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라

✶3 은하수 (22.05.23 재업)

지난번 너의 마지막 바람을 이뤄주기 위하여| 야크슈리+아난타

ESAVIR by Riv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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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샤,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의 강을 본 적 있어?”

뜬금없는 질문에, 야크샤는 어처구니없다는 마음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며 친우를 바라보았다. 뭐야 야크샤, 생각이 얼굴에 다 보여~ 아난타는 장난스레 웃으며 야크샤의 볼을 옆으로 늘렸다. 아프다, 놔라아. 살짝 엄살을 부리며, 야크샤는 볼을 향해 엄습하는 아난타의 손을 잡고 그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볼을 그만 잡게 하려는 의도를 훤히 알면서도 와, 야크샤랑 손 잡았다~ 하고 즐겁게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만 살펴보니 고민할 때의 얼굴과는 달리 맑고 생생한 것이, 저만 아는 이유로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시간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닌 듯 하고. 큰 눈을 뎅구르르 굴리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야크샤는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은하수를 말하는 것 아니냐. 은하의 중심부, 별무리처럼 흐드러진 그것.”

“응, 그거!”

“나스티카라면 보지 못한 녀석은 없을 것 같다만, 그런 건 또 왜 묻느냐? 드디어 네게도 연인이라는 존재가 생긴게냐?”

“에, 나? 나는 아니고~”

아난타의 금빛 섞인 분홍빛 눈이 야크샤를 뚫어져라 담았다. 참으로 은근하고, 의미심장하고, 의도가 있으며… 장난스러운 눈. 예끼, 장난은 그만 치고. 야크샤는 들고있던 곰방대로 아난타의 이마를 꾹 눌렀다. 야크샤아, 그거 아파. 좀전의 그와 마찬가지로 엄살을 부리다가, 아난타는 억울한 듯 야크샤를 바라보았다. 연인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찔리지 않느냐는 의도라면 부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야크샤는 능청스레 모르는 척 넘겼다. 세상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런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아난타는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고, 야크샤는 멎쩍게 웃으며 아난타가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요전번에 일이 있어서 인간들이 사는 행성에 잠깐 가봤거든. 조금 구석진 곳에 있어서 별로 볼만한 건 없었어. 되게 조용하고, 어둡고… 맛있는 것도 없더라. 그렇게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왠지 하늘이 밝아서 올려다보니까 세상에! 거기서 되게 예쁜 은하수를 본 거 있지! 너 요새 슈리에게 좋은 거 보여주고 싶다고 고민하던 거 떠올라서, 바로 왔어.”

“…….”

“? 왜 그래?”

“…아니…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지만, 그건 일단 넘기마. 그보다, 행성에서 보는 건 또 다른 것이냐? 우주에선 굳이 찾아 볼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만.”

“에이, 진짜라니까! 내 안목 못 믿어?”

“뭐… 미적 감각이라면 믿을 만 하려나.”

“흐음… 뭐야, 안 믿는 부분도 있다는 거야~?”

“개인적인 취향은 다를 수도 있는 법 아니냐. 예를 들어, 넌 무언가를 섭취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지만 난 선호하지 않지….”

“아하, 그런 부분.”

“이런 걸 굳이 설명까지 해야 하더냐…. …헌데, 행성에서 은하수를 본 기억은 나조차도 없는 것 같다만… 볼 수가 있기는 한 게냐?”

야크샤의 의문은 타당했다. 행성에서의 밤하늘은 대개 그 행성의 밤을 밝히는 항성, 혹은 위성이 존재했고― 은하수라는 것은 보통 아주 어두울 때에나 밤하늘에 드리워지는 놈이었다. 인간들의 행성은 그들이 밝혀둔 불빛이 가리고, 없는 행성은 주위의 위성이 가렸으니 야크샤가 그 긴 세월 동안 못 보는 일 또한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를 아는 아난타 또한 자신이 분명히 보았다 했음에도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을 지적하지 않고, 으음~ 하고 말을 끌며 미리 사 두었던 메론맛 음료를 입에 물었다. 설명엔 별로 자신이 없는데, 야크샤라면 대충 설명해도 알아듣겠지. 다소 대책없는 생각과 함께 아난타는 방긋 웃었다.

“응, 볼 수 있대. 원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댔어.”

“호오.”

“아마 야크샤도 아~~주 옛날에 또 본 적 있을걸? 정말 예전이라 잊어버린 거야. 위성같은 게 있으면 안 보이고, 인간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위성이 있고… 그리고 밝으면 안 보인다더라고. 인간들 사는 곳이 밤인데도 밝아진지는 꽤 오래됐으니까, 음…”

“한마디로, 위성이 뜨거나 다른 빛이 지상에 있으면 안 보인다는 것 아니냐.”

“응, 그거야! 역시 야크샤!”

“이런 류에선 그리 믿지 말거라…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쩌려고.”

“에이, 알아들었잖아?”

“그건 그렇다만.”

야크샤는 아난타의 믿음에 부응하듯 아난타의 긴 설명을 간단히 요약했다. 못 말린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려서 잠시 불만을 표하고서, 야크샤는 방긋방긋 웃는 아난타의 얼굴을 보곤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생각에 빠졌다. 하긴, 먼 옛날에 밤하늘을 보지는 않았었지. 그땐 워낙 인간들 사이에 섞이는 데에만 열중했었으니…. 보러 가는 쪽으로 마음이 쏠린 것을 읽었는지 아난타는 입꼬리를 당겨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번쯤은 보는 게 좋을 거야, 야크샤.”

“…아까부터 계속 하고 있던 말 아니더냐?”

“응~ 그렇긴 한데, 기억에 계속 간직해줘. 네가 잊으면 내가 다시 말할게.”

“……”

“에이, 진짜 별일 없다니깐.”

“…그래, 일단 그렇다고 해두마. 그래서… 네가 원하는 바는 또 무엇이냐?”

야크샤는 고작 몇 분만에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순진하고 맑은 성격과는 달리 아난타의 행동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겠지만, 이번엔 어째서일까. 물론 짐작은 갔지만, 짐작이 갔기에 의심하는 기색을 거두지 못했다. 뾰로통한 야크샤의 귀를 가볍게 만지작거리고 쓰다듬어주며, 아난타는 야크샤가 안색을 읽지 못하도록 빙그레 웃었다. …하, 알려주지 않겠다 이거지. 야크샤는 쓰게 웃었다. 아난타가 숨기고자 한다면, 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포기. 야크샤는 두 손을 들어 항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포기를 표한 적은 거의 없는지라, 바로 최근에 어떤 말을 해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습을 보았던 지라, 아난타는 눈을 크게 떴다가 말간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야크샤, 귀여워~! 귀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들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시 귀를 만지작거렸다. …누군가 떠오르는데, 누구였지. 잠시 기억에 잠겼다가, 결국 떠올리지 못한 야크샤는 얼굴을 찌푸렸다.

“넌 어째서 날 어린애 취급하지 못해서 안달이냐…”

“외모 나이를 어리게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거랑 무슨 관계냐. 이제 그만 만지거라.”

야크샤는 귀찮다는 듯 뚱한 눈을 하고는 제 귀를 만지작거리는 아난타의 손을 쳐냈다. 탁! 가볍게 치는 모양새에선 상상하기 힘든 큰 소리가 나고, 야크샤는 고개를 번쩍 들어 눈을 크게 뜬 채로 아난타의 손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쳐내놓고선 생각보다 크게 난 소리에 당황해 아난타의 얼굴을 살피는 것이, 겉모습과 같이 정말 어린아이인 것만 같았다. 나 이정도는 괜찮은데. 눈을 동그라니 뜨고 두어 번 깜빡이다가, 아난타는 슬그머니 속삭였다. 우주 최강의 이름은 헛된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그냥 가볍게 쳐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야크샤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던 얼굴을 걱정으로 가득 채우고 저가 쳐낸 부위를 살폈다. 아난타는 머쓱한 얼굴로 눈동자만 굴리다가 제 손을 보는 야크샤의 손을 감싸 쥐었다.

“야크샤, 나 괜찮아.”

“…안다….”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나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 알면서.”

“…글쎄, 내가 뭘 걱정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그냥 얌전히 걱정이나 받거라. 네가 괜찮다는 이유로 내가 걱정하는 걸 멈추고 싶지는 않아. 걱정받는 걸 내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안 돼.”

“…하하, 알겠어. 근데 야크샤, 계속 그렇게 걱정할거야~?”

“조금만 더 하고 멈추마.”

“머리 길게 해주면 걱정 더 안 해도 될텐데.”

“……”

야크샤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방긋 웃는 아난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또 한 번의 한숨과 함께 얼굴에서 걱정하던 기색을 지웠다. 축 쳐져있던 입꼬리를 살짝 들어 얼굴을 부드럽게 만들고, 아난타의 손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놓았다. 솔직하게 말하기나 할 것이지, 평상시 바라던 것만 말하다니. 야크샤는 습관처럼 곰방대를 다시 불러내서 가볍게 물었다. 연기가 나지 않는 곰방대를 놓아 숨을 내쉬고, 왠지 쓴맛을 느낀 것 같은 웃음을 그리며 다시 아난타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언젠가부터 호시탐탐 노리는구나. 그냥 나이를 올려달라 하지 그러냐? 내 본래 성인의 모습도 머리카락이 꽤 길다만.”

“그 모습은 안 귀엽잖아?”

“…부정은 못하겠군. 그것만 해주면 되는 게냐?”

“응!”

“흐응… 그럼, 네가 은하수가 보이는 행성과 시일을 알려주면 해주도록 하마.”

“에 뭐야, 야크샤 약았어~”

“내가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을 해주는데, 대가는 받아야지. 어차피 알려줄 생각 아니었더냐?”

“그거야 그렇지만.”

“그럼 그냥 이득본다고 생각하거라. 약았다는 표현은 취소하고.”

“…야크샤, 은근히 뒤끝있지~”

“예끼.”

“아하핫, 네에~ 그럼 나중에 봐!”

아난타는 머리 쪽으로 다가오는 야크샤의 곰방대를 가볍게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살짝 눈을 키운 야크샤에게 해맑게 인사를 건네며 허공을 밟아 우주 위로 나갔다. 정말이지, 은하수가 보이는 행성은 찾기 어려운데. …뭐, 다시 시간을 돌리는 수고를 들일 바에야 이게 낫지. 응, 그렇고 말고. 빨리 찾아서 슈리가 좋아했다던 모습으로 해주자. 그리고 둘이서 은하수를 보고 온 다음에 행복했다고 웃는 모습을 보는 거야. 그럼 은하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희석되겠지. 야크샤 몰래 생각을 거듭하며―정말 몰랐는지는, 글쎄? 적어도 아난타는 그리 믿었다―, 아난타는 느리게 움직였다.

야크샤는 어께 아래로 내려오는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결국은 이렇게…. 신체의 연령대를 높이면 긴 머리이니 거부감은 없었지만, 어린 모습으로 긴 머리카락을 취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의 감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어색하기가 그지없었다. 진심으로.

몇 번 땋았다 풀어내린 긴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휘어 곱슬기가 묻어났다. 어디서 배웠는지 분명 섬세하게 땋았었는데, 아깝지도 않은지 그걸 풀어내리고, 다시 땋고… 별로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는 야크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 의외로 이런 데에 진심이란 말이지, 새삼스레 느낌을 남기며 야크샤는 뒤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집중했다.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특유의 향, 그림자… 뒤쪽에서 분홍빛 머리카락이 내려옴과 동시에 익숙한 체향이 확 다가왔다. 덮치듯 뒤에서 끌어안은 연인에게, 야크샤는 부드러이 미소지어 보였다.

“슈리야.”

“안녕, 야크샤. 다녀왔어?”

“그래. 나 없는 동안 잘 있었느냐?”

“인간들 기준으로도 짧았는걸. 잘 못 있었을 리가 없잖아?”

“하하, 그건 그렇지. 난 네가 계속 보고 싶었어서 물었다.”

“나도 야크샤 기다리느라 계속 야크샤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다를 건 없는 것 같네.”

“그러냐?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야크샤는 자연스레 제 어께에 고개를 묻은 슈리의 볼에 입을 맞췄다. 갑작스런 스킨십에도 익숙한 듯, 슈리는 가볍게 입꼬리를 당겨 미소지으며 야크샤의 길고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햇빛의 향을 담은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가, 슈리는 더 힘을 주어 야크샤를 끌어안았다.

“슈리야?”

“야크샤, 무슨 할 말 있지?”

“응. 어떻게 알았느냐?”

“그냥 알지. 나쁜 소식?”

“아니, 아무래도 좋은 소식.”

“…흐응, 뭔데?”

슈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살짝 떨어져서 야크샤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이런, 이번엔 진짠데. 아무래도 서로의 기준이 달라서 생긴 오해가 많았다는 자각이 있기에, 야크샤는 잠깐 쓰게 웃고는 슈리의 볼을 간지럽히듯 쓰다듬었다. 슈리의 눈매가 살짝 풀어진 것을 확인한 야크샤는 활짝 웃었다.

“나와 은하수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

“은하수?”

“응, 아난타가 열정적으로 추천하더구나. 행성에서 밤에 보는 은하수가 그리도 아름답다고 말이야.”

“아난타가… 혹시, 뭐 있는 거 아니야?”

“딱히 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던데… 뭐 걱정되기라도 하는 게냐?”

야크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슈리는 살짝 가라앉았던 얼굴을 폈다. 야크샤는 아난타가 자신에게 해치리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아난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놀랄 만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야크샤가 아니라고 하면 아닐 터였다. 의심을 의식적으로 가라앉히며, 슈리는 나긋이 미소지었다.

“…아냐, 야크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런 거겠지. 지금 말했다는 건, 지금 가자는 거지?”

“그래, 곧 가장 잘 보이는 때라고 하더라.”

“그럼 가자. 아, 머리카락 너무 예뻐. 선물이야?”

“칭찬 고맙다. 아난타가 위치와 시일을 알려주는 대가로 머리카락을 만졌다만… 네게 꼭 보여달라 당부하더구나. 그리 보면, 아난타의 선물인가?”

“야크샤의 선물인 걸로 생각할게. 보여준 건 야크샤니까.”

“그래, 네가 바라는 대로. 자, 슬슬 갈까.”

“응.”

야크샤는 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은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기대감이 서린 어린 얼굴을 바라보고, 슈리는 살풋 미소짓고는 제 손을 그 손 위에 얹었다. 아마 야크샤도 처음 보러가는 거겠지, 기대되는걸. 푸른 물보라가 야크샤의 발 밑에서 차오르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한순간 튀어오른 물방울과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 슈리는 한순간에 검게 물든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빛은 하나도 없지만, 왠지 어둡지는 않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자, 야크샤의 푸른 눈에 반짝이는 빛이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슈리야… 저길 봐.”

“…응?”

“별이 하늘을 가르고 있어…. 하나하나가 별로 이루어진 빛무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며 땅 위의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고 있다.”

하늘에 시선을 집중하던 푸른 눈이 분홍빛을 담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푸른 눈을, 슈리는 멍하니 마주 보았다. 감탄과 경외로 텅 비어있던 얼굴이, 눈꼬리를 내리고 입꼬리를 당김으로 부드러워졌다가 이내 환한 웃음을 담았다.

“아난타의 말이 맞았어. 널 닮아서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날 닮아서?”

“넌 내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있지 않느냐. 저 별 중 그 어떤 것도 너보다 오래되진 않았을 터이니, 저것들이 널 닮은 것이지.”

조곤조곤 속삭이는 야크샤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리 긴 머리카락이라는 점 때문인가 한층 더 어려 보였다. 아니,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가. 분홍빛을 담고 밝게 웃어보이는 푸른 눈을 보았다가, 그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별무리의 빛이 비추는 지상을 바라보았다. 어떤 식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저렇게 낭만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바는 왠지 이해가 가서 슈리는 물끄러미 야크샤를 바라보았다.

“…나보다는 너같은걸.”

“…음?”

“네가 더 오래 전부터 내 빛이었다는 뜻이야.”

슈리는 어둠 속, 어슴푸레 별빛을 받아 빛나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분홍빛의 제 모습을 비추고 있으면서도, 그 뒤로 빛나는 별들을 박아넣은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빛나는 것 같은 이 존재를, 그 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존재를, 어떻게 넘을 수 있겠어? 자신감이 넘치는 슈리였지만 이것에선 양보할 수 있었다. 자신이 흐트러뜨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슈리는 야크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응, 정말 아름다워.”

“…그거,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누굴 것 같아?”

모른 척 싱긋 웃는 슈리에게, 야크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정도면 오래 놔뒀지, 약속은 지킨 것이다. 그렇지? 속으로만 물으며, 야크샤는 슈리의 손을 잡았다. 어느새 커진 그림자는 슈리의 그림자와 겹쳐졌고, 한참 후 다시 떨어진 큰 그림자의 주인은 피식 웃었다.

“정말 아름답다니까.”

“…하여간에, 진짜 지기 싫어하지.”

“어찌 하겠어, 이런 건 표현할수록 좋은 것이거늘.”

“…그건 그렇지.”

슈리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제 그림자 뒤로 보이는 은하수를 박아넣은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어떤 그림자가 먼저 다가갔는지는 몰라도, 다시 한 번 그림자가 겹쳐졌다.

“그래? 좋았어??”

“응, 좋았다. 네가 아름답다고, 굳이 보라고 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헤헤, 그렇다니까. 예뻤지? 그냥 예뻐서 보라고 했던 거라고.”

“내가 그런 걸 믿을 것 같느냐?”

“음…~ 아니?”

“네놈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게냐…”

“그치만, 지금은 진짜 괜찮은걸. 야크샤가 즐거웠다고 웃는 모습 봤으면 됐지.”

“정말이지…”

야크샤는 만날 때마다 하는 것 같은 한숨을 또다시 푹 내쉬었다. 아니, 이정도면 습관인데. 하지만 안 하면 답답해서 수명의 끝을 정하게 될 것 같으니…. 생글생글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아난타를 다시 한 번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야크샤는 결국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정황을 아는 것도 이녀석,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도 이녀석이니 답이 없었다.

“머리는? 슈리가 맘에 들어했어?”

“…그래, 좋아하더라. 네가 슈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던 게냐?”

“음… 아니~ 그건 야크샤에게 주는 선물이었지.”

“그런 것이 무슨 선물이라―. …아.”

“흐흥.”

“…고맙구나.”

아난타의 숨겨진 말뜻을 알아차린 야크샤는 순순히 감사 인사를 표했다. 즐거워하는 슈리의 모습을 보고 더 행복해하라는 뜻을, 굳이 은유적으로 표현하다니. 감사와는 별개로 하마터면 못 알아들을 뻔 해서 온화하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헌데, 그런 식으로 날 믿지 말랬지.”

“앗.”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대체.”

“야크샤, 잔소리 심해…!”

“이게 잔소리냐?”

그후로 얼마간, 야크샤는 쭉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귀를 막으면서도 아난타는 즐겁게 웃었다. 야크샤의 목소리와 아난타의 엄살 섞인 비명소리로 가득하던 공간은, 야크샤가 슈리를 보러 가야겠다고 작별 인사를 건넨 후에야 조용해졌다. 완전히 조용해진 후, 서글서글 웃고 있던 아난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정말로… 기억을, 덮었어. 그의 입장에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는, 그에게만큼은 생생했다.

“…아난타…”

“…야크샤…!! 말하지 마, 바로 회복 초월기가 있는 녀석을 데려올게. 그러니까, 제발…”

“…아냐. 이미 틀렸으니, 굳이 낭비하지 말거라…”

“…야크샤…”

“…아난타. 저것은, 은하수라고 했더랬지….”

“…! 으, 응.”

“…아름답구나. 여태껏 인간계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야…. …기왕이면 슈리와 함께 진작에 봤다면 좋았을 텐데. 죽기 직전에야 보다니, 아쉬워…”

“…야크샤…”

“아난타. 돌리지 말거라. 그 검은 죄업, 내 눈에도 보인다.”

“…!”

“또 돌리면 정말 위험할 것이야… 그러니, 절대 하지 마. 알겠느냐?”

“……”

“…대답, 안 하는… 것, 보소…. …안녕, 아난타.”

잘 있거라…. …….

아난타는 제 볼을 확 내리쳤다. 됐어, 다 지난 일이다. 은하수 아래에서 목숨을 거뒀던 야크샤는 은하수 아래에서 너무나 행복한 기억을 얻었다고 했다. 쓸쓸한 얼굴과는 달리, 정말 밝고 즐거운 얼굴을 했다. 진작에 슈리와 함께 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마지막 말을, 실제로 실현시켰다.

응, 그걸로 된 거야. 아난타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 아래에서 검은 죄악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야크샤가 버텨준다면, 이 우주는 안 망할 것이고, 나는… 살 것이다.

아난타는 그리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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