯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평소에도 이런 일이?" 

"예에? 아… 내, 쪼매 영감이 있다꼬 해야 하나, 구신 같은 넘들한테 잘 걸리긴 하는데예… 오늘은 우째 앞도 잘 뵈지 않는 기, 숨도 턱턱 막혀가꼬… 허부적거리다 보니께 일루 들어왔심더…."

 

기침을 하며 고개를 든 소년은 문득 슈의 얼굴을 보더니 얼어붙었다. 

 

"뭐지?" 

"아… 아입니더. 암것도 아이고… 그…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억수로 예쁜 얼굴이 코앞에 있어가…." 

"…흥." 

 

소녀 인형 쪽에서 희미하게 웃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지만 슈는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체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만 가 보도록. 아마… 이제 괜찮을 것이다." 

"?"

 

유리문을 살며시 열고, 고개를 쭉 빼서 밖을 두리번거리던 소년이 뒤를 돌아보더니 해죽 웃었다. 

 

"머가 먼진 모르겠는데 진짜 개안은 거 같네예. 감사합니더~."

"흥."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소년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벌써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바느질거리를 다시 집어들던 슈가 쳐다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그… 손님이 되믄, 가게에 또 와도 되는 기지예? 여그서 옷 한 벌 맞출라믄 얼매나 하는데예?" 

 

슈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름." 

"예?" 

"이름을 물었다." 

"아아, ■■■■ ■■라 캅니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글자 수는 맞는다. 

 

"학생이겠지. 방과 후 내 가게에 와서 매일 일하도록. 그러면 1년 후 네게 맞는 옷을 지어 주겠다." 

"예… 예?!" 

"나는 옷값을 돈으로 받지 않는다. 상대가 지불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받지. 내가 제시하는 방법이 싫다면 손님이 될 수 없어." 

"오, 올게예! 매일 오겠심더!" 

 

소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뒤 가게를 나갔다. 

문이 닫히고, 부티크 안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마드무아젤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저런, 저런. 슈 군이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미카쨩이 먼저 왔잖아.] 

"…과연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까? 저 아이는 나를 기억도 하지 못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야." 

[어머,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저 아이가 이 가게의 손님이 되겠다고 버틴 것도 그냥 우연?] 

"마드무아젤…." 

 

 

*** 

 

 

"응아." 

 

문득 눈을 뜨고 몽롱한 기분으로 입가의 침을 슥슥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서 무시무시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깜짝 놀라 허리를 반듯하게 펴자 칫, 칫,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했지, 옆에서 쿨쿨 자라고 널 데려다 놓은 것은 아니다만." 

"응아아~! 미안하데이! 집중하는 스승님 옆에 있으믄 왠지 편하고 마음이 놓여가… 그카고, 딱히 할 일도 없지 않나? 내 아까 바닥도 싹싹 다 닦아놓구 옷도 새로 싹 걸어놨다 아이가." 

 

소년이 부티크에 드나든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며칠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첫째, 진짜로 손님이 없다. 물론 자신이 오는 시간대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만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지금까지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둘째, 그런데도 가게 주인은 매우 바쁘다. 뭘 그렇게 만드는지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늘 천에만 파묻혀 있다. 게다가 기막히게 솜씨가 좋고, 완벽주의자다. 신기한 마음에 슬그머니 관찰하고 있었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바느질을 배워 보겠냐는 말이 날아왔다. 목소리와 말의 내용이 너무나 일치하지 않아서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방금 준 과제는 반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농! 게다가 난 이런 식으로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만!" 

"응아~ 우예 하는지 딱 한 번 보여주고 '자, 그럼 해 보라는 것이야' 라카믄 내 우예 따라하노?!" 

"지금 내 흉내를 낸 것이냐? 그게?!"

[우후후.]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는데 옆에서 희미하게 웃는 기척이 들렸다. 처음에는 인형 쪽에서 말소리가 나는 통에 기겁을 했지만, 이 신비한 공간 안에 있으면 인형이 말하는 것도 묘하게 납득이 된다. 

 

[정말, 사이가 좋다니까. 보고 있으면 흐뭇해져.] 

"마드무아젤, 네 안구를 바꿔 끼울 때가 온 건가?" 

"마드 누나~ 이기 사이 존 걸로 보이나~?" 

[우후후.] 

 

어찌되었든 이 안에 있으면 실제로 편안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상하게, 본래는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자꾸 보여서 괴로웠다. 누가 봐도 영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인간이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거나, 기묘하게 생긴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존재들이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는 바람에 울면서 달아났던 등의 경험이 워낙 많은 터라 이제는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는 함께 놀면서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검은 안개는 유달리도 집요했다. 동네 사람인 관계로 이 부티크의 무뚝뚝하고 아름다운 주인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었기에 지나다니면서 함부로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그날은 정말로 매달릴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 단순히 불이 켜진 유일한 가게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구세주처럼 보였다. 

그래서 뛰어들었는데, 뜻밖에도 마냥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고 심지어 매일 드나들 수 있게 된 점에 사실은 놀라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게 안에 있으면 괴이들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이후 경험으로 알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지켜 주는 것 같기도 했고, 보드랍고 푹신한 무언가에 감싸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가 쌀쌀맞게 굴고 퉁명스럽게 밀어내도, 그 속마음은 따스할 거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자꾸 다가가게 된다. 

 

"스승님, 요기 내 진짜 잘 모르겠는데 함만 봐 도." 

"흐음… 그럴 때는 이렇게 당겨서, 이렇게. 이런 식으로 매듭을 지으면 된다는 것이야." 

"응후후." 

"뇌에 톱밥이라도 찼나? 웃는 이유가 뭐지?" 

 

어째서인지 뺨이 달아올라, 차가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두 뺨을 감싸고 웃었다. 

 

"말투도 사납고, 쌀쌀맞은 거 같아도… 사실은 상냥한 사람이구나 싶어가. 그카고, 그걸 아는 사람이 지금 이 동네엔 내밖에 없다꼬 생각하니께, 헤헤." 

"…정말 여전하군, 카게히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방금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해 보라는 것이야." 

"응아, 알았데이. 스승님, 근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는 카게히라가 아인데. 이름 잘못 불렀데이." 

 

상대방의 얼굴에서 종잇장처럼 핏기가 싹 가셨다. 

 

 

*** 

 

 

"응에에…?" 

 

다음날 방과 후 가게에 와 봤다가, 깜짝 놀랐다. 주말도 없이 늘 열려 있던 부티크 문이 굳게 잠겨 있었던 것이다. 전날 쉬겠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는데 무슨 일일까. 설마 갑자기 아프기라도 한 걸까? 

쇼윈도에 착 붙어서 열심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카운터의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마드무아젤과 눈이 마주쳤다. 

실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마드무아젤 쪽에서 자신을 열심히 부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머고? 혹시 뒷문이 있나… 응아아, 여가 뒷문이가? 만날 앞으로만 들어와서 몰랐구마." 

 

한 번도 뒷문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위치를 몰랐다. 하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처음 이 부티크에 찾아오게 된 원인이었던 눈알이 가득 달린 시커먼 안개가 갑자기 전신을 또다시 뒤덮는 바람에 숨이 턱 막혔다. 손을 내밀어 더듬으니 겨우 한 줄기,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손에 닿았다. 살짝 열려 있던 뒷문의 문틈이었다.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 겨우 안개에서 풀려나 숨통이 트이자, 다음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구체적인 가격은 모르지만 값비싼 소재로 만든 값비싼 옷이 가득한 고급 부티크인데 이렇게까지 위기 의식이 없어도 되는 걸까. 

 

"시, 실례합니더…." 

 

삐이…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 안쪽이 보이고, 소녀 인형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카쨩! 미카쨩! 어서 2층으로 가 봐 줘! 슈 군,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 상태로 며칠이고 간단 말이야! 어서!] 

"응아아, 2층도 있었나?! 알았데이. 근데…." 

[알아! '난 미카가 아니야'라는 거지? 하지만 지금만은….] 

 

만일 움직일 수 있다면 거의 이쪽으로 다가와 두 손을 꼭 잡고 간절하게 바라볼 듯한 기세로, 소녀 인형은 말했다. 

 

[제발 부탁이야. 잠깐만이라도 '카게히라 미카'가 되어 줘, ■■■■ ■■ 군.] 

"카게히라 미카…." 

 

지난번에 스승님이 잘못 불렀던 이름도, 지금 마드 누나가 부르는 이름도 결국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손님도 없는데 매일 열심히 열던 가게를 닫은 이유가 어쩌면 그 사람 때문이 아닐까. 

가슴속이 욱신거렸다. 

 

"스승님, 있나…? 내 마드 누나가 알려줘가 들어왔는데… 허락 없이 올라온 거 미안하데이…." 

 

계단을 올라 2층에 가 보니 1층의 가게보다도 더욱 수많은 실과 천, 레이스, 프릴과 재봉도구로 가득했다. 마치 정글처럼 물건으로 꽉 찬 그곳을 헤치고, 한참이나 찾아 헤맸다. 어째서일까,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넓은 공간이 아닐 것 같은데 신기하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스승님… 스승님…?" 

 

옷 뭉치에 발이 걸려 여러 번 자빠질 뻔하면서 이곳저곳 더듬더듬 찾아다니다 보니 조그맣게 뻥 뚫린 공간이 나오고, 그 한복판에 보랏빛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웅크려 앉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스승님, 어데 아프나?" 

 

어쨌든 찾던 사람이 보여 안도하는 마음에 다가가자 희미하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아아… 아아… 그런 반응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고…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역시… 카게히라가 아니라고 하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는…." 

"…." 

"카게히라… 카게히라…." 

 

열에 들뜬 듯 그 이름만을 반복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어째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등 뒤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았다. 

 

"미안타, 스승님. 내… 마드 누나한테 부탁받았는데, 차마 그 사람이 될 수는 없구마. 그치만… 내는 안 되겠나? 내는…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나?" 

"…?!" 

 

불에 덴 듯 퍼뜩 놀라며 돌아보는 상대의 제비꽃 빛깔 눈동자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에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우지 마래이, 스승님. 

우지 마래이. 

 

"우지 마래이…." 

"아아, 아…." 

 

커다란 두 손이 뻗어 왔다. 

뺨이 감싸이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입술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해일처럼 무너져 내린 그것이 머릿속에 끼어 있던 찌꺼기 같은 것들을 전부 쓸어내자, 선명한 이미지가 남았다. 

 

"응아~ 그니께 보자, 인자 한 8백 년 됐나? 첨 만났을 때도, 스승님은 울고 있었제. 길을 잃고." 

 

입술을 뗀 미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암만 꼬맹이 때였다꼬 해도 글치, 악마 귀족 체면이 말이 아이제." 

"카, 게히라…." 

"응후후, 그때 손 잡고 숲 밖으로 델따 준 기 설마 여까지 올 줄은 몰랐지마는." 

 

미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슈가 팔을 뻗었다. 미카도 두 팔을 벌려 슈의 어깨를 안고, 두 사람은 서로의 등을 감싼 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는 내, 결국 굶어 죽었다 아이가. 워낙 가난하고, 묵을 기 없을 때였으니께." 

"인간은 악마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시 내가 몰랐던 바람에…." 

"그카구, 그 담엔 마, 그래도 행복한 인생이었제. 이 눈 땜에 구박은 쫌 받았지마는 그럭저럭 먹고는 살았응께." 

"내게 주겠다고 깊은 산 속에만 핀다는 꽃을 꺾으러 갔다가 발을 헛디뎌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내 기분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야…." 

"내는 죽었으니께 모르지만, 스승님이 시체 잘 거둬 줬제? 응후후… 생각만 해도 오싹오싹하데이." 

"제 명을 다했든, 다하지 못했든 네 시체를 거둔 적이 도대체 몇 번인지 이젠 셀 수도 없으니 처음처럼 마음 아파하지는 않지만, 왜 그 부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여전히 통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야." 

"응아~ 설레는 걸 우야노. 그라믄 그 담은 머였더라? 내 고양이였던 적도 있구, 개였던 적도 있구, 소였던 적도 있는 거 같은데…." 

"동물로 태어났을 때는 너를 비교적 내 옆에 두기 쉬워서 편했다는 것이야. 타고난 수명이 짧아, 오래 함께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 

"응후후, 내도 스승님이 쓰다듬어 주는 기 항상 젤 좋았제." 

"어떤 시대에, 그 무엇으로 태어나도 나는 항상 너를 찾아냈다. 너는 나를 보고 항상 이전의 기억을 쉽게 떠올렸지. 하지만, 지난번에는…." 

 

슈가 손을 뻗어 미카의 얼굴을 더듬었다. 뺨을 쓰다듬다 마침내 감싸 쥐고, 푸른색 쪽 눈동자의 눈꼬리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물었다. 

 

"왜 나를 피했지? 끝까지… 나를 만나 주지 않았지? 나는 어느 때라도, 어떤 모습의 너라도,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돌봐 주고 싶었는데. 왜 내 소망을 이루어 주지 않은 거지? 나의 카게히라." 

"응아~ 생각 좀 해 보래이. 스승님은 안 그래도 이쁜 거 좋아하는 사람이구, 내는 스승님한테 이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하필 나방으로 태어나부렀따 아이가. 이쁜 나비였으믄 팔랑팔랑 날아서 스승님헌티 갔을 텐데…." 

"농! 그 아이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방이었을 텐데, 너의 심술로 결국 끝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무리 한탄해도 돌아오지 않아." 

"응아아…." 

 

슈가 미카의 손을 잡아당겼다. 손가락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어 깍지를 낀 후 힘을 주고,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일 때문에 나는 몹시도 겁이 나, 이번에도 네가 날 거부할까 두려워… 마드무아젤이 널 찾으러 가라고 채근하는데도 움츠러든 채 그저 널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겠다고, 참으로 패기 없이 굴었지." 

"응후후, 스승님은 살믄서 실패한 일이 거의 없응께, 한 번 실패하믄 타격이 클끼다." 

"하지만 입을 맞추고 나서야 겨우 기억해내는 걸 보니 점점 영혼이 옅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군. 다음에는 대체 무엇을 해야 떠올려 줄지." 

 

슈가 한숨을 내쉬자 미카는 자세를 고쳐 슈의 품에 더욱 바싹 안기면서 그 가슴에 뺨을 묻었다. 따스한 체온이 뺨 가득 퍼졌다. 

 

"뭐든 내는 상관없데이. 스승님이 하는 일이라믄 머든, 내는 다 받아들일끼다. 그니까 걱정 마래이." 

"그렇다면 약속해 다오. 나방이 아니라 그 어떤 추한 것으로 태어나더라도 너 역시 나를 받아들여 주겠다고." 

"응아~ 스승님이 또 우는 건 원치 않으니께, 생각해 보겠심더…." 

 

이번의 생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하기를 바라며, 수백 년의 연인은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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