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정기 시리즈

우주에서 온 새

우성명헌 - 센티넬AU


쫓겨나고 1년 만에 다시 들어온 산왕의 풍경은 언제나와 같다.

이명헌은 제 앞에서 걷는 교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대신에 복도 밖 창문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산왕에 다시 입학하며 빡빡 밀린 머리가 어쩐지 낯설다. 신이 마구간에 태어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은 뒤로부터 몇천 년이 지난 세상은 꽤 우스운 꼴로 돌아가게 되었다. 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센티넬과 신의 사랑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이드의 존재 덕분이었다. 세상에 극소수만이 존재한다는 센티넬들은 그 존재감 하나하나가 너무 강력해서, 한 나라에 백 명이 넘게 존재하면 다른 국가가 나서서 제약을 걸거나 협약을 걸기도 했다.

같이 세상을 우습게 만들어 놓고 센티넬 하나만 쏙 골라서 탓하는 이유는 센티넬에게만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능력을 언제부터 가지게 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규칙도 없었다. 최동오는 검은 표범으로 변할 수 있었고, 김낙수는 가볍게 주먹을 내질러서 중형차 범퍼를 그냥 부쉈다. 정성구는 생물의 성장에 마음대로 관여했다.

그런 센티넬들이 다니는 산왕은 이미 발현한 센티넬, 혹은 센티넬 발현 예정자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사회화 과정의 일환이었다. 국가 비상사태 혹은 재난 사태가 벌어진다면 최전선에 서게 될 센티넬이었지만, 일상은 결국 사회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능력 관리나 발현 부분으로 남들과는 다른 센티넬인 만큼 남들과는 좀 다른 시설이 필요했고, 그렇게 생긴 게 센티넬을 위한 학교였다. 운이 나쁘면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최동오가 이런 케이스였다─ 머물러야 하는 시설인 만큼 규모는 사실 학교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센티넬의 능력이나 성향에 따라 구역을 구분하고, 그 구분된 구역에는 또 다른 학교 이름을 붙이고, 운이 나쁘면 타교의 센티넬은 일 년에 서너 번씩 있는 단체 평가날 외에는 한 번도 볼 수 없었으니, 따지자면 사실 학교보다는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폐쇄적인데 정말로 사회화가 잘 될 수 있냐 묻는다면, 잘 됐다. 언어를 뗀 일곱 살에 입학해서 열일곱이 되는 해에, 그러니까 고교 2학년이 되던 해에 가이드로 발현 후, 전학 권고라는 이름으로 내쫓긴 이명헌은 밖에 나가서 일반인들과 섞여 사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센티넬 학교의 사회화 시스템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가이드들은 그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열 명의 사람 중 한 명이 센티넬일까, 말까 한다면 아홉 명은 확정적으로 가이드였다. 그 덕분에 가이드에 대한 인식과 교육은 센티넬과 달리 교육 필수 과정에 섞여 있다든지 보다 일상과 친밀하고 익숙했다. 즉, 이명헌의 가이드 발현은 사실상 이명헌이 일반인이 되었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평범한 가이드들이 국가적으로 대우 받으며 비로소 가이드답게 사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센티넬과의 매치율.

그리고 열여덞이 되는 해, 또다시 형식적인 가이드 검사를 받은 이명헌은 미 등록 국가 센티넬 38명 중 20명과 매치율 99%를 기록했다.

“여기서부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일반 학교에선 볼 수 없었던 긴 복도에서 갑자기 끼어든 건 신현철이었다. 주변 공기가 텁텁해진다. 앞서서 걷던 교사가 걸음을 멈추고 의심스럽게 보는 것도 잠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순순히 손에 든 서류를 넘겼다. 신현철의 입에서 도진우가 나온 덕분이었다.

선생님 대신 감독님이라 부르는 그는 센티넬 중에서도 정성구처럼 다루기 까다로운 능력을 갖고 있거나, 김낙수처럼 지나치게 파괴력이 높거나, 그것도 아니면 50평 남짓한 교실을 꽉 채우는 크기의 표범으로 변하는 최동오처럼 상식 밖 능력을 가진 센티넬이 분류되는 최고 위험 등급인 ‘산왕’을 맡은 교사였다. 그는 산왕의 센티넬을 보통의 학생이 아닌 운동부 선수들처럼 가르치고 키우며, 가이드가 없는 다섯 명의 센티넬들을 데리고도 학교 중 폭주 최저 수치율을 기록했다. 그런 도진우의 학교 내 신뢰나 평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산왕에서 발현 예정자에 불과한 이명헌이 학업을 보내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헌은 신현철과 함께 학교 내에서 유일하게 발현 확률이 90%가 넘는 예정자였기 때문이다. 발현 확률이 높을수록 발현되는 능력은 위험했다. 97%를 기록한 신현철은 열여섯에서 열일곱으로 넘어가는 해에 발현했고, 드문 센티넬 중에서도 특히 드물다는 원소 계열을 다룰 줄 알았다. 바위, 흙, 모래, 땅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신현철의 장난감이 되었다.

“바깥은 어떻든.”

“여기랑 그닥 다르지 않아용.”

“오케이, 일단 내기는 내가 이겼고.”

“무슨 내기용.”

“다른 애들이랑 내기했거든. 나가서도 네가 말꼬리 붙이나, 안 붙이나.”

참고로 최동오랑 정성구는 네가 뗀다에 걸었고, 김낙수는 바꾼다에 걸었다. 직전까지 앞에 서서 안내하던 교사와 달리 이명헌의 옆에 서서 걷던 신현철이 말했다.

“인사는 그게 끝인가용.”

“우린 다 네가 돌아올 줄 알았다.”

이명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산왕의 주장은 이명헌이니까.”

신현철이 마저 말을 이었다.

“감독님이 3학년 되면 운동 안 시킨다고 했었는데.”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걷던 이명헌이 결국 눈을 흘기고, 신현철이 코를 울리듯 웃었다. 전매특허의 웃음소리였다. 산왕을 맡은 도진우는 센티넬의 필수 교과 과목을 제외하고는 운동을 시켰다. 종목에는 구분이 없었고, 한 센티넬이 질리기 전까지 유지됐다. 정성구가 질려서 더는 못 해 먹겠다고 축구를 때려친 날에 최동오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단하게도 노력했더란다. 종목이 바뀔 때마다 주장은 언제나 이명헌이었다.

“그래서 내가 맡게 될 센티넬은 누군가용.”

산왕 최초 가이드 입학생이 된 이명헌이 물었다. 신현철은 넘겨받은 서류의 첫 장을 넘기면 바로 나오는 프로필 속 이름과 사진을 보다가, 금방 이명헌에게 던졌다. 직접 보라는 뜻이었다. 20명의 센티넬과 매치율 99%를 기록한 이명헌은 누구와도 각인을 맺지 않았다. 센티넬이 제게 수준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전대미문의 이유였고, 이명헌은 가이딩이 필요한 상태의 센티넬 다섯을 각인 없는 간단한 악수만으로 진정시키며 제 그릇을 증명했다.

기초 체력 측정이 끝나자마자 이명헌을 주장으로 낙점한 도진우의 결정은 정답이었고, 다른 누가 내 위에 있는 건 싫은데 이명헌이라면 괜찮다고 넘긴 센티넬들의 선택은 어떤 예고였다는 뜻이었다. 최근 2년간 안 해도 될 경험들만 골라서 하고 있는 이명헌은 그 모든 것을 덤덤한 얼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강한 학교인 산왕인 만큼 이명헌의 전학─퇴학─은 학교에 굉장한 불명예로 남았다. 듣기로는 16년 전, 입학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센티넬 이후로 처음이었다고. 산왕에 입학하기 위해 센티넬이었다고 거짓말친 가이드의 소동으로 마무리된 16년 전 헤프닝이었다. 불행하게도 센티넬 발현 확률 94% 이명헌이 가이드로 발현한 건 쪽팔리게 끝나는 헤프닝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산왕을 이끄는 도진우를 시작으로 그와 최소 3년─최동오의 경우 9년─을 같이 보냈던 산왕의 학생 중 누구도 이명헌을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았으나 학교의 교장과 이사들은 달랐다.

“죄다 검은 칠 해놓고 뭘 하라는 건가용.”

그런 것까지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이제는 최강 가이드로 다시 산왕에 돌아온 이명헌이 말했다. 서류를 앞뒤로 넘기는 손길은 미약한 짜증이 배어있었다. 능력이 발현함과 동시에 막힌 성장판이 뚫린 듯이 자란 신현철은 시선을 아래로 굴려 서류를 확인했다.

이름과 얼굴, 신체 스펙, 나이, 소속된 학교와 같이 가이딩 하는 데 그닥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제외한 모든 문장에는 먹칠이 되어있었다. 그러다 아예 <기록 삭제> 처리된 서류 여섯 장을 지나서 마지막 장의 검은 칠 끝에 보이는 문장, 성장 중, 가이드 존재 여부:없음 수정 - 이명헌(일치율 100%) 이 서류의 전부였다.

“서류부터 건방진데용.”

벌써부터 가이드 매칭을 끝내놓은 서류를 보던 이명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걔도 참 대단해, 그게 서류에서도 티 나기는 쉽지 않은데.”

신현철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만나봤나 보네.”

“1학년 신입생으로 들어온 놈이거든.”

센티넬이 제일 많이 발현되는 열여섯, 고교 1학년은 입학생이 쏟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명헌이 눈썹을 까딱였다.

“그래서 능력은 뭔데용.”

더 읽을 필요도 없어진 서류를 다시 첫 장으로 되돌렸다. 맨 앞에는 센티넬 프로필: 정우성이라 적힌 글자가 전부였다. 신현철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능력이 위험하다는 건 산왕에 입학한 사실만으로도 증명되었을 텐데도, 능력까지 먹칠이 되어있던 걸 보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 같았다.

“명헌아.”

“용.”

“내 가이드가 될 생각은 없냐?”

신현철이 앞만 보고 물었다.

“미쳤군용.”

마찬가지로 앞만 보던 이명헌이 대답했다.

“그럼 동오는.”

“변화 계열은 상성이 안 맞아용.”

최강 가이드 이명헌에게 유일하게 맞지 않는 건 최동오와 같이 변화체가 따로 있는 유형이었다. 한때 어느 쪽을 본체로 쳐야 하는가로 학계에서 논란이 많았던 해당 센티넬 유형은 당사자들이 본인은 센티넬이기 전에 인간임을 주장하며 변화 계열, 속되게는 인수 타입이라는 명칭이 자리 잡았다.

“낙수는.”

“난 일찍 죽기 싫은데용.”

김낙수 특제로 제작된 특수 합금 쇠 식기들의 무게를 가늠하던 이명헌이 말했다.

“성구는.”

“이러다가 현필이 가이드는 어떠냐고 묻겠어용.”

“어떤데.”

“신현철.”

그때까지도 농담으로 넘기던 이명헌이 결국 걸음을 멈췄다. 태어나기를 인간으로 태어난 몸에 깃드는 능력에는 페널티가 존재했다. 센티넬의 기량 이상의 능력을 사용할 경우 신체에 과부하가 온다. 센티넬을 연구한 학자들이 내린 폭주의 정의였다. 해당 상태의 센티넬은 본인의 능력을 제어할 수 없으며, 본인이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는 멈추지 못했다. 해결 방법은 각인 혹은 매칭된 가이드의 가이딩뿐이었다. 말이 가이딩이지, 알파벳으로 지적이게 포장된 단어를 뒤집어 까서 나오는 말은 섹스였다. 행위의 농도가 짙을수록 효과는 뛰어났다.

이명헌의 가이딩 능력은 현재 존재하는 기술로 측정되지 않는다. 매치율 99%라는 숫자도 사실상 이명헌의 능력으로 채워진 수치였다. 거대한 양동이에서 흘러넘친 물이 그 옆에 있는 비커까지 채워버린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런 이명헌인 만큼 강도 높은 가이딩은 필요 없었다. 각인 안 된 센티넬이 폭주 끝에 치닫아서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야 혀 한 번 섞으면 될까 싶은 정도였으니 말이 더 필요할까. 그리고 이명헌은 산왕만큼은 각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가이드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제가 각인할 센티넬을 고르고, 거부하며, 이곳에 다시 끌려왔던 것처럼.

물론 가족처럼 자라온 그들과 혀를 섞고 싶지도 않기도 했고. 특히 신현철의 친동생인 신현필을 생각하면 가이딩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산왕의 주장은 나라면서.”

멈춰선 이명헌보다 두어 걸음 앞서 걷던 신현철이 이내 똑같이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진짜 아직도 날 그렇게 생각한다면 믿어봐, 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용.”

그 언젠가처럼 뒷짐 지며 말했다. 굳어있던 신현철이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근데 이거는 잊지 마라. 우리는 네 편이다. 잘 달랬다고 생각했음에도 어떤 불안이 남았는지 걱정 한 마디가 달라붙었다. 이명헌은 대답하는 대신에 걸음을 움직여 신현철의 옆에 섰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멈췄다. 산왕이 가까워지면서 보이는 창밖 풍경 때문이었다.

“농구 시작했네용.”

센티넬에 맞춰 건물 서너 개는 들어서도 무리 없을 운동장에는 눈에 익은 농구 골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든 다른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공터로 남아있던 운동장은 완벽하게 농구 코트로 변해 있었다. 그곳에서 점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드리블을 연습하고 있었다. 농구는 고교 1학년의 이명헌이 질려서 그만두게 된 스포츠였다.

“걔가 하고 싶어 해서 하고 있다.”

농구를 하는 이유는 그게 전부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걔라고 말했지만 누구인지는 뻔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이명헌은 창을 보던 고개를 돌렸다.

“딱히 해도 상관 없어용.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걔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니까.”

“상관 없다는 말 진심인데.”

“걔가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 년 내내.”

말을 마친 신현철이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산왕의 스포츠는 아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최장 4개월까지 이어졌다. 이명헌이 질린 농구는 3개월 하고도 29일 만이었으며, 그게 도진우가 현재 산왕의 재학생들을 이끄는 중에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스포츠 종목이었다.

*

측정실, 못 해도 센티넬들을 위한 연습장에 갈 줄 알았던 신현철의 안내는 산왕의 운동장에서 끝이 났다. 정말 이곳에서 각인을 진행할 예정인가 싶었는데, 운동장 앞 교단에 모인 인원을 보아하니 진짜인 것 같았다. 그즈음 이명헌은 혼자서 농구하고 있던 검은 점이 그 센티넬이라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신현철이 목소리를 높여서 이름을 불렀고, 그러면 얼마 되지 않아 운동장 저 끝에 있던 놈이 교단에서 보일 정도로 아주, 아주, 아주 빠르게 달려왔다. 이명헌이 눈썹 하나를 들어 올렸다.

“선배! 늦었네요?”

“너 기다리다가 죽으라고.”

“막상 눈에 안 보이면 제일 먼저 찾으면서, 선배도 참.”

“오냐, 더 눈에 띄게 이마에다가 발바닥을 붙여주마.”

그렇게 말한 신현철은 냅다 정우성에게 관절기를 시전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은 교단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도 익숙해 보였다. 이곳으로 걸어오기까지 신현철이 보였던 정우성에 대한 경계는 다 거짓이라는 것처럼 둘은 친근해 보였다. 아, 아파요! 아, 아! 형!! 진짜 아파요!!! 항복! 항복!! 신현철의 전매특허인 새우 꺾기 다음으로 트위스트 코스까지 착실히 맛보던 정우성이 코트 바닥을 탭치며 우는 소리를 냈다. 잘 보니 끝에는 눈물방울도 매달고 있었다. 엄살이 꽤 심한 것 같았다.

“저 오늘 가이드랑 처음 만나는 날인데!! 잘 보이려고 준비 많이 했단 말이에요!”

금방 기술에서 풀려났다고 또 떠드는 거 보면 일단 겁이 없는 건 확실했다.

“됐고, 이쪽이 이명헌.”

그 건방짐을 용케 넘어간 신현철이 제쪽으로 손바닥을 보였다.

“용.”

“와! 진짜 만나보고 싶었어요! 선배가 산왕 주장이었다면서요! 아, 저는 정우성이에요.”

다음으로 정우성 쪽으로 손을 움직이던 신현철이 입을 다물었다. 열받지만 두 번까지도 참아주겠다는 얼굴이었다. 이명헌은 어느샌가 등 뒤로 간 양손을 원위치로 돌리는 대신에 눈앞에 선 정우성을 바라보았다. 허여멀건 얼굴이 아파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건강한 건 확실했다. 신현철보다는 작지만 저보다는 크다. 아마 최동오와 비슷하지 않을까. 일단은 산왕답게 머리는 빡빡 밀려 있었는데, 그래서 더 이목구비의 태가 났다. 답지 않게 반짝이는 눈에는 어떤 악의도, 적의도 없다. 센티넬에 맞춰 평균보다 세 배는 더 넓은 농구 코트를 뛰면서도 땀 난 기색조차도 없었고.

“어, 음…, 좋아하는 건 농구고요, 그래서 웬만하면 선배랑 꼭, 꼭 매칭되고 싶은데요.”

이명헌의 침묵에 머쓱하게 눈을 굴리던 정우성이 몇 마디 말을 이었다. 꼭 매칭되고 싶다는 목소리는 이명헌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신현철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답을 돌려주는 대신에 두 사람이 뒤엉키면서 정우성이 손에서 놓친 농구공을 집어 올렸다.

“원온원에서 이기면용.”

“야, 이명헌.”

“…골대가, 선배가 쓰기엔 높을 텐데요.”

그렇게 말하는 정우성의 목소리에는 숨겨지지 않는 흥미가 묻어 나왔다.

“낙수나 성구 불러용.”

이명헌이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풀며 말했다.

“아뇨.”

정우성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에는 골대로 또 순식간에 달려갔다. 보고 있으면 몸이 가볍다 못해 나는 것만 같다. 골대 앞에 도착한 정우성은 센티넬의 힘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림과 백보드를 지지하는 골대 하단을 망설임 없이 밟아 부쉈다. 그러다 베이스를 잃은 골대가 기울자 뒤늦게 신현철을 찾았다.

꼭 저까지 손을 쓰게 만든다고 불평한 신현철이 코트에서 발을 굴렀다. 그곳으로부터 시작된 균열이 공터에 길게 이어지다가 아작이 난 하단을 대신할 돌덩이 하나가 쑤욱 올라온다. 그러면 정우성은 능력을 처음 본 아이처럼 기뻐하면서 덜렁이는 철골을 잡아 뜯은 뒤, 림과 백보드 부분이 남은 고철 덩어리를 돌덩이에 쑤셔 박았다.

“10점 내기.”

그때까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이명헌은 천천히 공을 튕기며 비로소 제 높이를 찾은 농구 골대를 향해 다가갔다.

“3점 내기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지친 기색 하나 없는 정우성이 대답했다. 이명헌이 걸음을 멈추고 농구공을 잡았다. 이제 하프 라인 정도에 서 있던 이명헌은 무릎을 살짝 굽히고, 오른손 위에 농구공을 얹은 뒤, 왼손은 살짝 거드는 정도로만 공을 부드럽게 감싼 다음에는 저절로 굽혀진 팔과 함께 몸을 폈다. 손에서 벗어난 공은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림을 통과한다.

“7점 남았어용.”

가이드로 발현됐을 뿐, 십 년을 산왕에서 센티넬과 함께 어깨 부딪히며 운동해온 이명헌이다. 하프 라인에서 순식간에 정우성의 발밑에 도착한 농구공이 바닥을 굴렀다. 어느샌가 센터 근처까지 온 이명헌은 교복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린 후 자세를 낮췄다. 빨리 공을 들고 공격해보라고 말하는 그를 본 정우성은 마침내 제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임을 직감했다.

1년 전, 가이드로 발현한 선배가 농구에 질린 이유가 이기는 게 재미없어서라는,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어떤 이야기가.

그때 느꼈던 설렘이.

*

손안에 감기는 농구공은 시중에서 파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왕에서 농구할 적에 쓰이던 농구공은 김낙수의 힘이나 최동오의 손톱에 터지거나 찢기지 않도록 훨씬 더 단단하고 질기게 제작되고는 했다. 학교 밖으로 나간 이명헌이 놀란 일 중 하나였다. 어느 정도 특수 제작이 된 줄로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농구공이라는 게 그렇게 가벼운 것일 줄은.

이 사실을 다르게 말하자면, 정우성은 일반적인 농구공을 찢거나 터트리지 않고도 경기할 수 있을 만큼 제 능력 컨트롤에 자신 있다는 것이다.

드라이브인으로 순식간에 상대를 제친 정우성이 뛰어올랐다. 덩크를 할 때마다 항상 굉음이 났던 신현철과 최동오─김낙수가 키까지 됐더라면 백보드는 하루에 서른 번도 넘게 교체됐을 것이다─와 달리 정우성은 마치 깃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뿐하고, 가볍고, 재빠르다. 득점하기 위해 뛰면서도 지지대 삼는 바닥에 균열이 나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농구를 잘하는 고등학생 같았다. 림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이쪽을 보는 눈빛은 승부를 겨루는 상대를 대하고 있다기보다는 경기를 보러 온 관객에게 칭찬을 바라는 얼굴이었다.

“이걸로 8:5!”

이명헌은 그곳에 응하는 대신에 골대 밑에서 힘의 반동으로 두어 번 정도 튕겨 오르는 농구공을 가로챘다. 철골이 삐걱거리도록 내려오지 않던 정우성은 그제서야 내려와 이명헌이 그랬듯 몸을 숙였다. 능력은 좋지만 쉽게 방심하는 게 흠이다. 어림잡아 5, 6cm 정도 더 큰 상대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리블하던 이명헌은 시선을 왼쪽으로 흘겼다.

“그거 알아요?”

원온원이었음에도 디펜스 파울이 나지 않도록 양손을 벌리고 어깨와 상체만을 부딪쳐오던 정우성이 말을 건 것은 그때였다.

“선배 페인트할 때 항상 왼쪽만 보는 거.”

정우성이 공을 빼앗기 위해 오른손을 뻗었고, 그것보다 더 빠르게 농구공이 이명헌의 등 뒤로 사라진다.

“일부러 노린 건데.”

“어, 진짜요?”

정우성이 눈을 크게 뜨고 상체에 힘이 풀린다.

“뻥이에용.”

이명헌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뒤에서 치사하다는 목소리가 급하게 따라붙었다. 이쯤 되면 일부러 봐주나 싶을 정도였다. 레이업을 위해 낮게 도약해 골대 옆으로 농구공을 두고 오는 그 순간이었다.

“치사하다니까요!!”

분명 뒤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당황한 명헌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높이로 압도당하는 건 딱히 놀랍지 않다. 키가 크고 몸의 탄력도 좋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센티넬이다. 단지 알 수가 없었다. 서 있던 곳에서부터 점프해서 제 옆으로 온 건지, 아니면 제가 뛰는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달려서 거리를 좁힌 건지. 이어 파열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림에 들어갔어야 할 농구공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공기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에도 일반적인 농구공은 멀쩡했다. 두 사람의 발이 동시에 땅에 닿고, 공을 향해 달려 나가는 건 정우성이었다.

터지지 않게끔 힘 조절했음에도 아예 코트 바깥까지 튕겨 나간 볼을 잡았다. 곧바로 림이 있는 곳으로 몸을 틀면 이명헌은 페인트 존에 서서 가만히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상 코트 밖이었음에도 트래블링에 걸리지 않도록 착실하게 드리블하며 거리를 좁히던 정우성은 입술을 깨물고 미소를 참았다.

하프 라인에서 세 걸음 정도 뒤에 서서 냅다 슛을 쐈던 이명헌은 본격적인 원온원이 시작된 뒤로는 하프 라인은 커녕 베이스라인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센티넬에게 맞춰져 쓸데없이 넓어진 농구 코트에서도 제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것이다. 공이 멀리 튀면 제가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재촉이나 다른 명령도 하지 않고, 센티넬이 그러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공수 교체가 빠른 스포츠라고 해도 선공을 잡는 건 굉장히 중요했다. 특히 가이드와 센티넬이라는 차이가 있는 코트 위에서 경기를 좀 더 능동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선공권은 중요한 정도를 넘어서 승리의 필수 요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이드 이명헌은 코트밖에 떨어진 공에 집착하지 않는다. 허겁지겁 달려가서 공을 주워온 센티넬에게 룰을 들먹이면서 깐깐하게 제 공이라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을 들고 온 상대가 베이스라인에 들어오면 언제 평화로웠냐는 듯 다시 상체를 숙이고 수비를 시작했다. 주도권을 언제든 뺏어올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기는 게 재미없어서 농구를 관뒀다는 말이 좀 잘하지 않고서야 나오기 힘든 말이라는 건 정우성이 제일 잘 알았다. 그런 한편으로는 의문스러웠다. 이명헌이 질린다고 말하는 승리가 정말 정당한지에 관한 의문이었다. 이명헌의 승리가 정말 가이드를 지키려는 센티넬의 무의식적인 본능 없이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산왕의 선배들은 농구는 이명헌이 가이드로 발현되기 전에 했던 스포츠라 말했다. 설령 그런 낌새가 있었어도 이명헌을 보호해야 할 가이드로 인식하는 건 너를 예쁘고 귀엽다고 인식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몇 차례에 걸쳐 반박했으나 정우성은 믿지 못했다. 도 감독을 제외한 교사들은 사람 취급하는 둥 마는 둥 싶던 그들이 자리에도 없는 사람에게 쏟는 존중 때문이었다.

그들은 산왕에 입학한 지 고작 한 달 지난 정우성을 순순히 에이스라 부르면서도 주장의 자리만큼은 공석으로 남겨두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며 앞만 보고 달리던 선배들은 이명헌의 이름표 위로 먼지가 쌓이는 것만큼은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취급을 안 했다니.

차라리 이명헌이 학교를 엿 먹일 심산으로 산왕의 센티넬을 전부 각인하고 도망쳤다는 쪽이 훨씬 믿을 만했다. 마침내 자신의 가이드가 되기 위해 산왕으로 돌아온 이명헌을 보며 정우성은 그 모든 추측이 그를 만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과소평가라는 걸 깨달았다. 꽤나 진심으로 부딪치며 몸싸움하고 있어도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 철골을 밟아 부수고 잡아 뜯는 센티넬에게 잘못 걸리면 그대로 죽는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그런 죽음을 바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붙어왔다.

높이가 낮아진 농구 골대에 슛 감각을 헤맸던 초반 3분, 이명헌을 막았다가 실수로 그의 뼈라도 부러트리면 어떡하나 싶었던 정우성의 머릿속에는 이제 어떻게 하면 그와 더 오래, 같이 농구를 할 수 있는지로 가득 차 있었다.

“넌 잡생각이 너무 많아.”

손에서 볼이 빠져나가는 건 그때였다. 당연히 레이업을 시도하리라 생각했던 이명헌은 전보다 훨씬 높게 뛰었고 다음에는 쾅 소리 나게 림을 내리찍었다. 원핸드 덩크였다. 용. 늦은 말꼬리와 함께 이명헌이 바닥에 사뿐히 내려온다. 오직 센티넬을 위해 만들어진 농구 코트 위에서 위화감 없이 녹아든 이명헌을 보며 정우성은 드디어 산왕의 주장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

원온원의 승부는 정우성의 승리로 끝났다. 스코어는 7:10. 이명헌의 덩크 후 이어진 접전 끝에서 정우성은 똑같은 원핸드 덩크로 되갚아주는 대신 특기인 풀업점퍼로 2점을 따냈다. 빠르기도 빨랐지만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는 슛이었다. 농구를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떤 움직임이든 낭비되는 게 없었다.

“어때요?”

집요하게 농구공을 쫓던 정우성은 승패가 결정되자마자 이명헌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승리를 뽐내기보다는 칭찬을 바라는 얼굴이었다. 악의도 적의도 없이 반짝 빛나던 눈 안에는 상대가 자신의 가이드가 될 것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숨겨지지 않고 빛났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힘 조절과 신체 능력을 곱씹던 이명헌은 팔뚝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 소매 단추를 풀었다.

“안 해용.”

“어?”

주어가 몽땅 썰린 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정우성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명헌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전력이 아니잖아용.”

이게 네 전부가 아니잖아. 단언하는 목소리는 건조했다. 충격으로 굳어있던 정우성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이명헌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앞에 서서 걷는 만큼 뒤에서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몰라야 함에도 들뜬 기색이 생생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상대를 관찰하고, 재본 뒤, 판단하는 역할이 침범당한 감각은 그다음이었다.

그러니까, 총체적으로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누군가가 제 위에 올라서는 건 싫은데, 평가받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16년의 기다림 끝에 센티넬이 아니라 가이드가 되었나.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쓸데없는 상념을 떨쳐낸 이명헌이 이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때까지도 정우성은 멈춰 선 자리 그대로였다. 눈이 마주치면 놀란 정우성이 급하게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기적적으로 이명헌의 불쾌함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전력이 아니어도 선배는 이길 수 있다는 뜻이죠?”

물론 손으로 가려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이명헌의 심기를 긁기 좋았다.

“가이드한테 7점을 따였는데도 초조한 기색 없이, 능력도 안 보이는 센티넬을 내가 왜?”

땀 흘려 농구 한 적 없다는 듯 뒷짐 진 이명헌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 힘으로도 낙수 선배한테 안 밀리고, 스피드도 동오 선배 이겨요.”

그 말을 들은 이명헌이 그제야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힘으로 낙수한테 안 밀리는 건 좀 소름 끼치네용.”

“그쵸?”

“몸 쓰는 거, 네 능력 아니잖아용.”

칭찬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대답에 얼굴이 밝아지는 것도 잠깐이었다. 정우성의 미간이 꿈틀거리다가 입술이 멋대로 벌어졌다. 그때그때 제가 느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던 사람에게도 숨기는 얼굴이 있다. 눈앞에 정우성이 그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 안에서 열심히 굴러가는 게 보이는 혀가 입술을 한 번 축이고 난 다음에는, 웃었다. 이명헌은 가까스로 한숨이 나가려는 것을 참았다. 진심으로 놀란 다음에도 이러는 걸 보면 집중을 끌어낼 만큼 흥미로운 것들은 그의 삶에 있어서 약보다도 양날의 검이 될 확률이 높았다.

진심으로 놀란 보통의 사람들, 그러니까 교사들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제가 눈치채지 못했으면 신체 강화형 센티넬 대충 그쪽으로 속여서 각인을 진행시켰을 거라는 뜻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참 비겁한 사람들이다. 소란 아닌 소란 가운데에서 혼자 조용한 신현철은 팔짱을 끼고 저와 정우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현철 역시 정우성의 진짜 능력을 알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입밖에 낼 수가 없어서, 제 가이드가 되라는 말로밖에 말릴 수 없는 능력이 바로 정우성의 능력이었다.

“말뿐인 센티넬은 필요 없어용.”

그리고 이명헌은 말뿐인 두려움은 필요 없었다. 이명헌에게 필요한 건 증명이었다. 산왕이 쫓아낸 가이드에게 자존심을 굽혀서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센티넬이라면 그 가치를 온전히 내보여야만 했다. 능력조차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최강의 센티넬, 같은 허울뿐인 타이틀을 내세울 게 아니라. 이명헌은 정우성과 각인하지 않는다면 다시 산왕에서 쫓겨난다 해도 상관없었다.

먹칠로 가득했던 센티넬의 프로필을 자신의 글씨체로 채워나가는 것을 관둔 이명헌이 몸을 돌렸다. 그러면 뒤에 서 있던 정우성이 다급하게 팔을 붙잡았다.

“내 전력, 보여줄게요.”

웅성거리던 교사들이 짠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대신에 도망가면 안 돼요.”

갑작스런 능력 사용은 안 됩니다!! 그제서야 뒤에 서 있던 교사들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와 어깨를 붙잡고 뒤로 빼는 등 이명헌과 정우성을 떨어트려 놓았다. 누군가는 빨리 도 감독을 불러오라 목소리를 높였고, 또 누군가는 급하게 전화를 걸어 현재 산왕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했다. 대다수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유난도 이 정도면 병 아닌가용.”

교사들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신현철 옆으로 돌아온 이명헌이 물었다.

“저 자식이 능력을 쓰려면 국가 허락이 필요하거든.”

신현철은 버티고 서다가, 이명헌이 이끌려 가는 걸 보고 똑같이 몸의 힘을 푸는 정우성을 보며 말했다. 훅 커진 스케일에도 이명헌은 놀라지 않았다. 보통이 아니라는 건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오히려 국가 제약 급으로 규모가 커지는 쪽이 되려 마음 편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멋대로 키우고 죽일 수 있는 정성구는 국가 허락 없이 인간에게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얼마나 기다리면 되나용.”

이명헌이 다시 물었다.

“최소 3주.”

신현철이 다시 대답했다. 거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이명헌의 미간이 처음으로 구겨진다. 국가 허락이니 뭐니 떠들어대도 학교 자체가 센티넬을 관리하는 국가 시설이었다. 그런 게 아니어도 국가 허락이 필요한 센티넬의 능력 사용은 그만큼 위험하거나 급하다는 걸 뜻했기에, 보통 승인은 아무리 늦어도 삼십 분 내로 떨어졌다. 그런데 최소 3주라니. 이제 고교 2학년, 그것도 아직 성장 중이라는 센티넬 상대로는 과한 숫자였다.

“됐어요, 그냥 할래요.”

거기서 목소리를 높인 건 정우성이었다.

“최소한 밤에라도!”

마치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교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나 말 잘 듣게 하려고 선배 찾아서 데려온 거 아니에요?”

정우성이 말했다.

“내가 하겠다니까?”

표정은 여전히 장난스러웠으나 그곳에 배어있는 건 귀찮음이다.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국가니, 뭐니 하는 것보다 제 기분과 결정이 그 위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협박들은 웃는 낯짝이라 소름 돋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우성의 협박은 가히 효과가 굉장했다. 뒷걸음질 치던 교사들은 아예 몸을 돌리고 도망친다. 방해도 잠깐, 금방 제가 원하는 대로 풀려가는 상황에 정우성이 상쾌하게 웃었다. 신현철이 팔짱 끼고, 이명헌이 뒷짐 졌다.

“건방지네용.”

“건방지지.”

짧게 스쳐 지나간 막무가내의 모습이었으나 이명헌은 그게 정우성이라는 센티넬의 본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비슷한 수준으로 농구 할 수 있는 산왕이 마음에 들어서일지는 몰라도 제 안에 들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저런 태도가 기본이라는 것도.

“아, 근데 이거는 확실하게 해놓을게요.”

운동장 한가운데로 걸어가던 정우성이 뒤늦게 생각난 듯 몸을 돌렸다.

“근데, 명헌아.”

그에 맞춰 신현철이 입을 열었다.

“3개월 뒤에 명헌이 형이 학교에 없으면…….”

“나나 다른 애들은 무조건 네 편을 들 건데.”

정우성의 입에서 나온 구체적인 날짜와 어느새 바뀐 칭호에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신현철 덕분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운동장에 서서 무슨 비장한 말을 할 것처럼 보이던 정우성이 고개를 까닥이며 고민을 이어갔다. 여기서 되게 멋있게 협박하고 싶은데, 해본 적이 없으니까 멋있는 협박 같은 게 하나도 안 떠오르네……. 저건 또 무슨 소리인지, 모든 걸 알고 있을 신현철에게 물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3개월 뒤에 형이 없으면 그냥 다 부술래요.”

“뒷수습은 안 도와준다.”

신현철과 정우성이 동시에 말했다.

다음에 눈을 깜빡이면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던 정우성은 사라져 있었다.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진 일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국가 허락이 언급되는 시점에서 그의 능력이 열 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센티넬 열을 모아서, 또 있을까 말까 한 미확인 계열이라는 건 뻔했다. 추상적 개념을 물리적으로 실현시키며 상식을 뛰어넘어 절대적 진리까지 부수는 능력들을 묶는 계열이었다. 능력을 가늠하다가 만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던 시공간 조작까지 가던 그때였다.

“정우성!!!”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달려온 도진우였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이명헌은 그제서야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위로 꺾어

하늘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운동장에 도착한 도진우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는 건물을 나오는 순간부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 정우성이 있음을 확신하며, 자신의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명헌이 고개를 들었던 건 단지 그뿐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정우성이 있을 곳을 확신하기에, 이명헌은 그들이 그러는 것처럼 고개를 들러 하늘을 보았을 뿐이었다.

구름이 존재하지 않는 하늘에는 거대한 직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직선은 베일 것 같은 흠이나 불길한 균열보다는 꼭 정우성의 서류에 그어져 있던 먹칠 같았다. 검고 뿌연 그것은 얼핏 하늘에 그림자가 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무엇이 되었든 눈에 담기 벅찰 정도로 거대했다. 이게 설마 정우성의 능력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하늘을 보던 사람들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지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갔다.

“설마 이게,”

그럼에도 이명헌은 목소리를 내서 물었다.

“발톱이다.”

대답하는 건 제자들의 옆에 선 도진우였다. 목소리에는 체념으로 물들어 있었다.

“운동장에서 떴다면 아마 두 번째 발톱이겠지. 세 번째 발톱은 미국에서도 보일 테니, 한동안 또 난리가 나겠군. 몸을 풀고 싶으면 최소한 밤에 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제서야 이명헌은 정우성의 능력 승인에 최소 3주가 걸리는 이유를 깨닫는다. 그의 능력은 단순히 나라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발톱이라던 거대한 직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아예 몸까지 틀고 걸음을 움직여서 지평선 너머를 따라가도 직선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정우성의 발톱 안에 있는 거다.”

이명헌이 무엇을 재는지 눈치챈 신현철이 말을 이었다. 비로소 발톱이라는 단어가 능력을 빗댄 표현이 아닌, 사실을 직관적으로 담아낸 말이라는 걸 이해한 이명헌의 숨이 조금씩 흐트러진다.

3개월은 우주에서 산왕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태양이 지면 달이 뜬다. 모든 존재는 태어나 죽는다. 시간은 흐르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땅은 누구의 의지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표범은 하에이나보다 크고 사자와 호랑이보다는 작다. 신이 빚어낸 절대 진리 위에 선 인간은 그 존재가 불경하여 신의 미움을 샀다. 그들의 존재에 분노한 신은 그들이 진리를 어길 때마다 인간이 인간으로 있게 하는 이성을 잃는 저주를 내렸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의 손길 뿐이다. 그렇게 신은 규율을 깬 짐승을 제가 사랑하는 인간의 손안에 맡김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눈감는다.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개념을 배우기 시작한 날로부터 지겹게 봐온 교과서에서 적힌 신화는 분명 그랬음에도.

공기도 중력도 없을 우주에서 세상을 감싸고 있는 저 존재는,

이건,

어쩌면,

“그저 새 한 마리다, 명헌아.”

그렇게 생각해야 해. 도진우가 굳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의 하늘에서 별 하나가 빛났다. 홀린 듯 그것에게 시선이 빼앗긴 이명헌은 문득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소리일지도 몰랐으나, 태양이 밝게 떠올라있는 하늘에서도 빛나는 저것이, 지구 밖에서 저를 보고 있는 정우성의 눈인 것 같았다. 근데 그게 미친 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조류 중에서도 몸집이 큰 맹금류들의 시력은 약 2만km 바깥에 있는 먹이를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으며…….

이명헌이 저도 모르게 몰아쉬고 있던 숨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이명헌이 만나온 센티넬들이 상식 밖에 있었다면 이건 이해와 이성의 범주 밖에 있었다. 같은 인간은 물론 센티넬로 묶이는 것조차 버거운 존재와의 조우에서 이명헌은 다시 생각한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바람도, 하늘도 없는 우주에서 새가 날 수 있는가?

새는 새장에서 살 수 없다. 지구는 정우성의 새장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하얀 새 한 마리를 떠올리며 침착해지던 이명헌은 뒤늦게 자신이 변화 계열과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의문은 생기는 순간 답을 찾아 낸다. 정우성의 서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구였다.

성장 중

이명헌의 비커가 흘러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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