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후부유키 / 하얀 흑심

이나즈마일레븐

겨울에는 공기에서 겨울 특유의 향기가 났다.

반짝반짝 얼어붙은 공기가 차갑게 목 안을 훑고 내려가 폐에서 냉기를 활짝 펴면, 커다란 박하사탕을 힘차게 깨문 것처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싸한 향기가 났다. 선배는 그것이 겨울의 향기라고 말했다. 네 개의 계절에서는 각각의 향기가 난다고,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사레가 들렸는지 켁켁거리며 기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 또래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배가 기침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가서는 겨울 한가운데에 하늘하늘 떠다녔다. 선배는 몇 번을 쿨럭거리다 마침내 기침이 멎었는지 나를 보며 따라 씩 웃어보였다. 가늘게 눈을 접고 웃는 모습이 어른답지 않게 순진해보여서 나는 가슴 떨렸다. 선배, 바보 같아요. 괜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뺨에 닿는 겨울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후부키 시로. 시로이 후부키.

하얀 눈보라라는 이름처럼 선배는 겨울을 닮은 사람이었다. 추운 날씨처럼 보랏빛이 도는 하얀 머리카락에, 누그러든 추위처럼 살짝 처진 눈. 그 나긋나긋하면서도 가끔씩 세차게 몰아대는 눈보라 같은 말투가 정말로 겨울을 닮았었다. 그래서였을까, 선배에게서는 겨울의 향기가 났다. 힘들어하던 나를 일으켜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다정한 바람의 냄새가 났다. 마음에 포근히 내려앉아 슬픔도 기쁨도 함께 감싸안아주는 흰 눈의 냄새가 났다. 나는 선배를 만나서 처음으로 내가 홋카이도에 살고있다는 사실이 기뻐졌다. 긴 홋카이도의 겨울은 오래토록 그 잔향을 남겨 마치 선배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그 뒤에는 봄이 오는 것이 당연한 일.

선배에게서 봄은 내가 아니라 라이몬이었던 것일까.

겨울은 당신을 잡으려는 나를 버리고 가버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선배만을 바라보던 나를 버리고 라이몬으로 가버렸다. 무언가 이유가 있었다면 한 마디라도, 나를 생각했었다면 적어도 단 한마디 말이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온종일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언젠가는 올 거라고, 그렇게 바보같이 생각했었다.

왜, 왜 선배는 떠났을까.

나는 슬펐다. 슬펐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슬펐다. 눈물이 얼어붙어 내린 눈이 선배를 기다리는 내 어깨를 덮었다. 사락사락 내리는 눈에선 선배를 닮은 겨울의 향기가 나서 너무 슬펐고, 너무 추웠고, 마음이 너무나도 시렸다. 손끝은 빨갛게 얼었고, 울지 않으려고 꽉 쥔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았다. 너무나도 아팠다. 손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선배를 기다린 채 하루가 지나버렸고, 하루가, 이틀이, 사흘, 나흘이, 그 나날들이 “너는 배신당했어”라며 잔인하게 손가락질하며 나를 비웃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선배가 돌아오길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선배를 기다리며 계속 생각했다. 적어도, 적어도 왜 갑자기 날 버리고 갔는지 이유라도 말해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제발 그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왜 선배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을까. 왜, 왜? 어쩌면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흑심을 눈치챘기 때문에 나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후부키 시로는 감독이자 선배였고, 나는 그의 제자였다. 선배에게 나는 겨우 그 정도일 뿐이었겠지만, 나는 그를 선배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람처럼 어여쁜 호를 그리며 생긋 웃는 그 모습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듯 내 모습을 담는 그리니치블루의 눈동자가, 밤하늘에 쏟아진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차갑게 내 마음을 쓸어가는 겨울의 향기도, 그 모든 것이, 선배의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선배를 좋아했다.

선배가 나를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선배를 좋아했다. 계절의 변화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에 휘몰아친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선배를 좇았다. 커다란 나무처럼 언제나 의연하게 서 있는 선배의 모습을 눈에 새길 때, 소리내어 부르면 공중에서 선배의 이름이 꽃망울처럼 어여쁜 울림을 안고 피어날 때, 짧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선배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그럴 때마다 느끼는 설레는 떨림이 첫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아니, 알았다.

그래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품고 있었다.

선배의 하얀 마음에 ‘좋아해요’라고 쓰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는 내가 첫 글자를 쓰기도 전에 나를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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